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서점에서 만나요

도시의 이름을 부를 때 곁하여 떠오르는 것들이 있다. 이를테면 서울의 한강과 거기서 먹는 치맥, 부산의 늘 푸른 광안리나 국제영화제처럼, 먹고 보고 누리는 것은 한 도시를 기억하는 방법이자 생기를 불어넣는 동력이 된다. 전주라는 도시를 부를 때도 떠오르는 게 수두룩한데, 곱고 우아한 한옥과 먹음직스러운 한상차림 외에도 수식어 하나를 덧붙여 보고 싶다. 그건 바로 책. 전주는 전국에서 인구 대비 서점 수 비율이 높은 지역이며 ‘책쾌’, ‘독서대전’, ‘국제그림책도서전’ 등 만든 이와 독자, 책을 중심으로 매해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길을 걷다가도 어깨동무하듯 서점과 도서관이 가까이 늘어선 풍경을 곧잘 마주하게 되니, 나만의 책방 투어 코스를 만드는 여행자들도 많다고. 책을 사랑하는 여행자를 표방하며 중앙동 근처에서 서점 카프카를 시작으로 한가네 서점, 프롬투 그리고 에이커 북스토어까지 줄지어 노크해 보았다. 언제든 마음에 드는 책 한 권 담을 넉넉한 가방과 함께.

서점 카프카

건물을 에워싼 담쟁이덩굴의 초록빛과 먼저 눈인사 나누면 ‘서점 카프카’의 간판이 보인다. 만든 이의 취향이 엿보이는 오래된 골동품 사이로 페인트칠이 벗겨진 계단을 오르니 마침내 이곳에 다다랐다. 주인장 성훈 씨는 책과 재즈 음악, 커피 향이 흐르는 서점 카프카를 2013년부터 운영하고 있다. 글을 읽고 쓰는 게 익숙했고 책 곁에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 두는 게 좋았다던 그는 서점의 처음부터 끝까지 손수 어루만졌다. 폐자재를 사다가 직접 시공했기 때문에 걸음마다 목소리를 내는 나무 바닥도, 책 수납장으로 변신한 오래된 트렁크들과 문짝도, 손님들끼리 시 한 편씩 주고받을 수 있도록 구비해 둔 항아리까지 무엇 하나 영문 모르게 놓인 것이 없다. 한 권의 책을 고르고 읽고 안아가는 행위가 비롯될 서점 카프카에서의 나날을 물었다.

반가워요. 서점 주인장의 하루 일과가 궁금해요. 

올해로 서점 카프카는 13년 차가 되었어요. 이곳은 서점과 카페가 하나로 합쳐진 곳이라 운영 시간뿐 아니라 그 전후로 청소와 음료 준비, 책 주문이나 정리로 바삐 흘러가죠. 휴일에도 서점 관련 모임에 참석하거나 밀린 일을 하면서 정신없이 보내요. 온전히 쉬는 시간이 주어지면 도서관이나 근처 카페에서 책을 읽고요. 

 

2013년 전북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셨다고 알고 있는데 같은 해에 서점도 문을 열었네요. 

등단은 아주 예전 일이죠(웃음). 글만 쓰면서 먹고살기는 어려우니까 북카페를 상상하며 공간을 꾸렸어요. 저는 책이 있는 공간에 머무는 게 마음이 편하더라고요. 오랫동안 책과 가까이 지낸 터라 익숙하면서도 친근한 물성이기도 하고요. 다만 공간 운영과 창작을 한꺼번에 잘 해내기는 쉽지 않아서 자연히 서점에 집중하게 되었죠. 이름의 의미를 많이들 여쭤보시는데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의 글을 좋아해요. 그 이유를 간단히 말하기는 어렵지만… 언제 봐도 새롭게 느껴지는 표현이나 해석해야 할 부분이 많아서 질리지 않거든요, 수수께끼를 푼 것 같은 짜릿함도 느껴지고요. 서점에서 8년 가까이 ‘카프카 읽기 모임’을 진행 중인데 지금까지 이어진 이유가 바로 그의 작품에 있다고 생각해요. 

 

스스로 이곳에 “쓰디쓴 책과 다디단 불량 식품 같은 책”을 구비해 두었다고 말씀하셨죠. 

