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집

Movie & Book

한쪽에게는 집이 타이틀이자 자산이고, 다른 한쪽에게는 평생의 둥지이자 자아의 연장선이다. 상충하는 집에 대한 가치관들 사이에서 나는 어떤 집에 살고 싶은지, 나에게 집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했다.

나는 스무 살부터 서울의 지하 월세방에 살다가 한 층씩 올라와서 결혼과 동시에 경기도의 아파트에 입성하는 지방 출신 자취생의 성공 신화를 이루었다. 그러나 성공은 잠시, 두 번의 출산으로 인한 가족 구성원 증가(먹일 입이 늘어났다)와 육아로 인한 소득 저하(내가 회사를 그만뒀다), 부동산 가격의 가파른 상승에 발맞추지 못한 남편의 임금 삭감(회사가 망할 지경이라고 했다)으로 인해 가세가 급격히 기울었다. 결국 우리는 아파트를 포기하고 낡은 단독주택과 빌라에 세 들어 사는 신세가 됐다.

수년 후 재개발로 빌라에서도 쫓겨나 멀리 서쪽 바다 옆으로 이사 오면서 우리는 아파트로 돌아가게 됐다. 심지어 이번엔 임대가 아닌 자가였다. 돌아가신 시어머니가 이 사실을 아셨더라면 무덤에서도 만세를 외치셨을 것이나, 우리가 이 아파트를 살 수 있었던 것은 성공해서가 아니다. 전셋집이 없었던 데다가 우리 같은 가난뱅이도 아파트를 살 수 있을 정도로 이곳의 집값이 너무, 너무 쌌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큰둥한 기분으로 다시 아파트에 살게 된 지 6년째다.

아파트 생활이란 뭐, 편하긴 하다. 늦은 밤 골목길 주차 전쟁도 없고, 언덕길과 계단을 숨차게 오를 일 없이 엘리베이터가 집 앞까지 모셔다 준다. 날림으로 지어 방 안에서 얼음이 얼 정도로 웃풍이 세거나 천장이 묘한 각도로 기울어진 싸구려 주택이나 빌라에 비하면, 단열이 잘되어 있고 사면이 평평한 아파트에 사는 것은 신체적인 면에서나 정신적인 면에서나 건강에도 이로울 것 같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나는 이 아파트 생활이 좀처럼 마음에 차지 않는다. 한마디로 재미가 없다. 호강에 겨워 요강에 칠을 하고 싶은 건지 나는 다시 작은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 공장에서 찍어낸 듯 천편일률적 구조의 아파트가 아닌 개성 넘치는 빌라나 주택으로.

그리고 여기 집에 관한 두 개의 전혀 다른 이야기가 있다.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이하 〈김부장 이야기〉)는 제목처럼 평범한 한국 중년 남성의 인생 이야기다. 서울의 자가 아파트와 대기업 입사라는, 우리 모두가 당연한 듯 꿈꾸지만 실제로 얻기도, 지키기도 쉽지 않은 타이틀의 의미를 묻는 이야기. 반면 책 《서울의 어느 집》은 중년의 미혼 남성이 생애 최초로 갖게 된 낡은 집을 무려 7년 동안 수리하는 과정을 그린다. 서울이라는 값비싼 땅에 투자용 부동산이 아닌 자신만의 보금자리를 구현하기 위한 과정은 그야말로 고군분투이며, 21세기 대한민국에서 개성과 취향을 지키며 살아간다는 건 좀처럼 쉽지 않아 보인다.

동시대, 같은 나라의 같은 도시에서 펼쳐지는 이 두 이야기는 집에 대한 다른 가치관을, 더 나아가 삶에 대한 다른 시각을 보여준다. 어느 쪽이 옳고 어느 쪽이 그르냐의 문제가 아니다. 임금 소득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이 치솟는 부동산 가격, 일자리는 줄고 기업들은 채용을 꺼리며 평생직장이라는 말이 유물이 되어버린 이 시대에 서울 소재 자가 아파트와 대기업 부장이 대체 어떤 의미인지, 우리는 이제 무엇을 향해 달려가야 하고 무엇을 통해 자신의 인생을 증명해야 하는지, 또 무엇에 의지해 살아야 하는지, 그리고 일과 집은 과연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에 대한 어렵고 힘든 모색의 길이 시작되었다는 의미다.

