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편함과 계단의 개수

저는 아파트에 살아요

우편함과 계단의 개수

저는 아파트에 살아요

빈틈없이 빼곡한 우편함과 닳았다가 정돈되었다가를 반복하는 계단을 보면 이곳을 사는 사람들을 상상한다. 우리는 아파트에서 함께 산다.

아파트 키드의
기억

내 기억 속 최초의 집은 아파트다. 여섯 층으로, 층마다 두 집씩 모여 지내던 낡고 작은 아파트였다. 네 살 즈음 된 나를 키운 사람은 4층 아줌마였는데, 슬하에 키가 아주 큰 아들을 셋 두고 있었다. 당시 우리 엄마는 학습지 선생님을 하느라 내 옆에 온종일 붙어 있을 수 없었고, 나는 4층 아줌마네 집에서 커다란 어항에 물고기 밥을 주면서 시간을 때웠다. 언니가 유치원에서 돌아오면 언니랑 함께 집을 봤는데, 비가 세차게 내리는 날 웅덩이에서 발을 씻고 놀던 것 외에는 별다른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언니가 초등학교 들어갈 즈음에는 새롭게 개발되기 시작한 동네로 이사를 갔다. 아파트 단지 안으로 크고 작은 놀이터와 곳곳에 경비실과 분수대, 노인정과 정자가 있는 곳이었다. 당시 주변에서는 높고 큰 아파트 단지가 마을 사회를 잠식시켰다는 어른들의 목소리가 종종 들리곤 했다. 똑같이 생긴 구조에서 비슷한 인원수의 가족들이 비슷한 생활 양식을 형성하면서 개성이 사라졌고, 수직적인 구조는 이웃 간에 단절과 분리를 가져왔다고 말이다.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을 동네보다는 아파트 이름으로 표현했고,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가족 외부의 사람들에게 경계의 벽을 세우기 시작했다. 정착 기간도 짧아졌다. 한 마을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던 사람들은 아파트의 경제적 가치가 강조되면서 철마다 사정에 맞춰서 이 아파트, 저 아파트로 옮겨 다녔다.

아파트에서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낸, 그러니까 마을 사회의 경험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사람들은 아파트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내가 여덟 살 정도 되었을 때 아이들은 하나둘 미술 학원이나 피아노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학원 1세대 정도 되는 시기였는데, 학원가로 모여든 아이들은 서서히 놀이터를 벗어났고, 아이들이 철들기 시작하는 방식도 그랬다. 아파트는 알게 모르게 많은 것에 영향을 주고 있었다.

가장 가까운
아파트

언제부터 사람들 곁으로 아파트가 들어서기 시작한 걸까? 왜 아파트 단지는 지금의 형태로 자리 잡게 되었을까? 아파트의 동일한 구조는 어떻게 정해진 걸까? 아파트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하려니 다양한 질문이 나오기 시작한다. 아파트의 역사를 간략하게 정리하면 이렇다. 한국전쟁 이후 마당 딸린 한옥이 점점 사라지기 시작하면서 주거 형태도 달라졌다. 재료 또한 영향을 끼쳤는데, 시멘트 사용이 일반화되고 외벽을 회반죽과 실리콘으로 방수 처리한 시멘트 블록으로 쌓아 올리면서 대부분의 단독주택이 비슷한 형태를 띠기 시작했다. 그렇게 탄생한 우리나라 최초의 아파트는 1956년에 건설한 ‘중앙아파트’다. 을지로4가와 청계천4가 사이에 자리한 이 아파트에는 집 안에 방이 하나뿐이라는 사실과 소문이 자자한 수세식 화장실 그리고 입식 부엌이 마냥 신기해서 이를 구경하기 위해 찾아오는 방문자가 적지 않았다고 한다. 한 동에 12세대가 들어섰고, 낮은 집들 사이로 3층밖에 안 되지만 우뚝 선 건물에 모두 놀라 감탄을 했다. 보통 최초 아파트로 거론되곤 하는 ‘마포아파트’는 최초는 아니지만 분명 아파트 문화에 중요한 의미를 남겼다. 여러 개의 아파트 주거동이 모여 하나의 단지를 이룬 ‘단지식 아파트’의 사례가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당시 서구 근대 건축가들이 선호하던 형식을 그대로 따라, 넓은 공터, 주차장, 어린이 놀이터 등 생활 편익 시설을 함께 두기도 했다.

