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바다와 커피잔

바리스타 박이추

여름바다와
커피잔

바리스타 박이추

바닷가의 파도 냄새와 차가운 새벽 공기 냄새, 쨍쨍한 여름 볕 냄새와 마른 바람의 냄새. 강릉을 채우는 많은 냄새가 있다. 그중에서도 바다 위를 채운 커피 향을 좇았다. 바리스타 1세대 박이추는 강릉에서 자기만의 향을 만들고 있었다.

Interview
바리스타 박이추

“커피의 역사에 관한 어떤 책에 이런 말이 나와요. ‘맛있는 커피란 당신의 팔자와 운명을 바꾸는 커피다.’ 커피의 진심에는 그런 요소가 분명히 있어요. 커피를 마시면서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는 그 시간이 우리의 운명을 바꿀 수 있으니까요.”

선생님이 처음에는 낙농업에 관심이 많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커피에는 어떻게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 궁금해요.
제가 일본에서 태어나서 20년 가까이 그곳에서 교육을 받았어요. 그때 농장에 관심이 많았죠. 한국으로 들어오면서 공동체 협동농장을 꾸려보려고 강원도 문막에서 농장 생활을 이어갔어요. 그런데 문득 도시 생활이 그리워지더라고요. 일본 도쿄로 넘어가 커피를 배웠죠. 처음 3~4개월 정도는 세미나에 참석하다가, 학원에서 10개월 정도 수업을 들었어요. 커피와 관련된 가게를 시작하려고 했죠. 그런데 목장 일보다 커피에 대해 알아가는 게 더 어렵다는 걸 알게 됐어요. 쉬운 게 없더라고요. 그렇게 1988년에 서울 대학로에서 3년간 카페를 운영하다가, 고려대 후문의 지하에서 10년을 있었어요.

‘바리스타 1세대’라는 수식어만큼, 로스팅 커피의 정착을 돕던 시간이네요.
사실 커피를 공부했지만, 제 기술력이 좋지 않다는 것을 점점 알아가던 시간이기도 했어요. 제가 만든 커피의 고유한 맛이 난다기보다는 그냥 커피 맛이 나는 느낌이 드는 거죠. 그래서 공부가 더 필요하다고 느끼기도 했고요. 

혜화에서 3년, 고려대에서 10년을 보내는 동안 로스팅 커피 문화를 갓 접하기 시작한 청년을 많이 만났을 것 같아요.
그렇죠. 그 당시에 고대 지하에서 커피 교실을 열기도 했어요. 2000년도 되기 전이니까, 1997년, 1998년 즈음 같아요. 한 달에 한 번 커피 스터디를 열며 회원 모집을 해서 5년 정도 운영했죠.

그 뒤에 강릉으로 오신 건가요?
서울 생활에 염증이 좀 났어요. 사람들 틈에 있다 보니 조금 멀어지고 싶더라고요. 당시 강릉은 지금이랑 분위기가 달랐어요. 지금은 KTX도 개통됐지만 그때는 서울에서 좀 거리감이 있었거든요. 강릉이 좋겠더라고요. 옆에 양양도 있고, 연어 축제도 열리고요. 제가 연어를 좋아하거든요.

도쿄에서 커피를 배웠다고 하셨어요. 당시 일본과 한국의 커피에 대한 관심에 차이가 있었을까요?
80년대 한국에서는 커피를 공부할 수 있는 곳이 없었어요. 일본은 그때 커피 관련해서 인재 양성에 관심이 있는 상태였고요. 그래서 관련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수업이나 기관이 조금씩 생겨나고 있었죠.

그렇게 공부와 경험으로 체득한 것을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가르치시기도 하셨죠?
2000년도 2학기에 단국대학교에서 커피 전문 학과를 개설했어요. 서울 단국대학교와 천안 단국대학교에서 지도교수로 수업을 했어요. 나중에는 강릉 원주대학교까지 세 곳에서요. 지금은 커피 아카데미에서 강사로 수업을 하기도 해요.

보통 첫 수업에서는 무엇을 가르치시나요?
커피의 분류를 제일 먼저 설명해요. 각 커피를 감별하는 감각과 기술도 중요하기 때문에 종류에 따른 커피콩을 볶는 방법도 가르쳐주고요. 커피 메뉴의 다양성도 알려주는데, 에스프레소 추출도 같이 해봐요. 한 수업에 세 시간 정도 진행이 돼요. 

