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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힘 — 작가
작가 오힘은 도시의 오래된 풍경, 골목 한편의 일상, 조용히 자신만의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들에 주목한다. 그 곁을 서성이며 관찰하고 기록해 독립 출판물 《전주 다방에서 만나》를 발간했다. TV 뉴스 중계가 흐르는 다소 적막한 다방에서 우리는 차갑게 내어온 믹스 커피가 미지근해질 때까지 서로의 시선을 한곳에 모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이어갈 수 있는 일상의 사소한 조각들을 테이블 위에 펼쳐놓고 하나씩 짚어가면서.
다방에 직접 들어와 본 건 처음이에요.
처음이라 조금 낯설죠? 이 주변에 한옥마을도 있고 남부시장도 있어서 걸어 다니다 보면 골목골목 구경할 거리가 참 많아요. 저 역시 그렇게 걷다가 우연히 이곳을 발견하게 됐고요.
인터뷰 장소로 추천해 주신 다방들 중에서 이곳을 골랐어요. 인터넷 지도에 검색해도 정보가 나오지 않아 호기심이 생기더라고요.
다방이 아무래도 매출이 크게 나는 곳은 아니다 보니 거의 지하나 접근성이 좋지 않은 곳에 있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런데 여기 남문다방은 1층에 있고 바로 근처에 주차장도 있어서 외부 손님이 오시면 이곳으로 종종 모시곤 해요. 또 옆에 목욕탕이 있어서 목욕 후 시원하게 음료 한잔하기에도 좋고요.
오힘 씨는 전주에서 지내고 이곳이 고향이기도 하죠. 한때 전주를 떠나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했던 적이 있다고요.
맞아요. 대학교에서 디자인을 전공했고 서울에서 회사를 다녔어요. 광고 대행사에서 오래 일하다가 지쳐서 그만두고 아동복 디자인 일을 하기도 했고요. 일은 재미있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한계가 오는 느낌이었어요. ‘내가 여기서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자꾸 들더라고요. 서울은 경쟁이 치열하잖아요. 내가 이곳에서 집을 마련하고 버틸 수 있을까 혹은 그냥 아등바등 노동만 하다 끝나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커졌어요. 또 다른 사춘기를 겪는 것 같았죠. 이직을 시도해도 잘 풀리지 않고, 계획이 어그러지는 일도 많았어요. 제가 거절했던 회사가 크게 성장하는 걸 보며 초조해지는 경험도 했고요. 디자이너라는 직업이 수명이 길지 않다 보니 ‘빨리 치고 올라가야 한다.’는 압박감도 컸어요. 그러다 보니 저는 정체되어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더라고요. 다른 사람들은 진급하거나 이직하면서 연봉을 올리는데 저는 같은 자리에 멈춰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죠.
그렇게 전주로 내려오게 된 거군요. 당시 마음 상태는 어땠어요?
약 6개월 정도 고민한 끝에 전주에 내려왔어요. 처음에 올 때는 실패한 기분이 들었죠. 서울에서 해내지 못한 것처럼 느껴지고, 돌아온 게 창피하기도 했고요. 그래서 한동안 고향 친구들과도 잘 만나지 않고 몇 달간 연락도 피했어요. 그때는 몰랐던 거죠. 모든 사람에게는 각자의 시기가 있고 속도가 다 다르다는 걸요. 지금의 제가 그때로 간다면 그냥 저를 지켜봐 줄 것 같아요. 근데 당시에는 조급해져서 쉽지 않았죠. 시간이 흐르면서 요리도 배우고 바깥으로 나와 돌아다니기도 하면서, 자연스럽게 나만의 것을 차근차근 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되더라고요.
그러고 보니 요리를 즐겨 하시는 것 같아요. SNS에도 요리하는 영상이 많더라고요.
전주로 와서 이것저것 배우러 다녔어요. 한식, 양식, 제빵까지 다양하게 시도했죠. 만들고 나면 결과물이 눈앞에 바로 보여 성취감도 금방 느낄 수 있고, 내가 만든 음식이라 애착도 생기더라고요. 남이 만든 음식에는 지적도 잘하면서(웃음). 어떤 일은 결과물을 내기까지 과정이 길 때가 많잖아요. 요리는 완성하기 쉬운 것부터 어려운 것까지 다양하고, 오감을 사용해 직접 썰고 볶고 냄새를 맡으며 몰입하게 돼요. 예쁜 그릇에 담으면 뿌듯함이 더하고, 누군가와 나누기도 하고요. 요리를 배우며 제 지친 마음을 잘 돌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최근에 즐겨 하는 요리가 있다면요?
