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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A’S HOMEGROUND
어쩌면 당연히
맛있을 수밖에 없는 요리
인스타그램에서 요리사로 보이는 한 여자를 발견했다. 틈틈이 그녀가 무엇을 하는지 지켜봤다. 어떤 날엔 시장에서 산 것의 가격을 적기도 했고, 또 어느 날엔 요리에 대한 팁을 적었다. 출장요리나 케이터링을 나간 날에는 만든 음식을 찍어 올렸다. 일하던 식당을 그만둔 겨울부터 지금까지 혼자 무엇인가를 해나가는 과정을 기록하고 있었다. 처음엔 ‘그렇구나.’라는 건조한 감상으로 지켜봤지만, 어느샌가 그로부터 소리 없는 응원을 받았다는 걸 알아차렸다. 정사각형 프레임 밖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어 그녀의 ‘HOMEGROUND’에 찾아갔다.
INTERVIEW 안아라
집이 예뻐요.
대학 때부터 계속 살던 곳이에요. 7년 정도 되었어요. 고양이들도 그때부터 이 집에서 같이 살았고요.
전에 식당을 차릴 장소를 구하러 다니는 걸 봤어요. 자리는 구한 거예요?
겨울에 알아보러 다녔는데 매물이 별로 없더라고요. 그때가 식당에서 2년간 일하다 그만둔 직후였거든요. 쉴 틈 없이 바쁘게 일했으니까 일단 쉬고 날이 따뜻해지면 다시 찾아보기로 했죠.
날이 따뜻해졌는데 아직 식당을 열었다는 소식을 못 들었어요.
중간중간 일이 들어와서 계속 미뤄지고 일단은 집 부엌을 고쳐서 사용하고 있어요. 2년간 매일 요리를 하다가 안 하니까 손도 굳는 것 같아서, 식당을 차릴 때까지 집에서 연습이나 하자는 마음으로 공사를 했죠. 거창한 것은 아녔고, 중고 싱크와 오븐, 선반을 달았어요.
가게는 못 구했는데 ‘HOMEGROUND’라는 이름은 있네요.
어느 날, 친구를 만났는데 식당을 시작했느냐고 묻는 거예요. 제가 꿈에 나왔는데 ‘GROUND’라는 이름으로 식당을 하고 있었대요. 생뚱맞았는데 그 이름이 자꾸 생각나는 거예요. 가게를 구할 때까진 집에서 요리를 하기로 했기 때문에 ‘HOME’이란 단어를 붙여봤는데, 마음에 들더라고요. ‘근거지, 본거지’라는 뜻을 가진 ‘HOMEGROUND’라는 단어가 있잖아요.
그 이름으로 출장요리나 케이터링을 진행하고 있는 거죠?
맞아요. 집에서 요리를 하면서 그걸 기록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가게 를 구할 때까지 집에서 요리하면서 그 과정을 SNS에 올렸죠. 전에 식당에서 일할 때 와주셨던 손님이나 주변 분들이 그런 것을 보고 조금씩 일을 주었어요. 그렇게 출장요리나 케이터링을 하게 되었고, 기록하면 그걸 보고 또 연락을 주시는 분들이 생기더라고요.
저도 그걸 보고 연락하게 되었어요. 성실하게 기록하는 모습이 보기 좋더라고요.
처음엔 식당을 차리기까지의 과정을 보여줄 생각이었어요.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싶은 것도 사실 있었죠. 하지만 무엇보다 동기부여가 되더라고요. 식당을 나와서 몸담던 곳이 사라지니 불안했거든요. 게을러지기도 했고요. 인스타그램을 활용해 하고있는 것을 기록했어요. 그걸 공감하고 응원해주시면 저는 또 힘을 얻었죠. 지켜봐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자극이 되어주더라고요.
출장요리와 케이터링은 어떤 순서로 진행되나요?
우선, 둘 다 사전 미팅을 진행해요. 의뢰를 해주시면 예산, 인원, 연령대, 행사의 취지 같은 것에 대한 얘길 나눠요. 회의가 끝난 후에 정해진 예산 안에서 코스를 짜고 메뉴를 보내드리고요. 출장요리는 조리할 수 있는 환경을 확인한다는 점이 추가돼요. 케이터링은 집에서 작업을 하고 현장에선 조립하는 형태고요.
작은 규모에서 큰 규모까지 신청을 받는다고 안내가 되어 있던데, 그 규모라는 게 어느 정도인가요?
집이나 모임에 대한 부탁도 들어오긴 하는데, 지금은 공식적인 장소에서 하는 행사만 진행하고 있어요. 비용은 30만 원 정도에서 시작되고, 인원의 제한은 100명까지요. 생각하시는 예산에 따라 변동 폭이 커요.
식당에서 일할 때와 환경이 달라서 오는 어려움도 있을 것 같아요.