로스팅 커피가 처음 들어온 시기에는 커피 배우는 일을 낯설어하는 사람들도 많았을 것 같아요.
신기해하면서 어려워했던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는 접근할 수 있었지만 수료증을 발행하는 곳이 없었거든요.

소비자들도 그랬겠죠?
그랬죠. 각자 취향에 맞는 커피를 찾아가면서 점점 보편화됐지만요.

강릉이 아주 빠르게 변했어요. 도시에서 강릉으로 새로운 터전을 마련하는 사람들도 생겼고요. 조금씩 북적거리기 시작했어요.
옛날에는 여름에 수영을 하러, 겨울에는 스키를 타러 사람들이 모여들었어요. 사람들이 온다고 하면 주로 여름과 겨울에 몰려 있던 거죠. 그래서 봄과 가을은 크게 북적이지 않았어요. 점점 시간이 흐르면서 강릉의 아름다움이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지고, 작년에는 KTX도 개통되면서 강릉에 간다고 할 때 다양한 의미가 생긴 것 같아요. 2010년도 넘어서부터는 커피를 마시기 위해 강릉에 간다는 맥락이 생기기도 했고요. 90년대에는 아무 뜻 없이 커피를 마셨다면, 2000년대 들어서면서 커피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아졌어요. 다르게 비유를 해보자면, 마시는 사람이나 장사하는 사람이나 사람들이 커피에 다가가면 커피가 멀어진 거예요. 그런데 지금은 사람이 다가가면 커피도 같이 이끌려 다가와요. 서로 이끌림의 강도가 점점 세지기 시작한 거죠. 사람이 발전하고 지역이 발전하면서, 커피도 함께 발전했어요. 

커피를 마주하는 사람들이 갖춰야 할 자세도 있을까요?
사람들이 왜 커피를 마시는지에 대해서는 잘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요. 커피 한 잔의 가치를 잘 모르는 것 같거든요. 커피를 마시면서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거죠. 이 커피가 맛있다고 감각하고 생각하는 데에서 그치는 게 조금 안타까워요. 커피는 그런 평가 이상의 것을 인간에게 주거든요. 돌이켜 보면 커피를 마시면서 느끼는 평온은 자신에게 내재되어 있는 평화에서 오는 걸 수도 있어요. 커피는 그저 그것을 느끼게 해주는 매개일 뿐이고요. 커피를 마시는 사람의 상태와 마음가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거예요. 그걸 깨닫지 못하는 것 같아요. 

커피를 마실 때만큼은 그런 행복을 돌이켜 볼 수 있을 텐데도 거기까지 미치지 않는 것 같아요.
커피의 역사가 상세하게 적힌 어떤 책에 이런 말이 나와요. ‘맛있는 커피란 당신의 팔자와 운명을 바꾸는 커피다.’ 물론 사람들은 믿지 않겠죠. 맛에만 집중하니까요. 하지만 커피의 진심에는 그런 요소가 분명히 있어요. 커피를 마시면서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이 우리의 운명을 바꿀 수 있으니까요. 그 시간을 느끼는 게 중요하죠.

커피는 아침, 오후, 저녁, 새벽 모든 시간과 어울리는 유일한 음료처럼 보이기도 해요. 어떤 시간의 커피를 가장 좋아하시나요?
아침을 가장 좋아해요. 

역시 모닝커피가 제격이죠.
그렇죠. 그런데 빈속에 마시는 모닝커피보다는 아침 식사 후에 마시는 커피가 좋아요. 정신이 쌩쌩한 상태에서 커피를 마시면 조금 더 개운하거든요.

보헤미안의 커피 중 가장 좋아하는 커피는 무엇인지 궁금해요.
‘하우스 블렌드House Blend’요. 콜롬비아, 과테말라, 케냐, 브라질, 네 가지 커피가 섞인 거예요. 맛과 향이 잘 배합된 이 커피를 제일 좋아해요.