집에 여주를 사 두었어요. 뾰족뾰족 수세미처럼 생긴 채소인데, 맛은 조금 쓰지만 잘 볶으면 꽤 맛있거든요. 제철 음식도 잘 챙겨 먹고 있어요. 전주에 살면서 좋은 점 중 하나가 식재료가 정말 신선하다는 점이에요. 중간 유통 과정을 거치지 않고 생산자가 바로 가져온 재료를 저렴하게 살 수 있거든요. 덕분에 채소의 신선함이 오래가요. 요즘에는 호박잎을 살짝 데쳐서 보리밥에 쌈장 올려 싸 먹는 걸 즐겨요.
제철 재료만큼 계절을 느끼며 요리하기 좋은 게 없죠. 이제 집필한 책 얘기를 해볼까요? 《전주 다방에서 만나》는 전주 다방 23곳을 직접 다니며 쓴 기행문이에요. 그 첫 시작이 궁금해요.
우리는 흔히 외국 여행을 가면 오래된 카페나 명소를 일부러 찾아다니는데, 정작 우리 곁의 공간에는 무심할 때가 많잖아요. 저는 부모님 세대가 향유하던 다방 문화를 기록해 보고 싶었어요. 그 시절엔 다방에서 미팅도 하고 친구들도 만나고 문학도 즐겼으니까요. 아직 남아 있는 다방들을 직접 찾아가야겠다고 마음먹었죠. 그런데 막상 혼자 가려니 좀 두렵더라고요. 마침 친구 중에 방송국 PD가 있는데, 취재 다니는 걸 좋아하니까 그 친구에게 함께하자고 제안했어요. 너무 좋다며 흔쾌히 수락해서 토요일마다 다방 투어를 시작했죠. 아침 10시쯤 만나서 저희는 카페를 가는 대신 다방으로 향했어요.
저처럼 처음 방문했을 땐 어색했을 것 같아요. 사장님도 놀라셨을 것 같고요(웃음).
맞아요. 웬 젊은 사람이 다방에 들어오니 사장님도, 손님으로 계신 어르신들도 깜짝 놀라시죠. 재밌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는데요. 노인분들이 다방에서 시간을 보내시면서 가볍게 화투도 치시는데 가끔 판을 조금 크게 벌릴 때도 있나 봐요. 그런 일 때문에 경찰들이 검문을 하기도 한대요. 제가 다방 취재를 시작한 게 2017년쯤인데 그땐 다방이 더 낯선 공간이라 그런지 제가 들어가니 사장님이 저를 위장한 경찰로 오해하신 거예요. 입구로 들어서자마자 너무 놀라시면서 “무슨 일이냐?”고 물으시는데, 그냥 차 마시러 왔다 해도 잘 안 믿으시더라고요(웃음). 그런데 저희끼리 사진도 찍고 깔깔거리면서 있으니까 그제야 안심하시고 믿으셨어요.
다방마다 특색은 조금씩 다르겠지만 여러 공간을 탐방하며 느낀 공통된 특징이 있나요?
지금 남아 있는 다방은 전통 시장 근처에서 흔히 볼 수 있어요. 손님들은 대부분 어르신이고, 새벽에 일하는 상인들이 잠시 들르거나 장 보러 온 손님들이 쉬어가는 공간으로 자리하고 있죠.
그럼 오힘 씨가 느끼는 다방의 매력은 무엇이에요?
우선 방해할 것 같은데 방해하지 않아요. 우리는 타인의 주목을 받고 싶지 않잖아요. 다방도 처음에는 낯설고 주목받는 느낌이 들지만, 몇 번 가면서 얼굴이 익숙해지면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아요. 지금처럼 TV 틀어놓고, 앉아서 낮잠 주무시고, 담소 나누시고 또 이것저것 챙겨주시기도 해요. 사장님들께서 다방에서 식사하시다가 배추전을 부쳐 주시기도 했는데 우리가 카페에서는 보기 드문 풍경이잖아요. 제가 책 집필을 위해 다방을 촬영할 때도 대부분 이게 뭐라고 그렇게 찍고 다니냐고 했어요. 뭐라고 책까지 만드냐고요. 그분들에게는 너무나 일상적인 모습인데 저한테는 새롭게 다가오는 장면들이라서 매력적인 거예요. 외국에 나가서 보면 모든 것이 신기하게 느껴지는 것처럼요.
