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배경음악

나무가 많은 곳에서 고개를 젖혀 올려다본 적 있는가. 초록 이파리들 사이로 지도를 닮은 길이 나 있다. 길을 따라 하늘이 보인다. 시선이 느긋한 걸음처럼 발도장을 찍는다. 음반 가게 수관기피는 그런 음악을 골라 들려주는 곳이다. 자, 눈을 감고 숨을 깊이 들이마셔보자.

수관기피(樹冠忌避): 다 자란 나무들의 가장 윗부분이 서로 닿지 않고 일정한 틈을 유지하는 현상.

은평구 골목길 한켠, 사람 사는 동네에 작은 음반 가게가 문을 열었다. 앰비언트, 뉴에이지, 포스트 클래시컬 장르 음반을 소개하는 셀렉트숍 ‘수관기피’다. 대표 정무와 그의 짝꿍 지수는 철거부터 페인트칠, 인테리어까지 직접 해내며 온라인으로만 운영되던 브랜드를 실제 공간에 옮겼다. 오픈 준비를 시작하고 세 계절을 지났다.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는 가게에 이들의 정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가게가 자리한 동네는 유명한 카페나 맛집 대신 슈퍼마켓과 철물점이 더 흔히 보이는 곳이다. 쨍한 보라색 티셔츠를 입고 손수레를 끄는 할머니와 담배를 피는 할아버지가 풍경이 되는 동네. 창가 자리에 앉아 골라온 CD를 플레이어에 넣는데, 가게 문이 열리고 정겨운 말투가 흘러든다. “나 커피, 달달한 걸루.” 한참을 조잘거리다 나간 할머니는 옆옆 칸에 자리한 수선집 사장님이었다. 그런가 하면 등산을 마치고 내려오던 아저씨 두 분은 이거 ‘마이마이’ 아니냐며 반가운 얼굴로 〈러브 레터〉 사운드트랙을 듣는다. 마이마이 세대도 아닐 뿐더러 달달한 커피보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즐기는 나지만, 그들과 가까워진 듯한 묘한 동지애가 느껴진다. 수관기피는 일상 속에 틈을 만들어보길 권한다. 나무들이 서로 닿지 않을 만큼의 거리를 두고 각자의 공간을 지켜주듯, 이곳이 지향하는 것도 그런 여백이다. 바쁘게 흘러가는 하루 한복판에 잠시 멈춰 숨을 고를 틈이 있다면 삶이 좀 더 괜찮게 느껴질 테니까. 수관기피가 소개하는 음악도 같은 결을 따른다. 특히 일본 아티스트들의 앰비언트를 중심으로, 가사가 없거나 있어도 청취에 방해되지 않을 만큼 잔잔한 멜로디의 음반들을 즐겨 들여온다. 그런 음악은 언제 어디서 들어도 주변 소리의 일부처럼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그곳에 머무는 동안 휴대폰을 거의 들여다보지 않았다는 걸 나설 때가 되어서야 깨닫는다. 하루 중 꽤 긴 시간을 차지하는 휴대폰 스크린타임. 그 시간 바깥에 나만 아는 휴식이 있다. 마음을 울린 카즈노리 스가마와 마유 곤토의 [Waterside](2025)를 구매하고 나오는 길, 두 번째 트랙을 작게 흥얼거린다. 오늘의 배경음악이 정해졌다.

평화로운 일상을 지키기 위한
앰비언트 음악들

글 허정무
사진 제공 수관기피

1. various sighhorns [sowaka](2015)

선율보다는 음악가의 호흡에 맞춘 자연스러운 소리로 채워졌다. 흑백에서 컬러로 넘어가던 시절의 무성 영화가 떠오른다. 빼곡한 곡 설명을 읽다 보면 순수한 아이의 머릿속을 들여다보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이 음반은 직접 CD를 굽고 재킷과 띠지를 오려 붙이는 수작업으로 이루어진다. 추가 주문을 위해 아티스트와 소통할 때면 동물의 숲 주민과 대화하는 것 같아 웃게 된다. 언제 생산이 멈출지 모르니, 다정한 손길이 담긴 현재 버전을 꼭 소장해 보길 권한다.

2. haruka nakamura [Ongaku No Aru Fuukei](2014)

제목의 뜻은 ‘음악이 있는 풍경’. 가장 좋아하는 음악가를 물을 때면 망설임 없이 이 이름을 말한다. 수관기피를 시작하게 만든 아티스트 중 하나이기도 하다. 음악에 대한 갈증이 채워지지 않던 시절, 하루카의 음악으로 마음 중심부가 일렁이는 듯한 기분을 경험했다. 그의 음악을 듣다 보면 어두운 밤 촛불을 켠 채 두 손 모아 기도하는 사람의 모습이 자주 그려진다.

3. AOKI, hayato [Hita](2018)

후쿠오카에서 남동쪽으로 한 시간 반쯤 떨어진 ‘히타’라는 작은 마을에는 개인이 운영하는 극장이 있다. 그곳 사장님이 히타를 찾은 이들이 그 시간을 추억할 수 있는 기념품이 있기를 바라 아티스트에게 곡을 의뢰했다고. 그렇게 빈 상영관에서 기타 한 대와 마이크로 녹음한 음반이다. 일본 여행을 계획하던 중, 히타가 떠올라 그곳에서 하루를 보냈다. 이제 이 앨범을 들으면 히타의 반짝이는 미쿠마 강과 오래된 바위, 한적한 거리가 생각난다.

4. Natsumi Takano [kuu](2023)

수관기피에서 제작을 맡은 음반. 좋은 음악을 발견하면 언제나 실물 음반의 유무부터 확인하곤 한다. 일본어 ‘쿠우(くう)’에는 먹는다는 뜻도, 비어 있다는 뜻도 있다. 앨범의 주제는 후자였지만, 둘 모두를 디자인에 녹여냈다. 산 위의 푸른 계절이 상자에 한가득 담겨 있어 여름 내내 시냇물처럼 음악을 흘려두고 시간을 보내기 좋은 음악이다.

5. ironomi [himorogi](2023)

‘himorogi’는 만물에 신이 깃든다고 믿어온 고대 일본인들이 신령이 머무는 산이나 나무 둘레에 치던 신성한 울타리를 뜻한다. 그처럼 음악은 듣는 이를 고요하고 영적인 공간으로 데려간다. 피아노와 17현 코토가 어우러지며 만들어낸 음악은 명주실로 직조한 비단처럼 유려한 질감을 갖는다. 듣는 순간 마음이 정화되고 명상에 잠기게 되어, 하루의 시작을 앞두고 들으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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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정지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