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낯설게 볼래요

전가경·정재완 — 사월의눈

2012년 4월의 어느 날, 서울 하늘에서 갑자기 눈이 내렸다. 밖을 지켜보던 전가경 대표는 대구로 전화를 걸었다. “우리 출판사 이름, ‘사월의눈’ 어때요?” 흔쾌히 고개를 끄덕인 사람은 정재완 교수. 부부는 소규모 출판사를 열고 사진책을 만들었다. 이방인으로 문 두드렸던 이 도시에 정착한 지도 십여 년째. 그들은 책으로 대구를 말하기에 이른다. 두 사람이 이야기하는 대구는 조금 다르다. 흔한 구호로 뭉뚱그려지지도, 대표적인 이미지로 고정되지도 않는다. 흐르며 변하는 도시의 리듬을 좇는 책. 사월의눈은 대구를 관찰한다. 아주 낯설고도 새롭게.

책장에 책이 아무리 많이 꽂혀 있어도 펼쳐서 읽지 않으면
벽지와 같잖아요. 마찬가지로 도시도 의지를 갖고 관찰하지 않으면
우리 곁에 그냥 존재할 뿐이에요.

다르게 만드는 사진책

한옥이 정말 예뻐요. 여기는 출판사 사월의눈의 작업실이자 여러 행사가 열리는 공간이죠.

가경 찾아 주셔서 감사해요. 이곳에 머문 지 올해로 5년 차가 되어가요. 대구에서는 세 번째 작업실이고요. 재완 씨가 작업 공간을 찾다가 우연히 여길 인터넷에서 발견했는데, 일사천리로 리모델링까지 이어졌네요. 리모델링은 대구 기반의 건축사사무소 ‘오피스 아키텍톤’에서 담당했어요.

 

정재완 교수님은 이곳의 어떤 점이 마음에 드셨어요?

재완 가격이 저렴했어요(웃음). 근데 지내기 괜찮을지는 예측할 수가 없어서 건축가 소장님께 전화를 걸어 살펴봐 달라고 했죠. 당시에는 불법으로 증축된 건물인 데다가 어둡고 음침한 느낌이었는데요. 소장님이 이곳을 유심히 보더니 내실 있는 집이고, 고치면 쓸 수 있겠다고 해서 이곳에 들어오기로 결정했어요.

 

지금은 굉장히 만족하면서 지내고 계신 것 같아요.

가경 정말 좋아요. 마당 풀이 빠르게 무성해지는 건 조금 당황스럽지만요. 그때그때 손보지 않으면 금방 정글이 되는 곳이에요. 식물의 생명력이 대단하다는 걸 절감하고 있어요.

재완 전에는 동네 통장 할아버님이 가끔 지나가면서 빨리 뽑으라고 눈치도 주셨는데요(웃음). 지금은 이사를 가셨어요. 부지런한 어른이 가까이에 안 계시니 자주 신경 쓰지 않게 되네요.

 

이 모습도 자연스러운 걸요. 작업실에서 하루는 어떻게 보내세요?

가경 출강하는 대학교가 방학일 때는 오전 느지막이 나와 작업하다가 집에 돌아가요. 학기가 시작되면 일주일 중 하루는 서울에, 또 하루는 영남대에 출강을 하고요. 나머지 날엔 작업실에 오죠.

재완 저도 강의가 많은 학기에는 학교 연구실에 주로 머물러요. 이번 학기는 강의가 적은 편이라 여기에 자주 올 것 같아요.

 

대구엔 정 교수님이 영남대학교로 부임하던 2009년에 내려오셨잖아요. 서울에서 오래 지내다 낯선 도시로 삶의 터전을 옮기기가 쉽지는 않았을 듯해요.

재완 ‘직장이 대구니까 가야지.’ 하고 별다른 생각은 없었어요. 오히려 주변에서 더 크게 반응했어요. 도전처럼 여겼달까요. 가경 씨는 달랐을지도 모르겠어요.

가경 특별한 저항감은 없었어요. 부모님 직장 때문에 어릴 때 유럽 이곳저곳을 자주 옮겨 다니며 살았거든요. 재완 씨처럼 사람들 반응이 더 놀라웠죠.

재완 그런 우려에 이주 초기에는 걱정이 많았어요. 서울에서 떨어져 있으면 디자인 판에서 불리한 걸까 하고요. 결과적으로 염려할 거리가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됐지만요.

