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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성공적인 여행 실패기
여행은 나라에서 허락한 유일한 마약이다. 음악도 산책도, 심지어 냉면마저도 나를 온전히 쉬게 하지 못한다. 오래 다니던 회사를 퇴사한 후 휴식이 필요한 내가 선택한 곳은 스페인이다.
건방지게도 나는 존경하는 사람이 없다. 세종대왕도 신사임당도 2022년의 나에겐 그저 화폐에 새겨진 얼굴에 불과하다. 그런 와중에 내가 위인이라고 생각하는 단 한 사람이 있었으니, 150년 현대 축구 역사의 올타임 레전드, 살아 있는 전설, 어떤 수식어로도 형용할 수 없는 이름, 아르헨티나 축구 선수 리오넬 메시다. 메시는 1987년생 토끼띠로 나보다 한참 동생이지만, 그는 나에게 형님이자 선생님이며, 역사이자 종교다. 그런 그를 역사이자 신념이며 종교다. 그를 만나기 위해 바르셀로나행 비행기에 오른 것은 일종의 계시나 다름없었다.
짐은 30리터짜리 작은 배낭에 옷 두 벌과 카메라 한 대가 전부였다. 그마저도 공간이 남아 읽지도 않을 시집을 세 권이나 챙겼다. 목적이 단순할수록 짐은 작아지기 마련이다. 스페인을 여행하는 이유가 딱 그 가방의 크기만 했다. 축구팀 FC바르셀로나의 공격수 메시를 보는 것. 그의 플레이를 직관하며 ‘메시아!’라고 크게 불러보는 일. “아르헨티나 사람을 만나기 위해 스페인에 간다는 건 조금 우스운 일이지 않아?” 메시 외에는 어떤 계획도 세우지 않았다는 내게 친구는 말했다. “너는 스페인을 낭비하는 거야.” 그의 말에도 일리는 있었다. 하지만 어떤 꿈이든 유통기한이 존재하는 법이다. 30대에 접어든 메시가 은퇴 후 박물관으로 들어가기 전에 경기장에서 살아 움직이는 그의 플레이를 보고 싶었다. “너도 체 게바라를 만나러 쿠바에 갔잖아. 그가 아르헨티나 사람인 건 알고 있지?” 친구는 입을 다물었다.
열여덟 시간의 비행 끝에 바르셀로나에 도착했다. 서울에서 모스크바를 거쳐 바르셀로나에 닿는 동안 아침은 밤이 되었고, 겨울은 가을이 되었으며, 나는 여덟 시간 뒤의 시차를 사는 사람이 되었다. 숙소로 가는 택시에서 기사는 바르셀로나의 아름다움에 대해 한참을 떠들었다. 특히 가우디의 건축물 앞에서 조금 흥분한 듯 보였다. 만약 내가 스페인어에 능숙했다면 그는 아주 훌륭한 가이드였겠지만, 이번 여행을 위해 내가 익힌 로컬 언어는 “올라, 그라시아스, 떼 아모.”뿐이었다. 조금 과장되게 말하자면 인사와 감사 그리고 사랑으로도 충분히 훌륭한 여행을 할 수 있다고 믿었다.
메시의 경기 전까지 아무런 계획이 없던 나는 바르셀로나의 낮과 밤을 하릴없이 걸었다. 카탈루냐 광장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다. 사람들의 옷차림과 걸음걸이, 머리를 넘기는 방향이나 담배를 피울 때 어떤 호흡으로 연기를 뿜는지 같은 것들을 지켜봤다. 바르셀로네타 해변에서 발가락으로 모래를 들었다 놨다를 반복했고, 스페니시 기타를 연주한 버스커에게 동전을 건넸다. 한 무리의 미국인 관광객 사이에서는 시집을 읽는 척 가이드의 공짜 설명을 듣기도 했다. 밤에는 아르헨티나(메시의 국적) 식당에서 스테이크와 맥주를 마셨다. 여독이 풀리지 않아 금세 취기가 돌았다. 평소였다면 더 많은 술을 찾아 떠돌았겠지만, 스페인 밤거리의 악명을 들은 터라 일찌감치 숙소로 복귀했다. 창밖으로 ‘레알 마드리드(마드리드 연고의 축구팀으로 FC바르셀로나와 라이벌이다.)’를 연호하는 무리가 지나갔다. 나는 창문을 조금 열고 “비스까 엘 바르샤(바르셀로나 만세)!”를 외쳤다. 그러다 턱수염을 명치까지 기른 남자와 눈이 마주쳤고, 위험을 직감한 미어캣처럼 동물적인 감각으로 창문 아래 몸을 숨겼다.