단순히 탐방하는 것과 그 일련의 과정을 기록물로 만드는 것은 큰 차이가 있을 텐데요. 책을 만들기 전과 후의 변화가 있나요? 전주 다방을 찾아다니고 기록하고 책을 만들면서 전주라는 도시에 더 관심을 갖게 됐어요. 단순히 좋아서 한 일이었는데 책을 보시고 저한테 전주에 대해 물어보고 궁금해하는 사람도 많아지고요. 제 고향이 이곳이지만 서울로 나갔다가 다시 돌아왔잖아요. 왜 내려오게 됐냐, 전주에 대해 얼마큼 알고 있냐, 이런 질문도 많이 받았죠. 질문이 많아지니 그 물음에 답하는 과정 중에 저도 더 많이 찾아보고, 알아보고,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다방을 한 번도 안 가본 분들이 책을 계기로 와보게 됐다는 말씀도 하셨어요. 사실은 다방을 한 번쯤 가보고 싶었는데 선뜻 문 열기가 힘들었다고 하시면서요.
누군가 먼저 내딛은 발걸음으로 용기를 얻을 때가 있잖아요. 낯설고 어려운 시도를 앞두고 있을 때 심리적인 장벽을 낮추기 위한 방법에는 또 무엇이 있을까요?
동행자를 구하거나 이끌어줄 수 있는 사람을 곁에 두는 것도 좋은 방법이에요. 예를 들어 운동을 하고 싶다면 같이 운동을 하거나 지켜봐 줄 수 있는 사람을 곁에 두면서 동기부여를 받는 식이죠. 저도 다방 취재를 결심했을 때 처음 문을 여는 게 너무 망설여지는 거예요. 그렇다고 아무 친구에게나 같이 가자고 말할 수도 없었고, 거절당하면 상처받을 것 같고, 의욕도 왠지 떨어질 것 같았어요. 그래서 좀더 전략적으로 물색해 취재 열정이 있는 방송국 PD 친구를 동행자로 구한 거죠(웃음). 그 친구가 같이 물꼬를 잘 터주었고, 덕분에 나중에는 혼자 갈 용기가 생겼어요. 처음엔 누구나 낯설고 두렵지만 그 첫 순간을 지나면 얼마든지 대처할 자신감이 생겨요.
때에 따라 적당한 긴장은 필요한 것 같기도 해요. 덕분에 그 경험을 더 생생히 느끼도록 해주기도 하잖아요.
맞아요. 오늘 에디터님과 제가 처음 만나는 것만으로도 긴장하는 것처럼요. 저희가 나쁜 사람들도 아닌데 말이에요(웃음).
그러면 우린 오늘의 기억을 더 선명하게 기억할 수 있겠어요(웃음). 평소에 용기를 잘 내는 편이에요?
대체로 아무 생각 없이 해보는 편이긴 해요(웃음). 일단 저지르고 생각하죠. 물론 생각 없이 하다 보면 겪어야 하는 시행착오도 있긴 하지만, 그렇게 해야만 무엇이든 시작할 수 있고 결국 이루어지는 것 같아요. 막막한 일 앞에서도 마찬가지예요. 책 만드는 것도 비슷하고요. 《전주 다방에서 만나》는 독립 출판물이기 때문에 마감 기한이 정해진 것도 아니었고, 그러다 보면 매일 미루게 되거든요. 그런데 우선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켜고 한 글자라도 쓰기 시작해요. 그러면 욕심이 생겨서 한 줄, 두 줄 그러다 한 페이지, 한 권까지 만들어지더라고요.
요즘엔 어떤 기록을 하고 싶어요?
목욕탕이라는 키워드에 집중하고 있어요. 목욕탕은 집에 목욕 시설이 충분하지 않던 시절에 발달한 곳이잖아요. 요즘은 목욕탕을 찾는 사람도 줄었죠. 시설 유지 비용도 크고 이용객이 줄어드는 현실 때문에 앞으로는 목욕탕 문화가 점차 사라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기존에도 목욕탕에 대한 기록은 많지만, 저는 그 기록을 나만의 시선으로 어떻게 아카이빙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어요.
