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우정을 기다려왔어

김사월 — 뮤지션, 작가 · 이훤 — 시인, 사진가

“집이 좀 바뀌었네? 뭔가 많이 비었어. 깨끗하고 아름답다.” 사월의 집에 도착한 훤이 말한다.  집의 변화를 감각한다는 건 이미 그 공간과 친숙하다는 이야기겠지. 방 한쪽에 자연스레 앉아 사월의 짧은 문장에 “아, 그거!” 하고 반응하는 훤, 훤의 느릿한 한마디에 “넌 정말 대단하다.” 감탄하는 사월. 길게 대화 나누지 않고도 속속들이 서로를 아는 덕에 대화는 둥글고 짧은 궤도를 그리며 사이좋게 오고간다. 배려하느라 조심스러워지고 말 한마디도 몇 번을 곱씹는 섬세한 만남도 좋지만, 서로를 침범하는 게 자유로울 때 우리의 마음은 마음껏 구겨지고 깨끗하게 펼쳐질 수 있다. 조금 덜 조심하게 되는 우정, 실로 오랜만에 순하고 무구한 그 우정 사이를 마음껏 유영한 기분이다.

역시 삶은 순간밖에 없는 것 같아요.
약간의 지속과 조금의 기록이 있을 뿐이니까요.

알맞고 정확한 것을 주고 싶어

사월 씨가 소개에 관해 이런 이야기를 하신 적이 있죠. “지금까지는 있으나 마나 한 글귀, 이를테면 ‘자기만의 이야기를 하는 뮤지션’ 등으로 소개했다.” 그럼에도 소개로 대화의 문을 열지 않을 수가 없어요. 오늘의 나를 부담 없이 소개한다면, 뭐라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사월 뮤지션으로 무대에 오르거나 매체에 실릴 때면 쉽고 간단하게 소개할 수 있는 수식어가 필요한데 정말 나를 소개하고 있다는 소개말을 찾기가 어렵게 느껴져요. 지금 저는, 그냥 ‘이것저것 하는 사람’이에요. 요즘은 제 음악이나 의뢰받은 영화 음악을 만들고 글을 쓰면서 지내고 있어요.

저도 공식적으로 소개하는 자리가 있을 때마다 비슷하게 소개하는 게 지루해져서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소개할 수 있을까 고민하곤 해요. 여전히 답은 찾지 못했지만, 요즘은 시인이랑 사진가로 소개하는 게 지겨워서 ‘보이고 만져지는 것을 만드는 사람’이라고 소개하고 싶어요. 그리고 턱걸이를 좋아하는 사람(웃음).

 

턱걸이가 생활의 화두로군요(웃음). “보이고 만져지는 것을 만드는 사람”이란 정체성이 좀 새로운데요. 시랑 사진이 만져지는 건가요?

만질 수 있게 작업해 보고 싶어요. 사진은 인화하면 물성을 만들 수 있으니까 어떤 시점에선 만져지는 것일 텐데요. 시는 만질 수 있도록 여러 도전을 해보고 있어요. 요즘 2인전을 준비 중인데, 시를 책 바깥으로 꺼내면서 시집이 아닌 형태로 어떻게 달리 만나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죠. 시를 한 편만 구매할 순 없을까, 특정 시기에만 구매할 수 있는 시를 만들고 싶다, 같은 생각이 꼬리를 물어요. 사람들이 시 한 편만을 위해 전시장에 오도록 만져지는 작업을 해보고 싶어요.

사월 훤이 소개를 들으니 어쩌면 지금 하는 작업에 따라 소개도 달라지는 게 아닐까 싶어요. “보이고 만져지는 것을 만드는 사람”이란 소개만 들으면 훤만을 지칭하는 소개 같지는 않잖아요. 하지만 전시를 준비하고 있는 현재 훤의 상황을 표현하기엔 엄청 좋은 소개인 거죠.

맞아요. 조금 더 얘기하자면 요즘 저는 조형적으로 뭔가를 더 하고 싶은 사람이에요. 바깥으로 튀어나오는 걸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이어지는 건 평면에 갇혀 있는 데서 싫증을 느끼기 때문이에요. 가끔 그런 기분 들지 않아요? 내가 다루는 창작물에 장르적인 물성이 생겨서 거기 갇히는 일이 반복되면 답답하다고 느끼는.

사월 나는 반대로 디스크라는 물성에 내 창작물이 갇혀 있는 게 좋아. CD라는 전통적인 물성에 내가 만든 게 들어 있다는 게 만족스럽거든. 훤의 사진 작업 중에 ‘집은 어디에나 있고 자주 아무 데도 없다’ 시리즈가 있잖아. 어딘가에서 벗어나는 행위가 너한테 안정감인 게 아닐까? 머물던 것을 부수고 또 다른 집을 찾고….

소개가 이렇게 작업적으로 뻗어나가는군요(웃음). 사월 씨가 “지금 하는 작업에 따라 소개도 달라지는 것 같다.”는 말을 해주었는데요. 지금의 상황과 시각에 따라 소개말도 무궁무진해질 것 같아요. 훤이 사월을, 사월이 훤을 소개해 본다면 또 어떤 지점이 달라질까요?

저는 공식적인 지면에서 전혀 상관없는 얘기를 하는 사람을 보면 왠지 좋거든요. 그래서 이런 식으로 이야기해 보고 싶어요. “김사월, 뮤지션. 요즘 집에 있는 컵과 책과 CD를 다 버리고 있다.”

사월 마음에 드는데(웃음). 그렇다면… “이훤, 사진가·시인·산문가. 아름다운 옷과 소품을 사들이고 있다.” 훤이 물건 보는 안목이 엄청 좋단 말이죠. 언제나 새롭고 예쁜 것들을 발견하고 뭔가를 집에 들이고 있어요. 대체로 아름답고 멋진 것들이죠. 반면 저는 요즘 집을 한바탕 비우는 중이라 버리는 데 집중하고 있어요. 책과 CD를 절반 이상 정리했죠. 과거엔 창작물을 버린다는 게 용납되지 않을 때도 있었는데, 어느 순간 영원히 갖고 갈 수 없다는 걸 느끼게 됐어요.

