이 도시의 특별한 표정

세상에 없는 마을

누구에게나 아킬레스건은 있다

누구에게나 약점은 있다. 얼핏 다 가진 것 같아 보이는 ‘그’ 사람에게도 아킬레스건이라 부를 만한 것이 있을 테다. 정 없다면 진짜 아킬레스건이 약점이겠지. 약점이 있는 위인들을 안다. 당장 떠오르는 사람을 이야기해 보자면 《명탐정 코난》의 쿠도 신이치(남도일), ‘해리 포터’ 시리즈의 헤르미온느 진 그레인저, 한글의 창시자 세종대왕, 독립운동가 김구. 신이치나 헤르미온느가 위인이냐 묻는다면…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 나는 한글이 좋다. 한글은 지혜로운 글자처럼 보인다. 직관적이고, 꾀를 부리지 않아서 좋다. 훈독과 음독이 따로 있는 타국의 언어와 달리 모양 하나에 소리가 하나씩 맞춰지는 구조가 살가워 보인다. 세종은 주체성이 강하고 혁신적인 성격이었다고 한다. 글자 없이 생활하며 인간으로서 권리를 제대로 찾지 못하고 있는 국민들을 보고 통탄해하던 그는 생각했을 것이다. 외국 세력에 지지 않을 우리만의 것을 만들어야겠다고, 그것으로 우리의 것을 지켜 나가야겠다고. 마침 집현전에는 세종의 꿈을 실현해 줄 학자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세종의 생각에 동의하여 그간 배운 것들을 몽땅 꺼내 보였을 것이다. 기꺼이 연구를 시작했을 것이다. 첫소리, 가운뎃소리, 끝소리를 만들고, 이 요소가 한데 모여 소리를 낼 수 있도록 구조를 만드는 과정이 기뻤을 테다. 과학적이고 독창적인 글자가 만들어지기까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수많은 노고가 있었을 터. 적당한 스트레스와 보람도 함께였을 것이다. 그 스트레스 한쪽엔… 어쩌면 우두머리 세종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밤낮없이 일에 몰두하는 세종. 세종은 지독한 일 중독자였다고 한다. 일부러 그러려는 것은 아니었겠지만, 한시도 자리를 뜨지 않고 한글 창제에 몰두하는 그를 두고 어느 신하가 감히 먼저 책을 덮고 잠자리에 들었겠는가. 눈이 절로 감기는 어느 밤, 피곤에 못 이긴 어느 한 학자는 자음과 모음을 간신히 조합해 세종의 흉을 한가득 써두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의 집요한 일 중독증 덕분에 한글이 탄생했지만 그 때문에 학자들이 지쳤고, 함께 일하기 힘들어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면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아킬레스건이지 않을까.

해리 포터의 친구 헤르미온느는 똑똑하다. 엄청 똑똑하다. 잘난 체도 할 줄 안다. 우수한 지능을 지녔고 학업에도 충실하여 교수들의 총애를 얻는다. 하지만 지나치게 모범적인 나머지 융통성이 없다. 자기가 모르는 일은 없는 일,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서 당장 진척되어야 마땅할 일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그럴 땐 진짜 답답하다.) 모든 일에는 빛과 어둠이 있고, 칼에도 양날이 있다. 헤르미온느는 철저하게 계획적이라 즉흥적인 친구들, 해리와 론 사이에서 중심을 잡아주는 지혜를 지녔지만, 애석하게도 계획하지 않은 일에는 문자 그대로 ‘얼어버린다’. 시간을 되돌려 같은 시간에 진행되는 수업을 모두 듣고도 들키지 않을 정도로 철저하지만, 계획되지 않은 일이 눈앞에 펼쳐지면 어찌 할 바를 몰라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사람이 된다. 한편 쿠도 신이치는 어떠한가. 극 중에서 그는 경찰도 해결하지 못하는 사건을 척척 해결하는 고등학생 탐정이다. 똑똑한 건 물론이고 운동도 잘하고, 얼굴도 잘생겼다. (아, 나의 오랜 이상형….) 전문가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정밀 사격이 가능하고 경비행기와 대형 여객기까지 조종할 줄 안다. 그런 신이치가 못하는 게 하나 있다면 바로 노래. 절대음감으로 살인 사건까지 해결하지만… 그는 지독한 음치다.

