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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진아 — 뮤지션
“꺼내는 모든 말과 숨이 노랫소리 같은 사람.” 언젠가 뮤지션 권진아의 공연을 본 후 메모장에 이렇게 적어두었다. 한 곡 한 곡, 음미하듯 몰입하며 부르던 노래도 인상 깊었지만 말 사이마다 스민 단단한 마음의 중심이 선명했다. 그보다 시간이 흐른 후 마주 앉게 된 그에게는 사뭇 다른 얼굴도 보인다. 기대하던 나긋함과 깊이감은 물론, 이제는 삶을 즐길 줄 아는 태평함과 자신의 세상을 넓힐 용기까지. 그와 함께라면 이 계절에 쏟아지는 장대비도, 눅눅한 여름 햇살도 마다 않고 어디로든 나아가 보고 싶다. 언제나 이 다음의 나에게로 용기 있게 걸어가는 권진아와 만났다.
진아 씨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복잡한 도심 속 아늑한 다락방 같은 카페로 초대했어요.
만나서 반가워요. 싱어송라이터 권진아입니다. 들어오자마자 ‘서울 강남 한복판에 이런 곳이 있다니!’ 하며 감탄했어요. 갑자기 제주에 온 기분인데요? 정말 마음에 들어요. 아직 감기가 낫는 중이라 오늘은 즐겨 마시던 아이스 아메리카노 대신 따뜻한 무화과 잎차를 주문했어요.
여름 감기는 사람을 성가시게 하잖아요. 진아 씨는 이 계절을 좋아하나요?
여름 좋아해요! 이맘때의 싱그러움과 따뜻함이 제 에너지를 채워주거든요. 휴가 삼아 제주로 놀러 가기도 하고 바깥 나들이도 즐기는 편이죠. 몸이 찬 편이라 추운 겨울이 힘들어서 여름만의 즐거움이 더 크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그 즐거움은 앨범을 위해 잠시 미뤄두었을 텐데, 요즘 일과는 어때요?
EP [SAVE ME]의 발매를 앞두고(해당 앨범은 7월 15일 발매되었다.) 한동안 뮤직 비디오도 찍고 이런저런 스케줄들로 바쁘게 보냈어요. 엊그제부터 어제까지는 간만에 쉬었는데 집에서 기절한 것처럼 누워 있다가 유튜브와 넷플릭스를 실컷 봤죠. 책을 읽을 수도 있겠지만 죽어도 보기 싫더라고요(웃음). 유튜브 채널 ‘적수다’나 다큐멘터리, 시사 프로그램, 문제 해결 프로그램을 좋아하는데 영상물을 한껏 봤더니 머릿속이 멍할 정도였어요. 단 이틀간의 휴식인데도 ‘이렇게 살아도 될까….’ 싶은 거예요. 아무래도 저는 쉬는 것보다 바쁜 게 체질에 맞나 봐요.
공식 유튜브에서 선공개된 트레일러 영상과 콘셉트 포토를 보고 깜짝 놀랐어요. 짧고 거칠게 자른 앞머리에 기타를 던지는 모션까지! 어떤 곡을 담은 앨범일까 무척 기대되더라고요.
이번 앨범은 상처나 자기 혐오, 트라우마 같은 것을 안고 살아가는 이 세상 속에서 스스로를 구원해 가는 과정을 그렸어요. 락 사운드가 돋보이는 곡이 많아서 그에 걸맞은 처피뱅이나 탈색 머리, 기타를 부수는 모션처럼 과감한 스타일도 선보였죠. 다섯 곡 중 첫 번째 트랙 〈WHO CAN CHANGE〉는 세상에 대한 반항도 자기 구원의 일부라고 생각하며 쓴 곡이고, 타이틀 〈MONSTER〉에는 내가 나를 사랑하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이겨내기 위해 노력하며 내일로 가겠다는 의지를 담았어요. 특히 네 번째 트랙 〈87days〉는 그동안 행하지 않은 방식으로 작업한 곡이라 더욱 기억에 남는데요. 먼저 여성 탈옥수라는 새로운 캐릭터를 상상했어요. 갑갑한 감옥을 벗어나기 위해 지도를 만들어 숨기고, 교도관을 기절시켜 옷을 바꿔 입은 후에 탈출하는 여정을 음악으로 그려나간 거죠. 보통은 제 마음을 주재료 삼아 경험했던 것들을 조립하고 약간의 허구를 보탰다면 그 곡은 하나의 소설을 쓰는 듯 완성한 터라, 더욱 재미있게 들어주실 거라고 생각해요. 마지막 트랙 〈Don’t Save Me〉 역시 디스토피아적 상황 속에서 끝까지 사랑하는 두 사람을 떠올리며 쓴 곡이에요.