마포아파트에서 비롯된 여러 아파트 단지에 사람들이 들어서면서, 아파트 입주자들은 아파트에 살지 않는 사람들과는 다른 이미지를 입기 시작했다. 당시 정부는 전통적이고 재래적인 생활양식이 비경제적이며 비합리적인 방식이고, 서구의 새로운 주거 형식은 합리적이어서 집단적 공동생활을 통해 경제적 효율성을 높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에 따라 각종 대중매체에서는 “1년 내내 더운 샤워로 피곤을 풀 수 있다.”, “아파트 자체에 설비돼 있는 목욕조, 웨스턴 토일렛, 응접실, 키친에서 직접 던질 수 있는 쓰레기통, 허리를 구부리지 않고 그릇을 닦을 수 있는 싱크대의 효율성”, “하늘로 높이 솟고 넓은 땅에 나무나 화초를 심고 분수를 만들어 어린이 놀이터를 마련하는 것이 얼마나 여유로운가.” 등 아파트 예찬에 관한 기사를 쏟아냈다. 단순히 아파트의 장점만 부각하는 게 아니라, 아파트를 통해 대중을 계몽시키려 했고, ‘선진화=서구의 문물’이라는 도식을 만들려 했다. 짧은 기간 동안 한국 사회에 아파트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 데에 정치적·사회적 배경이 큰 영향을 미친 것이다.

옥상 위
민들레 꽃

인간 세계는 다양한 문화 콘텐츠에 반영될 수밖에 없다. 농업 사회의 대가족 모습이 드라마에 전형적으로 나오던 과거에 비해 핵가족과 1인 가구가 주로 나오게 된 변화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가족의 형태뿐만 아니라 소비 패턴, 관심사, 유행 등 사람들의 생활 양식과 가까운 것들이 계속해서 등장한다. 소설 속 아파트의 모습을 눈여겨보면 사람들이 당시에 아파트를 어떻게 여기고 받아들였는지 알 수 있다.

아파트 광장에 차와 사람의 움직임이 멎자 둥근 달이 하늘 한가운데 와서 옥상을 대낮까지 비춰주었습니다. 마치 세상에 달하고 나하고만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때 나는 민들레꽃을 보았습니다. 옥상은 시멘트로 단단하게 발라놓아 흙이라곤 없습니다. (중략) 도시로 부는 바람을 탄 민들레 씨앗들은 모두 시멘트로 포장한 딱딱한 땅을 만나 싹트지 못하고 죽어버렸으련만, 단 하나의 민들레 씨앗은 옹색하나마 흙을 만난 것입니다. 흙이라 할 것도 없는 한 줌의 먼지에 허겁지겁 뿌리내리고 눈물겹도록 노랗게 핀 민들레꽃을 보자 나는 갑자기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살고 싶지 않아 하던 게 큰 잘못같이 생각되었습니다.

– 박완서, 《옥상의 민들레꽃》 중에서

소설 속 ‘궁전아파트’는 많은 사람이 선망하는 고급아파트다. 어느 날 할머니가 창문으로 몸을 던져 자살하는 일이 벌어졌다. 벌써 두 번째 일이다. 주민들은 아파트 가격이 내려갈까 두려워 대책 회의를 했다. 반상회 모임에 이름을 붙이자는 누군가의 의견에 ‘서로돕기회’가 어떻냐는 의견이 나왔다. 그러자 젊은 아저씨가 말했다. “서로 돕다니요? 우리가 뭐가 부족해서 돕습니까? 이웃 돕기는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끼리 하는 겁니다.” 그 옆으로 목소리가 들려온다. “옳소, 옳소.” 그때 옆에서 주인공인 어린아이가 손을 들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저에게 아주 좋은 의견이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나’의 이야기를 궁금해하지 않았다. 손을 꼿꼿이 들어도 보았다. 그러자 임시회장이라는 아주머니가 말했다. “어휴, 이런 중요한 자리에 애를 데려온 게 누구야?”

