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ROUND
CLUB ONLY
SERIES
MEET AROUND
SUBSCRIBE
SHOP
최영지 — 몰로이샵
어느 아름다운 그릇 가게를 안다. 오프라인 매장 없이 일본, 프랑스에서 건너온 기물과 도시락, 문구를 소개하는 이곳의 이름은 ‘몰로이샵’. 그릇 사진 너머로 언뜻 비치는 주인장의 부엌과 취향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그녀가 궁금해졌다. 그렇게 닿은 곳은 영지의 블로그. 남편 수곤, 아홉 살 테오와 함께하는 생활에는 직접 만든 생일 케이크가, 서툴게 쓴 아이의 편지가 비친다. 생의 중요한 순간, 언제나 곁에서 다정한 마음을 건네는 가족이란 관계를 들어본다.
몰로이샵을 오랫동안 지켜봤어요. 아름다운 식기와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된 거예요?
처음 자취할 때 인터넷에서 산 곰돌이 식기를 썼어요. 그러다 점점 욕심이 생겨 여행지마다 마음에 드는 그릇을 골라 사게 되었죠. 건강한 재료가 잔뜩 들어 있는 좋은 음식을 만들어 그릇에 먹었고요. 그렇게 나에게 선물하듯 그릇을 모으다 보니, 좋은 식기가 일상을 건강하게 바꿔준다는 걸 느꼈어요. ‘몰로이샵’이라는 이름은 사뮈엘 베케트의 동명 소설에서 따왔죠. 길을 헤매던 주인공 몰로이가 따뜻한 식사를 할 수 있었다면 덜 우울했을 거란 생각에서요. 모두가 좋은 기물로 행복해지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어요.
따스한 의미였네요. 영지 씨에게 몰로이샵은 판매 그 이상인 것 같아요.
조금 쑥스럽지만, 저는 판매란 고객이 무조건 좋아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분들은 단순히 돈을 지불하는 게 아니라 제게 더한 가치를 선사해 주시거든요. 그 감사함을 보답하려면 제가 더 수고해서, 그분들이 아름다운 물건을 찾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아껴드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뜬금없지만 요즘은 인공지능 시대라고 하는데, 인공지능은 먹고 마시지 못하고 도자기 그릇이나 문구를 사용할 수도 없잖아요. 그런데 저는 좋은 물건들을 사람들한테 찾아줄 수 있어요. 저한테 몰로이샵의 기물은 바로 그 의미예요. 인간이 필요한 이유요.
— 최영지, 〈몰로이와 일상 일기들〉 중에서
오늘은 영지 씨가 가족과 마음을 주고받는 소소한 일상을 이야기해 보고 싶어요. 일과는 어떻게 보내세요?
저는 부산에 살고 있어요. 태어나서 지금까지 몇 년을 제외하고는 벗어난 적 없는 도시지요. 아이가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 그렇겠지만, 하루는 늘 촘촘하게 짜여 있어요.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단조로운 삶이지만 저한테는 모든 시간이 값져요.
배우자 수곤, 아홉 살 테오와 함께하는 일상을 블로그에 나누기도 하죠. 수곤 씨가 직접 찍은 사진과 함께요.
원래 글쓰기를 좋아해요. 일기와 기록을 즐기죠. 인스타그램을 하고 있지만 그곳에선 아무래도 몰로이샵 기물 소개가 주를 이루는데요. 블로그는 개인적인 생각을 편히 남길 수 있는 공간이에요. 긴 글을 써도 부담스럽지 않고요. 나의 생각과 좋았던 순간을 사진과 함께 기록하는 건 아주 행복해요. 읽어주시는 분들의 반응도 소중하고요. 낯을 많이 가리는 제가 글로 타인과 공명하는 순간은 블로그에서 이뤄지고 있네요.
가족은 기쁜 일도 슬픈 일도 가장 먼저 나누는 관계잖아요. 영지 씨 가족은 어떤 날을 함께 기념하나요?
다른 기념일은 챙기지 않지만 생일만큼은 꼭 축하해요. 그날 가족끼리 케이크나 파이를 직접 구워요. 저는 사진도 남길 겸 케이크를 예쁘게 만들고 싶은데, 아이가 크림을 마음대로 바르고 싶다고 해서 다툰 적도 있어요(웃음). 결국 각자 반씩 만들며 타협했죠. 싸움을 방지하려고 이젠 아이와 케이크 구상도를 함께 그리며 시작해요. 축하받을 사람과 축하하는 사람이 함께 베이킹하는 과정을 이해하고 즐기는 건 무척 뜻깊은 일이에요.
결혼기념일 같은 날도 있을 텐데, 축하를 생략하는 이유가 있나요?
저는 기억력이 정말 좋지 않고 특히 날짜를 헷갈려요. 그런 제가 남편한테 기념일을 기억해 달라고 강요할 수는 없으니 “우리 서로 기념일 모르면 그날은 그냥 지나가자.”고 약속했어요(웃음). 저는 연애 시절에도 기념일을 챙긴 적이 없는데, 이젠 남편이 서운할까 봐 미리 연막작전을 펼치기도 해요. 특별한 날보다는 매일의 일상을 더 소중히 여기고 있어요.
— 〈우리들의 꾸준함〉 중에서
남편과 오랫동안 연애하고 결혼했다고 알고 있어요. 처음 받은 선물, 기억하세요?