과거에는 제가 좋다고 생각하는 책들, 이를테면 문학 장르이거나 사회과학 또는 철학 이론을 담은 전문적인 책들을 주로 가져다 두었어요. 누군가는 이 책의 가치를 발견해 줄 거라는 기대와 그 순간의 기쁨을 기다린 건데, 요즘은 생각이 좀 달라졌어요. 손님들이 일행과 오는 경우가 많은데 그중 한 분이라도 아는 책이 있다면 “이거 알아?” 하면서 너무나 즐겁게 책 이야기를 나누시는 거예요. 그걸 듣는 저도 재미있고요. 나만 아는 것보다 사람들에게 친근한 책이 있어야 그걸 매개로 좋은 대화도 이뤄진다는 걸 느꼈죠. 누군가에게는 불량 식품 같은 책이 다른 이에게는 보약처럼 읽힐 수도 있고, 그게 바로 독서의 매력이라는 걸 다시금 깨달으면서 서가를 꾸리고 있어요. 

 

그렇다면 이곳에서 한 권의 책을 추천한다면요? 

이게 참 어려운 질문인데요…. 보통 추천해 달라는 요청을 받으면 상대방이 어떤 장르나 작가를 좋아하는지 먼저 물어보곤 하거든요. 하지만 오늘은 제 취향으로 생각해 볼게요(웃음). 대화를 나누는 지금은 여름이 막바지에 다다랐으니까 ‘윌리엄 트레버William Trevor Cox’의 《여름의 끝》이라는 소설을 추천하고 싶어요. 

 

조금 이따가 서가에서 찾아볼게요. 오는 이들에게 서점 카프카가 어떤 공간이길 바라나요? 

바쁘기도 하지만 내향적인 제 성격상 손님분들과 긴 대화를 살갑게 나누지 못해요. 그렇기 때문에 오시는 분들께 제가 드릴 수 있는 건 많지 않고요. 다만 이곳은 스스로 의미를 만들 수 있는 곳이에요. 함께 온 사람이나 책과의 관계, 머무는 시간 동안의 경험을 통해 의미를 발견해 보시길 바라요. 책 한 권이’톡’ 튀어 오르는, 자신을 부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거예요.

늘어진 담쟁이덩굴이 아름다운 창가

만든 이의 취향이 담긴 곳곳의 오브제

A. 전북 전주시 완산구 풍남문4길 32, 2층
O. 수-일요일 11:00-19:00, 월 화요일 · 휴무

한가네 서점

시간을 거슬러 올라 1978년, 동문사거리 끝자락에 고서점(헌책방) ‘한가네 서점’이 뿌리내린 당시에는 새 책, 헌책 구태여 구분할 필요 없이 서점들이 즐비했다. 이 자리에서 넘고 넘은 햇수만 세어도 어언 47년, 주인 따라 책들도 세월을 머금어 한가네 서점에 들어서면 정겹고 반가운 책 냄새가 폴폴 나부낀다. 수만 권에 다다를 헌책은 한 사람이 간신히 지나갈 통로를 제외하곤 키만큼 쌓여 있는데, 손님이 찾아와 책 이름을 말하면 주인장인 창근 선생은 “아, 아주 멋진 책이지요!” 하며 더미를 뒤적인다. 원하는 책을 제때 찾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그 기다림마저 헌책방의 즐길 거리. 창근 선생이 풀어내는 과거 전주 책방 골목의 풍경을 찬찬히 따라가며, 언젠가 불쑥 도착할 행운 같은 소식을 기다리는 독자의 마음이 되어보기로 한다.

들어오기 전부터 수많은 책을 보고 감탄했어요. 

오느라 고생했네요. 내 이름은 최창근이고 나이도 말해줄까요. 1952년생이에요. 태어난 임실의 마을 이름을 따서 호를 ‘웅제’라고 붙였어요. 

 

한가네 서점을 열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이유 중 하나는 어릴 적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고 크게 감명받았기 때문이에요. 너무나 아름답고 안타까운 사랑 이야기잖아요. 또 다른 이유는 현실적인 상황인데 6남매의 장남이라 생계에 대한 책임감이 있었어요. 그때는 고서점이 적은 자본금으로도 가능하다길래 끝내 서점을 열게 된 거죠. 아실런지 모르겠지만, 당시 전주시청 사거리에는 번쩍거리며 빛나던 ‘미원탑’이라는 게 있었어요. 그 사거리부터 팔달로 북쪽까지 스무 개가 넘는 책방이 있었고요. 서점 이름을 기억나는 대로 기록해 두었는데…. (책장 속 노트에서 메모지를 꺼낸다.) 새 책방은 ‘일도문고’, ‘천일서점’, ‘양지 서점’ 등이고, 헌책방은 ‘신흥’, ‘청파’, ‘벧엘’ 등이었죠. 그 주변으로 학교와 일터도 자리해서 출퇴근 시간만 되면 길이 인파로 꽉 찰 정도였어요. 

