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알던 놀이터

드문드문 떠오르는 기억

언젠가 알던
놀이터

지금은 사라져버린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어린 나를 앨범 속에서 보았다. 드문드문 떠오르는 기억을 헤집어 몇 가지 놀이터를 기억해냈다.

웃고 있는
놀이터

얼마 전, 누군가 “사람은 변할까 아니면 변하지 않을까?”라고 물었다. 머뭇거리다가 답을 하지 못했다. 둘 중 하나를 고르라는 질문은 때로 짓궂다. 아이에게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라고 묻는 어른들의 표정을 떠올리면 알 수 있다. 반면 “사람은 죽어도 안 변하지.” 혹은 “세월이 많은 걸 변하게 하잖아.”라고 빠르게 답을 달면 어쩐지 게으른 답처럼 느껴진다. 짓궂지도 않고, 게으르지도 않은 답이 뭐가 있을까, 망설이다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고향집에 내려와 앨범을 봤다. 사진 속의 어린 내가 신기했다. 지금도 갖고 있는 눈코입이 더 작은 모양으로 붙어있지만, 낯선 표정을 짓고 있었다. 분명 나인데 왜 나 같지 않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이런 얼굴이 어딘가 남아있으면 좋겠네.’ 싶었다. 사진을 한 장씩 넘기다가 뒤늦게 “사람은 변할까 아니면 변하지 않을까?”에 대한 답이 떠올랐지만, 질문한 이에게 알리지는 않았다. 이 얘기를 꺼내면 짓궂거나 게으른 이야기를 다시 시작해야 할 것 같았다.

그나마
안전한 놀이터

그 시절, 나는 잘 넘어지는 아이였다. 계단에서 굴러떨어져 눈썹을 꿰맨 흔적, 화단에서 넘어진 뒤에 꿰맨 턱 밑 상처, 아파트 현관에서 넘어져 생긴 무릎의 자국…. 그런 것들이 아직도 내 몸 어딘가에 볼록하게 나와 있다. 기억을 온통 잃는다고 해도 대충 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 몸에 흉터가 많다. 엄마가 “나중에 커서 흉터 남으면 어떡하지.”라고 말하던 날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엄마는 내가 집을 나설 때마다 멀리 가지 말고 집 앞 놀이터에 가서 놀라고 했다. 부엌 창문에서 보이는 놀이터가 있었는데, 엄마는 주로 부엌에 서있었기에 눈에 보이는 곳에 내가 있기를 바란 것 같다. 놀이터에는 모래가 있어서 아스팔트나 방바닥보다는 안전한 편인 이유도 있었을 거다. 나는 어디에서든 잘 넘어지는 아이였지만, 또 누구보다 잘 노는 애이기도 했다. 넘어지는 일은 아랑곳하지 않고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고, 모래로 기발한 놀이를 만들어내기도 했었지. 그 시절 사진을 보다 보면 나는 지금도 그런 사람일 거라고 믿고 싶어진다. 사라지지 않은 흉터들처럼 어떤 얼굴은 내게 아직도 남아있길 바랐다.

눈이 오든
비가 오든 놀이터

앨범을 보고 며칠 뒤, 일본에 갔다. 호텔 방에는 창이 있었고 창밖으로 어느 학교의 운동장이 보였다. 뛰어노는 아이들이 보였고, 그 모습을 한동안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어느 새벽에는 일찍 깨어 창 앞 소파에 앉았다. 비가 많이 오니까 아무도 없겠지, 하면서 같은 운동장을 내려다보는데 우산을 쓰고 걷는 아이가 보였다. 비가 오든, 눈이 오든, 그걸 맞으며 무엇인가 하는 마음에 대해 잠시 생각했다.

잘 기억나지 않지만, 엄마가 하도 얘기해줘서 기억하는 일처럼 떠오르는 추억이 있다. “너는 폭설이 내린 날도 놀이터에 가겠다고 우는 애였어. 정말이지 징글징글했다.” 엄마는 그런 나 때문에 힘들었을지 모르겠지만, 요즘은 눈이 오든 비가 오든 나가 놀자고 해주는 이가 있으면 좋을 것 같다. 식상한 답변만큼이나 게으른 어른이 되어가는 것은 아닐까.

눈앞에서
사라진 놀이터

대학생 때, 자취방 근처에 자주 가던 놀이터가 있었다. 막 사귄 남자친구와 그 놀이터 벤치에 자주 앉아있었고, 동네 친구와 뺑뺑이를 타고 어지러워 모래 바닥에 드러눕기도 했다. 놀이터에서 놀기에 나는 너무 컸지만, 거기에 가면 어떤 일을 잊어버릴 수 있었다. 오랜만에 그 근처를 지나다가 놀이터가 사라진 걸 발견했다. 공원을 조성한다고 다 부수고 공사 중인 그 터에는 이리저리 찌그러진 철골들만 놓여있었다. 서운한 마음으로 근처를 서성였지만 울 정도의 기분은 아니었다.

변하지 않았으면 하는
놀이터

사진 몇 장을 가방에 넣어 서울로 올라오는 길, 어떤 부분이 변하고 변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아직도 이어갔다. 그 질문을 한 사람이 원망스러워질 지경이었다.

사진 속의 어린 나는 아무 말도 없었는데, “네 좋은 점은 여전히 네게 있어.”라고 말해준 것 같다. 앨범 속에서 그 이야기를 들려준 게 다른 누가 아닌 ‘나’라는 사실이 안심이 된다. 물론 가끔 증인도 있다. “엄마, 나는 지금도 사랑스럽고 귀여운 아이지?” 하면 조금 놀란 얼굴로 “그럼, 여전히 사랑스럽고 귀여운 아이지.” 말해주니까. 안심하고 속아도 될 거다.

그나저나 자꾸 옛 사진을 꺼내 서울로 갖고 오고, 질리도록 보고 난 뒤에 다시 앨범에 끼워놓는 것을 반복했더니 이제는 제자리를 찾는 일이 어렵다. 엄마가 이 앨범을 처음 샀을 순간을 그려봤다. 내가 놀이터에 나가 놀거나 낮잠을 자고 있으면, 엄마는 앨범을 열었겠지. 먼 훗날의 내가 이 사진을 보며 좋아할 모습을 그리면서, 맨 처음 인화한 사진을 조심스레 앨범에 끼웠을 거다. 그 다음 인화한 사진을 넣고, 그게 모자라니 또 다음 앨범을 사고, 그렇게 내 사진으로 채워진 앨범이 여러 개다. 언젠가 날을 잡고 엄마와 함께 시간의 순서를 찾아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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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박선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