부끄럽게도 저는 아름다운 걸 보면 들여올 궁리부터 해요. 최근에는 제주도 물소리라는 식물 가게에서 화분을 하나 데려왔어요. 세 종류 식물이 함께 자라는 화분인데, 물을 원하는 빈도가 비슷한 식물끼리는 한 화분에서 혼실이 된다고 하더라고요. 신기하죠?

사월 굉장히 야한 형태잖아?

(웃음) 그러고 보니 김사월 소개에 ‘야한 걸 빼놓고 말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문구도 추가해야겠어요.

 

그 ‘야한 화분’은 훤 씨가 나에게 주는 선물이기도 할 텐데요. 이번 호 주제어가 ‘선물’이에요. 선물은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명확한 물건이란 점에서 보통의 물건과는 좀 다르게 느껴지는데, 두 분에게 선물은 어떤 의미예요?

예전의 저한테 선물은 쉽게 주고 쉽게 받는 거였는데, 점점 더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무언가가 되어가요. 받는 사람한테 딱 알맞은 것을 주고 싶은 마음 때문에 고민이 점점 깊어지죠. 우정을 표현하고 싶은 마음은 늘 있는데, 그걸 잘 전달할 수단이 선물밖에 없나 그런 생각도 하게 되고요. 제가 고민 없이 즐거운 마음으로만 준비하는 선물은 북토크 독자에게 드리는 선물인데요. 키링 같은, 제가 갖고 있던 굉장히 작고 사소한 물건이거든요. 처음 만나는 누군가한테 줄 걸 챙길 때는 고민보다 설렘이 앞서더라고요.

 

누가 받을지 모른다는 점에서 딱 맞는 걸 주고 싶다는 부담이 덜할 것 같아요.

그래서 마음이 편하죠. 상대를 다 알지 못하니까 제가 좋아하는 걸 줘도 괜찮다고 생각하게 되거든요. 상대에 관한 정보가 많아질수록 그 사람한테 더 알맞은 게 무엇인지 더 깊게 고민하게 돼요.

사월 저도 비슷해요. 예전에는 ‘주고받는 건 뭐든 좋은 거 아니야?’라는 생각으로 들떠서 이것저것 주고받곤 했는데요. 어떤 시기부터는 누군가에게 정확하게 필요한 걸 주고 싶은 마음이 커요. 그런데 친구가 필요한 걸 다 갖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면 선물에 고민이 많아져요. 때로는 제가 주고 싶은 걸 고르는 게 아닌가 싶을 때도 있는데, 그럴 땐 좀 이기적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요. 그래서 예전보다는 선물에 덜 헤퍼진 것 같아요. 이상한 거 줄 바엔 안 주는 게 낫겠다 싶어서요. 그러면서도 계속 좋은 걸 주고 싶은 마음은 있죠. 근데 선물 받는 처지가 되면 확실히 너그러워져요. 뭐든 다 고맙거든요. 감사하게도 독자, 관객에게 편지나 선물 받을 일이 많은데 그럴 때 특히 그래요.

내가 준 선물을 스스로 만족스럽다고 느끼기는 어렵지만 그럼에도 있을 것 같아요. 주고서 만족스럽던 선물.

사월 있어요. 제가 주었다기보다는 저희 부모님이 나누는 선물인데요. 부모님이 농사를 지으시는데, 두 분이 키운 농산물을 친구들한테 선물할 때가 종종 있어요. 어릴 때는 부모님이 농부라는 게 내심 부끄럽기도 했는데, 그땐 제가 농작물을 쓸 줄 모르는 사람이어서 그랬던 것 같아요. 독립하고 요리를 곧잘 하게 되면서부터는 먹거리가 얼마나 귀한 건지 실감하게 되었고, 그 이후론 친구들에게 부모님이 키운 농산물을 건넬 때, 이것이 내가 나눌 수 있는 가장 좋은 선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저도 이번에 배추랑 단감 같은 것들을 받았는데 사월이 부모님이 만들었다는 게 절로 믿어질 만큼, 그간 먹어오던 것과는 맛이 달랐어요. 세월을 들여 키운 농작물을 선물 받고, 그걸 우리 가족이 둘러앉아 먹는 느낌이 참 오묘하더라고요. 먼 시간이 오고 간다는 느낌도 들고요. 어제는 사월이 부모님이 주신 단감을 먹었는데요,

사월 그거 미쳤지.

단감이 멜론 같아요.

 

궁금해도 먹어볼 수 없으니 답답하고 부러운걸요(웃음). 또 특히 기억에 남는 선물 있어요?

어제까지 제주도에 있었는데, 집에 돌아오니 문 앞에 택배가 많이 와 있더라고요. 그중에 인상 깊은 선물들도 있었는데요. 제 산문집 《눈에 덜 띄는》을 편집해 주신 이하나 편집자가 《눈에 덜 띄는》 생일이라고, 세계에서 덜 보이는 것들을 같이 보자며 루페(작은 돋보기)를 선물해 주셨어요. 이 책을 만드는 과정이 본인에겐 편지를 나누는 것 같았다면서 긴 편지도 함께 담았더라고요. 워낙 아름다운 물건이라 감탄하며 그다음 택배를 개봉했는데, 열자마자 웃음이 터졌어요. 지금 책을 같이 만들고 있는 이야기장수 이연실 편집자가 보낸 물건이었는데요. 시중에서 파는 참깨스틱에 이야기장수 직원 얼굴이 프린트된 라벨 스티커를 붙여 만든 이야기장수표 과자더라고요. 대조되는 두 선물이 너무 재미있고 좋아서 기억에 남아요(웃음). 이렇게나 다른 개성의 사람들과 함께 일하고 있구나, 하는 감각을 느끼는 것도 무척 좋았고요.