식당에선 막 나온 따뜻한 음식을 냈는데, 케이터링은 몇 시간 전에 만든 것을 예쁘게 보이도록 내놓아야 하니 아쉬울 때가 많았어요. 제 입엔 다 맛없게 느껴져서 스트레스도 받았고요. 그래서 자꾸 손님들 드시는데 옆에 가서 “따끈할 때 먹으면 더 맛있는데.” 이런 얘길 하곤 했죠(웃음). 다행히 다들 맛있게 드셔주셔서 위안을 삼고 있어요.
그간 진행했던 출장요리나 케이터링 중에 기억에 남는 일이 있나요?
그릇을 모으는 취미가 있는 작가분이 있었어요. 십일조처럼 수입의 일부를 그릇을 사는데 쓰셨다는데, 작업실 오프닝 행사에 그릇에 어울리는 음식을 담아달라고 하셨어요. 재미있더라고요. TWL이라는 브랜드와의 행사도 그랬어요. 일본 도자기에 한국 음식을 담아주길 원했는데, 고민이 많았죠. 일본 그릇에 어울리게 한식을 만들어 담았는데 생각보다 잘 어울리고 반응도 좋아서 만족스러웠어요.
사진으로 본 아라 씨의 음식은 상상력을 자극했어요. 처음 보는 낯선 음식이라 어떤 맛일지 궁금했고요. 준비 과정에서 상상하는 시간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 같은데, 어떤가요?
저는 식당에서 일하며 처음 요리를 배웠거든요. 2년간 거의 매일 요리책을 보며 공부했어요. 해외에서 만든 책을 주로 봤는데, 처음에는 레시피를 읽고 촉감, 재질, 색상 조합을 사진으로 확인했어요. 그러다 패턴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죠. 나중에는 사진과 재료만 보고 과정을 상상하게 되더라고요. 문제집 풀 때도 그렇잖아요. 그런 식으로 자신을 훈련했어요. 나중에는 시장에 가서 재료만 보고도 상상하게 되더라고요. ‘그린빈 라자냐의 그린빈을 마늘종으로 대체해보면 어떨까?’ 하는 식으로요.
재료를 사러 청량리 시장에 자주 가더라고요.
정말 충격적으로 싸고 물건이 좋아요. 식당에서 일할 때는 외주 업체가 배달을 해주기 때문에 직접 시장에 갈 일이 별로 없거든요. 마음에 안 들어 실랑이를 벌인 적도 많았어요. 시장에 가니 원하는 제철 재료를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더라고요. 사람들에게도 알려주고 싶어서 SNS에 가격과 함께 장본 재료들 사진을 올리곤 해요.
주로 서양식을 하시는데, 그런 재료는 재래시장에 별로 없잖아요.
맞아요. 그래서 그린빈을 마늘종으로 바꾸는 시도처럼 한국에서 나는 재료로 바꿔서 해보는 실험을 하게 돼요. 정통으로 요리하는 분들은 이런 방식을 싫어하기도 하죠. 그런데 요즘은 요리 프로그램의 영향 때문인지 창작 요리에 대한 관심이 많아진 것 같아요. 생소한 것을 먹는 것에 관대해졌죠. 아마 제 음식이 맛있다고 말해주시는 분들은 비교 대상이 없어서 그럴 거예요(웃음). 처음 먹어보는 음식이니까.
자신이 만드는 음식 맛이 어떻다고 생각해요?
음식도 만드는 사람을 닮는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제가 만드는 것은 두리뭉실하고 튀지 않는 것 같아요. 인상적인 맛을 남기고 싶은 욕심도 있는데, 그런 제맛을 좋아해주시는 분들이 있더라고요. 식당에서 일하면서 대중의 입맛을 궁금해했어요. 잘 팔리는 음식이란 뭘까, 고민했고요.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내가 옳다고 생각하고 맛있다고 여기는 걸 하게 되더라고요.
고민하고 있다는 걸 어렴풋이 알 것 같았어요. 워크숍에 참여하기도 하고, 다양한 프로젝트도 진행하더라고요.
다른 얘기일 수도 있는데, 저는 사실 셰프나 요리사라는 말이 제게 맞지 않는다는 생각을 해요. 전문적이거나 정식 코스를 밟지 않았기에 자신도 없고 의구심이 들 때도 있었거든요. 그런 때에 어떤 분을 만나서 얘기를 나누다가 직함의 틀에 갇히지 말라는 얘기를 들었어요. ‘요리사 플러스알파(+∝)’라고 생각하면 할 수 있는 게 확장된다는 거죠. 아직 요리사를 대체할 수 있는 단어를 찾지 못했지만, 딱히 만들고 싶은 것은 아니에요. 편의상 요리사라고 저 자신을 표현하긴 하지만, 직함에 얽매이지 않는 일들을 해나가고 싶어요. 워크숍이나 프로젝트도 그런 것의 연장선이고요.
진행했던 것 중에 기억에 남는 것은 어떤 게 있나요?