〈김부장 이야기〉 속 김부장에게 서울 소재의 자가 아파트와 대기업 부장이라는 타이틀은 인생의 트로피 같은 것이다. 그런데 그 타이틀이 모두 사라진다면 김부장은, 아니 김낙수 씨는 대체 누구인가? 이제 그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상무 이사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갖은 애를 쓰다 결국 직장에서 밀려난 김낙수 씨는 얼마 안 되는 퇴직금마저 분양 사기로 날리고 만다. 그에게 남은 건 건물주를 꿈꾸며 호기롭게 진 거액의 빚뿐이다. 부담감에 짓눌린 그는 공황장애까지 겪게 되고, 가족들은 그를 원망한다.

김낙수 씨는 처제의 회사에서 눈치 보며 일하다가, 킥보드를 타고 밤새 대리운전을 하더니, 결국 형의 카센터에서 세차 일을 하게 된다. 물론 그러기까지 그의 마음속에서는 ‘내가 누군데….’라는 억한 심정이 수도 없이 치밀어 오른다. 내가 누구냐고?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아니, 그는 그냥 김낙수다. 집도 절도 없는 김낙수. 무엇도 그를 수식해 주지 않고 무엇도 그를 지켜주지 않는다. 그건 마치 벌거벗고 거리를 활보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김낙수 씨가 그 벌거숭이의 느낌에 익숙해지기는 쉽지 않다. 실제로 많은 김부장들이 실패하는 지점이 여기다.

그러나 결국 김낙수 씨는 이 현실을 받아들인다.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곁을 지키는 현명하고도 헌신적인 아내 박하진 씨 덕분이다. 결국 김낙수 씨 인생의 대박은 대기업 상무 자리도, 서울 자가 아파트도 아닌, 박하진 씨였다. 그리하여 그는 제2의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 그건 그가 꿈꾸던 인생 – 따박따박 들어오는 월세 받고 어깨에 힘주며 사는 팔자 편한 인생과는 다른 것이지만, 어쨌든 그의 인생은 거기에서 끝나지는 않는다.

박찬용의 책 《서울의 어느 집》을 나는 무척 재미있게 읽었는데, 마지막에 책장을 덮으면서는 절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참 좋은 책이다.’ 그런 책은 드물다. 재미있는 책도, 의미 있는 책도, 잘 쓴 책도 있지만 절로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책은 드물다. 그렇지 않은가?

한마디로, 나는 알고 싶었다. 더 길게 하면 이렇다. 나라는 한정된 자원과 재주를 가진 개인이 서울에서 그럴싸하게 산다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얼마를 들이고 누구를 만나 무엇을 만들어 낼 수 있는지, 집수리 예산 00만 원은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안에서 나는 얼마나 절약하고 어디에 사치를 해서 무엇을 구현할 수 있는지, 그리하여 내가 원하는 걸 얻을 수 있는지, 그 전에 내가 원하는 ‘그럴싸한 삶’이라는 게 무엇인지. 더 더 길게 한 대답이 이 책이다.

— 박찬용, 《서울의 어느 집》 중에서

이 책의 저자인 잡지 에디터 박찬용은 어느 날 연희동의 낡지만 튼튼하고 투자 가치가 전혀 없는 작은 아파트 5층 집을 산다. 그가 빚을 내서 이 집을 산 이유는 사라지지 않을 곳에 살고 싶어서였다. 안전등급이 낮아 재건축을 해야 하면 환영 현수막이 내걸리는 서울에서 과연 누가 자신의 아파트가 영원히 사라지지 않기를 바랄까?

이 독특한 개인은 태어나서 처음 갖게 된 집을 좋아하는 것들과 좋은 것들로 채우고 싶다. 낡은 집을 천편일률적으로 깔끔하고 모던하게 꾸민 집 사진은 인스타그램에서 많이 봤다. 이 집이 저 집 같고 저 집이 그 집 같은 집들 말이다. 그러나 박찬용이 원하는 집은 그런 집이 아니다. 잡지 에디터로 일하며 높은 안목을 갖게 되었으나 불행히도 주머니는 가벼운 그는 본인의 경제 사정에서 손에 넣을 수 있는 좋은 것들을 발품 팔아 찾는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서울은 유행의 도시, 아무리 좋은 것들도 유행이 지나면 악성 재고가 된다. 그가 노리는 것은 바로 그 악성 재고 자재들이다.