사월 저는 자랑하고 싶어서 미리 꺼내놨어요. 최근에 라이브 앨범 [5202]을 만들었는데 앨범 표지를 토요다 테츠야Toyoda Tetsuya라는 일본 만화 작가님께 작업을 부탁드렸어요. 아날로그 방식으로 작업하는 분이라 스캔본 파일과 함께 원화도 국제 배송으로 받게 되었어요. 정말 특별한 선물이었죠. 그림 하나가 완성되기까지 많은 편집과 수정을 하게 되잖아요. 자세히 보면, 화이트로 고친 흔적들이 보이는데 그 부분까지 너무 좋더라고요. 고민과 정성이 가득 담긴 원화를 가진다는 게 무척 소중한 느낌이었어요.

둘이어서 쉽게 믿게 되는 거야

저는 선물의 정수는 편지라고 생각해요. 때로는 편지만으로도 좋은 선물이 되곤 하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두 분이 나눈 편지 정말 좋았어요. 올 초 출간된 서간집, 《고상하고 천박하게》를 소개해 주실래요?

사월 우리의 기획 의도는 서간문이되 우리가 나눌 수 있는 글들을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창의적으로 많이 하자는 거였어요. ‘우리 재미있는 거 하자!’ 오로지 그 마음이었죠.

우리가 재미있는 걸 하자는 마음으로 서간집을 시작했는데 책이 나오고 나니 동료들이 ‘나한테 너무 필요한 책이었다.’는 말을 많이 해주더라고요. 둘의 내밀한 이야기를 꺼내놓았는데 오히려 사람이 모이는 게 신기하고 좋았어요.

사월 저도 비슷한 코멘트를 많이 받았어요. 동료들이 공감된다는 이야기를 자주 전해 주었거든요. 이 책은 편지로 이루어져 있지만 결국 우리가 서로의 거울이 되어주면서 네가 지금 어떤 작업을 하고 있고, 이게 지금 너한테 어떤 의미인지를 서로 봐주는 과정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자기 이야기도 하지만 서로를 봐주기도 하는 거죠. 창작자들은 어쩌면 이런 대화가 항상 고팠던 게 아닐까 싶더라고요.

 

《고상하고 천박하게》는 열린책들의 서간집 시리즈 ‘둘이서’의 첫 작업이었잖아요. 가이드가 없어서 자유로운 반면, 고민된 지점은 없었어요?

사월 그 점이 오히려 신났어요. ‘처음이니까 하고 싶은 거 다 하자!’ 둘 다 이런 마음이었어요. 이다음부터는 규칙이 생길 테니까 법이 만들어지기 전에 뭐든 해볼 수 있을 것 같았죠.

어쨌든 서간집이니까 편지 주고받기가 주된 포맷이기에 그 형식은 지키면서도 쓰는 방식은 자유롭게 하고 싶었어요. 짧은 산문 형태를 보내고 싶다면 산문 그대로 싣고, 사진으로 말하고 싶은 날은 사진 형태로 싣고, 가사로 쓰고 싶은 게 있을 땐 옮기기도 하고….

사월 그 과정에서 한 가지 염두에 둔 것은, 우리 둘의 우정이 사람들한테 가 닿으려면 독자들이 읽고 소외를 느끼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자기들끼리 신나 있네.’ 하는 느낌이 들지 않았으면 했어요. 서간문이라는 이유로 튕겨 나가는 독자는 없었으면 한 거죠.

아무리 편지여도 지면에 실릴 원고이고 독자들이 지켜보는 무대라는 것을 잊지 말자. 그 무대 위에 우리가 진심으로 꺼내놓을 수 있는 이야기를 올리자. 그게 원칙이었어요.

 

그런데요, 책이라는 무대가 없었다면 과연 이만큼 내밀한 이야기가 오갈 수 있었을까요?

사월 음, 잘 모르겠어요. 오히려 무대 위였기 때문에 더 내밀한 소통을 한 것 같아요. 게다가 훤은 자기 언어가 잘 쌓여 있는 사람이잖아요. 편지를 쓰는 파트너로서 그걸 잘 발견해 주며 답장해야겠다는 마음이 컸어요. 공개되지 않는 글이라면 그만큼 힘을 쓰지 않았을 수도 있었겠죠.

관객이 둘러싸고 있는 무대여서 둘 다 속 깊은 이야기를 하게 됐던 거예요. 무대에서만 보이는 엄청 취약해지는 모습이 있거든요. 그런 면이 책의 형태로 기록된다고 생각하니까 처음에는 겁이 났는데요, 무대에 올라가니까 서로밖에 안 보이더라고요. 퇴고할 때에야 바깥에서 관객이 보고 있다는 걸 기억하고 ‘아 맞다, 누군가가 우릴 지켜보고 있었지!’ 하면서 다듬게 됐어요. 이전에 쓰던 책과는 확실히 달랐죠.

사월 저희 둘 다 봐주는 사람이 있을 때 더 나다워지는 쪽으로 형성된 상태라고 생각해요. 훤이는 글을 쓰는 곳에서 원래의 훤보다 더 자기다워지는 형태로 살아왔고, 저도 무대 위에서 하는 한마디가 더 저답거든요. 그러니까 우리 우정도 무대에 펼쳐놓을 때 더 진실될 수 있던 거죠. 둘 다 변태인 거예요(웃음). 누가 봐줘야 진짜가 되잖아요.