곡 전반에 현재의 상황과 상태를 벗어나고 싶어하는 시선이 깔려 있네요. 이유가 있나요?
사실… 저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일면에서는 디스토피아와 다름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좀 더 나아지고 바뀌길 바라는 지점이 많아요. 왜 이 지경이 되었을까를 고민하다가 그럼에도 지지 않고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를 쓰게 된 거죠. 이를테면 사랑 같은 걸요. 어쩌면 제가 이 세상과 그 속에 사는 존재들을 너무나 사랑하기에, 기대하는 바가 크기에 반대로 비관적으로 보게 되었을지도 몰라요. 무슨 일이 벌어지든 무심하게 넘어갈 수가 없는 거죠. 애정이 있어야 희망도 생기고 실망도 하게 되니까요.
작업물을 통해 ‘권진아’라는 사람의 어떤 일부를 보여줄지 매번 고민이 될 것 같아요.
(잠시 고민한다.) 많은 사람이 저에게 발라드가 정답이라고 할 때면 제 안의 반골 기질이 튀어나와 ‘싫어!’라고 답하거든요. 제게는 많은 장르와 자아가 있고 그걸 음악으로 풀어내고 싶어요. 하지만 대중의 선택이나 음악 성적과 상관없이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겠다고 말하진 못해요. 또 그런 과정에서 자기 효능감을 느끼는 사람도 아닌 것 같고요. 대중이 나에게 기대하는 바와 내가 좋아하는 것 사이에서 끊임없이 균형을 맞춰가며 원만하게 나아가고 싶죠. 문득 헤아려 보니까 지금까지 노래를 내지 않고 쉰 해가 단 한 번도 없더라고요. 내 안에 있는 재료가 고갈되었고 안정적인 생활과 마음 안에서 무언가 새로이 뱉어낼 거리도 없다는 생각에 막막했어요. 그 와중에 노래를 쓰고 싶다는 일념 아래 각성된 시기가 찾아왔고, 정신없이 써내려간 곡들이 이번 앨범으로 묶인 거예요. 창작자로서 뭘 해야 될지 모르겠고 자신이 없더라도 나는 결국 하고 싶은 이야기를 찾아낸다는 걸, 또 그걸 제법 멋지게 가공해서 들려줄 힘이 있다는 걸 깨닫게 됐어요.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을 향한 믿음을 잃지 않도록 알려준 앨범인 거네요. 저는 선공개 곡 〈Rain on me〉가 유독 마음에 들었어요. 가사 중 ‘이 사랑은 너의 발밑에 두고 시작해’라는 부분이 좋았거든요.
그 곡의 첫 문장이기도 한데요. 5년 전쯤 메모장에 써둔 걸 이제야 꺼내게 되었네요. 짝사랑을 하고 있을 땐 마치 소나기를 맞는 것 같은 감정을 느낀다고 생각해서 지은 제목이에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곡이기도 하지만, 가수 권진아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무조건 마음에 들 노래 같아서 6월 말쯤 먼저 공개했죠. 게다가 올해 장마가 길다는 예보도 있어서 비 올 때 들으면 딱이겠다 싶었고요. 그런데 이게 웬걸, 노래를 내도 장마 소식이 들리질 않는 거예요.
그래서 올해는 ‘지각 장마’라고 부르더라고요.