약점은 가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고 때로는 치명적이어서 평판을 망치고 목숨을 위협하기도 한다. 약점을 일컫는 아킬레스건은 인체에서 가장 크고 긴 힘줄이다. 그리하여 히포크라테스가 ‘Tendo Magnus(큰 힘줄)’이라 이름 붙였다는 설도 있는데 나는 아킬레우스의 유일한 약점이 발꿈치였다는 설화를 좀더 오래 기억하고 싶다. 

기실 아킬레스건은 발꿈치에 위치하지 않는다던데, 그럼에도 나는 약점을 아킬레스건이라 부르는 게 좋다. 누구에게나 있는 근육이고, 약점은 누구에게나 있을 테니까. 아, 그러고 보니 김구의 약점을 빼먹었는데 그는 지나친 개구쟁이에 사고뭉치였다고 한다. 동그란 안경을 쓰고 짓궂은 짓을 일삼는 남자애. 김구 선생님은 캐릭터부터 아킬레스건까지 어쩜 이다지도 귀여운 것인지.

그러니까 나에게도 있다

칭찬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까? 누군가는 당당히 칭찬을 받아들일 것이고, 누군가는 “아유 아니에요.” 얼굴을 붉히며 부끄러워할 테지만 어쨌든 사람이라면 대체로 칭찬을 좋아할 테다. 나는 다소 일찍 칭찬의 맛을 알아버린 어린이였다. 나를 향한 좋은 말, 힘이 되는 말을 들으면 어깨가 든든해졌다. 칭찬을 받아 꼭 쥐고 다니는 날이면 아무것도 없는 가방에 뭔가 가득 차는 기분이었다. 어깨가 조금 당겨도 ‘기쁘다’는 마음이면 금세 없어질 고통이어서 나는 그 무게를 짊어지는 것이 좋았다. 가끔 내 것이 아닌 것 같은 칭찬을 들을 때도 기어이 내 것으로 만들고 싶었다. 고래도 춤추게 하는 칭찬인데, 내가 춤추지 않을 재간은 없었으니까.

언제였던가, 어린 시절 부모님 친구 가족들 여럿이 떠난 여행에서 잠시 들른 쉼터. 냇가 큰 바위에 걸려 하염없이 나부끼는 누군가의 넥타이(같은 것)를 보며 “저기 넥타이가 있어. 그 위를 나비가 계속 날아다녀.” 했을 때 한 아저씨가 내게 말했다. “주연이는 관찰력이 좋네.” 그 말이 기뻐서 나는 뭔가를 집요하게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 칭찬이 내 것이 아닌 것 같아서 내 것으로 만들고 싶던 까닭이다. 칭찬이라면 가리지 않고 흡수하던 어린애는 칭찬을 받기 위해 뭐든 열심히 했다. 발표를 하고 싶어 손을 들고, 선생님과 교감하기 위해 초롱초롱 눈을 맞추고, 시험 기간이 되면 열띠게 교과서를 훑었다. 교과서 장장을 이미지로 외워버려서라도 점수를 잘 받고 싶었다.

