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24시

어떤 예술가들은 종일 골방에 웅크려 작품 세계에 빠져들었고, 어떤 예술가들은 작업실에서 잠시 나와 늘 같은 시간에 몸을 움직였다. 그들에게 운동은 고뇌에서 벗어날 수 있는 통로이자 새로운 영감의 원천이 되어주었다.

찰스 디킨스 Charles Dickens

영국을 대표하는 소설가. 작품을 통해 1800년대 영국 사회의 부조리를 비판했다.
《위대한 유산》, 《올리버 트위스트》, 《두 도시 이야기》 등을 썼다.

“산책에서 돌아온 디킨스는 에너지의 화신처럼 보였다. 감춰 놓은 창고에서 흘러나오듯 모든 모공에서 에너지가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디킨스 처남의 말. Jane Smiley, 《Charles Dickens》

7:00
기상 후 정비

언제나 같은 시간에 눈을 뜬다. 한 시간 후, 아침을 먹을 때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디킨스는 규칙적인 삶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다. 그의 아들은 아버지가 기계적으로 살아간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침대에서 욕실로, 욕실에서 식탁으로 가는 그의 모든 움직임을 상상해 본다. 매일 아침 같은 동선, 같은 표정이 그려진다.

9:00
글쓰기

아침을 먹으면 빈둥거릴 틈 없이 서재로 향한다. 글이 잘 써지든 써지지 않든 늘 오후 2시까지 꼼짝하지 않는다. 서재에도 규칙은 존재한다. 외부 소음은 완전히 차단되어야 하고, 거울과 펜은 항상 같은 자리에 놓여 있어야 한다.

14:00
산책

글을 쓰고 나면 바깥으로 나간다. 그는 매일 세 시간 동안 산책을 했다. 꽤 오랜 시간 거닐었던 셈이다. 산책길에서 소설의 전개를 고민했고, 지나치는 풍경에서 표현하고 싶은 장면을 찾기도 했다. 서재에서 벗어나 부단히 걸었던 시간은 그에게 창작의 동력이 되어주었다. 어쩌면 《올리버 트위스트》에서 올리버가 빵을 더 달라고 하는 명장면도 산책에서 움트지 않았을까.

17:00
여가

저녁은 지친 몸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한다. 저녁을 먹고 나면 보통 가족과 시간을 보내지만, 때로는 친구들을 만난다. 침대에 몸을 누이는 시간은 자정. 다음 날 아침, 디킨스는 또다시 철저한 시간표를 지켰을 테다.

허먼 멜빌 Herman Melville

미국의 소설가이자 시인. 죽음 이후 작품이 재평가되어 큰 사랑을 받았다.
《모비 딕》, 《필경사 바틀비》, 《베니토 세레노》 등을 썼다.

“젖소를 찾아가서 호박 한두 개를 잘라주고, 녀석이 먹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봅니다. 젖소가 턱을 오물거리는 걸 보면 기분까지 좋아집니다.”

― 허먼 멜빌이 지인에게 보낸 편지 중

8:00
헛간과 밭

눈을 뜬 후 제일 먼저 헛간에 간다. 말과 젖소를 먹이고 그들을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본다. 동물들을 먹이고 나서야 비로소 아침을 먹는다. 멜빌은 농장에서 신체 활동을 하며 창작으로 쌓인 스트레스를 해소했다. 가축을 돌보고 채소를 키우며 땀 흘리는 일은 그에게 큰 기쁨이 되었을 것이다.

9:00
글쓰기

작업실 책상에 앉아 좋은 문장을 떠올려 본다. 한참을 열중하다 보면 누군가 작업실 문을 두드린다. 오후 2시가 됐다는 뜻이다. 무조건 글쓰기를 멈추고 의자에서 일어난다.

14:00
헛간과 여가

또다시 헛간을 찾는다. 친구라고 부를 정도로 사랑한 가축들을 먹이기 위해서다. 아침과 마찬가지로 헛간에 들른 이후 식사를 한다. 오후는 가족과 보내는 여가다. 어느 날은 어머니와 누이들을 데리고 썰매를 타러 갔다는 기록에서 그의 순수함이 엿보인다. 문학인을 위한 행사가 열리는 날에는 큰 설렘을 안고 발걸음을 옮겼다고 한다.

17:00
여가

이후의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에 관한 자세한 기록은 없다. 하루를 마치고 그가 책을 펼쳐보곤 했다는 것만 알 수 있을 뿐이다. 침대에 누워 다음 날 밭과 헛간에서 할 일을 떠올렸을 것만 같다. 옥수수밭에 있는 잡초를 없애야지, 벌레 먹은 순무를 골라내야지 하면서.

표트르 차이콥스키 Pyotr Tchaikovsky

러시아의 음악가. 고전 발레 음악 중 최고로 꼽히는 작품을 썼다.
ʻ백조의 호수’, ʻ호두까기 인형’, ʻ잠자는 숲속의 미녀’ 등의 대표작이 있다.

“형님은 오후의 산책을 미신처럼 받아들이며 엄격하게 지켰다. 5분이라도 일찍 끝내면 병에 걸리고, 객관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불운이 닥칠 것처럼 정확히 두 시간 동안 산책했다.”

―차이콥스키 동생 모데스트의 말. David Brown, 《Tchaikovsky: The Final Years》

7:00
기상과 독서

러시아의 작은 마을 마이다노보Maydanovo에 산다. 7시에서 8시 무렵에 일어난다. 한 시간 동안 차를 마시고 성경과 책을 읽는다. 고요하고 안온한 장면이다.

8:00
첫 산책

하루 산책을 두 번 나간다. 첫 산책은 아침에 시작해 45분 내로 집에 돌아온다. 가벼운 운동으로 아침을 연 셈이다. 바깥공기로 맑아진 머리에 새로운 악상이 떠오르면 그는 행복과 환희를 느꼈다. 매일 반복되는 아침 의례를 마치면 피아노 앞에 앉아 작곡을 시작한다. 그가 쓴 많은 위대한 발레 작품들도 이 시간 중 탄생했을 것이다.

12:00
두 번째 산책

작업을 멈추고 점심을 먹은 뒤 다시 산책하러 간다. 날씨가 흐리든 맑든 정확히 두 시간 동안 걷는다. 차이콥스키는 이 시간을 발상이 샘솟는 귀중한 시간으로 여겼다. 악상의 씨앗은 예기치 않은 상황에서 얼굴을 내밀고, 멈출 수 없는 속도로 꽃을 피운다고 표현했다. 그에게 걷기는 창작으로 향하는 문이었다.

14:00
여가와 작곡

다시 차를 마신다. 이때는 신문과 역사책을 본다. 그 후 두 번째 산책에서 얻은 영감을 건반 위에 펼쳐본다. 작업은 두 시간 정도 계속된다. 저녁 식사를 하고 사람들과 어울려 카드놀이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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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차의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