그러니까요! 하필 지금! 제가 어딜 가면 늘 비가 오거든요. 이제는 주변에서 날씨 요정이 아니라 ‘날씨 괴물’이라며 놀려요(웃음). 그래도 다른 어떤 앨범보다 팬들의 반응이 궁금하고 무대에서 보여드릴 상상에 설레요. 언젠가 세상에 단 하나뿐인 완벽한 제 앨범이 탄생한다면 바로 이 순간이라고 생각하는데, 듣는 분들께도 이런 마음이 닿으면 좋겠네요.
올해로 데뷔 10주년을 맞이했죠. 많은 사람이 오디션 프로그램을 권진아라는 뮤지션의 탄생으로 기억하지만, 실은 어릴 때부터 가수의 꿈을 키웠다고요.
가수가 되고 싶은 계기랄 게 없는 게… 그냥 너무 좋아했어요. 노래하는 것과 무대에 올라가 관심을 받는 것 전부가 좋아서,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오디션을 보러 다니고 노래를 불렀어요. 머라이어 캐리나 휘트니 휴스턴, 아델처럼 모두가 사랑하는 디바의 무대를 보면서 저런 가수가 되고 싶다고 막연히 꿈꿨던 것 같아요. 음악을 직업으로 생각하기 보다 그저 이루고 싶은 꿈이었던 거죠. 노래를 특출하게 잘하는 것 같진 않아서 기타를 배웠고, 결국 작사나 작곡은 하나도 모른 채 기타 하나 안고 오디션 프로그램에 선 거예요.
그때 주변의 반응은 어땠는지 기억나나요?
부모님은 “음색은 나쁘지 않은 것 같지만 너 정도 실력으로는 택도 없다.”고 하셨어요(웃음). 집안에서 예체능 분야로 나아간 사람이 한 명도 없다 보니까 잘 모르셨고, 우선 학생이니까 공부 열심히 해서 대학을 간 후에 하고 싶은 걸 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하셨던 거죠. 하지만 저도 물러날 생각은 없었어요.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는 각오였거든요. 프로그램을 마친 후 엔터테인먼트 ‘안테나’에 들어가 가수로 데뷔하게 되었죠. 할머니께서는 진아가 제발 제자리로 돌아오게 해달라고 기도하셨다는데, 지금 여기가 결국 저의 자리였던 게 아닐까요?
어린 시절의 진아가 물러나지 않아서 다행이네요. 덕분에 좋은 노래를 많이 듣게 됐으니까요(웃음). 자작곡 〈운이 좋았지〉를 비롯해 진아 씨의 발라드는 오랫동안 사랑받고 있죠.
정말 감사한 일이에요. 가요계 그리고 연예계는 어딜 가나 레드 오션이잖아요. 매일 새로운 신인이 탄생하고 신보가 쏟아지는 와중에, 권진아라는 가수를 떠올렸을 때 기대되는 장르가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기쁜 일이죠.
그 장르에서 발휘되는 나만의 강점이 무어라 생각해요?
제 안에 있는 슬픔의 정서, 겉으로 드러나는 목소리의 떨림이나 음색이 발라드와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또 감정을 담아 가사로 전달하는 부분에 재능이 있다고 느끼고요.
한결같은 성실함으로 음악에 임해온 진아 씨지만 이십대 초반에는 슬럼프를 겪었다고 알고 있어요.
음악 자체의 문제는 아니었고, 어린 나이부터 미디어 산업에 뛰어들다 보니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유지하지 못한 탓이죠. 별의별 사람들을 만나고, 별의별 사건들이 일어나는 걸 지켜보자니 쉽지 않은 세계임을 체감했어요. 그 가운데에서 제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주어진 일에 충실히 임하는 거였는데 그럼에도 부족한 부분이 드러나면 스스로를 탓할 수밖에 없었어요. 제가 꿈꾸는 프로 뮤지션은 자연스럽고 능숙해야 하는데, 세상에 어떤 열여덟 살이 그 흉내를 낼 수 있겠어요? 말이 안 되죠. 그때는 그걸 모르니까 뚝딱거리는 모습이 미디어에 퍼지면 다 불태워버리고 싶기도 했어요. 보통의 삶이라면 대학에 가서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고 가끔은 흑역사도 만들면서 마음에 드는 내 모습을 찾아갔겠죠? 그 일종의 사회화 과정을 저는 스스로 해내야 했어요.