버나드 윌햄이라는 북유럽 디자이너의 신발이었어요. 당시에는 아주 생소한 브랜드였고 패션 종사자였던 남편이 트렌디한 감각을 뽐내려고 사준 운동화예요. 본인이 사고 싶던 건지, 저한테 정말로 선물하고 싶던 건지 알 수는 없네요(웃음). 그때 신발을 저한테 직접 신겨주고 끈도 묶어줬죠. 지금 생각하면 괴상한 신발이었지만 저도 참 좋아했어요.
남편과 누구보다 서로 잘 아는 사이일 텐데, 오래된 관계 속에서 선물은 어떤 의미로 남아 있나요?
우리 관계에서 선물이 특별한 의미는 없어요. 우리는 서로에 관해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고, 또 많은 것을 소유해 보았어요. 이제는 서로가 갖고 싶어 하는 걸 주로 선물하는 편이죠.
흔히 아이를 ‘선물’이라고 표현하곤 해요. 영지 씨에게 테오도 그런 존재인가요?
그럼요. 저희 부부는 오랫동안 아이가 생기지 않았어요. 테오가 어렵게 얻은 아이라 더 소중하기보다는 아이는 그 자체로 감격스러운 존재예요. 늦잠을 심하게 자던 저는 아이가 태어나고 일상에 루틴이 생겼고, 부모님께 받은 사랑을 물려줄 수 있게 되었죠. 육아는 참 힘들기도 해요. 저의 미숙한 모습을 받아들이는 용서도 반성도 필요하죠. 그 과정에서 저도 함께 자라고 있어요. 사람마다 행복의 모양은 다양하기에 어떤 것이 진정한 행복이라고 특정할 수는 없지만, 저는 아이가 행복한 인생에서의 가장 큰 선물이라고 생각해요. 나를 샅샅이 살펴도 알 수 없었던 삶의 진정한 의미를 아이가 알려줘요.
— 〈2024년 8월 여름방학〉 중에서
두 사람한테 아이가 찾아오면서 축하의 풍경도 달라졌을 것 같아요.
둘일 때는 생일에 선물을 받고, 가고 싶던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었어요. 그 자체로 행복한 일이었죠. 셋이 된 뒤로는 아이가 아침부터 편지를 주고 파티까지 해주니 조금 더 시끌벅적해요.
아이들은 서툴게 쓴 편지나 종이접기 작품 같은 것들을 선물이라며 건네주곤 하죠. 테오한테 받은 선물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있나요?
아이가 한글을 배운 뒤부터 편지 세례가 이어졌어요. 처음 쓴 편지는 특히 잊을 수가 없지요. 사랑한다는 비뚤비뚤한 글자가 아직도 선명해요. 그때부터 아이가 순간순간의 감정을 담아 편지지를 만들고 색종이를 이어 붙여주곤 하는데 모든 것이 소중해요. 전부 보관하고 있어요.
선명하게 떠오르는 축하의 장면도 이야기해 주세요.
아이가 유치원을 졸업하던 날 양가 부모님이 모두 오셔서 축하해 주셨어요. 조금 유난이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는데(웃음), 저희는 무척 행복했어요. 가장 중요한 순간을 축하하는 일은 가족만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가족은 언제나 내 편이니까요.
영지 씨 손목에는 남편과 테오의 이름이 새겨져 있죠. 테오의 첫 생일을 기념하며 받은 타투라고요.
손목 타투는 단지 멋져 보여서였고, 소중한 이름을 몸에 새긴다는 낭만이 좋았어요.
여러 물건을 수집하길 좋아하는 것 같던데, 나를 위한 선물도 하세요?
네. 최근 만년필에 빠지면서 나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아직 때가 이르다고 생각해 비싼 걸 산 적은 없고, 입문용 만년필을 차근차근 사 모으고 있네요. 언젠가 성공한다면 백만 원짜리 만년필도 나에게 선물하고 싶어요! 목표가 생겼달까요? 더 열심히 해야겠지요(웃음).
저는 선물을 고를 때 실용성과 의미 사이에서 고민하곤 해요. 영지 씨는 둘 중 무얼 선택하세요?
무조건 실용성이요. 그래서 선물 받을 사람한테 필요한 걸 말해달라고 해요. 그들이 답하지 못할 때는 의미를 생각하면서 선물을 고르기도 하지만, 어려운 일이에요. 제가 고심해서 고른 선물을 상대방이 기뻐하면 저도 기쁘죠. 몰로이샵의 기물들도 받는 분들에게 실용적인 선물이길 바라요.
소중한 사람이 떠오르는 따뜻한 대화였어요. 다가오는 연말은 어떻게 보내려고 하세요?
겨울은 우리 가족이 한 해를 마무리하고 다음 해를 계획하는 뜻깊은 계절이에요. 저희 아이는 아직 산타 할아버지를 믿어요. 이 녀석이 산타를 믿지 않으면 선물을 받지 못할 거라고 생각해서 여전히 믿는 건지 알 수는 없지만…. 진심으로 산타를 믿는 것 같아요. 아이 친구가 산타는 가공의 인물이라고 했다면서 아이가 울먹이며 저한테 그게 진짜냐고 물어보기도 했어요. 남편과 저는 할아버지도 먹고살아야 하니 아직도 일하고 있다고 말해주었죠. 이제는 사실을 말할 때도 온 것 같지만 아직 일러요. 12월은 그런 아이의 순수함과 성장의 통증, 설렘이 가득해요. 추위 속에서 따뜻함을 바라듯 12월은 다음으로 나아가기 위한 추위라고 생각해요. 언제나 그래왔듯이.
에디터 차의진
사진 배수곤, 최영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