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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먹을수록 이런 말을 하는 횟수가 늘었다. “선물하려면 현금이 최고야.” 실제로도 그렇다.
가족이든 친구든 어느새 선물 종류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뉘었다. 봉투에 담기거나, 톡으로 보내거나, 한턱 시원하게 쏘거나. 진짜 현금이거나 사실상 현금이나 마찬가지인 것들이다. 젊을 땐 달랐다. 인터넷도 없던 시절이었다. 직접 발품 팔며 좀 더 나은 선택지를 최선을 다해 찾았다. 선물 하나 준비하는 데 일주일 이상 걸린 적도 있었다. 대체 어떤 가게의 케이크가 더 맛있는지, 그(녀) 혹은 친구가 환호성을 내지를 정도로 좋아할 선물이 무엇일지 거듭 고민해서 결정했다.
그중 내가 가장 많이 한 선물이 뭐였는지를 복기한다. 정확한 통계는 당연히 나와 있지 않지만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CD였다. 콤팩트디스크였다. 하긴, 유유상종인 법이다. 내가 음악을 좋아하면 내 주변도 자연스럽게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채워지기 마련이다. 심지어 1990년대였다. 영화 멀티플렉스는 1998년에 가서야 처음 등장했다. 음악이 아직 대중문화의 왕이던 시절이다. 게다가 CD는 1990년대에도 이미 비쌌다. 그렇다. 취향과 가격이라는 측면 모두에서 CD는 선물 만족도가 확실하게 보장된 카드였다.
CD 선물하면 일착으로 떠오르는 에피소드가 있다. 속칭 ‘내가 나에게 주는 선물’이었다. 때는 1994년, 고등학교 2학년 시절. 인생 처음으로 집에 CD 플레이어가 생겼다. CD 플레이어를 사면서 부모님은 CD를 딱 하나 고르게 했다. 지극히 현명한 소비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앨범은 퀸Queen의 3장짜리 베스트였다. 이유는 명확했다. 어쨌든 이건 3장을 ‘한 번에’ 살 수밖에 없는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어떤가. 이것이 바로 경제적 소비라는 것이다. 부모님의 눈총이 지금도 떠오른다. “3개이면서도 1개인 이것은 대체 무엇인가.”
부모님은 검소했다. 헛된 소비를 용납하지 않았다. 용돈도 그래서 박했다. 원망하지는 않는다. 다만, 이 용돈을 모아서 CD를 사려면 엄청난 절약 정신이 필요했다. 그래서일까. 30대 이후 돈을 본격적으로 벌기 시작하면서 나는 CD와 LP를 미친 듯이 샀다. 후회는 없다. 이게 다 내 지금의 나를 있게 해준 원동력이라고 여긴다. 솔직히, 그렇게 여기는 수밖에는 없다.
내가 나에게 선물한 최초의 CD는 이러한 근검절약을 바탕으로 탄생한 것이었다. 당시 꽤 화제가 된 CD가 있었다. 특정 아티스트의 음반은 아니었다. 이른바 ‘골드 CD’라는 것이었다. 나와 비슷한 세대는 똑똑히 기억할 것이다. 당시 ‘골드 CD’라는 표제를 달고 앨범 몇 개가 나왔다. 그렇다면 이 ‘골드 CD’라는 놈은 대체 무엇인가. 따지고 보면 별것이 아니었다. 진짜 금은커녕 CD에서 은은한 금빛이 도는 게 전부였다. 나중 음반사 직원을 첫 직업으로 삼게 되는 인간이 할 말은 아니지만 음반사의 상술은 여러분의 상상을 언제나 뛰어넘는다. 1990년대 음반사들은 CD로 떼돈을 벌었다. 골드 CD로 추가 수익을 창출했다. 거기에 예술적 목표 따위는 ‘1도 없었다’. 과연, 영화 대사 그대로다. “돈이 원하는 건 오직 더 많은 돈.”