고독한 그 시기를 어떻게 돌파하려고 했나요?
몸으로 느껴지는 증상은 꾸준히 치료하고 마음의 문제는 스스로를 돌아보면서 치열하게 고민했던 것 같아요. 예를 들면 남이 바라보는 내 모습은 무엇인지, 내가 생각하는 진짜 나는 누구인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말이에요. 그리고 다른 이들의 창작물과 그 비하인드를 담은 인터뷰를 무척 많이 찾아봤어요. 음악이나 영화, 패션이나 소품을 볼 때 만든 이는 무슨 의도로 이 결과에 이르렀는지 알아보는 게 재미있더라고요. 모든 인생이 각자의 자리에서 자기 자신을 증명하려고 애쓰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면서 위로를 받았달까요.
그 시기를 거쳐 2021년에 첫 프로듀싱 EP 앨범 [우리의 방식]이 완성되었죠.
맞아요. 작사와 작곡 외에 앨범 프로듀싱까지 도맡은 건 처음이었어요. 지금까지는 늘 주변의 상황과 시간에 나를 맞추는 게 익숙했다면, 태어나서 처음으로 그러지 않겠다고 다짐한 결과물이죠. [우리의 방식]을 기점으로 제가 많이 바뀌었다고 생각해요. 좀 더 주체적이고 주도적으로 인생을 살고 싶어졌고, 망해도 상관없으니 나다운 모습을 찾겠다고 스스로 약속했죠. 내면의 성장통을 크게 치르고 나니 오히려 지금은 삶을 심플하게 바라보게 되었는데요. 그래도 위태로운 마음은 이따금 여름 감기처럼 찾아오더라고요. 이마저도 현대인이라면 자연히 겪는 일이구나 생각하면서, 내 삶의 자연스러운 호흡을 따라가고 싶어요.
그 지독한 감기를 낫고 나니, 자신은 무얼 좋아하고 무얼 잘할 수 있는 사람이란 걸 알게 됐어요?
음… 저는 똑똑한 사람을 좋아해요. 그들과 나누는 대화에서 제가 생각지도 못한 부분을 배우게 될 때가 좋거든요. 그리고 겁이 많은 줄 알았지만 꽤나 용감하다는 걸 알게 됐고요. ‘실행왕’이라는 것도 깨달았어요. 해야 하는 일이고 그게 맞는 일이라면 이리저리 재지 않고 뛰어들어요. 또 멀티태스킹에는 약한 편이라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잘 구분하고, 아예 터무니없는 일이라면 기웃거리지도 않아요.
진아 씨가 할 수 없는 게 있어요?
무척 많은데…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여우 같은 척을 못한다는 거예요. 본능적으로 다른 이에게 사랑받는 법을 아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저는 둔하고 느린 편이라 그런 능력을 가진 사람을 부러워하기도 하고 얄미워했어요. 그런데 제가 흉내 내봤자 진짜 여우가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더라고요. 척하는 건 전부 티가 나니까요. 이제는 나답게 묵직한 곰돌이 한 마리를 보여주려 해요.
문득 오디션을 결심하던 그 시절에 꿈꾸던 뮤지션과 지금의 모습은 어떻게 같고 다른지 궁금해져요.
그러고 보니까 전혀 다른 것 같네요(웃음). 그때만 해도 작사나 작곡에 관한 경험이 없으니까 싱어송라이터가 될 거라고 상상도 못했거든요. 한 푼도 못 벌어도 좋으니 그저 노래를 하겠다는 마음이었던 거죠. 지금과 비교하면 오히려 그 시절에 바라던 모습보다 훨씬 근사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해요.
과거에 이런 말을 한 적 있죠. 싱어송라이팅을 가르치게 된다면 “너는 평소 무슨 생각을 하니? 어떤 삶을 살고 싶니? 그게 네 작품의 핵심이야.”라고 말하고 싶다고요.
