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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달아나며 늘 함께
깨질 듯 말 듯 가장 단단한.
어디서든 여행이 끝나갈 무렵이면 나는 컵을 사러 돌아다닌다. 기념품점도 둘러보고 골동품 가게에도 들어가 본다. 슈퍼마켓 한쪽에 있는 머그컵을 사 올 때도 있고, 그보다 공들여 만들어진 것을 발견하게 될 때도 있다. 모양, 무게, 용도 같은 건 크게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아직 그 컵에 어떤 게 담길지 모르기 때문이다. 목적은 바로 ‘깨지기 쉬운 것.’ 유리가 그런 것이기에, 나는 그걸 멀리서부터 집까지 가지고 가는 여정에 다른 때보다 불안과 흥미를 조금 더 느낀다. 신문지를 한 뭉텅이 가지고 숙소로 돌아와서 오후 내내 고른 컵들을 포장하는 동안 덩달아 연약한 마음이 되어, 지켜주세요, 속으로 기도하게 되는 것이다. 한국에 도착해 친구들에게 하나씩 하나씩 컵을 나눠주면, 그들은 단단한 물건을 받았을 때보다 더 고마워한다. 유리는 그런 것이니까.
멀리서 사 온 컵들을 나에게도 선물해 왔다. 10여 년이 된 50밀리리터 술잔도 있고, 지난해 막 사 온 두꺼운 머그도 있다. 제각각의 모양대로 한두 개씩뿐이어서 때에 맞게 자주 꺼내게 된다. 기억이든 모양이든 아무리 강렬한 것이라도 결국엔 잊히는 게 자연스러운 일인데, 컵이 있으면 그걸 천천히 할 수 있다. 컵이란 게 여간 생필품이 아니어서 자꾸만 찾게 되기 때문이다. 물론 이 컵인지 저 컵인지 상관없을 때가 더 많지만, 작은 여유가 생겨 따뜻한 차를 끓여 담는다거나 와인이라도 열어 컵에 따르는 날이면, 잠시지만 컵을 통해 지나온 먼 곳을 떠올리게 된다. 컵을 발견했던 도시의 분위기라든지 그 무렵 나의 고민들, 아름다웠던 만남들 그리고 다시 가보고 싶은 이유들까지. 두 손으로 컵을 쥔다. 거기에만 있을 것 같은 이 모양을 골라서 집까지 가져온 그때의 나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마음을 전하는 일에 컵만큼 좋은 물건이 무엇일까? 편지를 받으면 물론 좋긴 해도 그걸 자주 꺼내 읽을 수는 없고, 보석은 한 단어 한 문장밖에 말하지 못한다. 작고 깨지기 쉽고 매일 손에 쥐는 물건. 너무 사소해서 신화 속에 등장해도 어울릴 수 있는 물건. 소중한 의미라면 그런 것에 담아 두어야 하지 않을까. 처음부터 그런 생각을 하며 컵을 산 건 아니지만, 지나고 보니 누군가에게 컵을 준다는 건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는 얘기가 아니었나 싶다. 먼 곳에서 네가 생각났어. 너는 이런 모양을 닮았어. 자주 나를 떠올려줘. 하고 싶은 말이 떠오를 때마다 편지지를 고르고 단어를 고르듯 컵을 찾았던 것이다. 나는 본능적으로 얇은 컵을 찾았다. 그래야만 더 소중히 다룬다는 이유 때문에. 하지만 그렇더라도 언젠가 깨지겠지, 하는 마음으로 사용해 주길. 그것이 바로 단단함의 비결이니까.
컵을 선물하는 마지막 이유. 늘 깨끗하게 닦인다는 점이다. 무엇이 담겼었든지 닦으면 다 없어지니까 중요한 건 모두 컵 안에 있다.
글·사진 전진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