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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에는 성심당이 있고 꿈돌이가 있고 갑천이 있고… 또… 나의 질기도록 오랜 친구들이 있다.
얼마 전, 박해영의 새 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이하 〈모자무싸〉)가 시작됐다. 박해영은 나를 비롯한 많은 이들의 인생 드라마인 〈나의 아저씨〉와 〈나의 해방일지〉의 작가다. 드라마를 보고 난 일주일 동안 내 마음속은 내내 그 속의 사람들과 그들의 이야기로 가득 차 버렸다. 사소하지만 치명적인 대화들은 다른 이야기들을 시시해 보이게 했다. 그래, 이거야. 이게 바로 내가 기다리던 이야기야.
박해영의 드라마에서 나는 무엇을 기대했던가? 시시하기 짝이 없지만 정말로 궁금한 것들에 대해, 그리고 정말로 중요한 것들에 대해 듣고 싶었다. 어쩔 수 없이 섞여 살아야 하는 꼴 보기 싫은 인간들을 어떻게 상종해야 하는가? 성공은 요원하고 실패는 너무 가까운데, 대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 지긋지긋한 인생을 무슨 낙으로 버텨야 하는가? 그렇게 나는 2020년대의 대한민국 땅에서 매일매일을, 한 시간 한 시간을 버티는 마음가짐에 대해 듣고 싶었다.
그런 것들을 은유나 비유나 암시가 아니라, 피부에 와닿는 이야기로 듣고 싶었다. 드라마의 주인공은 희대의 비호감 캐릭터 ‘황동만’이다. 20년째 영화감독의 꿈을 품고 있으나 친구들이 모두 데뷔하는 동안 마흔이 넘도록 혼자 시나리오만 붙잡고 있는, 속칭 루저. 루저인 주제에 말도 많고 뒤에서 남의 영화를 찧고 빻으며 밉상 짓만 골라 하는 게 얼마나 진상인지, 저 인간을 내가 어디서 본 게 틀림없다 싶다가도, 모든 사람이 일심동체로 황동만을 미워하는 걸 보면 왠지 못생기고 눈칫밥 먹는 동네 똥개를 보는 것처럼 마음이 짠해지는 것이다. 결국 동만은 친구들에게서 절교를 당한다. 10대도 아니고 20대도 아닌, 중년의 나이에 행하는 ‘절교’는 어쩐지 우아하고 품위 있다.
절교라는 거, 내 인생에도 없진 않았지. 대놓고 절교를 하거나 당한 적도 있고, 말없이 서로를 못 본 체한 적도 있다. 서서히 멀어진 경우는 그보다 더 많다. 그래, 우정이라는 건 쭉정이들 속에서 알곡을 골라내는 일이다. 문제는 누가 진짜 알곡인지 그 무렵 우리의 눈으로는 알아보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다행히 우리에게는 시간이라는 체가 있다. 시간은 자연스럽게 진짜 우정과 스쳐 지나는 인연을 걸러 준다.
내게도 오랜 친구들이 있다.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무려 50여 년!)의 친구도 있고, 고등학교 친구도, 대학 친구도 있다. 그리고 교통의 요지, 노잼 도시, 빵의 도시 대전에도 나의 오랜 친구 둘이 산다.
P를 만난 건 스무 살의 봄이었다. 그 애는 군인 자녀 기숙사의 룸메이트였는데, 그 애가 ㅍ씨이고 내가 ㅎ씨이기 때문에 한방이 된 거였다. 대전에서 온 그 애는 외향형 중의 외향형, 나는 내향형 중의 내향형이었다. 그 애는 늘 반장을 도맡았다고 했고(저런 애가 반장이 안 되면 누가 반장이 될까 싶었다), 나는 언제나 맨 뒷자리에서 인상을 구기고 있던 아싸였다. 그 애는 낮잠을 좋아했고 나는 낮잠을 싫어했다. 그 애는 솔직하고 건강했고 나는 비밀이 많고 음침했다. 그 애는 현실적이었으며 나는 몽상가였다. P는 나와는 도무지 접점이라고는 없는 인간이었다. 그럼에도 무슨 이유에선지 그 애는 나를 좋아해 주었다.
김애란의 단편 소설을 읽을 때마다 나는 동시대를 함께 보낸 이로서 작가와 하이파이브를 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우정이라는 소재를 떠올리며 오랜만에 《비행운》의 단편 〈호텔 니약 따〉를 다시 읽었다. 주머니 가벼운 대학 친구 둘이 동남아시아로 배낭여행을 떠난다. 둘은 P와 나처럼 다르지만 서로의 다름을 매력으로 받아들일 정도로 좋은 친구 사이기도 하다.
마냥 즐겁던 두 젊은 여성의 여행은 시간이 흐를수록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한다. 둘은 너무 오랜 시간을 붙어 있었던 것이다. 서로의 장점을 기뻐하고 단점에서 슬쩍 눈을 돌리기에는 둘 사이의 거리가 지나치게 가까웠던 것이다. 결국 그들 사이에는 어디 대놓고 말하기도 민망한 미움의 씨앗이 자라난다.
나는 P의 다름을 이해하지 못했다. 대부분의 경우 ‘뭐 저런 애가 다 있지?’ 하고 어처구니없어했다. 최대한 그 애와 떨어지고 싶었으나 떨어질 수 없었으므로, 그 애가 집에 간 사이에 (동의도 구하지 않고) 붙어 있던 침대 두 개를 멀리 떨어뜨려 방 구조를 완전히 바꿔 버렸다. 다음 날 기숙사로 돌아온 그 애는 조금 놀란 듯 “너 그렇게 나랑 떨어지고 싶었어?” 하고 물었지만, 그럼에도 나를 나무라지는 않았다. 반대 상황이었다면 나는 엄청나게 기분 나빠 했을 것이다.