 

요즘으로 말하면 만원 전철이 길에 있는 셈이네요. 

그렇지요(웃음). 70년대부터 90년대 초반까지는 교과서 판매가 주축이던 때라 ‘신학기’가 되면 사람들로 서점이 빽빽했어요. 남원, 김제 등 헌책방이 없는 근교에서도 전주로 밀려오니까 끼니 챙길 시간 없는 건 물론이고 온 식구에, 지금으로 말하자면 ‘알바생’ 친구들까지 불러 일하던 게 떠올라요. 밤늦게 서울 청계천 근처로 가서 참고서를 잔뜩 이고 지고 새벽에 돌아오자마자 서점 문을 열기도 했고요. 무척 바빴지만 그 덕분에 동생들 학교도 보낼 수 있으니 아주 즐겁고 기다려지던 시간이었죠. 90년대 중반부터는 대형 서점과 온라인 주문 방식이 생기면서 동네 서점들이 소리도 없이 사라졌으니 아쉬워요. 

 

50년 가까이 운영하며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도 많겠어요. 

한참 나이 드신 할머니가 돈 대신 쌀을 주며 교과서와 바꾸자고 한 적 있어요. 그 마음이 짠해서 수지타산 없이 책을 내어드렸죠. 또 하루는 부모가 바가지를 씌웠다며 역정 내는데 알고 보니 딸이 용돈이 필요했는지 가격을 부풀렸더라고요. 같이 온 여학생이 너무나 겁먹었길래 내가 모른 척해준 적 있어요. 손님이라던 학생이 손자들까지 데리고 와 인사하거나, 덕분에 대학 나와 열심히 일하고 있다며 ‘초코파이’를 사 온 손님도 있었네요. 

 

책 이상으로 마음을 나누는 공간이라 느껴져요. 

가게 앞에 “추억의 책을 벗 삼아”라고 써두었는데요. 여기 있는 책은 2-3천 원짜리예요. 새 책 값에 비하면 몇 권이고 살 수 있죠. 서민들에게 추억의 책을 내어줄 수 있다는 게 나름대로 뿌듯해요. 다만 요즘은 책을 ‘찾는’ 시대인데, 물어볼 때마다 수북한 더미에서 바로 찾아 줄 수 없는 게 미안할 따름이죠. 

 

앞으로도 이 골목을 지켜주세요. 혹시 권하고 싶은 책이 있으신가요? 

젊은 사람들을 위한다면 ‘리처드 바크Richard Bach’의 《갈매기의 꿈》이요. 사람은 보통의 수준을 초월하기 쉽지 않아요. 분명 가능할 텐데 대부분 그 즈음에서 안주하기 때문이죠. 별로 재미는 없어도(웃음) 여러 번 읽기 좋은 책이에요.

늘어진 담쟁이덩굴이 아름다운 창가

A. 전북 전주시 완산구 동문길 102
O. 월-토요일 09:00-18:00, 일요일 휴무

프롬투

전주에서 나고 자란 한 소년은 지도를 좋아했다. 초등학교 시절엔 사회과부도나 지리부도를 껴안고 다니며 수백수천만 개의 길을 보고 또 보았다. 저마다의 여정에 깃들어 있는 이야기를 그 속에서 짚어보는 일이 즐거웠기 때문일까, 소년은 어른이 된 이후에는 서울에 머무르며 지도 만드는 일을 업으로 삼기까지 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 자양 씨가 고향인 전주로 다시 돌아온 것은 2024년 겨울. 지도 중심 서점이라는 이름 아래 ‘프롬투’의 문을 열고 지도와 책이라는 소재를 한데 묶어 소개하기로 마음먹은 때다. 그 직후, 전주 고유의 북페어 ‘책쾌’와 손잡고 ‘문화공판장 작당’과 그 근처 도서관, 서점들을 직접 발로 뛰어다니며 지도로 옮겨냈다고. 그 지도에 담긴 애정과 노력을 활짝 펼쳐본다.

전주에서 프롬투를 열기 전에도 지도와 관련된 도시 워크숍을 진행하셨다고 들었어요. 