 

무대에 올린다는 점에서 보통의 편지랑은 다른 구석도 있는 것 같아요. 책을 읽으면서 깨달은 것들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편지의 형식이었어요. 이 책 첫 글은 사월 씨 편지인데요. “몇 주 전에 쓴 일기를 타이핑하고 있”다는 대목이 나오잖아요. 생각해 보니 어떤 글이든 수신인을 붙이면 편지가 되겠다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사월 될 수는 있지만 소통을 전제로 한 편지는 아닐 것 같아요. 사실 저나 훤이나 일기라는 형식도 가사의 토대나 글감이 되기도 하는 사람들이어서 이미 일기가 침범을 당한 자들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보통 사람의 일기장에서 글을 뽑아내는 것과는 좀 다른 의미로 생각해야 할 것 같아요. 정확히 ‘편지’를 쓰고자 한다면 일기나 블로그 글에 수신인만 붙이는 게 아니라 전하려는 방향을 확실히 하고 글을 쓰는 게 맞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제가 첫 편지를 쓸 때 마음은 ‘일기지만 너에게 편지를 쓰고 있어.’였을 거예요.

어떻게 보면 일하기 위해 주고받는 이메일도 편지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게 따지면 우리는 정말 많은 편지를 쓰면서 사는 셈이고요. 그런데 사적인 편지는 느슨해지는 지점이 확실히 있다고 봐요. 둘만 아는 이야기로 가득 찬 편지는 둘만 재미있기 때문에, 책을 염두에 둔다면 지양해야 하거든요.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면서 바깥 사람들이 진입할 수 있는 편지를 어떻게 쓸까 고민이 많았어요. 사월과 편지 작업을 하기 전에 친구들과 주고받은 편지를 많이 열어보았는데요. 읽을수록 편지의 속성은 참 이상하게 느껴지더라고요. 상대방에게 보내는 편지지만 내 이야기만 하기 너무 쉽고, 또 상대 쪽으로만 향하면 일방향적인 이야기가 되기도 하고…. 우리의 편지들이 책이 되기 위해선 그 농도 조절을 어떻게 할지, 어느 정도 보폭으로 걸어야 누군가가 바깥에서 따라 걸을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되었죠.

사월 편지가 쉬우면서도 어려운 지점이 바로 그 ‘보폭’ 문제인 것 같아요. 자기 얘기로 이루어진 편지를 우리는 정말 많이 써왔고 아마 앞으로도 계속 쓰게 되겠지요. 우리가 받는 편지도 사실 그런 종류가 많죠. 그런데요, 서간집이 된다는 사실 때문에 고민한 거지, 사실 저는 자기 얘기로 가득한 편지도 좋아요. 특히 관객에게 그런 편지를 받을 때 좋아요. 저는 무대에서 제 얘기를 엄청나게 해버리잖아요. 노래에서도 하고, 멘트로도 하고…. 그럼 한편으로 미안하거든요. 저 힘든 얘기하면서 공연하고, 그걸로 돈을 벌고, 사랑도 받겠다는 게요. 근데 관객들이 편지에 자기는 누구고, 이 노래를 어디에서 들었고, 듣고 나서 어떤 마음이 되었고, 이런 일을 겪었는데… 하는 그들의 일상적인 이야기를 적어서 건네주면 안심이 돼요. 창작물이 통로가 되어 우리가 대화를 할 수 있는 거니까요.

 

훤 씨는 책 속에 이런 이야기를 썼죠. “사월아. 편지는 늘 가까운 수단이었으니까. 그러다 시절이 바뀌고 어느 순간부터 쓰지 않게 되었다. 이상하지? 너무 많은 편지를 쓰다가 더 이상 신봉하지 않게 된 거야.” 편지에 대한 마음이 어떻게 달라졌어요?

사월 저도 훤이처럼 편지 쓰기에 허들이 높은 편은 아니었어요. 어떤 편지든 받는 건 좋아요. 읽는 사람이 나밖에 없는 글이잖아요. 그런 이유로 저도 누군가에게 편지를 쓸 때 그도 이런 지점에서 좋을 것이다, 괜찮을 것이다,라는 이상한 믿음이 있던 것 같아요. 그래서 크리스마스나 연말, 생일 같은 특별한 때 편지 쓰는 걸 좋아했어요. 상대방만 읽고 끝난다는 속성이 좋아서 어렵지 않게 생각한 거죠.

온라인으로도, 실물로도 편지를 자주 쓰고 지냈는데 오히려 너무 많이 쓰다 보니까 편지를 쓰는 제 마음이 낡아버린 시기가 있었어요. 어느 순간, ‘진심으로 쓰고 있지만 이 마음이 과연 다 전해질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했죠. 한편, 오래된 편지들을 꺼내서 읽어보면 좋기도 하지만 그 당시엔 소중했는데 어느새 다 잊어버린 이야기가 되었다는 게 안타까울 때도 있었어요. 이젠 제게 유효하지 않은 이야기들, 편지 속에 서술된 저와 다른 제 모습을 볼 때 냉소하기도 하고요. 편지라는 기록이 너무 소중했던 시간을 지나면서 덜 믿게 된 시기가 찾아온 거죠. 그러다가 사월과 작업하면서 한 사람을 향해 꾸준히 쓰는 글 안에서 제가 벌일 수 있는 일이 많다는 걸 다시 깨달았어요.

사월 편지를 좋아하기 때문에 느끼는 아쉬움을 해소하는 글쓰기였어요. 정확히는 편지가 책으로 기록된다는 점에서 해소할 수 있었을 텐데요. 저는 사실 편지는 사라지는 게 맞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우리 편지는 서간집이란 형태로 남게 되잖아요. 이런 보존의 속성은 편지의 진짜 속성은 아니지만, 오히려 거기서 편안함을 얻어버린 거죠.

편지는 굳이 열어보지 않으면 휘발될 텐데 우리 편지는 정돈된 채로 언제든 열람 가능하다는 점이 편지 이상의 텍스트로 기능하게 해주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편지가 어떻게 보관되느냐에서 감회가 새로워진 거죠.

“편지는 사라지는 속성이 있다.”고 하셨는데요. 어떤 의미에서 사라지는 거라고 생각하세요?