지금껏 치러온 무수한 시험을 전부 기억할 순 없지만 초등학교 어느 날의 사회 시험만큼은 선연하다. 마지막으로 사회 과목 시험지를 받아들며 ‘이번 시험 꽤 잘 봤다.’ 스스로 토닥이던 기억도 난다. 그보다 더 선명하게 기억나는 게 있다면 사회 과목 마지막 문제. 하필 시험지 가장 마지막 장에 배열돼 있어 ‘대단원의 막’처럼 시험지를 뒤집어야만 볼 수 있던 그 문제. 잊으려야 잊을 수가 없다. 한반도 윤곽이 그려진 커다란 지도와 함께 적힌 문제는 이런 것이었다. “우리나라 수도의 위치를 표시하세요(5점).” 다른 문제가 2점, 3점인 것에 비해 5점은 너무 큰 배점이었다. 우리나라 수도가 서울이라는 것은 안다. 서울이 내가 사는 인천보다 조금 위쪽이라는 것도 안다. 그런데 정작 인천이 어디인지 모르겠다. ‘조금 위쪽’이 어디쯤인지도 실은 잘 모르겠다. 내 지독한 약점은 지리다. 그땐 이런 영역을 ‘지리’라 부른다는 것도 잘 모르던 시절인데, 어쨌든 지도를 본다는 건 내게 지독히도 난감한 일이었다. 서울은 평양보다는 아래고 부산보다는 위다. 그래서 평양이 어디고 부산이 어디냐 묻는다면… 모르겠다. 정말 모르겠다. 눈을 감고 교과서에 있는 지도를 한참 떠올렸다. 지도가 어떤 색으로 인쇄돼 있었는지도 기억이 나는데, 서울…, 그 서울 위치만은 흐릿하다. 수업 종이 치기 몇 초 전에야 ‘에라, 모르겠다!’ 심정으로 여기겠지, 싶은 곳에 까맣게 표시했다. 한 번도 이렇게 애매한 마음으로 정답을 골라본 적  없는, 칭찬이 좋은 어린애는 그때 불안의 맛을 정확히 알았다. 

초등학교 시험이란 대체로 용기를 주기 위한 것이었으므로 조금만 공부해도 어렵지 않게 맞힐 문제로만 구성되었다. 많은 학생이 좋은 성적을 받았다. 시험지를 꽉 쥐고 사회 점수를 확인했다. 95점. 사회 과목 최고점은 98점이었다. 98점을 받은 아이와 95점을 받은 나는 똑같이 한 문제를 틀렸지만 애석하게도 칭찬은 내 것이 아니었다. 역시나 마지막 문제에 그어진 빨간 빗금, 그리고 지금도 생각나는 나의 답. 내가 까맣게 색칠한 부분은 아마도… 대전 부근이었던 것 같다. “이건 맞히라고 낸 문젠데!” 선생님의 코멘트가 칭찬보다 세게 마음에 박혔다. 그 어린 날의 속상함 때문이었을까, 나는 끝끝내 지리와 친해질 수 없었다.

전주에는 흩날리는 빨래들이 있다

취재로 혼자 전주에 간 적이 있다. 몇 번 다녀온 적 있는 도시지만 그곳이 어디에 있는지 나는 모른다. 위인지 아래인지, 전라도인지 경상도인지, 북도인지 남도인지. 여하간, 그런 전주에서 취재만 하고 돌아오긴 아쉽고, 그렇다고 여행할 만큼의 여유는 또 없어서 고민하는 나에게 친구가 “전주에서 끝내주는 1박 2일을 만들어주겠다.”며 며칠 더 묵을 것을 제안했다. 전주에서 나고 자란 그는 자신이 전주 출신이란 사실을 언제나 자랑스럽게 여겼다. 전주에 영화제가 있다는 것도, ‘가맥집’이라는 것도 마치 자신이 만든 것처럼 언제나 자랑스럽게 소개하곤 했다. 친구는 나의 전주행이 ‘현지인 루트’로 완벽해지도록 준비할 테니 믿고 맡겨달라고 했다. 