커피콩을 너무 많이 볶으면 쓴맛이 나기도 해요. 로스팅할 때 가장 중요한 점은 무엇일까요?
보통 커피를 오래 볶아온 사람들은 콩의 색 변화를 잘 알아차려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볶아야 하는지는 콩 종류마다 다르거든요. 단순한 색 변화가 아니라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변했느냐가 중요해요. 콩 볶는 게 전부 비슷해 보이겠지만 사실 다 다르거든요. 변화의 정도에 따라 맛도 달라지고요. 관찰할 수 있는 눈이 필요한 거죠. 시간도 중요하겠지만, 콩이 어떤 종류인지도 잘 알아야 해요. 감각만큼 기본 지식도 중요하겠죠.

강릉과 커피의 공통점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수수께끼랄까요. 강릉도 커피도 좀처럼 정확한 말로 표현하기 어려워요. 이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는 것처럼, 커피도 어떻게 나아갈지 알 수 없죠.

바리스타라는 직업이 잘 알려지지 않던 시절에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데 어떤 어려움이 있었을까요?
기술적인 것에서 해결책을 찾는 일이 어려웠어요. 직업을 바꾸고 싶을 때도 있었거든요.

이직이요(웃음)?
그렇죠. 결코 쉽지 않아요. 그렇게 어려운지는 사실 그때는 몰랐어요. 시간이 흐르는 동안 그때마다 커피에 집중하려 노력했고, 그냥 그렇게 시간이 흘렀을 뿐이에요.

사실 바리스타의 전문성을 인정받는 데 시간이 걸리기도 했죠.
그렇죠. 그땐 로스팅 커피를 만들 때, 커피 전문점보다는 다방 개념으로 오해를 받기도 했어요. 세월이 가면서 커피의 중요성을 인정받고, 커피 산업도 많이 발전했죠. 보편적인 인식도 훨씬 나아졌고요.

경제가 어려워진 만큼 저렴한 비용으로 유일하게 누릴 수 있는 문화는 커피뿐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커피를 활용하는 방법에 관한 이야기인 것 같아요. 그런 활용법이 옳은지 틀린지는 커피를 활용하는 사람에게 달려 있을 거예요.

화요일마다 서울에 가신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2주마다 올라가고 있어요. 2년 전에 상암동 MBC에 카페를 오픈했는데요, 직원이 일곱 명 정도 있어요. 강릉에서 볶은 콩을 계속해서 서울로 보내고 있지만 직접 가서 커피를 볶아요. 커피도 만들고 관리도 하죠.

아직까지 현역으로 활동하고 계세요. 오랜 시간 한 가지에 열중하는 건데, 아직도 즐거우세요?
몸이 좀 힘들어요. 1988년에 가게 시작한 뒤로 2018년이 되었으니 30년이 흘렀잖아요. 계속해서 콩을 볶고 추출하는 일을 하면서요. 손목도 조금 아파요. 요즘에는 다시 땅과 맞닿는 일에 관심이 높아져서 고구마 농사도 짓고, 라오스에 대략 2만제곱미터 정도의 땅을 빌려서 직접 커피콩을 재배해보려고 해요. 4년 뒤에야 수확할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커피 한 잔이 만들어지는 모든 과정에 참여하시는 거네요.
좋아하니까요. 정말 좋아하니까 계속하는 거예요. 생산을 확장하고 싶은 마음이라기보다는요.

이곳으로 오는 길에 택시기사님께 선생님 성함을 말씀드리니 바로 이곳으로 오시더라고요. 강릉에서 모르는 분이 없으신 것 같아요.
워낙 많은 사람들이 강릉 커피를 좋아해서 이곳으로 많이 오니까요. 커피 축제가 활발하게 진행되면서 커피에 관한 관심이 더 높아진 것 같아요. 그렇게 사람들에게 가까워질 수 있지 않았나 싶어요.