그럼에도 ‘골드’라는 수식에 혹한 나는 먹고 싶은 음료수 하나도 안 먹고 돈을 모아서 나를 위한 선물을 구매했다. 그 영광의 주역은 바로 마이클 잭슨의 1995년 음반 [History]였다. 마이클 잭슨이 그간 발표한 히트곡이 첫 번째 CD에, 신곡이 2번째 CD에 수록된 앨범이었다. 글쎄. 세어본 적은 없지만 이 앨범을 엄청나게 반복해서 들었다. 무엇보다 쥐꼬리 같은 용돈 쪼개서 산 음반이었다. 아무리 파고들어도 마르지 않는 샘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지금의 시대와 비교해본다. 음악이 널려있다. 사실상 공짜다. 인간은 무언가를 손쉽게 얻으면 그것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다. 음악이 소중하지 않다는 게 아니다. 나는 이미 꼰대지만 누군가에게 훈계하고 싶은 것도 아니다. 나를 포함한 인간이 애초에 그렇다는 거다. 이후 소개하는 이 음반 역시 ‘나만의 이야기’가 없었다면 그렇게까지 소중해지진 않았을 것이다.
선물이라는 게 이렇다. ‘스토리’가 있는 선물만이 오래 살아남는다. 우리에게 인생의 화양연화였던 시절을 가끔 떠올리게 해준다. ‘내가 그래도 나쁜 인생을 살지는 않았구나.’하는 감각은 우리의 생각 이상으로 중요하다. 스토리가 있는 선물이 해줄 수 있는 선물이다.
낯선 밴드의 “뭐야?” 싶은 앨범일 수 있다. 완전하게 이해한다. 그러나 나에게는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담긴 선물이었다.
먼저 설명부터 한다. ‘후’는 1960년대부터 활동한 영국 밴드다. 1964년 비틀스The Beatles가 미국 시장에 안착한 이후 여러 영국 밴드가 더불어 진출해 큰 성공을 맛봤다. 후 역시 그중 하나였다. 역사는 이를 ‘영국의 침공The British Invasion’이라고 기록한다. 원래 후는 강렬한 록을 추구한 밴드였다. 기타를 휘두르고 드럼을 부숴버리는 등 과격한 퍼포먼스로 악명이 높았다. 그런 그들이 변한 건 1960년대 후반부터였다. 콘셉트 앨범을 내놓고, 록 오페라를 시도하면서 깊어진 동시에 넓어진 세계를 연출한 것이다. 1969년 발표한 [Tommy]는 록 역사상 거의 최초로 오페라적인 구성을 제시한 작품이다. 줄거리를 요약하면 이렇다. 주인공 토미는 어린 시절부터 친부의 살인을 목격하고, 친척에게 학대당하면서 자랐다. 그 충격으로 혼자만의 세계에 갇힌 그가 어떤 과정을 거쳐 ‘영적 지도자’로 거듭나고 다시 좌절하고, 종국에는 구원의 길을 찾는지에 대한 내용이다. 거의 75분에 달하는 두 장의 CD 안에 이 스토리가 빼곡히 담겨 있다.
이제 다 됐다. 드디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설명할 차례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나는 음악에 대한 글을 쓰고 싶었다. 없는 용돈을 쪼개서 해외 잡지를 산 뒤에 사전을 뒤적이며 평론가들이 쓴 리뷰를 탐독했다. 대학생이 된 이후에는 이런저런 대중음악 강좌를 다 찾아서 들었다. 이 강좌에서 알게 된 누나 한 명이 있었다. 나를 참 예뻐했다. 오해하지 말기를 바란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났다. 정말 친한 누나였다.
[Tommy]는 이 누나가 생일 선물로 준 것이었다. 나중 잃어버린 카드에는 “꼭 네가 원하는 평론가가 되기를 바란다.”라는 문장이 적혀 있었다. 지금은 이 누나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다. 행여 이 글을 읽는다면 어라운드 편집부로 전화 주기 바란다. 정말 기쁜 선물이 될 것이다.
글 배순탁―음악평론가 · 〈배철수의 음악캠프〉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