 

어떻게 걱정을 내려놓게 되었나요?

재완 오늘 인터뷰처럼 서울에서 지역에 말을 걸어오거나 우리의 목소리를 들어주는 기회를 만나면서, 대구에서 의미 있는 활동을 이어가도 좋겠다는 용기를 얻었거든요. 이렇게 찾아와 주시는 것도 지역에서 활동하는 디자이너에게는 큰 힘이 돼요.

대구의 첫인상은 어땠나요? 기억에 진하게 남은 장면이 궁금했어요.

재완 두 가지가 생각이 났는데요. 하나는 대구 중앙로역 사거리예요. 깨끗하고 아기자기해서 일본의 한 도시에 온 듯한 기분이었어요. 알고 보니 대구가 일제강점기에 본격적으로 도시화가 되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인지 외부 비상계단이나 일방통행 도로가 많죠. 또 하나는 삼덕동의 골목길이에요. 우연히 이곳을 걸었는데, 대도시 한복판에 고즈넉하고 예스러운 정취가 느껴지는 곳이 있다는 게 인상 깊었어요. 지금은 운명처럼 삼덕동에서 지내고 있죠.

 

전 대표님은요?

가경 아파트 벽에 손으로 직접 쓴 글자가 많았어요. 예스럽고 멋진 레터링이 인상적이었죠. 또 하나는 도서관에서 한 할아버지가 깔끔한 셔츠에 중절모를 쓰고 신문을 읽고 계시던 장면이에요. 여유로움이 느껴졌어요. 백화점에서 본 사람들도 유행에 굉장히 민감한 차림새였죠.

 

저도 그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대구는 유행에 빠르게 반응하는 도시고, 백화점 매출도 전국에서 높은 편이라고요.

재완 맞아요. 시류에 반응하는 속도가 확실히 예민해요. 하지만 뒤처지지 않으려는 게 장점만은 아닌 것 같아요. 대구 수성구의 입시 학원은 서울 대치동만큼이나 밀집되어 있죠. 그만큼 심리적인 압박감이나 우울감을 느끼는 아이들도 많다고 들었어요.

가경 큰 자부심과 욕망의 도시인 것 같아요, 한편으로는.

 

두 분은 사투리를 쓰시지 않죠. 처음 대구에 왔을 때 자신이 이방인처럼 느껴지지는 않으셨어요?

가경 대구에서 지속적으로 교류하는 사람들이 생긴 건 불과 몇 년 전이에요. 그래서 낯선 언어에 민감하지는 못했어요. 가끔 식당 메뉴판에서 모르는 음식을 발견하는 정도였죠. 그거 아세요? 경상도에서는 매운 고추를 ‘땡초’라고 해요.

재완 ‘재래기’라는 말도 있어요. 고기 먹을 때 나오는 파채를 그렇게 불러요.

 

재래기! 처음 들어봐요.

가경 가끔 서울에 가야 내가 대구 산다는 걸 실감하곤 했어요. 서울 사람들 말소리가 나긋해서 꼭 음악 듣는 것 같고, 제가 오랜 시간 살았던 곳이어서인지 포근하게 느껴지기도 해요. 정작 서울 삶은 포근한 정서와는 멀지만요.

재완 저는 전라북도 전주가 고향인데요. 사투리를 쓰지 않으니까 동네 슈퍼에서 저를 쉽게 기억하세요. 여기서는 오히려 튀나 봐요. 그리고 똑같은 의미라도 저는 “밥 먹었나?”가 아니라 “밥 먹었니?”라고 물어보니까 학생들이 저를 굉장히 친절한 교수로 봐줘요(웃음).

다정함이 느껴지는 어미잖아요(웃음). 이제 사월의눈 이야기를 해볼게요. 낯선 도시에 정착하고 전 대표님이 처음 한 일은 출판사를 꾸리는 거였죠.