그리하여 그의 집은 서울 어느 곳에도 없을 독특한 집이 되었다. 물론 그 안에는 한정된 예산과 전문가 아닌 이가 저지른 어설픈 시행착오의 흔적들이 가득하다. 그러나 그 흔적은 모두가 같은 곳을 바라보며 달려가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내 보금자리 하나만큼은 내가 원하는 곳으로 만들기 위해 분투했으나, 결국 나 자신과 이 사회의 한계를 인정하며 타협한, 어쩐지 귀여운 흔적들이다.

내가 비용을 더 들여 대단한 디자이너를 만났거나 현장의 악마처럼 기술자들을 몰아붙였다면 디테일이 조금 더 좋아졌을 수는 있다. 그러면 오늘날 서울의 시공 품질을 초월한 뭔가가 나왔을 수도 있다. 하지만 오늘날 서울의 평균을 초월했다면 이미 그것은 서울의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을 것 같다. 이 집은 뭐가 됐든 당대 서울의 여러 요소가 그대로 반영되어 있으며, 그건 내가 이 집을 고치며 나름 원했던 바이기도 하다.

– 《서울의 어느 집》 중에서

한 개인의 집수리 과정을 들여다보며 이 사회에 대해  생각한다. 그리고 이 사회에서 계속 살아갈 나에게 집이란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 생각한다. 이 나이에도 부동산 투자는커녕 집에서 재미를 찾고 싶은 나라는 인간을 어쩌나, 하고 생각한다. 동시에 서울의 새 아파트는 꿈도 꾸지 않은 덕분에 어처구니없이 인생이 (비교적) 풍요로워진 내 선택이 어쩌면 저성장 시대와 발맞춰 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한다.

그리하여 이 글을 쓰는 한수희 씨는 과연 아파트에서 탈출할 수 있을 것인가? 아파트에서 탈출해 볕이 잘 들고 느낌이 좋은 작은 빌라나 주택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인가? 한수희 씨는 집수리라는, 명이 10년은 짧아지는 것 같은 난관을 다시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영세 자영업자이며 글을 쓰는 한수희 씨의 앞으로의 인생은 어떻게 될 것인가? 한수희 씨의 경제적 사정은 새로운 집의 선택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이대로 아파트에 정을 붙이는 것이 최선일 것인가? 대한민국 부동산 시장이 어떻게 돌아가든 한수희 씨는 살고 싶은 집에 살며 유유자적할 수 있을 것인가? 역전의 기회는 없을 중년의 나이, 왠지 집의 운명과 자신의 운명이 함께할 것 같아 한수희 씨의 용기는 수그러든다.

〈김부장 이야기〉 속 김낙수 씨는 결국 경기도 변두리의 낡디낡은 빌라에 세 들어 사는 남자, 작은 세차장을 운영하는 남자가 된다. 평생 갚아야 할 빚이 있는 남자가 된다. 영광의 타이틀 따위는 없는 남자가 된다. 그렇게 모든 게 끝난 것 같았는데도, 다 망한 것 같았는데도 이상하게 그는 불행하지 않다. 아니, 오히려 때때로 행복하다. 정말 이상한 일이다.

낡은 계단을 올라 집 앞에 다다르면 낡은 바닥 위로 특징 없어 보이는 문이 있는데 자물쇠 구멍만 유독 새것이다. 거기에 열쇠를 돌려 열면 완전히 새로 꾸몄지만 별로 새로워 보이지 않는 공간이 나타난다. 작고 소박한 꿈이 이루어지는 기분이었다.

– 《서울의 어느 집》 중에서

김낙수 씨가 느끼는 행복의 기분도 바로 이런 거 아닐까? 작고 소박한 꿈이 이루어지는 기분과 비슷한 기분 아닐까?

Drama—〈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2025)

Book—《서울의 어느 집》 박찬용 | 에이치비 프레스

AROUND 온라인 구독

어라운드의 모든 콘텐츠를 무제한으로 읽어보세요.

구독 시작하기

글 한수희

일러스트 점선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