(고개를 젓는다.) 지금 생각하면… 제가 뭐라고 그런 말을 했을까요?
(웃음) 싱어송라이터의 의미를 규정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창작물의 알맹이가 무엇인지 짚어보길 바라는 마음으로 느껴졌는데, 어떤가요?
가만 보면 싱어송라이터로 오래가는 뮤지션에게는 대단한 편곡을 하거나 엄청난 화성을 쓰는 게 중요한 게 아니더라고요.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명확하고 그걸 가사로 풀어내는 분들이 오랫동안 이 업을 해오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대중이 음악에서 감동하는 포인트는 일명 ‘미친’ 송라이팅이 아니라 동질감을 느끼는 순간인 거죠. 위로받고자 하는 마음, 고통을 이겨내는 마음처럼요. 한편으로는 글쓰기와 비슷한 것 같은데요. 책을 읽다 보면 가끔 무릎을 탁 치고 싶은 인생 문장을 발견하잖아요. ‘이거는 내가 죽을 때까지 꼭 기억해야지. 빨리 외우자!’ 하면서 메모로 남겨두기도 하고요. 작가의 의도나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 문장으로 자연스레 책에 담기듯, 노래에는 싱어송라이터의 조각이 녹아들어 있어요. 우리는 다 같은 사람이니까 엇비슷한 상황 속에서 엇비슷한 감정을 얻을 테고, 그렇다면 음악에 담긴 누군가의 삶이 내 것과 다르지 않을 수밖에 없죠.
진아 씨의 음악을 논할 때는 가사를 빼놓을 수 없어요. 진솔하지만 투박하지 않고, 담백한 언어로 듣는 이들의 감성을 자극하잖아요.
음악을 시작한 이후로 전혀 예상치 못하게 가사 작업에 꽤나 재능이 있다는 걸 발견했는데,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더욱 감사해요. 제 마음에 든 가사는 팬분들도 꼭 좋아해 주세요. 예를 들면 〈우리의 방식〉이라는 곡에서 “불안하게 아름답게/ 헝클어지자”, 사랑에 빠지는 순간을 표현한 〈뭔가 잘못됐어〉에서는 ‘땅은 하늘이 되고/ 지구가 달을 돌고/ 옳은 건 틀린 게 되고/ 모든 게 다 제멋대로 움직이고 있어’라는 부분처럼요. 듣는 이들의 입맛에 맞춰 쓴 게 아니라 제가 정말 좋아하는 걸 썼기 때문에 가사 작업에서는 좀 더 내 감을 믿어도 되겠구나 싶어요.
그간 “내가 느끼지 않은 것에 대해 써본 적 없다.”고 말해왔어요. 그런데 앞서 이번 신보에서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가사 작업에 임했다고 했죠. 이유가 있을까요?
예전에는 가사가 떠오르면 틈날 때마다 메모를 해뒀어요. 집부터 작업실까지 걷거나 동네를 정처 없이 산책할 때, 샤워하거나 자기 전에도 불쑥 좋은 가사들이 떠오르곤 했거든요. 어떤 주제를 잡아서 이런 이야기를 해야겠다며 쓰는 게 아니라 예측하지 못한 순간에 불현듯 찾아왔어요. 마치 토해내듯이 가사가 쓰였달까요? 그런데 이제는 그런 방식으로 쓸 수 있는 문장이 고갈되었나 봐요. 명쾌한 문장이 팍 떠오르지 않아요. 오히려 소설처럼 상황이나 화자를 구체적으로 상상해보고, 밤이고 낮이고 일주일이고 한 달이고 될 때까지 내내 붙잡으며 완성하고 있어요. 이 방식도 제가 가진 잠재력을 새로이 끌어내준 것 같아서 재미있다고는 생각해요. 특히 이번 EP 앨범에서 그렇게 탄생한 가사 중 마음에 드는 게 〈Don’t Save Me〉의 ‘이제는 우리 차례인가 봐/ 비명이 더 커지고 있어/ 네가 다 불타버린 후에 난/ 뛰어들어 in volcano!’라는 문장인데요. 디스토피아에서 두 사람이 죽어서야 마침내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걸 표현했어요. 어떻게 들릴지 모르지만… 이것도 일종의 사랑인 거죠. 내가 죽는 모습을 네가 보지 않도록 네 죽음 뒤로 따라가겠다는 결심이요.