가경 출판사는 세 가지 배경이 맞물리면서 시작됐어요. 첫째는 시각디자인학과 석사 논문을 쓰면서 사진 편집의 가능성을 발견한 거예요. 당시 1960년대 독일 잡지를 연구하면서 디자이너가 지면에서 사진을 이렇게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걸 깨닫고 사진 편집에 푹 빠졌죠. 둘째는 사진 중심의 책 편집을 직접 경험해 본 거예요. 석사 과정을 마치고 디자인 스튜디오 ‘AGI 소사이어티’에 출판 편집자로 입사해 이미지 기반의 책을 만들었어요. 연구해 본 것을 직접 실무로 경험할 수 있었죠. 그때 사진책 제작에 자신감을 얻었어요. 마지막으로는 사진을 좋아했다는 점이에요. 이 세 가지가 맞물리면서 사진책 출판을 꿈꾸게 됐어요.

 

전 대표님은 주로 기획과 편집을, 정 교수님은 디자인을 담당하고 계시죠.

가경 네. 재완 씨는 사진책 출판을 꿈꾸던 때쯤 만났는데요. 제 석사 논문을 정말 멋지게 디자인해 줬어요. 작업할 때 제 의견도 정말 잘 들어줬고요(웃음). 그래서 이 사람이랑 책을 만들면 재밌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죠. 그러다 재완 씨가 영남대로 부임하면서 안정적인 경제 기반이 마련되었고 본격적으로 독립 출판을 시작했어요.

 

아까 석사 과정 중 사진 편집의 가능성을 발견했다고 하셨는데요. 북디자이너가 사진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가경 단순히 사진을 지면에 배치하는 것을 넘어서, 사진을 과감하게 잘라내거나 텍스트와 창의적으로 결합해서 디자이너가 새로운 의미와 서사를 만들어내는 걸 말해요. 저는 연구를 하면서 사진이 지면에 등장하려면 디자인을 통한 또 한 번의 각색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은 거예요. 독일 1세대 아트 디렉터 빌리 플렉하우스Willy Fleckhaus가 디자인한 잡지를 보면서 사진과 텍스트를 배열하는 그만의 감각이 정말 흥미로웠어요. 저에게도 이미지로 서사를 구축하는 역량이 어느 정도 있다는 걸 디자인 회사에 근무하며 발견했고요. 작업이 너무 재밌었어요.

 

그래서인지 작품에서 디자이너의 주체적인 역할이 두드러진다고 느꼈어요. 텍스트가 하나의 예술적인 요소로 굉장히 크게, 또는 작게 변형되기도 하는데 사진과 적절히 조화도 이루더라고요.

가경 과거 사진책은 이미지만 고요하게 배치된 경우가 많았죠. 우리는 사진, 텍스트, 디자인 이 세 가지 관계를 고려해 사진책을 만든다는 점을 앞세워 출판사 나름의 성격을 만들어갔어요.

재완 저는 과거 민음사에서 디자이너로 일할 때 텍스트가 중심인 책을 주로 만들었는데요. 사진책은 이미지를 활용해 책 전체의 서사를 이끌어 내야 해요. 종이와 인쇄 방식의 선택, 레이아웃 선정은 물론이고 내용적으로도 고민할 부분이 훨씬 많았죠. 사월의눈을 시작하고 표현 형식 자체가 디자인에서 중요하게 다뤄질 수 있다는 걸 새롭게 깨달았어요.

 

그럼 사월의눈은 사진책의 디자인적인 실험을 시도하는 출판사라고 볼 수 있을까요?

가경 그와 동시에 젊은 사진가들의 등용문이 되고 싶어요. 과거에는 중견 작가가 아니면 책을 만들기 쉽지 않았죠. 우리는 사진책으로 역량 있는 작가들이 데뷔할 수 있는 경로를 마련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신진 작가나 아마추어 작가들과 협업하기도 해요.

 

여전히 의미 있는 작업을 이어가시는군요.

가경 젊은 작가들이 유연하게 작업하는 편이에요. 책을 편집하면서 과감하게 사진을 잘라도 되겠냐고 물으면 작가들이 마음껏 하라는 경우가 많았죠.

 

심미적인 감상을 일으키는 책보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또렷한 책도 있었어요. 세월호 참사를 다룬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한 사람을 기억하네》, 대구 성매매 집결지에 관한 《자갈마당》이 그 예죠.

재완 에디터님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또렷한 책이라고 표현했지만, 사실 특정한 메시지가 없다면 한 권의 책이 되기 어렵지 않을까요? 예전에도 에디터님과 비슷한 이야기를 한 분이 있었어요. (옆을 바라본다.)