평소에도 사라지는 무언가에 관심이 많은가 봐요.
늘 그랬던 것 같아요. 어머니가 가지고 계신 골동품을 모으는 것도 좋아했고요. 오래된 사진 들여다보는 것도 무척 좋아해요. 제 옛 사진뿐만 아니라 시대를 거슬러 올라간 과거 사진도 마찬가지예요. 한 장의 옛 사진을 보면 그 시절 거리에 들어선 듯한 기분이 들어요. 초등학생 때 백과사전에서 옛 도시 풍경을 보며 신기해하던 기억도 나요. 한복을 입고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 모습까지도요. 사람들의 낯선 옷차림, 옛날 집 모두 흥미롭지 않아요?
지금 눈빛에서 신기해하는 마음이 절로 느껴져요. 그렇다면 도시의 사라지는 풍경을 기록하는 건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제가 옛 사진을 보며 신기해하는 것처럼 언젠가 후손들이 지금 현재의 일상을 기록물로 마주하면 분명 반가울 것 같더라고요. 사실 처음부터 그런 기획을 염두에 두고 책을 만든 것은 아니었지만, 기록물이라는 건 결국 내가 사라진 뒤에도 남아 이어지잖아요. 우리가 매일 사진을 찍는 것도 오늘의 시간을 남기기 위해서일 테고요. 내가 본 현재를 담아내고, 그 기록을 함께 향유할 사람이 있다면 더없이 좋을 것 같아요.
사라지는 것뿐 아니라 가려진 것에도 관심을 두신다는 말을 작가 소개 글에서 읽었어요.
눈에 확 들어오는 주연보다 그 곁에 있는 조연 같은 사람들이 더 좋을 때가 많아요. 늘 조금 움츠러들어 있는 듯 보이고 자신감 없어 보이는 사람들 있잖아요. 그런데 막상 대화를 나눠 보면, 겉으로는 조용하지만 내면에 열망이 가득한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겉으로 당당해 보이거나 화려해 보이진 않아도 그 안에 넓고 깊은 세계를 가진 경우가 많았어요. 저는 그런 사람과 이야기하는 걸 무척 좋아해요. 처음에는 마음 여는 데 시간이 걸리기도 하지만, 어느 순간 친구가 되어 자연스럽게 깊은 얘기를 나누게 될 때가 있거든요. 그럴 때마다 ‘이런 세계관도 있구나.’, ‘이런 시각도 존재하는구나.’ 하며 배우고 확장되는 경험을 해요.
오힘 씨 출판사 이름이기도 한 ‘검이불루화이불치’가 떠오르는데요.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은 삶이요. 출판사명으로 결정한 이유가 있어요?
우선 제가 《전주 다방에서 만나 》 를 출간할 때 국가 지원 사업으로 지원금을 받아 제작했거든요. 그러려면 출판사를 등록해야 해서 출판사를 차리게 되었어요. 이름 뜻 그대로 살고 싶어서 출판사명으로 지었어요. 예전에 학교 선배가 알려준 고사성어였는데요. 그 말을 듣자마자 뜻이 너무 멋있어서 언젠가 꼭 써야겠다고 마음에 새겼었죠. 개인적으로 화려함을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되지 않았으면 해요. 결국 중요한 건 내 소신에 따라 사는 거예요. 마음가짐만 바로 세우면 부끄러울 게 없다고 하잖아요. 그 마음에서 오는 힘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해요. 예쁨도 마찬가지예요. 얼굴이 예뻐서 예쁜 게 아니라, 마음에 비움이 있는 사람에게서 보이는 예쁨이 있거든요. 자신을 다스리고 마음을 수련하는 사람들에게서 드러나는 얼굴빛, 그건 따라 할 수 없는 자신만의 아름다움이에요. 내면의 단단한 마음을 갖고 있으면 말투도 자연스럽게 곱고 행동도 멋있어지죠.
그 단단한 마음은 어디에서 비롯될까요?