사월 우린 많은 걸 기억하지만 모든 걸 기억할 순 없어요. 사람의 뇌는 한정적이기 때문에 편지 내용을 최선을 다해서 외우고 싶어도 결국 한두 달 지나면 잊히거든요. 그런 걸 생각하면 편지를 받고 나서 마음이 아플 때도 있어요. 읽고 나면 결국 잊어버리게 될 이야기를 상대는 꼭꼭 눌러서 써주는 글이잖아요. 그런 점에서 사라지는 거라고 생각했고, 그걸 생각하면 슬퍼요. 그래서 오히려 제가 누군가에게 쓸 땐 조금 더 자유로워지는 것 같기도 하고요. ‘어차피 휘발될 거야.’라는 생각을 하니까요.

동감해요. 편지는 중요한 맘을 문장으로 옮기고, 굳이 봉투에 담아서 주는 거잖아요. 그런 점에서 마음을 전할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이 편지라고 생각해요. ‘내 마음을 기록하고, 잘 봉해서, 상대에게 전했다.’ 최선의 방법으로 건넸기 때문에 오히려 잊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쓴 편지는 잘 기억이 안 나요. 거기서 완결이 되어도 괜찮아지는 거죠. 편지는 이상한 완결성 같은 걸 우리에게 주지시키는 것 같아요.

사월 맞아요. 감정은 사라져야 맞는 거잖아요. 그게 자연스러운 거고요. 근데 우리는 그걸 붙잡는 작업을 해버린 거죠.

자기가 쓴 편지를 기억하는 사람도 있을까요?

 

저는 본의 아니게 기억할 때가 있어요. 휴대전화 메모장에 편지 초안이 남아 있거든요.

사월 저도 비슷해요. 메모장에 쓰고, 맞춤법 검사기도 돌려보고 그걸 보면서 손으로 쓰거든요. 그래서 가끔 제가 쓴 편지를 보게 돼요.

초안을요? 사월이는 맞춤법 검사까지(웃음)? 저는 대부분 초안 없이 바로 쓰는 편이어서 두 사람 이야기가 새로워요. 물론 종이에 바로 쓰면 후회할 때가 많아요. 조사가 틀리기도 하고 주술 호응이 안 맞기도 하고, 나중에 보면 어느 부분에선 분명히 엉망이 되어 있거든요. 잘 써 주고 싶어서 초안을 준비하는 거지만 진짜를 주고 싶어서 초안을 안 쓰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좀 다른 이야기인데, 제가 좋아하는 동료 사진가가 있는데요. 시카고에서 활동하는 72세 사진가인데, 사진을 인화해서 그 뒤에 꼭 타자기로 편지를 써서 보내거든요. 근데 타자기에는 백스페이스가 없잖아요. 그래서 잘못 쓴 문장이 있으면 그 위에 X자를 덧대고 그 뒤에 다시 문장을 이어요. 저는 그런 걸 보는 게 좋더라고요. 그래서 더 초안을 쓰지 않는 것 같아요.

사월 저는 초안을 쓰는 사람이지만 초안 없이 쓴 편지도 좋아해요. 잘못 써서 볼펜으로 직직 긋고, 화이트로 지우고…. 그런 편지 받으면 왠지 좋아요. 밑줄 긋고 ‘이거 아님’ 써놓는 그런 편지. 저는 틀린 흔적을 보는 걸 즐겨요. 편지에 화이트로 지운 흔적이 있으면 살살 벗겨 보고, 인쇄물이 잘못 인쇄돼서 스티커가 여러 겹 붙어 수정돼 있으면 꼭 떼서 뭐가 틀렸는지 확인하고(웃음). 실수 속에 진실이 있다고 생각하나 봐요.

 

책에 실린 편지들은 모두 타이핑으로 완성된 원고잖아요. 만일 손편지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면 어땠을 것 같아요?

사월 작업이 불가능했을 거예요. 저한테는 인터넷 게시판에 네티즌으로서 글 쓰는 자아가 있거든요. 편지 초안을 타이핑해서 작성하는 것도 그 자아를 이용해 글을 쓴다는 느낌이고요. 그래서 키보드를 이용하지 않고 글 쓰는 건 상상하기가 어려워요.

너무 엉망이라 읽을 수 없었을 거예요. 손으로 쓸 때와 타이핑할 때는 같은 내용을 쓰더라도 뭔가 조금은 다르게 쓰게 돼요. 그건 꼭 편지가 아니더라도 그런 것 같아요. 타이핑할 땐 생각이 술술 흘러나오는 한편, 손으로 쓸 땐 생각이 더뎌서 분명한 차이가 생기죠. 타이핑이 익숙하고 편하니까 저는 오히려 정신을 새롭게 하려고 노트에 쓸 때도 있어요. 글이 막히면 손글씨로 옮겨가는 거죠.

 

그 말인즉슨 어떤 조건이냐, 어떤 환경이냐에 따라 글쓰기도 달라진다는 것 같은데요. 두 분도 여러 장소에서 편지를 쓰셨을 텐데 달라지는 점이 있었나요?

어디서 쓰느냐에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둘 다 타국에서 편지를 보낼 일이 있었는데요. 전혀 다른 환경에서 쓴 편지들은 자기 자신도 새로운 데서 어떻게 존재해야 할지 결정을 다 하지 못한 채로 쓴 것 같은 느낌이 있어요. 그러니까 일상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들 사이에 있어야 해서 그걸 받아들이는 데 급급한 채로, 평소의 나와 달라진 채로 썼다는 게 티가 나요. 그런 의미에서 사월이가 뮤직비디오 촬영하러 일본에 가서 쓴 편지들이 좋았어요. 타지에서 일하는 사람의 현장감이 느껴졌거든요. 짧은 시간 안에 아웃풋을 내야 하는 창작자로서의 고민과 스태프들을 챙겨야 하는 사람으로서의 고민이 생생하게 느껴진 점이 유독 좋았죠.