아이는 어릴 적에 투신자살한 할머니처럼 옥상에 올라갔던 적이 있었다. 가족들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옥상에서 떨어질 마음이었다. 그때 민들레 꽃을 보았다. 옥상에 흙 한 줌 밖에 안 되는 열악한 환경에서 단단히 뿌리를 내린 작은 민들레를. 아이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더 이상 사람들이 죽지 않기 위해서는 아파트에 민들레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수치와 계산으로 정의할 수 없는, 이곳에서 삶을 지탱할 어떤 마음 같은 게. 하지만 궁전아파트 주민들 중 그 이야기를 들어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중학교 교과서에 실린 잔잔하고도 짧은 이 소설은 당시에 사람들이 아파트를 어떻게 여겼는지 단번에 알 수 있다. 누구나 ‘궁전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의 행복을 의심하지 않았고, 주민들은 자신의 행복이라고 믿는 것들을 유지하기 위해 바빴다. 아파트 가장자리부터 하늘과 가까운 옥상까지, 어느 곳에도 민들레에 자리를 내어줄 곳이 없던 것이다. 그리고 힘겹게 그 빈틈을 비집고 들어간 작은 생명이 아이의 마음을 바꾸었다. 아파트의 삶이 고단했던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민들레일까. 정확하게 말하자면 아니다. 아마 그건 어린아이와 같은 눈을 가진 사람일 것이다.

당신 곁에
민들레 꽃

아파트가 단절 사회의 상징이 되고 이웃 간의 거리를 만든 주된 요인으로 꼽히기도 하지만 아파트도 결국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그 안에도 사람들 곁으로 조용히 뿌리를 내린 강인한 민들레가 있다. 돌이켜 보면 아파트 단지가 마을 역할을 하기도 했다. 어릴 적 자전거를 타고 아파트 단지를 한 바퀴 돌면 아는 얼굴들이 하나둘 보여 인사를 나누었고, 집 열쇠를 잃어버린 날에는 자연스럽게 옆집 초인종을 눌러 그 안에서 엄마나 아빠의 귀가를 기다렸다. 옆집에서 많이 만든 것 같다며 나눠준 호박죽은, 그릇을 돌려줄 때 감이나 귤을 담아 고마움을 표했고, 망치나 소금같이 당장 필요한 것이 없을 때도 옆집 문을 두드렸다. 온 집이 현관문을 활짝 열고 지내고, 내복 바람으로 늦은 밤이 될 때까지 동네 친구네 집에서 놀았다. 허물이 없던 만큼 경계의 벽도 낮았다. 결코 홀로 살아갈 수 없는 세상에서 사람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연결되기 마련이고, 탄탄한 연결 고리를 위해서는 상대에게 자신을 드러내는 용기와 배려가 필요하다.

이웃을 반드시 만들어야 하냐는 질문이 나온다면, 꼭 그렇지는 않다. 아파트는 단순한 주거지의 종류를 의미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빚이고, 재산이고, 꿈이니까. 철 따라 이동하는 새처럼, 계약 기간에 맞춰 사람들도 이곳저곳으로 흩어져야만 한다. 삶의 터전이 바뀌는 속도가 빨라졌고, 사람들은 곧 떠날 자리의 관계 맺음을 피로하게 여겼다. ‘부질없음’을 ‘부질 있음’으로 바꾸길 강요할 수 있는 사람도, 제도도, 여건도 없으니 어쩔 수 없을 수밖에. 

다만 미래의 언젠가를 상상하면 어떨까. 이웃은 필요하다. 기술과 문명이 제아무리 발달하더라도, 인간이 홀로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노래 속 목소리보다, 라디오 속 말소리가 더 반갑게 느껴지는 어느 새벽만 떠올려 봐도 알 수 있다. 우리는 사람이 필요하다. 만성피로를 넘어, 문밖에 누가 살고 있는지 아는 것은 자기 생을 공동체의 연대와 공감과 걱정과 위로로 채우는 것과 같다. 우리에게는 필요한 민들레는, 결국 그것을 발견한 사람의 눈에서 시작하니까.

아파트에 관한 단상

아파트에 담긴 기억을
조금씩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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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포토그래퍼 이자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