가경 사월의눈이 사회적 메시지를 발산하는 곳이냐는 질문이었는데요. 저희는 아니라고 말했어요. 사회적인 메시지도 우리의 한 축이지만 꼭 그것만 추구하는 건 아니에요. 콜라주처럼 사진의 매체성을 탐구하거나 회화와 사진의 관계도 탐구하는 책도 만들어보고 싶어요. 다만 사진책으로 우리가 이야기할 수 있는 지금의 의제는 뭔지 늘 고민해요.

재완 독자분들에게는 사회적인 메시지가 담긴 책이 다른 것보다 강렬하게 다가오니까 좀더 기억해 주시는 것 같기도 하고요.

 

저도 말씀하신 이유로 인상 깊게 여긴 듯해요.

가경 사진이라는 매체가 가진 속성 때문일지도 몰라요. 과거부터 사진은 사회적 이슈를 보도하는 역할도 컸잖아요. 우리가 만나는 사진가들도 사회적인 이슈를 갖고 작품에 접근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예를 들어 《북한산》을 함께한 권도연 작가는 전국을 다니며 야생동물을 찍으세요. 동물권에 관심이 많고요. (《북한산》은 도시 개발로 터전에서 쫓겨나 북한산에서 사는 들개 사진을 묶은 책이다.)

대구의 리듬을 읽는 법

대구를 말하는 사진책도 다수 출간했어요. 삶의 공간인 이곳은 어떻게 책의 소재가 된 걸까요?

가경 대구를 주제로 책을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한 건 아니었어요. 저는 토박이보다는 이곳을 잘 모르니 조심스러웠거든요. 이곳에 산다는 이유로 꼭 대구를 다뤄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았고요. 오히려 협소한 소재주의로 전락하는 게 아닌가 싶었죠. 사월의눈에서는 앞서 말한 《자갈마당》, 대구 배경 영화 <희수>(2021)를 도서화한 《스틸컷, 희수》를 냈지만, 모두 외부 제안으로 만들었어요. 대구 아파트 글자를 수집한 《아파트 글자》는 대구를 전면에 내세우긴 했지만, 지역은 중심 소재가 아닌 영감의 대상일 뿐이었죠.

《아파트 글자》

《아파트 글자》는 레터링에 대한 디자이너의 탐구를 다룬 책인 거군요.

가경 그렇죠. 그러다 3-4년 전부터 지역 문제에 조금 민감해지기 시작했어요. ‘고담 대구’처럼 이곳을 향한 편견이 담긴 말, 수도권과 비수도권에 관한 이분법적인 이야기가 피로하게 다가오더라고요. 저는 여기서 젊고 열정적인 창작자들을 만나는데, 고담 대구라는 호칭으로 모두가 일반화되는 게 폭력적이라고 느꼈어요. 그래서 지역을 다루는 출판이 의미가 있겠다 싶었죠. 그렇게 시작한 프로젝트가 ‘리듬총서’예요.

“리듬총서는 사월의눈이 시작하는 첫 총서의 이름이다. 리듬총서는 세계 혹은 한국에 크거나 작은 단위로 존재하는 지역의 리듬을 포착한다. 리듬총서는 행정구역 단위를 너머 지역을 상상하고, 품고, 다시 그리고자 한다. 리듬총서는 그 어떤 지역도 하나의 이미지로 고정될 수 없다는 믿음에서 시작한다.”

— 리듬총서 소개글 중에서

제목의 리듬은 무슨 뜻인지 궁금했어요.

가경 프랑스 사회학자 앙리 르페브르Henri Lefebvre가 쓴 《리듬 분석》에는 ‘다리듬성’이라는 말이 나와요. 거기서 큰 영감을 얻었어요. 그가 말한 리듬의 의미를 쉽게 이야기해 볼게요. 삼덕동은 아침, 저녁, 새벽녘 풍경이 다 달라요. 시간대마다 고유한 리듬이 다른 거죠. 지역도 마찬가지예요. 같은 대구라도 동네마다, 시대마다 리듬이 다를 수 있죠. 예를 들어 대구는 보수의 심장이라고 불리지만 한때는 야도野都라고 불릴 만큼 진보적이고 저항적인 도시였대요.

 

시간이 지나면서 대구의 리듬이 달라진 거군요.