맞습니다. 가이드북이나 지도를 제작하는 회사에서 4년 가까이 일했는데, 이제는 나만의 지도를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당시 서울 망원동에 살았는데 그 동네는 골목마다 재미있는 것, 맛있는 가게가 참 많거든요. 한 동네의 오롯한 이야기를 지도로 기록하는 작업을 하다가 문득 나 혼자만이 아니라 여러 사람들의 기억까지 한데 모은다면 더욱 의미 있는 지도가 될 것 같아 워크숍을 시작했죠. 안정적으로 워크숍을 진행할 공간을 찾던 와중에 전주에서 좋은 기회가 닿았고요. 언젠가는 나고 자란 고향으로 갈 거라는 다짐을 하고 있던 터라 기쁘게 돌아와 막연히 꿈꾸던 서점까지 함께 꾸리게 되었습니다. 

 

바로 시선이 닿은 건 한쪽 벽면을 채운 알파벳 행과 숫자 열이에요. 저건 지도인가요? 

웨딩거리부터 전라감영까지, 걸어서 10분이면 전부 갈 수 있고 원도심이라고 부르는 이 동네를 좌표로 표현한 지도예요. 흰색과 회색은 전부 길이고요. 가장 먼저 상권이 형성된 곳이라, 전주에 사는 분들이라면 오래된 골목이나 가게에 관한 사소한 추억이 많을 거예요. 사실 자세히 보기 전까지는 지도라는 걸 알기 어려울 수 있는데, 흥미를 보이는 분들께는 먼저 다가가 설명하고 있어요. 주인장인 제가 다 드러내기보다 스스로 전시를 감상하듯 의도를 가늠하고, 좌표를 통해 공간의 위치를 파악하는 과정이 재미있을 것 같아서요. 프롬투에 온 누구나 이 지도에서 본인이 좋아하는 곳, 추억이 스민 곳을 좌표로 찾아 스티커를 붙이고 그 공간에 대한 기록을 남길 수 있죠. 

 

기록 중 인상 깊은 게 있다면요? 

이 도시를 터전으로 삼은 분들의 오래된 추억을 좋아해요. 한 손님은 자신의 할아버지가 운영하는 이발소 자리를 표시해 주신 적도 있고, 부모님의 리마인드 웨딩을 촬영한 장소를 가족들이 함께 와서 짚어 주신 적도 있어요. 

 

‘지도 중심 서점’이라는 소개 글이 특별한데 프롬투에선 어떤 책들을 만나볼 수 있나요? 

소개 글처럼 두 가지 소재를 하나로 아우를 수 있도록 네 개의 섹션을 구성했어요. 개인의 깊은 삶이 담긴 작품을 모은 ‘사적인 지도’, 도시의 과거와 미래를 엿볼 수 있는 ‘당신과 나의 도시’, 전주 이외에도 다양한 지역의 이야기를 담은 ‘조금 특별한 여행’, 노동과 정치 또는 젠더나 기후 변화 등에 관한 책을 모아둔 ‘경계 너머’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전주에 사는 이들에게 또는 찾아오는 이들에게 프롬투가 어떤 공간이 되길 바라나요? 

지금 이곳은 도서관뿐 아니라 새로운 서점이 끊임없이 문을 열고 있어요. 시 차원에서 서점 운영자나 책 읽는 시민들에게 주는 혜택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요. 서점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실은 모두 기획자이기에, 좀더 개성 있고 효율적인 운영 방식을 거듭 고민하곤 합니다. 앞으로 프롬투는 낯선 도시의 지도를 건네주는 방문자 센터 같은 곳이 되길 바라요. 여행객들이 전주에 대해 작은 힌트라도 얻을 수 있도록요.

책과 메모, 지도가 프롬투만의 볼거리

터전에 스민 추억을 기록한 사적인 지도

A. 전북 전주시 전라감영4길 13
O. 수-일요일 12:00-19:00, 월 화요일 · 휴무

에이커 북스토어

전라감영(조선시대 전라도와 제주도를 총괄하는 지방 통치 관서로 근대화 과정에서 대부분 소실되었으나 현재 일부 복원되어 역사적 가치를 드러내는 공간이 되었다.)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3층에 자리한 ‘에이커 북스토어’의 책방지기는 명규 씨다. 그는 자신을 소개할 때 대표나 사장, 운영자라는 말 대신 책을 공간의 주인으로 여기는 ‘책방지기’라는 표현을 선호한다. 2015년 겨울, 전북대학교 근처에서 첫 문을 열 때부터 독립 출판물만을 다루기로 마음먹었으며 그 고집은 중앙동 근처로 이전한 후에도 변함없이 에이커 북스토어의 중심이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지켜온 기준과 하루에 두 번 꼭 업로드하는 출퇴근 일지, 유별난 기대 대신 뭉근한 성장에 기뻐하는 그의 나날에서 성실하게 흘러간 10여 년이 보인다.