‘레서피데이즈’라는 프로젝트요. 서촌에 있는 갤러리 ‘팩토리’에서 전시를 쉬는 한 달 동안, 빈 공간을 채울 수 있는 일을 해보자고 제안했어요. 주말 동안 갤러리를 식당으로 만들기로 했죠. 버너와 프라이팬이 전부였지만, 거기에서 좋은 재료로 간단한 음식을 만들었어요. 취지는 레시피를 판매하기 위함이었어요. 사람들이 맛있게 음식을 먹고 그 음식을 집에서도 해먹을 수 있길 바라면서요. 봄에 진행했고, 여름이 되어서야 집으로 레시피를 보내드렸어요(웃음). 늦게 보냈는데도 다들 기다려주셔서 너무 감사했죠.
‘간단한 음식’을 ‘좋은 재료’로 만들었다고요?
재료의 맛이 그대로 느껴지는 음식은 좋은 재료를 사용해야 해요. 달걀 요리를 만들 때, 싼 걸 쓰면 비리거든요. 건강한 닭이 낳은 신선한 달걀을 사용해야 맛있어요. 토마토소스 같은 것도 마찬가지고요. 좋은 재료를 사용하는 일의 중요성을 점점 더 느껴요. 제가 어떤 걸 하나 사는 게 모두에게 영향을 끼치거든요. 농약을 친 재료를 쓰다보면 계속해서 농사에는 농약이 사용되겠죠. 그렇다면 그걸 먹는 사람, 요리하는 사람, 농사짓는 사람 모두에게 좋지 못한 영향을 끼치는 것 같아요. 설사 나 하나뿐이더라도 동물과 사람에게 좋은 환경을 만들어줄 수 있지 않을까요? 완벽할 순 없겠지만 작은 것부터 실천하려고 하는 편이에요.
가끔이지만 집에서 요리를 하거든요. 친구를 초대해서 앉혀놓고 재료를 손질하고 그런 과정에서 오는 행복을 느낄 때가 있어요.
저도 요리할 때 밑 준비 하는 시간을 가장 좋아해요. 상대를 위해 뭔가를 하고 있는 상태가 좋더라고요. 전에는 디자이너로 일했는데, 그때는 정서적으로 불안했거든요. 클라이언트와의 관계나 요구조건에 집중하느라, 제 만족을 생각할 틈이 없었어요. 그런데 요리는 만족감을 얻더라고요. 음식을 만들고 누군가와 함께 먹는 것 자체가 중요한 일이란 생각도 들었고요. 식당에서 일 할 때, 짜증을 내며 들어온 손님도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표정이 달라지는 걸 자주 봤어요. 그 행복이 어마어마하더라고요
왜 그럴지에 대해 생각해본 적 있어요?
아이들의 찰흙 놀이와 비슷한 것 같아요. 요리는 사람의 모든 감각을 다 쓰게 하잖아요. 그게 우리를 조금 단순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요리에서 처음 느껴본 감정이죠. 이걸 하면서 전보다 친구들도 많아졌어요.
마지막으로 아라 씨는 어떤 마음으로 요리를 계속 하고 싶어요?
최근 황교익 씨가 ‘요리사는 창조주가 아니라 자연의 전달자’라는 얘기를 하셨어요. 요즘 요리에 엔터테인먼트 사업이 집중되어 있고, 먹는 것은 본능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은 당연해요. 하지만 ‘셰프’라는 단어가 주는 권위적인 느낌을 좋아하진 않아요. 전문성과 권위가 연결된 부분에서 어느 정도의 권위는 필요해요. 하지만 저는 업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의 ‘권위 없음’을 지향하고 있어요. 자연의 전달자, 라는 마음으로 요리하고 싶네요. 그렇기 위해선 얼른 작업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야 할 것 같긴 해요. 케이터링이나 출장 요리가 아니더라도 맛보고 싶어하는 분들을 위해서요. 작더라도 제 공간을 마련하고, 거기에서 친구나 손님들이 책도 읽고 요리도 해먹고 그랬으면 좋겠어요. 이왕이면 청량리시장 근처로 얻고 싶어요. 그런데 누구에게나 그런 ‘공간’을 갖고 싶다는 꿈이 있겠죠?
그녀가 어느 워크숍에서 누군가 해준 얘기를 적어둔 것을 봤었다. ‘돈 드는 것은 중요한 것, 무료는 쉬운 것이라는 기준으로 생각하지 않기 위해 노력합니다, 돈이라는 기준으로 생각하면 쉽게 피로해지기 마련입니다.’, ‘풀을 먹으면서 달라진 것은 살아있는 것 사이에 차이가 없음을 느낀 것입니다.’, ‘생각하지 않고 일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스스로 낙담했습니다.’와 같은 문장들이 적혀 있었다. 레시피만 제대로 알고 있어도 요리는 할 수 있다. 어쩌면 그런 걸 반복하다 보면 우리는 일종의 ‘요리사’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녀는 거기에 다른 재료를 더하고 있었다. 어쩌면 당연히, 안아라의 음식은 맛있었다.
에디터 박선아
포토그래퍼 안선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