가경 지역의 리듬은 관찰하는 사람마다 다를 수도 있어요. 리듬총서의 첫 책은 엄도현 작가님과 함께했지만, 만약 다른 분이 대구를 사진에 담는다면 그분은 또 다른 리듬을 포착할 거예요. 어떤 분은 한 동네만을 다루거나, 어떤 분은 산에 집중할 수 있겠죠. 책이 쌓이다 보면 대구를 바라보는 관점이 이렇게나 다양하다는 걸 보여줄 수 있을 거예요.

《대구는 거대한 못이었다》(사진 장혜진)

첫 책 《대구는 거대한 못이었다》는 지금의 대구가 거대한 연못이었던 자리에 흙이 밀려오면서 탄생한 분지라는 사실에 착안해, 엄도현 작가가 오늘날 대구에 남겨진 호수의 흔적을 찾아 사진으로 기록한 책이었죠.

가경 엄도현 작가님이 호수라는 키워드를 처음 가져왔을 때 충격이면서도 재밌었어요. 기획자의 직관적인 느낌으로는 ‘말이 되겠구나.’ 싶었달까요. 대구가 거대한 연못이었다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근거가 필요했어요. 이때 엄도현 작가의 리서치 능력이 빛을 발했죠. 지금은 매립되어서 호수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지역의 시대별 항공 사진도 찾아오셨다니까요.

저도 정말 흥미롭게 읽었어요.

가경 이런 책이 어떻게 느껴지세요? 저도 독자분에게는 처음으로 여쭤보는 것 같네요.

 

편견을 갖고 지역을 바라보는 시선에 대한 문제의식을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어요. 이번 호를 준비하면서 대구를 조사해 보니까 말씀하신 ‘고담 대구’, ‘명품 소비’ 같은 키워드가 눈에 띄더라고요. 그런데 대구는 제가 그동안 몰랐던 다양한 이야기를 품고 있었어요. 아트, 영화, 젊은 창작가들…. 리듬총서는 편견에서 벗어나 지역을 바라보자고 이야기하니까 굉장히 인상 깊었죠. 디자인도 충격적이었고요. 정 교수님이 텍스트로 못 모양을 표현하신 것도요. 사진과 텍스트의 배치가 신선했어요.

가경 다행이네요. 재밌게 읽으셨다니 저도 신기해요.

“골목길을 다니면서 알게 된 건, 도시는 추상적인 구호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보수의 심장’, ‘대프리카’, ‘고담 대구’보다는 도시의 바닥에 새겨진 돌멩이의 흔적을 보면서, 벽에 걸린 크고 작은 글자들을 보면서 온몸의 감각으로 도시를 직접 목격했다.”

— 정재완, 《낯선 골목길을 걷는 디자이너》 중에서

대구를 둘러싼 편견에 관해 좀더 이야기해 볼까요? 정 교수님도 도시를 특정한 단어로 설명할 수 없다고도 하셨어요.

재완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을 ‘웃긴 사람’이라고 정의한다면 어떨까요? 그 사람은 웃길 때도 있지만, 고독하거나 외롭기도 하고 냉소적일 때도 있을 거예요. 마찬가지로 추상적인 구호로 이곳을 이야기하는 건 어딘가 맞지 않아요.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재완 저는 지방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고 있잖아요. 소위 ‘지잡대’라는 표현이 있어요. 지방 대학을 일반화하는 이 말은 당사자에게 엄청난 패배감을 안겨줄 수 있어요. 사람들이 쉽게 하는 말이 누군가를 아프게 하는 거죠. 대구에 머물면서 지역을 향한 편견에까지 생각이 닿게 되더라고요. 이곳은 복잡하고 다양한 성격을 가진 삶의 현장인데, 누군가에 의해서 납작하게 표현되는 건 즐겁지 않죠. 저는 대구를 대변하는 거예요. 여기는 그런 곳이 아니라고.

가경 우리나라의 시선이 서울에 과도하게 집중되어 있는 것도 문제라고 생각해요. 저는 디자인 저술가로도 활동하면서 더 많이 실감하고 있어요. 디자인 매체에서도 서울의 그래픽 디자인만을 조명하거든요. 지역이 여행지로라도 소비되지 않으면, 여기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점점 줄어들 거예요.

 

리듬총서로 돌아가 볼게요. 대구 출신이 아닌 엄도현 작가와 작업한 이유가 궁금했어요.