그 결심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선 노래를 꼭 들어봐야겠어요. 문득 궁금한 게, 왜 우리 주변에는 사랑을 말하는 노래가 많을까요?
음, 아마 사랑이 제일 강력한 감정이라서 그렇지 않을까요? 누군가를 좋아하고 사랑하다가 이별하는 순간이 인간에게는 무척 강렬한 감정으로 다가오잖아요. 하고 싶은 말이 한가득 떠오르고요.
진아 씨 주변에는 싱어송라이터 동료가 많은데 혹시… ‘빼앗고 싶은’ 사랑 노래도 있나요?
정말 많죠! 지금은 이적 선배님의 〈같이 걸을까〉나 선우정아 선배님의 〈도망가자〉라는 곡이 떠올라요. 두 곡 모두 굉장히 쉬운 말인데도 사람들의 마음속에 오랫동안 남아 있잖아요. 저는 뱉어지는 대로 매듭짓기보다, 무언가 더 나올 수 있지 않을까 하면서 한 번 더 생각을 꼬아보는 버릇이 있어요. 언젠가 덤덤하게 건네는 위로처럼 쉬운 가사를 써보고 싶어요.
곡 하나, 앨범 하나가 한 시절의 나를 기록하는 방법 같네요.
사진 앨범을 하나씩 채우는 기분이에요. 첫 소속사인 안테나에서 곡과 가사 작업을 처음 해보면서 월말 평가라는 이름 아래 데모곡을 제출해야 했는데요. 맨 처음에는 정말 창피해서… 마치 단두대에 서는 심정이었어요. 멋있는 말만 하고 싶은 어린 시절의 제 일기장이 낱낱이 공개되는 것만 같았죠. 자기 전에 이불 발차기도 많이 했고요(웃음). 이제는 제 일부분을 나눠 가진 모든 작업물이 소중하고 마음에 들어요. 아마 이 인터뷰가 공개될 즈음에는 다음 앨범의 노랫거리들을 모으고 있을 텐데, 이 다음의 나는 무얼 만들어낼지 기대돼요.
이번 호에는 음악이 대중에게 닿는 방식에 관한 이야깃거리도 준비했어요. 어릴 적엔 누군가의 음악에 푹 빠져 음반을 사 모으기도 하잖아요. 진아 씨도 그랬나요?
솔직히 말할게요. 저는 ‘덕질력’이 없는 사람이에요. 어린 시절에 산 앨범이 아무것도 떠오르지가 않네요. 친언니는 저와 달리 가수를 향한 애정이 충만한 사람이어서 브라운아이드걸스, 아이유, 엑소, 에픽하이, 드렁큰타이거까지 다양한 뮤지션의 앨범을 모았어요. 저는 그 옆에서 신기해하면서 덕질력 대신 노래 실력을 뽐냈죠(웃음). 음악이나 가수에 대한 관심은 있었지만 그들이 가진 기술과 화려한 실력에 더 큰 흥미가 있었던 것 같아요. 이후에 가수로 데뷔하기 위해 서울로 올라왔을 때는 혼자 러닝하면서 알앤비 장르를 유독 들었던 게 기억나요. 크러시나 자이언티처럼 남성 아티스트의 앨범을 들으며 공감과 위로를 얻다 보니 그 노래를 따라 부르는 것도 좋아했어요. 제 목소리에도 중성적인 느낌이 있어서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고요. 또… 아, 그러고 보니 아리아나 그란데를 좋아해요! 완벽한 육각형 보컬을 가진 아티스트라 즐겨 들으면서 보컬 공부를 했죠.
마치 일타 강사를 찾는 것처럼 들리네요(웃음). 앞서 말한 음반 외에 공연이라는 방식도 있죠. 수많은 사람 앞에서 홀로 무대에 서는 가수의 기분은 조금은 외롭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 큰 무대 위에서 의지할 곳은 마이크와 기타 그리고 나 자신뿐이잖아요.