남과 비교하지 않는 데서 온다고 생각해요. 아까 말씀드렸듯이 치열했던 20대에는 남들과 많이 비교했고, 열등감도 컸어요. 그런데 그렇게 하면 오히려 더 잘 안되더라고요. 비교하지 않으려고 의식적으로 무언가를 한 건 아니에요. 다만 시간이 지나 직접 경험해 보면서 ‘아, 결국 사람은 시기도 모양도 다 다르구나.’ 하고 스스로 인정하게 되는 순간이 왔어요. 느려도 괜찮지만 포기하지 않는 것이 제일 중요하더라고요. 저도 여전히 훈련 중이에요. 개인적인 수련을 하기도 하고, 요가를 배우기도 하면서요.
사실 그 비교는 사회가 정한 기준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렇죠. 그런 의미에서 저는 윤여정 배우의 영화 〈미나리〉(2021) 오스카 수상 소감을 보고 정말 감명 깊었거든요. 혹시 에디터님도 보셨어요? 배우님은 한 걸음 한 걸음 자신만의 경력을 쌓아왔고, 그 수상이 한순간에 이뤄진 게 아니라고 하셨잖아요. 본인은 연예인이 아닌 “직업인으로서 연기를 한다.”고 늘 말씀하시곤 했고요. 그렇게 묵묵히 걸어온 길이 나중에 영화로 이어졌고, 70세가 넘어서 세계적인 상을 받으셨다는 사실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나는 경쟁을 믿지 않는다. 모두 각자 영화의 수상자다.”라며 함께 후보에 오른 배우들을 향해 예우도 보여주셨죠.
맞아요. 정말 멋있지 않아요? 그 시상식을 보면서 느낀 건 삶은 정말 알 수 없다는 거예요. 언제 어떤 순간에 결실이 맺힐지 모르니까요. 그래서 저 역시 지금 제 삶도 ‘아직 성공하지 않았다’거나 ‘성공했다’고 단정할 수가 없어요. 예전에는 40대면 이래야 한다, 50대면 저래야 한다는 식의 기준이 있었는데 요즘은 그런 잣대가 점점 의미 없어지는 것 같고요. 결국 내 마음이 단단하면 세상의 기준이나 외부의 어떤 공격도 잘 피해서 나아갈 수 있어요.
검이불루화이불치는 어떤 정체성을 갖고 나아가고자 하나요?
지역성을 꾸준히 담아내고 싶어요. 사라져가는 문화유산을 탐구하고 기록하는 일, 그 과정을 통해 출판사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싶고요. 지역이라는 큰 맥락 안에서 문화유산을 아카이빙하는 작업이 지금 제가 지향하는 방향이고 앞으로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지역에 애정이 있어야 할 수 있는 작업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 애정은 어디에서 나온 것 같아요?
결국 나한테서 시작된 것 같아요. 이 지역에 속한 사람으로서 제 역할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거든요. 사회 구성원으로서 기반이 되고 싶고 도움이 되고 싶어요. 전주로 돌아와서 지금은 다양한 활동을 하며 책도 내고, 오늘처럼 인터뷰도 하고, 그 과정에서 재밌는 사람들과 연결되면서 커뮤니티도 자연스럽게 생겼어요. 서울에서 내려올 때는 ‘나는 아무것도 못 할 것 같아.’ 하는 마음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전주에서 차근차근 뭔가를 이뤄가는 제 모습을 보면서 ‘아, 나는 서울에 남았어도 뭐든 했겠구나.’라는 확신이 생겼어요. 전주에서의 경험을 통해 저 자신을 믿게 된 거죠.
다시금 서울로 가서 새로운 일을 해볼 생각도 있어요?
아니요. 이제는 못 가요. 집값이 너무 비싸서(웃음). 무모하게 가기에는 이곳에 제가 일궈놓은 것들이 있으니까 지금은 갈 필요성을 못 느끼죠. 교통편도 잘되어 있으니까 필요하면 왔다 갔다 하면 되고요. 그리고 지방에서만 느낄 수 있는 여유로움이 있거든요. 서울에선 느끼기 어려운 여유요.
전주만의 여유로움은 어떤 거예요?
