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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많은 K씨의 일상
나의 독립 후 첫 집은 연남동이었다. 2016년부터 4년을 살다가 도망쳤다. 마당에 핏빛 자국이 번진 어느 아침, 나는 이 집과의 이별을 직감했다.
2014년에 《AROUND》 매거진 에디터가 됐다. 당시 어라운드 사무실은 서울 상암동에 있었다. 나는 경기도 수원에서 매일 새벽 기차를 타고 ‘디지털+미디어+시티’라는 미래적인 동네로 출근했다. 무궁화호 출입문 계단에 쪼그려 앉아 통근하기를 2년여, 독립을 결심했다. 계속 차가운 철제 계단에 엉덩이를 문지르며 출근하다가는 치질에 걸릴 게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내 하소연에 치질 선배인 아버지가 말했다.
“7천만 원을 주마. 미리 주는 유산이다. 동생에겐 말하지 말거라.”
그렇게 아버지와 나 사이엔 동생은 모르는 비밀이 생겼다. 7천만 원으로 셋방을 구해야 했다. 누군가 “어디 살아요?” 하고 물었을 때 부끄럽지 않은 동네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강남은 비싸고 성수는 멀었다. 남은 건 홍대뿐이었다. ‘홍대는 아무래도 힙하니까.’ 하지만 7천만 원으로 구할 수 있는 멀쩡한 집은 보이지 않았다. 날을 잡아 부동산 투어를 돌았는데, 하나같이 개성이 뛰어난 매물뿐이었다. 홍대 상권 한가운데 위치한 6층 건물 꼭대기 집은 거실 한가운데 욕조가 놓여 있었다. 부동산 중개인은 아직 임차인이 살고 있다며, 그의 취향이 독특한 것 같다고 에둘러 말했다. 나는 거실에서 거품 목욕하는 장면을 떠올리며 파리 물랭루주(가본 적 없음)를 생각했다. ‘이건 낭만이다!’ 그런데 싱크대의 물을 트는 순간 시뻘건 녹물이 터져 나왔다. 순간 핏빛 목욕물에 몸을 담근 채 생고기를 먹는 익명의 집주인이 떠올랐고, 어쩐지 그가 과격한 음악을 하는 밴드의 보컬일 거라는 데 생각이 닿았다.
두 번째 집은 조금 더 난해했다. 공원 앞 빈집을 둘러보던 중 스르륵, 창문이 혼자 움직였다. 눈앞에서 벌어진 초자연적인 현상에 나는 “이 집에 귀신이 사나 봐요.” 하고 말했고, 중개인은 이미 신발을 신고 현관 밖으로 도망간 뒤였다. 사연인즉, 집주인이 원래 하나였던 집을 두 개로 나누고 싶었다고. 그는 양쪽 모두에게 공원 풍경을 선물하고 싶은 마음에 창문 가운데에 가벽을 세웠다. 내가 문을 열면 옆집 창이 닫히고, 옆집에서 문을 열면 내 창문이 닫히는 구조였다. 하지만 나는 아직 그런 공동체를 맺을 준비가 되지 않았다. 그 외에도 곰팡이가 성인의 얼굴 모양으로 피어오른 반지하 성자의 집, 변기가 눈높이에 설치되어 있는 아방가르드 예술가의 집, 숲과 면해 있어 창틀에 날벌레 사체가 쌓여 있던 자연주의자의 집 등 그 면면이 화려했다. 그렇게 침울한 나날을 보내던 중 부동산 중개인에게서 연락이 왔다. “이번엔 멀쩡해요. 녹물도 귀신도 없어요.” 하아··· 그래, 그거면 충분하지.