이 일이 천직인 게 저는 무대가 정말 편해요. 왜냐하면 그곳에서는 나다울 수 있거든요. 눈치 보지 않고 제가 가진 감정과 에너지를 원하는 만큼 분출할 수 있어요. 그래서 가끔은 토해내듯 울부짖을 때도 있고요. 가진 걸 쏟아붓고 나면 팬들의 박수 소리와 함성으로 다시금 충전되거든요. 정제하며 살아가야 하는 일상생활과 달리 감정의 행위를 배설하듯 마음껏 표현할 수 있다는 부분에서 쾌감이 크죠. 친한 친구들이랑 노래방 가면 뛰고 소리 지르고 웃고 난리 나잖아요. 그때의 해방감과 비슷하지 않을까요?
하지만 그 모습을 수천 명이 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해방감이 전혀…!
(미소를 지으며) 그런가요? 무대라는 게 같은 노래라도 어제와 오늘의 감정이 완전히 다를 수 있거든요. 혹시 애니메이션 〈소울〉 보셨어요? 주인공이 피아노를 치기 시작하면 그 위로 핀 조명이 딱 떨어지면서 주변은 캄캄해지고, 나와 피아노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 세계가 되는데요. 그 세계에 몰입하다 보면 온몸에 도파민과 아드레날린이 핑 돌면서 과각성 상태처럼 몸이 쉬이 긴장을 놓지 못하는 상태가 되죠. 사흘 동안 공연을 한다면 그중 이틀은 거의 밤을 새울 정도로 잠에 들지 못해요. 저도 예전에는 있는 힘 다 끌어모아 일 년에 한 번씩 무대에서 터뜨리는 느낌이었다면, 작년부터는 공연을 자주 하면서 지구력이 생겼나 봐요. 그래서 이제는 무대 오르기 전에 ‘오늘은 내가 이곳을 또 얼마나 찢어버릴까!’ 하면서 기대하게 됐어요.
그러고 보니 ‘댄스 가수 권진아’라는 별명도 있잖아요. 콘서트마다 멋진 춤을 선보여서요.
노래하는 것만큼 춤추는 것도 좋아해서 어릴 때는 제가 댄스 가수가 될 줄 알았거든요(웃음). 하지만 그 두 가지를 함께하는 댄스 가수는 또 다른 능력의 일이라… 지금은 제 곡에 춤을 붙이거나 댄스곡 커버 무대를 준비하면서 춤에 대한 애정을 풀고 있죠. 제 콘서트에 와주시는 팬들은 정말 조용하세요. 숨소리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감상해주셔서, 마치 클래식 공연처럼 노래 한 곡이 완전히 끝나고 나서야 ‘짝짝짝’ 박수 소리가 들려요. 그런데 댄스 무대는 팬들도 같이 신나게 즐기시는 것 같아서 또 다른 재미가 있어요.
사실 저도 진아 씨 콘서트에서 백댄서가 나오는 순간을 가장 기대해요(웃음). 자신의 노래가 듣는 이들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걸 느낀 경험도 있나요?
무대 위에서 노래하다가 객석에서 울고 있는 분들을 발견하곤 해요. 그럼 저도 덩달아 울컥하게 되거든요. 마음이 힘든 와중에도 나를 좋아해서 이곳까지 와준 용기가 소중해서요. 고마운 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은데 정신없이 공연을 하다 보면 잊어버릴 때가 있어요. 이 노래가 어떤 곡이고 내가 어떤 마음으로 살고 싶어졌고, 그 마음을 듣는 분들에게 꼭 전하고 싶다고 말하기 위해서 멘트를 미리 정리하고 적어둬요. 한 공간에서 같은 음악을 나누는 순간이 더욱 온전해지길 바라면서요.
하나의 주제로 한참 대화를 나누었네요. 본인의 삶에서 음악이라는 수식어는 어느 정도 비율을 차지하나요? (잠시 고민한다.)