우선 복잡하지 않아요. 중심지에서 택시를 타면 어디든 20분 내로 갈 수 있을 정도로 모든 곳이 다 가깝거든요. 그래서인지 사람들 사이의 관계망이 좁고 촘촘한 편이고요. 안부를 물을 수 있는 사람들이 많은 거죠. 사실 서울에서 지내다 보면 옆집이나 앞집에 누가 사는지 잘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잖아요. 여기에서는 김장하면 김치 나눠주거나, 제철 과일을 주는 이웃들이 많아요. 그리고 사람들이 대체로 부드러워요. 사투리도 강하게 사용하지 않는 편이고요. 그래서인지 주변에서는 전주 사람들 성격이 잘 드러나지 않거나 밋밋하다고 표현하더라고요. 큰 특색이 없다고 볼 수 있지만 점잖게 보이기도 하고, 장단점이 있죠.
무언가를 창작할 때 참신함에 대한 고민을 하는지도 문득 궁금해져요. 독창성은 어디에서 나온다고 생각해요?
매 순간 우리가 보는 모든 것에서요. 저는 결국 ‘많이 보는 것’에서 나온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보는 건 다 비슷할 텐데, 순간의 특별함을 발견할 수 있는 나만의 비법이 있어요?
일상에만 갇혀 있으면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있어요. 환경이 바뀌어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죠. 꼭 멀리 가지 않아도 돼요. 생활 반경만 조금 벗어나도 충분해요. 예전에 회사 다닐 때는 버스를 일부러 반대로 타보기도 했어요. 직행 대신 돌아가는 노선을 타기도 하면서 ‘아, 이런 풍경도 있네.’ 하고 새롭게 발견하는 거예요. 그러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면 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여요. 마치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새로워 보이는 것처럼요. 아무런 소득이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겠지만 시간이 지나보면 그것들이 제 안에 스며들어 필요할 때 꺼내 쓸 수 있는 소재가 되곤 하더라고요.
오힘이라는 이름에는 ‘오래오래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힘을 주세요.’라는 뜻이 담겨 있잖아요. 좋아하는 일을 오래 이어가기 위해 필요한 것이 있다면요?
전주에 내려왔을 때 무언가 포기한 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고, 스스로 지구력이 부족하다는 자각도 있었거든요. 그래서 그 마음을 늘 새기자는 의미로 이름을 오힘이라고 지었어요. 오래 힘을 낼 수 있는 데 도움이 되는 것 중 하나는 운동이에요. 단순히 체력을 기르는 걸 넘어서 오래 버티고 계속할 수 있는 힘을 주더라고요. 제가 테니스를 2016년, 17년 무렵부터 시작했는데 사실 지금도 잘 못 쳐요. 정말 못해요. 결혼 준비 때문에, 또 야외에서 하기 어려운 시기에는 잠시 쉬느라 중간중간 못 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계속 치고 있어요. 이유는 지구력을 기르기 위해서요. 그냥 잘 안돼도 즐기는 거를 해요. 테니스에서만 느낄 수 있는 공 칠 때의 타격감이 있거든요. 잘 치진 못했어도 일단 날아오는 공을 받았다면 그것만으로도 만족해요. 지금 테니스 친 내 모습 너무 멋있었다, 스스로 얘기해 주고 끝내요(웃음). 기대를 낮추는 거예요.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거죠. 그래서 안되는 걸 도전해 보는 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다 보면 우연히 한 번 잘될 때가 있거든요. 그럼 또 신기해요.
오늘 대화를 나누면서 ‘신기하다’는 표현을 여러 번 들었어요. 그때마다 오힘 씨 눈빛이 초롱초롱 빛났고요.
아, 제가 그랬나요(웃음)? 예전에 제주도에 가서 요가를 한 적이 있어요. 그때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아직도 기억나요. “나이가 들수록 짜릿함이 점점 줄어든다.”는 거였어요. 그런데 그 짜릿함을 다시 찾는 게 진짜 중요한 일이라고 하시더라고요. 감사한 마음을 갖는 것이 결국 짜릿함과 동일한 의미라면서요. 그 말이 참 와닿았어요. 짜릿함을 억지로 밖에서 찾아다니는 게 아니라, 내가 직접 발견하고 발굴해 가는 과정이 중요한 거잖아요. 해보지 않던 운동을 해본다든가 새로운 걸 도전해 본다든가, 그런 시도들이 당장은 큰 변화를 주지 않더라도 쌓이고 쌓이다 보면 또 다른 나를 만들어 주더라고요.
에디터 황진아
포토그래퍼 강현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