사월 장소든 도구든 영향을 많이 받게 돼요. 훤이가 제게 직접 조립한 키보드를 선물해 줬는데 그걸로 쓴 편지가 책에 한 편 실려 있거든요. 내용에는 큰 차이가 없을지 몰라도 쓰고 있는 저로서는 확실히 다른 편지랑은 쓰는 느낌이나 태도가 달랐어요. 키보드에 한글 표시가 안 돼 있어서 듬성듬성 손가락을 놀리게 된 것도 영향을 미쳤고요. 편지 쓰는 환경이나 조건이 바뀐다는 건 저를 담는 그릇이 바뀌는 느낌이에요.

사월 씨가 편지에 이런 이야기를 쓰셨죠. “네가 나를 기록해 주어서 나의 어떤 부분이 죽지 않게 된다. 글로 사람을 살린다는 게 별거일까. 남겨 주어서 고맙고 살려 줘서 고마워.” 누군가 글로 나를 기록해 준다는 건 아무나 할 수 없는 경험이란 생각도 들어요.

사월 정확히는 공연장에서 제가 한 말이나 행동을 훤이가 편지에, 그러니까 이 책에 기록해 주어서 고맙다는 의미였어요. 저는 무대 위에서 저를 보여주는 상황이 많은데, 무대 위의 제 말이나 행동은 휘발된다는 걸 스스로 잘 알거든요. 근데 훤이가 제가 공연할 때 했던 멘트를 편지로 남겨준 거죠. 참 고마운 일이에요. 언젠간 사라질 거라는 걸 알기에 아낌없이 보여주려는 무대에서의 저를 누군가가 기록해 주었다는 거.

노래든 책이든 한 번 정제된 결과물을 만나는 거기 때문에 현장의 모든 것을 기억할 수는 없잖아요. 오늘 대화도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게 기록되는 게 아니라 어떤 부분은 중요할지라도 편집될 텐데요. 그걸 모두 기록하고 싶다, 남겨두고 싶다, 하는 마음이 있어요. 그래서 사월의 말도 편지에 남긴 거고요.

사월 넌 참 많은 것을, 거의 모든 것을 기억하고 싶고 놓치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이야.

그렇기 때문에 자꾸 고장이 나지. 셧다운 되고. 렉 걸리고.

사월 알 것 같은데도 묻는 거지만, 뭐가 그렇게 소중해? 왜 그렇게 소중해?

오히려 기억하지 못할 거라는 걸 너무 잘 알아서. 소중한 지금 이 순간을 길어야 며칠 동안만 기억하고 지니고 있을 거란 걸 알아서 그런 것 같아.

사월 아… 역시 삶은 순간밖에 없는 것 같아요. 약간의 지속과 조금의 기록이 있을 뿐이니까요.

 

기록으로 남겼다고 해서 늘 후련한 것만은 아니죠. 이 책에도 ‘출간 블루’에 관한 이야기가 적혀 있는데요. 사월 씨는 그렇게나 소중했던 음악이 앨범으로 발매되고 나면 안 듣게 된다고 했고, 책을 출간하는 것도 마찬가지라고 했어요. 《고상하고 천박하게》는 어땠어요?

사월 이 책의 경우엔, 출간 블루가 없었어요. 지금도 마냥 행복하고 즐겁던 작업으로 기억하고 있어요. 행복하고 즐거운 얘기만 한 건 아닌데 훤이와 이런 걸 할 수 있어서 좋기만 한 경험이었어요.

저도요. 이 책이 결함이 없어서 그렇다기보단 저한테 있는 것 중 가장 좋은 걸 사월이에게 주려고 했고, 사월이 그걸 잘 받아서 반응하려고 했고…. 그런 마음을 차곡차곡 쌓아서 만든 책이다 보니 공동의 창작물인 동시에 너무 나의 창작물이기도 해서 더 소중하게 느껴져요. 둘이 함께 쌓아서 만들었기에 다른 책보다 아끼기 쉬운 책이 되었고요. 둘이 쓰는 책이 언제나 더 좋은 책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데요. 그럼에도 이 책은 둘이 썼기 때문에 아쉬운 점이 없어요.

사월 누군가 제 창작물을 가지고 와서 사인해 달라고 하면 왠지 쑥스러운데, 이 책은 “이거 좋죠. 이 책 재밌죠!” 하고 나서서 이야기하게 되더라고요. 함께한 상대가 있기 때문에 자랑스럽고 훨씬 더 좋다고 느껴지는 책이에요.

그 ‘좋음’이 더 잘 믿어진다고 해야 할까요. 둘이 썼기 때문인지 좋다는 말을 멋쩍어하지 않고 단번에 믿게 돼요.

사월 부정적인 의견에도 방어하기가 쉬워요. 별로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 건 당연한데, 제 작품에 대한 악평이라면 ‘난 너무 부족해.’ 하고 자책하게 되거든요. 근데 우리 책에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을 때는 대수롭지 않게 넘기게 돼요. 

한 번은 우리 대화가 너무 사적이었다는 리뷰를 본 적이 있는데, 납득은 되거든요. 근데 우리한테는 여기까지 이야기하는 게 진짜 대화였다는 믿음이 있어요. 그래서….

사월 떳떳하지(웃음). 우리가 만든 거에 대해 서로 믿음이 확실해서 건강한 마음으로 책을 낼 수 있었어요.

 

편지에는 마감이 없지만 원고에는 마감이 있잖아요. 훤이 편지에 이런 이야기를 쓰기도 했죠. “마감 앞에 서면 무언가를 쓴다. 어떨 땐 거의 기계적으로 완성한 원고지만 끝냈다는 사실에 만족하며 송고하곤 하는데, 이게 반쯤 죽은 상태와 무엇이 다른지 생각한다. 짓는 행위가 매일 새로울 순 없다.” 원고이기 때문에 부담스럽거나 마감이 벅찼던 적은 없어요?