여행을 떠난다면, 나는 경우의 수를 A부터 D까지 준비하고(가장 빠른 교통수단 시간표 탐색, 시간대를 고려하여 앞뒤로 두 대 이상의 시간표 확보, A 버스를 놓치면 탈 수 있는 교통수단 B 알아보기, B로 이동했을 때 목적지 도착 시각 확인하기, 변수가 생길 걸 대비해 20여 분 여유를 두고 플랜 C 만들기, 최후의 수단 D의 경우에 포기할 수 있는 일 확인 등등….), 가능하다면 동선이 꼬이지 않게 정확한 거리와 발자국 수까지 가늠해서 기록하는 편이다. 헤르미온느처럼 계획이 틀어지면, 예상치 못한 상황이 닥치면 마음이 동요하는 걸 스스로 견디지 못해서다. 그러나 이번 전주행은 취재라는 목적이 있던 만큼 여행 계획을 짤 필요가 없었고, 그럴 시간도 없었고, 친구가 안내해 준다고 하니 굳이 뭔가를 더할 필요가 없었다. 혹시라도 친구 계획에 차질이 생길 때 제안할 수 있는 느슨한 플랜 B를 준비하긴 했지만 대단히 촘촘한 건 아니어서 없는 셈 쳐도 좋았다.

친구는 오지 않았다. 취재가 끝나는 날부터 연락이 닿지 않았고, 그다음 날이 밝아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나는 남은 이틀을 혼자 보내야 했다. 플랜 B 노트를 펼쳤으나 혼자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왜 식당 메뉴는 꼭 ‘2인 이상’일까. 왜 한 사람은 비빔밥도, 한정식도 먹을 수 없는 걸까. 나는 낯 모를 전주 어딘가를 하염없이 걸었다. 그 길에서 몇 점의 빨랫감을 보았다. 낯선 곳을 여행할 때면 나는 곧잘 빨래들을 찾는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의 빨래가 나부끼는 걸 보면 마음이 편해지고 비로소 이 도시에 편입되었다는 느낌이 든다. 그때 만난 몇 점의 빨래에게서 받은 것은 심심한 위로. 친구가 왜 오지 않았는지 끊임없이 생각했지만 별거 아닌 일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빨래를 보며 걷던 길 끝에서 자그마한 가게를 만났다. 한옥보다는 구옥에 가까운 동네 밥집스러운 가게. 엄청난 허기에 패배에 작은 종을 흔들며 문을 열었다. “혼자인데요….” 입을 떼자 ‘알고 있어.’ 하는 눈짓으로, 그게 뭐 대수라는 양 자리를 안내해 주신 둥근 아주머니. 방석이 폭신했고 눈에 걸리는 기물들이 다정했다. 내가 주문한 건 그 집 식당 이름을 달고 있는 정식이었다.

시간이 꽤 걸려 나온 밥 한 덩이는 커다란 연잎에 감싸인 채 연잎 줄기로 단정하게 묶여 있었다. 연잎 줄기를 풀어 나가면서 나는 잊어버렸다. 친구가 별안간 사라진 것에 관해, 전주에 나를 혼자 둔 것에 관해. 나는 연잎에 싸인 밥을 오래 씹으며 전주의 표정을 생각했다. 그것은 누군가의 안내로 볼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우연히 마주치게 되는 것이라고, 전주는 모두에게 제각기 다른 표정을 보여줄 것이라고 조용히 생각하고 있었다. 그 갑작스러운 여정을 끝내고도 친구에겐 연락이 오지 않았다. SNS에 게시물은 올라왔지만 내게 메시지가 도착하는 일은 없었다. 우리는 SNS에서 말없이 서로를 삭제했다. 그로부터 한참 후에, 그러니까 8년 만에 SNS 팔로우 알람을 받았다. 예의 그 친구였다. 불과 몇 달 전에 일어난 일이고, 계획해 본 적 없는 상황이다. 헤르미온느처럼 얼어붙은 것도 잠시, 어떻게 할까를 고민하기에 앞서 나는 전주의 표정을 떠올렸다. 다 제쳐두고 그 표정을 보러 전주에 다시 가고 싶어졌다. 영영 전주가 어디에 있는지 모를지라도, 당장은 괜찮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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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주연(산책방)

일러스트 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