연남동의 12평짜리 주택이었다. 커다란 철제 대문이 있고, 앞마당에 감나무가 자라며, 옆집과 윗집에 각각 노인들이 사는 곳. 지금이야 골목마다 미슐랭 식당이 들어선 힙스터의 동네가 됐지만, 2016년의 연남동은 빙그레우유 대리점이 있고 노인들이 골목 바닥에 완두콩을 널어 말리는 곳이었다. “이 돈으로 이런 집 구하기 힘들어요.” 중개인은 선심을 쓰듯 으스댔다. 전세 보증금 1억 1천만 원, 아버지의 유산 7천만 원을 제외한 나머지는 국민은행에서 빌렸다. 12평짜리 집에는 무려 방이 두 개나 있었다. 하나는 옷방으로 쓰고 나머지 한 곳에는 큰 침대를 두었다. 소파와 탁자를 배치하고 빔프로젝터를 설치했다. 노란 조명과 LP 플레이어도 마련했다. 그야말로 방탕하기 딱 좋은 환경이었다. 매일이 파티였다. 친구와 썸녀, 시인과 부자, 출신과 인종에 관계없이 모두 집으로 초대해 술을 마셨다. 귀가 어두운 이웃집 노인들은 아무도 내게 불평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그렇게 믿고 싶었다.
하지만 모든 호시절엔 끝이 있기 마련이다. 나를 둘러싼, 정확히는 내 집을 둘러싼 공기가 달라진 듯한 이상 징후가 보이기 시작했다. 어느 날 집을 나서는데, 집 마당에서 붉고 끈적한 핏자국을 발견했다. ‘살인인가?’ 아쉽게도 그건 감나무의 감이 떨어져 터진 흔적이었다. 살면서 감을 보며 위화감을 느끼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기에 그로테스크한 그 장면이 오래 남았다. 또 어느 늦은 밤에는 술을 마시고 집에 들어오는 길에 마당 한편에서 귀신을 마주쳤다. 순간 엉덩방아를 찧으며 나자빠졌다. 다시 살펴보니 옆집 할머니가 널어놓은 시래기였다. ‘왜 할머니는 시래기를 쉐보레 자전거에 널어놓는가? 왜 할머니는 시래기를 먹는가? 왜 할머니는 옆집에 사는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또 다른 날엔 집 앞 대문에 무단으로 버린 쓰레기가 쌓여 있기도 하고, 어느 날은 변기가 통째로 놓여 있는 날도 있었다. 거미, 꼽등이, 바퀴벌레처럼 작고 귀여운 생물들이 한꺼번에 등장해 운동회를 벌이기도 했다. (지금이야 웃지만, 당시의 나는 배꼽까지 뛰어오르는 꼽등이 파티를 보며 대성통곡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화양연화 같은 나날을 보냈는데 왜 모든 불행은 한꺼번에 찾아오는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트루먼 쇼〉 같은 관찰 카메라에 방송되고 있는 건가 싶어 주변을 둘러보는 날이 잦았다. 그렇게 신경쇠약에 걸려 하루하루를 연명하던 어느 날, 이 재미없는 쇼의 감독이 내게 카운터펀치를 날렸다. 경찰이었다. 술을 잔뜩 먹고 잠들었다가 초인종 소리에 나가보니 경찰관 두 명이 문 앞에 서 있었다. 소음이 커서 민원이 들어왔다고 했다. 마침 옷방에서 압력밥솥이 터지는 듯한 취사 음이 들려왔고, 나는 변명하듯 말했다. “친구가 코를 심하게 고네요. 뺨을 때려서 이 난리를 멈추겠습니다.” 경찰관은 코골이 때문에 신고가 들어온 건 처음이라며 난처한 듯 사건을 마무리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난 후, 또 경찰이 찾아왔다. 이번엔 윗집 할아버지가 잠든 사이에 도둑이 들었다는 거였다. 어둠 속의 범인은 할아버지가 깨어나 소리를 지르자 급하게 도망을 쳤다고 했다. “21세기에 도둑이라니, 별일이 다 있군요.” 하고 나도 모르게 실소를 터뜨렸는데, 그게 경찰관의 레이더망에 걸렸다. 경찰관은 심각한 얼굴로 내 알리바이를 캐물었다. 썸녀랑 깨져서 혼술을 했다고는 말할 수 없어 대충 둘러댔다. 경찰관은 미심쩍은 표정으로 돌아갔고, 그 뒤로 우리 집 마당엔 CCTV가 설치됐다.