사월 편지를 1년 조금 넘게 주고받았는데요. 책은 한 권이지만 글쓴이는 두 사람이니까 분량적으로 부담이 덜했어요. 실제로 편지를 몇 번 주고받고 보니 분량이 다 차서 둘 다 “벌써 끝났어?” 했죠. 심정적으로는 한 1년은 더 쓸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근데 저는 솔직히 부담스러울 때 있었어요. 사월이가 편지를 너무 잘 써서 ‘이거 큰일 났다.’ 싶은 적이 종종 있었거든요. 경쟁하듯이 쓰려던 건 당연히 아닌데요. 사월이 기둥을 잘 세웠으니 그 기둥에서 더 멀리 가거나 더 높아지는 편지를 쓰고 싶은데, 기둥을 너무 잘 세워둬서 작가로서 고민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어떤 편지는 다섯 번, 열 번씩 읽고 답장을 쓰기도 했어요. 그때 생각했어요. 협업이라는 건 잘하는 사람과 할 때 더 잘하게 되는 부분이 분명히 있구나, 하고요.

사월 저는 오히려 훤이 이 글에 대한 골자를 너무 잘 만들어내고 있어서 제가 거기에 쉽게 균열을 내는 존재가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솔직히 제 역할이 훨씬 쉬워요. 저 같은 털털이가 와서 정교하게 만들어진 걸 막 흩뜨리는 건 간단하거든요. 그러니까 저는 훤이 만드는 어떤 것들을 믿었기 때문에 마음껏 해본 거예요. 자유롭게 해도 훤이 다 수습해 줄 거라는 걸  알았으니까요. 결론적으로 저도 잘하는 사람과 협업하니까 편하게 리드를 당하며 할 수 있던 거죠.

이 책, 굉장히 잘됐잖아요. 일주일이 채 안 되었을 때 중쇄를 찍었고요. 《고상하고 천박하게》가 왜 사랑받았다고 생각하세요?

요즘 사람들에겐 취약한 면이 있어서 저희 캐릭터가 잘 가 닿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월 맞아요. 저희는 취약한 사람들이란 공통점이 있죠. 너 그 동네 취약짱이잖아, 나도 이 동네 취약짱이거든(웃음). 질문을 듣고 이 책이 왜 사랑받았을까 처음으로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됐는데요. 일단 조합이 좋았어요. 시각 예술과 청각 예술이 만나는 게 재미있고, 캐릭터가 다른 점도 좋게 작용했다고 생각해요. 취약함에 관해 조금 더 이야기하자면, 독자들은 어쩌면 이 글들 안에서 자신을 발견한 게 아닐까 싶기도 해요. 우리의 사진도, 시도, 산문도, 음악도 그런 지점이 있을 텐데요. 독자들이 우리 편지를 통해서 자신을 보는 경험을 했기에 사랑받을 수 있던 것 같아요. 그게 무척 보람찬 일이기도 했고요.

우리는 다른 캐릭터인데 똑같이 취약하고, 서로를 바라보고 싶은 의지가 많은 사람들이에요. 그런 둘이 모여서 편지를 쓰는 데서 뭔가 생겨난 것 같아요. 자칫 잘못하면 편지 특성상 자기가 하는 이야기에만 골몰하거나 상대방이 건네준 이야기에만 반응하게 될 텐데요. 저는 그 중간의 어떤 것을 우리가 했으면 싶었어요. 대화하듯 책을 만들고 싶다고도 생각했고요. 좋은 대화라는 게 그렇잖아요. 모든 구간에서 자기 이야기만 덧대면 좋은 대화가 되기 어려우니까 어떤 지점에선 참고, 덜어내고, 반응이 필요한 부분에선 충분히 잘 반응해야 할 텐데요. 그래서 정확하게 답하고 싶어서 사월의 편지를 여러 번 읽기도 한 거예요. 근데 책이 나오고 보니 사람들이 그런 종류의 우정을 원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취약한 모습을 가감 없이 보여주고, 내 얘기를 하면서도 네 이야기에 반응하는 우정. 뭐든 거부감 없이 꺼내놓고 들어주는 우정. 우리조차도 그런 종류의 우정을 원해서 이런 편지를 쓴 것 같고요.


취약함이라는 데서 공감대가 형성됐다는 의미 같기도 한데, 그 취약함이라는 게 도대체 뭘까요?

잘 모르겠어요. 작가로서 경계해야 하는 것 중 하나가 자기 연민에 빠지는 건데, 그런 의미에서 어느 순간에는 누군가 우는소리 하는 게 보기 싫을 때가 있잖아요. 반대로 어떨 때는 이 사람이 취약해서 좋다고 느낄 때도 있고요. 사월과 편지를 쓰면서 우리가 비슷하고 또 다르게 연약해지는 모습을 같이 살핀 것 같아요. 때때로 거울처럼 서로를 들여다보면서요.

사월 인간에겐 무조건 약한 부분이 있고, 그걸 보호하고 감추며 살지만 그 약한 부분이 없으면 전체적으로 위험해진다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취약함이란 없어질 수 없는 것, 없어지면 안 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읽는 사람도 느낄 수 있었어요. 마감에 쫓기듯 쓴 글이 아니라 편지를 기다리고 반기면서 쓴 글이라는 거.

사월 중간에 편집자 개입 없이 저희끼리 주고받은 편지라 더 그랬을 거예요. 편지가 도착하면요, 정말 행복했어요. 도파민이 엄청나요. 휴대전화로 확인하고, 태블릿으로 보고, 노트북으로 또 보고…. 책이 나오고 다시 읽었더니 그걸 받았을 때의 제 마음이나 답장 쓸 때의 제 모습, 장면들이 막 떠오르더라고요. 편지 쓰기에 골몰했기 때문에 글 속에 우리의 도파민이 다 담겨 있을지도 몰라요. 제일 재미있던 건 마지막 편지였죠. ‘이제 그만 맺자.’라고 서로 합의한 것도 아닌데 동시에 마지막 편지를 보냈어요. 그래서 마지막 편지는 답장 형태가 아니고 지금까지 편지를 쓴 서로와 나 자신에게 보내는 마지막 글이 되었던 거예요.