마지막으로 만나게 되었네요. 독립 출판물만 다루는 서점을 꾸린 이유가 있나요? 

2013년, 그러니까 제가 학부생이던 그 시절에는 ‘독립 출판’이라는 말이 흔히 쓰이지 않았는데요. 친구들이 다양한 취미를 전문적으로 즐기는 이야기를 모으고 싶다길래 잡지를 만들어 보자고 제안했어요. 완성된 이후 판매처를 찾아보는데 교보문고나 알라딘 같은 대형 서점 외에도 스토리지북앤필름, 가가린, 더폴락, 헬로 인디북스 등 작고 개성 있는 서점들이 보이더라고요. 그곳에서 다루는 책들을 살펴보니 우리의 작업물과 닮았고요. 그때부터 독립 출판에 대한 개념도, 그걸 소개하는 서점의 존재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고 훗날 전주에서 에이커 북스토어를 꾸리게 된 거예요. 

 

대형 출판사나 플랫폼을 통하지 않고 완성된 책에서 어떤 매력을 느끼나요? 

저는 날것처럼 생생하다고 표현해요. 누군가에게는 너무 강한 개성으로 느껴질지 모르지만 다른 이는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몰입할 수 있어요. 가렵던 부분, 말하고 싶던 부분을 콕 짚어주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또 대형 서점과 출판사에서 터부시 되던 소재들이 이 세계에서는 편안한 이야깃거리로 여겨지죠. 예를 들어 우울증이라는 병은 처음에는 사회악처럼 여겨졌는데, 자신의 내밀한 경험을 진솔하게 써 내린 독립 출판물이 쌓이면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었고, 이제는 그 병을 바라보는 문턱이 낮아졌다고 생각해요. 

 

시간이 지날수록 독립 출판 문화의 흐름에도 변화가 있었을 텐데요. 

그럼요. 초창기에는 지면 레이아웃을 잡는 것부터 인쇄소 컨택, 재고 보관까지 모두 개인의 몫이었다면 이제는 1인 출판사를 등록하기 쉽고 대형 서점에서도 독립 출판 장르를 눈여겨보면서 책 만드는 일이 조금 수월해지긴 했어요. 점차 의미가 확장되고 있지만 저는 본래 의도와 성격을 꼭 간직하고 싶네요. 

 

구성과 형태가 다양한 책들을 에이커 북스토어에서는 어떻게 분류해 소개하는지 궁금해요. 

일러스트, SF 장르나 소설, 사진, 여행 등으로 크게만 구분해 두었어요. 다 같은 책이 서점에 놓인다고 하더라도 책방지기가 어느 자리에 두느냐에 따라 독자들에게 발견될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할 수도 있잖아요. 큰 경계 없이 하나가 마음에 닿았다면 그 옆에 놓인 책도 한번 살펴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독립 출판 북페어 ‘전주책쾌’의 기획자 중 한 분인데 행사에는 어떤 특별한 점이 있나요? 

전주도서관과 협업하며 서점 ‘물결서사’의 책방지기 임주아 씨, ‘공간 리허설’을 운영하는 유설 씨와 함께 기획과 운영을 담당하고 있어요. 저는 참가자들을 모집하고 응대하는 일을 주로 맡는데, 첫 행사가 열렸을 때부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점이 ‘셀러의 기분’이었죠. 관람객은 짧게는 20분, 길면 한두 시간 정도 머물지만 셀러들은 종일 그 자리를 지켜야 하니 그들의 감정이 페어의 분위기로 이어지곤 하거든요. 그래서 ‘셀러 쉼터’를 만들어서 책방지기들이 모여 휴식을 취하고 그들만의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도모했어요. 보람 있는 만큼 힘든데(웃음)…. 내년에도 잘해봐야죠.

늘어진 담쟁이덩굴이 아름다운 창가

A. 전북 전주시 전라감영4길 1, 3층
O. 화-일요일 13:00-19:00, 월요일 휴무

AROUND 온라인 구독

어라운드의 모든 콘텐츠를 무제한으로 읽어보세요.

구독 시작하기

에디터 이명주

포토그래퍼 박은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