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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First South-East Asia
스물여덟 가을. 3년 동안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그토록 열망하던 동남아시아로 떠났다. 깊은 가을의 문턱, 직장 생활을 하는 친구들 중 장기 여행을 함께할 사람이 있을 리 없었다. 그렇게 생애 첫 배낭여행을 떠났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아서.
태국에서의 일주일은 쓸쓸했다. 한국어가 그리워질 무렵, 방콕Bangkok에서 치앙마이Chiang Mai로 가는 야간 열차를 탔다. 외로움은 짙어갔다. 유희열의 삽화집 《익숙한 그 집 앞》의 글귀가 계속해서 맴돌았다. “누군가 옆에 있어 주었으면 하고 바랐다. 그 누군가가 아무나여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굳이 말을 걸어주지 않아도 좋고, 그냥 나를 이해한다는 표정을 지을 줄 아는 사람, 어쩌면 횡설수설 두서없을 내 얘기를 들어줄 수 있을 정도면 되는 그런 사람이 옆에 있었으면 했다.” 그동안 나는 혼자만의 시간을 즐길 줄 몰랐던 건 아닐까.
국경을 넘어 라오스로 넘어가자 동남아시아에 있는 나라라면 다 비슷할 것이란 생각이 지워졌다. 눈으로 보이는 것들은 비슷할지도 모르겠지만,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것들은 달랐다. 라오스에서 만난 사람들은 어른이나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눈이 맑고 순수했다. 라오스는 음식을 공양하는 이들은 공덕을 쌓고, 공양받는 승려들은 아집을 없애고 무소유를 수양하는 ‘탁발’이라는 불교의식을 여전히 지키고 있는 나라다. 탁발의식이 가장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는 루앙프라방Luang Prabang에서 다섯 명의 아이들을 만났다. 새벽 다섯 시 반, 무리 지어 놀고 있는 아이들에게 먼저 다가가 말을 걸었다. “너 참 예쁘다.”, “아침부터 너희 뭐 하고 있니?”, “같이 놀자!” 등 알아듣지도 못할 한국어로 웃으며 얘기를 하니 목에 걸고 있는 카메라를 가리키며 찍어달라고 했다. 카메라 액정에 나오는 자신이 재미있고 신기했나 보다. 그렇게 몇 컷 찍으며 놀다 어느새 아이들 술래잡기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 탁발의식이 시작되었고 아이들은 단 한마디 말도 없이 약속이나 한 것처럼 자리를 잡고 탁발에 참여했다. 아이들은 무릎을 꿇고 고사리 같은 손으로 승려들이 공양받은 음식을 얻고 있었다. 그렇게 받은 음식은 온 가족의 양식이 된다고 했다. 전통 의상을 예쁘게 차려입고 공양을 하는 아이도 있었고, 이렇게 온 가족의 하루 식량을 얻기 위해 새벽같이 나와 눈 한 번 마주치지 못하고 땅바닥에 머리를 묻고 절을 하는 아이도 있다. 생각이 많아지던 라오스에서의 어느 아침. 그래도 아이들의 환한 미소만큼은 라오스의 희망이었다.
여행에서 만난 사람마다 어느 지역에서든 하나같이 “여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좋은 곳이에요!”라며 동의를 구하곤 했다. 가만히 있는 걸 누구보다 싫어했기에 여행 내내 그 말이 이해되지 않았는데, 라오스에서 차츰차츰 그 말이 실감 나기 시작했다. 그동안 빼곡히 채워져 있던 무엇들이 조금씩 덜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으며 하루하루 감사하는 마음으로 여행했다. 그야말로 욕망이 멈추는 곳이었다. 특별히 뭔가를 하지 않아도, 버스가 제시간에 출발하지 않아도, 창문이 닫히지 않아 모래바람을 맞아도, 터널이 뚫려있지 않아 굽이굽이 고개를 넘어도, 아스팔트 아닌 자갈길을 몇 시간 동안 달려도, 길을 잃어 헤매도, 시장에서 바가지를 써도, 온종일 숙소 해먹에 누워 눈앞에 펼쳐진 풍경만 바라보아도 행복했다.