다시 한번 ‘둘이서’ 시리즈의 배턴이 돌아오면 어떨 것 같아요?

사월 저는 에너지나 용량이 큰 사람은 아니어서 다시 훤과 편지를 주고받는다면 5년이나 10년 뒤면 좋겠어요. 편지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계속 누군가와 주고받는 형태의 협업을 할 테고 계속 그 의미는 달라지겠죠. 장르마다, 사람마다.

사실 감사하게도 열린책들에서 두 번째 서간집을 제안해 주셨는데요. 우리의 대화가 기록으로 엮이는 데는 에너지가 많이 필요한 일이기에 사월이 말처럼 시간이 조금 흐른 뒤면 좋겠어요.

사월 40대가 되어 지금과는 또 새로운 삶을 살게 된 우리가 쓰면 어떨까? 또 다른 의미로 너무 멋있을 것 같은데.

그게 우리한테도 즐거울 것 같고. 근데 그때쯤이면 종이책 다 없어져서 전자책으로만 읽을 수 있게 되는 거 아냐?


아, 절대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예요(웃음). 사월 씨가 책에 “정희진 선생님은 소통이란 불가능하고 소통하려는 시도만이 가능하다고, 완전한 소통은 아마 자기 자신과의 대화밖에 없을 거라고 하셨지. 어쩌면 우리의 편지는 자신과의 소통을 도와주는 거라고 감히 생각해 본다.”라는 문장을 쓰셨잖아요. 나와 소통한 지점에 관해서도 들려줄래요?

사월 어려운 질문인데, 전 사실 나와의 소통도 안 된다고 생각해요. 나와의 소통 역시 하려는 시도만 있는 것 같거든요. 저도 저를 잘 몰라요. 저도 계속 변하는 존재여서 저 자신에게 제대로 된 케어나 필요한 말을 못 해주는 것 같아요. 그렇게 생각하면 타인도 저 이상으로 복잡한 존재일 텐데 제가 상대에게 뭔가를 와닿게 하겠다는 게 말이 안 되는 일처럼 느껴져요. 우리가 하는 소통은 ‘내가 이걸 주고 싶으니까’ 하고 던지는 말인 것 같고, 그렇게 각자가 던진 이야기로 어찌어찌 소통하려는 시도를 계속하며 살아가는 것 같아요. 그러다가 우연히 아름다운 소통이 탄생하기도 하고요.

좀 다른 이야기지만, 사월이는 자신에겐 엄청 엄격한데 타인에겐 너그러워요. 타인을 세심히 보듬는 친구고 동료거든요. 근데 자신에게만 모진 거죠. 그게 좀 닮았어요. 그래서 사월이와 대화하는 게 저하고 대화하는 것 같기도 해요. 자신에게 엄격한 잣대가 발현되는 순간을 저희는 일종의 ‘정병’ 모먼트라고 부르는데요. 사람은 누구나 어딘가 조금씩 부족하고 아픈 부분이 있잖아요. 그런데 그걸 너그럽게 받아주는 친구가 있고, 섬세하게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든든해요. 생각이 너무 복잡해질 땐 집 앞을 뛰는데, 뛰는데도 해결이 안 될 때가 있어요. 그럴 때 사월이한테 전화를 걸어서 “뭐 하냐.” 그래요. 그럼 사월이는 “왜 그래?” 하죠(웃음).

사월 저는 그런 전화를 받으면 집 앞에 나와서 걷기 시작해요. 한 번 통화하면 굉장히 길게 이야기하기 때문에 걷기에 딱 좋거든요. 한 번 대화하기 시작하면 한두 시간은 금세 흘러가 있는데 끊을 땐 “그럼 못다 한 얘기는 만나서 하자.” 꼭 그래요(웃음).

정말이지 그렇게 얘기하고도 할 얘기가 정말 많이 남아 있어요. 요즘은 그런 종류의 우정이 잘 없잖아요. 말 한마디도 너무 조심하게 되고, 전화 걸고 싶어도 ‘바쁠 텐데. 너무 늦은 거 아닌가?’ 하고 생각하게 되고요. 서로를 침범하는 게 자유로워서, 조금 덜 조심하게 되어서 좋아요. 사월이와의 우정은 제 우정 역사에 새로운 국면을 만든 신호탄이었어요.

사월 어쨌든 이훤이 약간 독특한 인물이어서 이 우정이 가능한 것 같단 생각이 들어요. 여성과 우정을 나누면 서로를 너무 알겠어서 조심스러워지고, 사랑하고, 그래서 미워하게 되는 지점까지 가게 되거든요. 더 깊은 것을 원하다가 다치는 경험을 하기도 하고, 애인처럼 헤어지기도 붙기도 하죠. 그게 제가 해왔던 우정이에요. 여전히 남성 동료와는 그런 종류의 우정은 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제가 가진 이 허들의 가장 가까운 곳까지 다가온 훤은 방어기제 없이 물러터질 수 있는 여리고 강한 사람이었어요. 이런 남성과 우정을 나눌 수 있다는 건 정말 희귀한 일이에요.


나눌 얘기가 아직 한참 남았는데 시간이 가는 게 너무 야속하네요. 못다 한 이야기는 손편지로 남겨보면 어때요? 어쩐지 좀 다른 의미에서 좋은 편지가 될 것 같은데.

마침 만년필도 챙겨 왔는데!

사월 난 여기 앉아서 쓸게. 넌 저쪽에서 써.

좋아.

희귀하고 드문 우정을 담아

사월이 훤에게
훤이 사월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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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이주연(산책방)

포토그래퍼 강현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