주변 카페들은 프랜차이즈 브랜드로 넘쳐나고 있어요. 커피의 기업화라고 볼 수 있겠죠. 어떤 사람들은 그만큼 커피를 다루는 소명의식이 부족해졌다고 우려를 표하기도 했어요.
커피는 소비자들의 선택이에요. 각자 취향에 맞춰서 고르면 돼요. 자신의 주머니 사정에 따라 판단하는 거죠. 무엇이 더 좋고 안 좋고의 문제라고 말할 수는 없어요. 다만 그런 카페의 소비가 멈춰질 때 그 가게는 살아남을 수 없잖아요. 소비자가 없으면 사라지는 거예요. 카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커피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어요. 다른 이야기인데, 커피를 안 마시면 집을 살 수 있다, 이런 말이 있더라고요(웃음). 커피 한 잔 아껴서 집을 살 수 있냐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작은 액수가 쌓여서 큰 금액이 되니까요. 이렇게 커피는 결국 소비자의 선택에 달려 있어요. 

커피를 즐기는 사람들의 세대가 점점 낮아지고 있어요. 저는 중·고등학교 때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지 않았는데 요즘엔 카페에서 자주 중·고등학생을 볼 수 있어요.
아이들의 현실에서 현재 음료수는 만족을 못 시키는 거죠. 커피는 아이들에게 아주 새로운 문화처럼 보일 거예요. 호기심이 발동하겠죠. 미디어에서 커피를 다루는 모습을 한번 보세요. 우아하고, 여유롭고, 부족한 걸 채워주는 것처럼 보이잖아요. 

선생님도 밖에서 커피를 드세요? 수많은 커피를 마셨을 것 같은데, 만족스러운 커피가 있었는지 궁금해요.
가끔 가다 발견해요. 아주 맛있는 커피를요. 세상에 있다는 게 고마운 커피죠. 예전에 일본에 갔을 때 마신 커피는 제가 직접 만든 커피보다 훨씬 맛있더라고요(웃음). 아주 인상적이었죠.

그런 커피를 맛보면 기분이 어떤가요?
저에게 부족한 게 무엇인지, 기술적으로 무엇이 모자라는지 생각하게 되죠. 반성을 하게 돼요.

아직도요?
언제나요. 욕심이라기보다는 그냥 자연스럽게 느껴져요. 더 잘하고 싶거든요. 

아메리카노에 시럽을 넣어 마시는 걸 보면서 “그건 진짜 커피가 아니야.”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진짜 커피가 따로 있는 걸까요?
커피를 마실 때 취향을 존중해야 하겠지만, 사실 커피 본연의 맛을 먼저 느끼고 무언가를 점점 추가해가는 것이 좋아요. 커피를 느끼는 바람직한 방식이랄까요? 

커피 공장은 어떻게 운영되고 있나요?
저기 보이는 기계들이 전부 로스팅하는 기계예요. 5킬로그램, 10킬로그램, 30킬로그램, 60킬로그램짜리 기계가 있어요. 여름에는 아이스 커피가 제일 인기가 많아요. 쇼핑몰에서 주문받아서 볶은 콩을 보내기도 하고요. 앞으로 개발하고 싶은 건 드립백 커피예요. 사람들이 일상에서 편안하게 커피를 느낄 수 있도록요.

보헤미안은 자유를 상징해요. 카페 이름을 보헤미안으로 지은 이유가 있나요?
이름은 커피를 함께 연구하던 다른 사람이 지어주었어요. 원래 이름은 ‘인터내셔널 커피 하우스 보헤미안International coffee house bohemian’인데 줄였어요. ‘보헤미안’은 어디에도 구속받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죠.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면서 발전해 나가요. 그런 자유로운 사상으로 자신을 행복하게 만드는 지혜를 베풀면서 생각을 행동으로 바꾸는 거예요. 저도 일본에서 한국으로 왔잖아요. 그리고 국내에서도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고요. 그런 부분이 좀 겹치죠. 그리고 실제로 제가 일본에서 가출을 두 번 했었어요(웃음).

행동파시네요.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해요.
앞으로는 보헤미안을 경영하면서 조금 더 즐겁게 개발을 하고 싶어요. 

저의 마지막 질문이 있어요. ‘세상에는 000이 너무 많다.’에서 빈칸을 채워주세요.
‘판가름’이 너무 많다. 진심이냐 아니냐, 가짜냐 아니냐, 정상이냐 비정상이냐를 판가름하는 일이 너무 많은 것 같아요.

보헤미안박이추커피
A. 강원도 강릉시 사천면 해안로1107
H. bohemian.coffee
T. 033 642 6688
O. 매일 09:00~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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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이자연

포토그래퍼 박은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