그리고 마침내 세 번째 경찰을 만났을 때 나는 이 모든 일들이 기획된 관찰 쇼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 어느 주말, 이제는 반갑기까지 한 경찰관이 CCTV의 한 장면을 프린트한 사진을 내밀며 말했다. “마당에 똥을 싸고 도망간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사연은 이랬다. 주말 아침, 상쾌한 마음으로 창문을 연 옆집 할머니가 앞마당의 똥을 발견했고, 이번에도 도둑인가 싶어 경찰에 신고했다는 거였다. 한밤중 CCTV에는 누군가 담을 넘어 마당으로 들어왔고, 바지를 내려 똥을 쌌으며, 마당 벤치에 누워 잠들었다가, CCTV 사각지대로 사라지는 장면이 녹화돼 있었다. 그리고 하필 그 사각지대는 우리 집 출입문 방향이었다. 나는 미친 듯이 고개를 저었다. “아무렴 제가 술을 많이 마셨기로서니 마당에 똥을 쌌을까요? 저, 삼십 대예요. 어른입니다.” 경찰은 사진 속 인물이 하얀 티를 입고 있었다며 내 집을 수색하길 원했다. 하지만 나는 강경했다. 절대 아니라며, 언성을 높였다. ‘연남동 삼십 대 김 모 씨, 변 싼 채로 발견’ 같은 찌라시 뉴스의 주인공이 되고 싶지 않았다.
경찰관이 돌아간 뒤 나는 텅 빈 마당에 덩그러니 쌓인 똥무더기를 바라봤다. 그때 문틈으로 상황을 지켜보던 옆집 할머니가 쿵 소리를 내며 문을 걸어 잠갔고, 나는 문득 슬퍼졌다. ‘하다 하다 이제는 똥으로 억까 하는구나.’
‘미스터리 대변 사건’ 이후 나는 연남동과 이별을 준비했다. 발로 쓴 시나리오 같은 이 지긋지긋한 쇼에 더 이상 출연하고 싶지 않았다. 술병을 치우고, 그동안 신세 진 노인들에게 작별의 인사를 건넸다. 이삿짐을 빼던 날, 옆집 할머니는 골목 끝까지 함께 걸음하며 내 등을 연신 쓰다듬었다. “우리 손주 같아서 참 좋아했는데 헤어진다니까 또 아쉬워.” 나는 뭉클해진 마음에 할머니 손을 꼭 잡았다. “저희 할머니 같아서 많이 아쉬워요. 아프지 말고 따뜻하게, 건강 잘 챙기셔요.” 그러자 할머니가 나지막이 말했다.
“그런데 진짜 똥 싼 거 아니지?”
지금 생각하면 내 첫 독립은 트루먼 쇼가 아니라 그저 서툰 청춘의 시행착오였다. 마당의 핏자국은 살인 사건이 아니었고, 귀신은 그저 시래기였으며, 도둑과 똥은 나와 무관한 해프닝이었다. 그런데 왜 나는 그 모든 것들이 나를 겨냥한 음모라고 생각했을까. 아마도 그때의 나는 진짜 집을 가진 게 아니라, 집 놀이를 하고 있었던 것 같다. 빔프로젝터와 LP 플레이어로 꾸민 무대 위에서 어른 흉내를 내며, 정작 옆집 할머니의 시래기나 할아버지의 완두콩 같은 ‘진짜 삶’의 결은 생각하지 못했다. 연남동을 떠난 지 몇 년이 흘렀다. 가끔 그 골목을 지나친다. 감나무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고, 대문은 녹이 슬었으며,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안부는 알 수 없다. 그저 저녁이면 따뜻한 조명이 켜진 누군가의 집을 바라보며 선잠 같았던 한 시절을 잠시 회상할 뿐이다.
글·사진 김건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