P와 만난 지 30여 년이 다 되어가는 어느 날 나는 문득 깨달았다. 아아, P는 착한 아이로구나. 그랬다. 나 자신도 놀랐고, 나중에 이야기를 들려주니 그 애도 놀랐지만, 그 애는 착한 아이가 맞았다. 놀란 이유는 그 애가 착한 아이의 외형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 애는 계산이 빠르고 처세에도 능하며 타인을 위해 희생 따위는 하지 않는다. 그 애는 철저하게 자기중심적인 아이다. 그럼에도 그 애는 착하다. 그 애가 착한 이유는, 상대의 다름을 미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착한 마음씨는 그런 것이다. 그 애가 착하기 때문에 우리는 이렇게 오랜 시간을 친구로 지내고 있다. 그게 아니라면 불가능했을 일이라는 걸 나는 안다.
대전의 또 다른 친구 M을 만난 때는 대학을 갓 졸업한 스물다섯 살의 봄이었다. 나는 그때 한 잡지사의 어시스턴트로 일하게 되었는데, 한 달에 15일 출근해 온갖 잡일을 하는 아르바이트였다. 첫날, 뻘쭘한 얼굴로 사무실 구석에 앉아 있는 내게 한 고참 어시스턴트가 말을 건넸다. “여기 와서 같이 빵 먹어요.” 그 여자애는 나와 동갑이었고, 우리는 곧 친해졌다. 예쁘고 야무진 M은 잡지사의 인싸였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 애도 착했다. 그 애는 제멋대로에 눈치도 없고 싹싹하지도 못한 나를 신기해하거나 재미있어했다. 우리는 결국 같이 자취까지 하게 됐는데, 나중에 어떤 일로 헤어지게 되었다. 나는 M에 대한 불만을 참다못해 블로그에 썼고(흑역사!), 그걸 읽은 그 애가 나중에 긴 메일을 보냈다.
M이 보낸 메일 속 문장들이 정확히 무엇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애다운, 관대한 내용이었음은 기억하고 있다. 우리는 다시 친구가 되었고, 나중에 또 한 번 어떤 사건에 얽혀 사이가 틀어질 뻔했으나 다시 한번 그 애의 관대함으로 위기를 넘겼다. 그리고 M은 남편의 직장을 따라 대전으로 내려갔다.
드라마 〈모자무싸〉에서 카메라는 모두가 어울려 즐기는 술자리, 홀로 떨어져 앉아 눈치 보며 술만 들이켜는 외톨이 황동만을 비춰준다. 그렇게 이 세상의 단역 중의 단역인 황동만을 주인공으로 만들어준다. 그리고 이 이야기에는 말을 하면 힘이 나고, 말할 사람이 없으면 옥상에 올라가 자기 이름이라도 목청껏 외치는, 그렇게 자기 목소리가 닿는 데까지 자신을 전파하려는 동만의 마음을 이해하는 유일한 사람 ‘변은아’가 있다. 은아도 동만의 마음을 안다. 언제나 외톨이였고, 지금도 외톨이인 은아가 그 마음을 모를 리 없다. 나라는 존재가 희미해지는 느낌. 점점 희미해지고 희미해져서 사라져 버릴 것 같은 느낌. 그럴 때 우리에게 필요한 건 내 존재를 희미해지지 않게 해줄, 내 목소리가 가닿을 누군가다. 내 목소리를 튕겨내는 이들이 아니라 내 목소리에 답해주는 누군가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이들을 친구라 부른다.
40대 초반에 내 친구 M은 남편을 잃었다. 그로부터 7년쯤 지나 나는 동생을 잃었다. 그 애가 남편을 잃었다고 했을 때 나는 울었으나, 동생을 잃고 난 후에야 그 애의 상실감 언저리에라도 닿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시간은 우리의 우정을 더 깊고 걸쭉한, 잘 끓인 곰국 같은 것으로 만들어준다.
1년에 한두 번쯤 연고도 없는 대전에 가는 이유는, 친구들이 거기 있기 때문이다. 거기서 나는 친구들을 만나 밤새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진다. 친구와 헤어져서는 대전시의 공영 자전거인 타슈를 타고 갑천을 달린다. 갑천은 마치 교토의 가모가와처럼 아름답고, 타슈의 승차감은 따릉이보다 좋다. 갑천을 달려 성심당으로 가서 가족들에게 줄 빵을 잔뜩 산다. 그리고 KTX를 타고 얌전히 집으로 돌아온다. 집까지는 두 시간 남짓, 여행의 기분은 충분히 느끼면서 오랜 친구들을 만나는 호사를 누릴 수 있다. 두 손에는 사랑하는 빵이 가득하다. 아아, 대전이라는 도시가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그리고 우정은 굵고 찐한 것보다는, 가늘고 긴 게 좋다. 우리의 우정 포에버.
차를 마시는 시간은 내향적이다. (내향인 환영!) 차를 급하게 마시기는 쉽지 않다. 뜨거운 차의 김을 불어 호록호록 마신다. 목구멍으로 따뜻하고 향긋한 물줄기가 부드럽게 내려간다. 음, 하고 가만히 허공을 바라본다. 음, 하고 여러 가지를 생각한다. 아니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다음 한 모금을 마신다. 같은 일이 반복된다.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인생은 흘러간다.
아마 나의 관장님도 같은 마음으로 차를 마시는 것이리라.
글 한수희
일러스트 점선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