가경 여기서 10년 이상 살았으니 이제는 대구를 이야기할 수 있는 당사자성은 확보했다고 생각해서 총서를 시작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함께할 작가는 내가 보지 못하는 대구를 제3자의 시선으로 포착할 수 있는 사람이길 바랐죠. 여행자가 보는 도시의 첫인상이 거기에 사는 사람들은 모르는 진실인 경우도 많잖아요. 또 그분의 이채로운 정체성이 리듬총서와 잘 어울리겠다 싶었어요. 작가님은 울산 출신인데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고, 프랑스에서 사진을 전공했어요. 작가님의 감각과 시선을 믿기도 했고요.

 

제작 방식도 인상적이에요. 작가와 처음부터 함께 책을 기획하고 원고를 만들어가죠.

가경 전통적인 출판은 원고가 마련된 상태에서 책을 만들어요. 그런데 리듬총서는 만들고 싶은 책의 꼴을 떠올리고 협업할 작가를 찾아요. 어떤 사진과 원고가 나올지 알 수 없는 만큼 협업이 중요하죠. 리듬총서 두 번째 책, 《어서 오십시오》도 작가와 기획 단계에서부터 함께하는 저작물이에요.

 

어떤 기획인지 소개를 들어볼 수 있을까요?

재완 《아파트 글자》처럼 거리 간판을 다루는데요. 한국인이 해독하지 못하는 다국어 간판 경관을 찍는 프로젝트예요. 외국인 노동자나 유학생이 한국에 정착하면서 지역마다 이주민 커뮤니티가 만들어지고 있죠. 그럼 한국인이 읽을 수 없는 외국어들이 거리에 등장해요. 예를 들어 경상남도 김해의 동상시장 부근은 동남아, 중앙아시아 문자가 가득해서 한국 사람이 장을 보기도 어려울 정도래요. 책에는 하나의 행정 지역을 넘어서 우리나라 곳곳을 담아보려고 해요. 최요한 작가와 함께 준비하고 있어요. 외국인 체류자 증가와 관련한 통계 자료도 넣어보려고 해요.

《낯선 골목길을 걷는 디자이너》 이야기를 좀더 해볼게요. 대구, 영남 지역 매체에 기고한 글을 모은 에세이집이죠.

재완 네. ‘영남일보’와 문화예술 잡지 《대구문화》에 연재한 글이었어요. 원고를 묶어 책을 만들고 싶던 차에 출판사 ‘안그라픽스’에서 출간 제의를 받았죠. 우연히 대구에서 건축가, 인류학 연구자처럼 도시에 관심이 많은 분들과 교류하게 되면서 저도 도시가 흥미로워지더라고요. 또 전부터 거리 글자에 관심을 두고 있어서 답사하듯 골목을 돌아다니기도 했고요.

“책이라는 사물을 통해서 도시를 투영해본다. 도시의 판형, 도시의 판면, 도시의 레이아웃 그리고 도시의 마이크로 타이포그래피에 대해 생각해본다. 도시를 구성하는 세부로서 사람, 자동차, 집 등이 있다. 글자가 한 사람의 시민이라면, 글자 간격은 사람 사이의 관계인 셈이다. 단어는 각 개인이 이루는 크고 작은 공동체다.”

— 《낯선 골목길을 걷는 디자이너》 중에서

도시를 책에 비유한 글이 기억에 남아요.

재완 2019년에 대구 북성로의 거리 글자를 수집하는 ‘북성로 글자 풍경’ 전시를 열었어요. 우연히 하게 된 인터뷰에서 이런 질문을 받았는데요. “나에게 북성로는 ○○이다.” 저는 북성로는 책이라고 답했어요. 대답하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재밌더라고요. 책과 거리의 속성이 비슷하다고 느꼈고 그 글까지 쓰게 됐네요.

 

책의 요소가 모여 이야기를 만드는 것처럼, 사람과 길이 모여 이야기를 만든다고 볼 수도 있겠어요.

재완 도시를 책이라고 말한 이유는 또 있어요. 책장에 책이 아무리 많이 꽂혀 있어도 펼쳐서 읽지 않으면 벽지와 같잖아요. 마찬가지로 도시도 의지를 갖고 관찰하지 않으면 우리 곁에 그냥 존재할 뿐이에요. 학생들과 대구 답사를 다녀오면 꼭 이런 이야기를 해요. 너무 익숙한 공간이라 자기 주변을 유심히 본 적이 없다고요. 그런데 들여다보면 전봇대도 색달라 보인다고 하죠.