거의 인생의 전부이던 과거보다는 그 비율이 줄었을 테지만 과반은 넘을 거예요. 원체 일과 자아를 쉽게 분리할 수 없는 성격이기도 하고 창작의 결과물이나 그 성적이 제 자존감에 많은 영향을 끼치거든요. 지금은… 65퍼센트 정도?
그럼 남은 퍼센트에는 어떤 수식어들이 있나요?
‘현실’이 가장 먼저 떠오르네요. 나이를 조금씩 먹어가면서 현실에서 가능한 것들을 더 많이 고려하고 우선하게 됐어요. 그리고 가수가 아닌 나의 삶이 어떤 현재를 그리고 있는지 열심히 따라가 보고 있고요. ‘가족’이라는 키워드도 큰 것 같아요. 예전에는 가족이 되게 어려웠거든요. 너무 사랑하다 보니까 오히려 기대하는 것도 많고 다투기도 했는데, 이제는 어디엔가 든든한 내 편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살아갈 힘을 준다는 걸 깨닫게 됐죠. 같은 일을 하는 동료들도 포함해서요.
차근차근 자신만의 세상을 넓혀온 것 같아서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는데요. 마지막으로 ‘권진아 음악의 효능’을 꼽아보며 대화를 마무리할까요?
제 음악의 효능이라면… 희망과 연대와 용기를 얻을 수 있다! 앞서 말했듯 저는 희망을 보고 싶어하는 사람이지만 어두운 현실 앞에 주저하면서 겁이 날 때가 있어요. 그럼에도 하고 싶은 이야기를 노래로 꺼내두기 위해 작은 용기를 내거든요. 듣는 분들도 노래를 통해 용기를 얻고 사소한 희망을 발견하신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거예요.
그에게 묻자 “사실… 전부 제 앨범이거든요.” 하며 쑥스러운 듯 웃는다. 누구든 어두컴컴한 시기에는 주저앉을 수 있다. 그건 나아갈 방향을 탐색하고 다시금 일어나기 위해 숨을 고르는 시간일 뿐, 영원히 멈춘 것은 아니다. 그때 피어난 용기가 온전히 담긴 기록이 어찌 소중하지 않을까. 권진아의 목소리로 자신의 앨범 두 장을 소개한다.
“지금까지 음악을 하고, 앞으로도 할 수 있는 계기가 된 첫 프로듀싱 앨범이에요. 스스로 어떤 걸음도 내딛을 수 없을 정도로 무기력했을 때, 정말 큰 용기를 내서 한번 망하더라도 내가 생각한 대로 앨범을 만들어보겠다고 말했어요. 만약 그때 제가 용기를 내지 못했고, 회사나 주변에서 응원해주지 않았다면 ‘나는 이걸 이겨낼 힘도 없고 설득할 능력도 없구나.’ 하며 더 큰 수렁에 빠져들었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운이 좋게 제 결심을 주변에서 믿어주고 힘을 모아주었기 때문에 [우리의 방식]이 탄생할 수 있었죠. 그때가 있어서 지금이 있고, 또 이 다음의 내가 있을 거라고 확신을 갖게 해준 앨범이에요.”
“내면의 고민과 성장을 깊이 탐색하며 만든 앨범이에요. 특히 타이틀곡 〈Raise Up The Flag〉는 그 제목처럼 어떤 고통에도 흔들리지 않고 나의 자아를 지키기 위해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미를 담은 응원가인데요. 평소에는 대중성과 아티스트적인 면모의 균형을 잡으려고 노력한다면, 이 앨범은 제가 표현하고 싶은 메시지 쪽으로 좀 더 몸을 기울였어요. 잡지처럼 이미지와 인터뷰가 수록된 구성으로 그 메시지를 설명해 보았고요. 사실 음반 성적이 아쉬웠던 터라 아픈 손가락이지만, 타이틀곡을 무대에서 부를 때마다 웅장해지는 기분이 좋아요. 덕분에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에도 설 수 있었고요!”
에디터 이명주
포토그래퍼 최모레 장소 협조 산새코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