여행의 목적이던 앙코르와트Angkor Wat가 있는 캄보디아 시엠레아프Siem Reap에 도착했다. 일정이 생각보다 라오스에서 길어져 짧아질 수밖에 없던 여행의 끝자락. 애초에 무작정 떠난 여행이었기에 아쉬움마저 여행의 일부가 되어있었다. 앙코르와트가 여행의 목적이었지만 몇 주 동안 혼자 여행을 하며 이번 여행의 목적이 단순히 특별한 장소만은 아님을 깨달았다. 지도 하나 없이 시엠레아프를 여행하기 막막해 무작정 숙소 근처에 있는 한인 게스트하우스를 찾았다가 동행을 구하는 게시판을 보게 되었다. 여행 전 다큐멘터리를 보고 감명받은 톤레사프 호수Tonle Sap Lake 게시판에 연락처를 남기고 숙소로 돌아와 연락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운 좋게 바로 연락이 왔고 그날 저녁 동행하는 모든 멤버가 한자리에 모여 맥주와 함께 간단한 식사를 했다. 말이 많은 사람들은 아니었지만 마치 몇 년을 알고 지낸 사람들처럼 잠깐의 대화를 통해 쉽게 가까워졌다. 동남아시아 최대 호수인 톤레사프. 그곳은 수상생활의 불편함과 가난을 이겨내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소중한 보금자리였다. 막상 가니 그들의 일상에 우리 여행객들이 침범하는 것은 아닐까 염려되었다. 그런 걱정에도 수평선 아래로 노을 지는 톤레사프는 눈부시게 아름다웠고 잠시 보트의 모터를 끄고 있던 몇 분 동안 왈칵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아 몇 번씩 눈을 감았다.
앙코르와트의 일출을 두 번째 보러 간 날. 하루 전에도 일출을 보며 감탄하고도 해가 솟는 장면을 보지 못했다는 이유로 다음 날 맑은 하늘에 해가 떠오르는 걸 보려고 새벽같이 달려갔다. 이번 여행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욕심부린 날이었다. 툭툭 기사이자 시엠레아프에서의 5일 동안 친구가 되어준 꾸쌀이 앙코르와트에 도착도 하기 전에 밑도 끝도 없이 ‘유감’이란다. 구름으로 가득 찬 하늘을 보며 그냥 돌아가자고 했다. 구름 낀 하늘이 야속했지만 시엠레아프에서의 마지막 날이라 그냥 돌아갈 수 없었다. 여행할 때 날씨 운은 늘 좋았던 터라 도착하면 구름이 다 걷힐 줄 알았다. 끝내 구름 떼는 한 덩어리도 사라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덕분에 첫 번째 일출과는 전혀 다른 두 번째 절경을 만날 수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나에게 남은 여행의 순간들은 그동안 안고 있던 수만 가지 욕심과 시간의 무게를 덜어내기에 충분했다. 시간이 흐르고 삶이 흐르듯 인연도 흘러가는 것이라는 생각만 남았다. 그 인연들과 모든 순간이 내게 머무는 동안 좋은 방향으로 함께 흘러갈 수 있도록 맘껏 사랑해야지. 그렇게 좋은 방향으로 가다 보면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지 않을까. 동남아시아에서의 시간은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은 ‘완벽한 여행’이었다.
압사라 앙코르 게스트하우스
cafe.naver.com/apsaraangkor
시엠레아프에 위치한 게스트하우스로 혼자 여행하기 어려운 톤레사프 및 벵밀리아 사원 등 동행을 구하기 좋다. 숙소에서 자체적으로 투어를 진행하기도 한다. 툭툭 기사들 대부분이 위치를 알고 있지만 모른다면 근처에 칼텍스 주유소가 있어 ‘깔텍’이라고 말하면 찾아가기 쉽다.
글 사진 구민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