 

“도시 이용자는 도시의 편집자다. 능동적인 도시 이용자가 도시를 읽고 쓰는 경험이 쌓일 때 어느덧 도시는 한 권의 멋진 책으로 완성될 것이다.”라고도 쓰셨죠.

재완 편집자는 글자와 이미지를 배열해 좋은 판면을 만들어요. 폰트 하나, 자간 하나도 신경 써야 하죠. 도시도 마찬가지로 편집자의 마음으로 바라본다면 더 나은 곳으로 만들어갈 수 있을 거예요.

 

이런 생각에는 대구에서 몇 년 사이 개발이 빠르게 진행된 탓도 있을 것 같아요.

가경 절망적일 정도예요. 대구 한복판에 초고층 오피스텔이나 아파트가 계속 지어지고 있어요. 우리가 삼덕동에 정착한 것도 고즈넉함이 좋아서였는데, 대구 경관이 많이 달라졌어요.

재완 ‘압축 도시’라고, 도시 기능을 중앙에 집중하려는 추세도 늘고 있대요. 인구가 줄어드니 인프라를 도심에 몰아넣는 거죠. 압축 도시를 찬성하거나 비판하는 의견이 모두 있지만, 저는 도심으로 이주할 수 없는 사람에게는 비참한 현실이라고 봐요.

 

동의해요. 그럼 두 분은 도시의 편집자로서 대구를 어떻게 바라보세요?

재완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을 알리는 건 재미없는 일이에요. 사람들이 아직 모르거나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지만 저한테 흥미로운 것들을 끄집어내고 싶어요. 대구의 창작자일 수도 있고, 대구의 역사일 수도 있겠죠.

가경 대구는 잠재력이 풍부한 도시예요. 문화적 자본도 풍성하고 역사도 깊죠. 하지만 그 자본을 편집해 매력적인 콘텐츠로 만들어내는 역량이 좀더 필요해요. 잠재력을 제대로 요리할 줄 아는 기획력이 갖춰진다면 더 매력적인 도시가 될 거예요.

 

저는 며칠 더 머무르며 대구를 알아가려 해요. 도시를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얼까요?

가경 경청하는 자세가 중요해요. 그곳에 사는 사람을 만나서 그들의 삶을 묻고 들어야 해요. 지역을 알게 된다는 건 단순히 보고 오는 것에 그치지 않죠.

재완 차를 타고 유명한 장소를 찾아가서 풍경을 눈에만 담고 오는 것으로는 도시의 속살을 알 수 없어요. 걷다 보면 사람들 말투도 들리고, 냄새와 소리도 느낄 수 있죠. 일단 와서 걸어보세요.

사월의눈이 부르는 이름들

대구를 찾기 전, 사월의눈에 대구에서 주목할 만한 창작자들을 물었다. 전가경, 정재완이 부르고 싶은 이름들. 그들을 호명하는 자리를 여기 마련해 둔다.

도시공원 기록 활동

“대구에서 이층책방을 운영하던 최윤경 대표가 2022년 시작했고, 이후 사진가 장혜진 작가가 공동기획자로 합류했어요. 매년 함께하는 팀원들이 달라지는데, 올해는 장혜진 작가와 시각예술 분과에서 활동하는 김민지, 백승현, 안수현, 이신혜 다섯 명이 함께합니다.”

대구의 디자이너들

“대구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디자이너들이 즐거웠으면 해요. 저는 그들이 대구에서 디자이너로서 재밌게 지낼 수 있도록 여러 일을 도모하고 싶어요. 독립 영화, 독립 출판, 독립 음악, 독립 기획자들이 교류하는 연결 고리가 되길 바라요.”

대구의 영화인들

“대구단편영화제 집행위원장을 맡으면서 대구의 영화인을 가까이서 봤어요. 그들의 에너지는 엄청나요. 그들이 활발하게 영화를 만들 수 있도록 계속 응원하고 싶어요.”

금호강 디디다

“금호강 팔현습지는 희귀 동물들의 서식지이지만 개발을 앞두고 있어요. 금호강 보존을 위해 여성 창작자 다섯 명이 다양한 예술 활동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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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차의진

포토그래퍼 강현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