바르셀로나에 도착한 후로 거의 매일 밤 타파스 바를 떠돌았다. 타파스 바는 다양한 안주를 작은 그릇에 담아 내오는 선술집으로, 새로운 친구를 사귀기에는 더없이 좋은 장소였다. 바르셀로나 사람들과 친구가 되는 방법은 두 가지였다. 메시를 찬양하거나 호날두를 욕하거나. 타파스 바에서 만난 마테오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마드리드 연고의 또 다른 축구팀으로 레알 마드리드와 라이벌이다.)의 신봉자로, 메시를 보러 간다는 나를 ‘형제’라고 불렀다. “레알 마드리드의 적은 나의 친구!” 우리는 공공의 적 호날두를 오징어처럼 씹으며 맥주를 들이켰다. 헤어질 무렵 그는 바르셀로나에서 가장 맛있다는 하몽 집의 주소를 적어주며 자신의 이름을 말하면 멋진 서비스를 받을 거라고 덧붙였다. 멋진 친구도 사귀고 스페인에서 가장 맛있는 하몽을 먹을 수 있다니, 모든 게 완벽해 보였다. 다음 날 나는 마테오의 인생 하몽을 찾아 골목을 누볐다. 그러나 그가 알려준 주소에는 하몽 집 대신 구두 상점이 있었다. 몇 번을 기웃거린 끝에 나는 겨우 이렇게 말할 뿐이었다. “혹시 저기 쌓여 있는 게 하몽인가요?” 하비에르 바르뎀을 닮은 상점 주인이 대답했다. “저건 싸구려 돼지고기가 아니라 납작하게 손질한 버펄로 가죽이오.” 그는 웃음기 없는 얼굴로 다시 말했다. “배가 고파서 그러는 거요?”
말마따나 ‘싸구려 돼지고기’를 위해 몇 시간을 헤맸지만 아무것도 건진 게 없었다. 생각해 보면 내가 마테오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그가 지독한 곱슬머리라는 것과 하몽을 ‘Jamon’이 아니라 ‘Hamon’으로 적었다는 것뿐이었다. 토마토소스가 묻은 메모지에 아무렇게나 적은 주소만으로 하루를 날렸다고 생각하자 문득 나 자신이 대견하게 느껴졌다. ‘아무렴 바닥을 헤매는 게 여행이지.’ 자기합리화의 대가답게 그런 생각을 하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대신 마트에 들러 하몽과 와인을 한 병 사 들고 벙커에 올랐다. 벙커는 스페인 내전 당시에 사용됐던 군사 기지로, 언덕 꼭대기에 자리해 있어 도시의 야경을 보기에 제격이었다. 저녁놀을 배경 삼아 키스하는 커플들 사이에서 나는 쭈구리처럼 앉아 도시가 붉게 물드는 광경을 찬찬히 지켜봤다. 아련한 분위기에 휩쓸려 와인 한 병을 순식간에 비웠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바르셀로나 응원가가 들려오기 시작했고, 술에 취한 스페인 청년들을 따라 메시의 응원가를 불렀던 게 화근이었다. 패기 넘치는 청년들과 함께 싸구려 와인을 나눠 마신 뒤, 벙커를 내려와 골목 구석구석 자리를 옮겨 가며 술을 마셨다. 노래 부르고, 춤을 추고, 바지에 맥주를 쏟고, 토하는 스페인 친구의 등을 두들겼다. 그리고 기억은 딱 거기까지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간신히 눈을 떴을 때 나는 침대 위에서 머리를 감싸 쥐고 뒹굴고 있었다. 온몸에는 멍 자국뿐이었다. 내게 남은 건 오직 숙취 하나였다. 정말이지 그것뿐이었다.
“핸드폰을 잃어버렸어요. 아니, 도둑맞았어요. 지갑도요.” 나는 전화하는 시늉을 하며 ‘스톨른’을 반복했다. 머리가 반쯤 벗겨진 경찰관은 이런 상황을 수천 번쯤 반복한 사람처럼 심드렁한 표정으로 폴리스 리포트를 내밀었다. 보험금을 위한 증빙 서류였다. “나는 지금 당장 핸드폰을 찾아야 해요. 그 안에 예약 번호가 있다고요. 메시를 만나야 해요. 제발. 제발. 제발.” 경찰관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동료에게 빠른 카탈루냐어로 말했다. 아마 이런 식이었을 것이다. “글쎄, 이 중국인이 핸드폰을 잃어버렸다는데 지금은 메시의 이름을 부르며 울고 있어. 대체 뭐라는 거야?”
그래서 어떻게 되었느냐고? 결론적으로 나는 메시를 만나지 못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경기장 앞까지 갔지만 지갑을 잃어버린 나는 두 배 이상 오른 암표 가격을 감당할 수 없었다. 그날 메시는 해트트릭을 기록했고, 여행은 그걸로 끝이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 마지막으로 벙커에 다시 올랐다. 노을과 함께 바르셀로나 공식 스폰서 맥주를 마셨다. 또 어디선가 바르셀로나의 응원가가 들려왔지만 애써 반응을 참았고, 다만 조금 울었다. 허탈한 눈물과 헛웃음이 공존하는 밤, 이상한 일이지만 나는 그 광경이 썩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한국에 돌아와 다시 만난 친구는 나의 여행담을 듣자 실패한 여행이라며 한참을 비웃었다. 맞는 말이다. 어렵게 시간을 내어 떠났지만 메시를 만나지 못했으니 여행은 실패다. 하지만 떠나기 전 친구의 말처럼 내가 스페인을 낭비했느냐 생각해 보면 그건 모르겠다. 열여덟 시간의 비행 끝에 만난 유쾌한 택시 기사, 이름 모를 광장의 사람들, 무심코 들어간 식당에서 찾은 메시의 친필 사인, 벙커의 빛나는 저녁, 새로 사귄 친구들이 남았으니까. 무엇보다 나는 이제 공식적으로 소매치기를 당한 여행자가 되었고, 아주 오래도록 그 경험을 추억 속에서 우려먹을 것이기 때문이다. 자책골을 넣어 패배한 기분이지만 기억에 남는 것들이 있으니 그걸로 됐다. 나는 비록 실패했지만··· 메시가 승리했으니 그걸로 충분하다(울먹).
글·사진 김건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