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이방인의 오해

TRAVEL TO GREECE

남녀가 서로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적어도 사계절을 함께 보내야 한다고 흔히 말한다. 온전한 이해란 은밀한 속마음과 부끄러운 치부까지 공유하는 연인 사이에서조차도 묵직한 시간의 무게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하물며 전혀 다른 문화와 언어를 가진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계절이 몇 번이나 바뀌어야 할까. 그 아득한 시간을 헤아리다 보니 고작 일주일 치의 짧은 여행을, 그것도 ‘이방인’으로서의 얕은 경험을 꺼내놓기가 조심스러워졌다. 오랜 시간 우직이 쌓아온 그들의 유산과 삶의 방식에 관해 이야기하기에 내 이해는 너무 알량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글은 어느 이방인의 일방적인 오해로 엮어진 이야기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스위스에서 왔어요

그리스인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은 많지 않았다. 보통 때라면 여행 전 그리스와 그들에 대한 소설책을 찾아 읽어보는 등 내 나름의 노력을 했을 텐데 이번 여행에는 이상하게 근거도 알 수 없는 유언비어와 제멋대로인 선입견에 더 끌렸다. 오랜 불황으로 그리스에는 관광객을 노린 소매치기가 횡횡한다는 누군가의 말이 유독 신경 쓰인 것만 해도 그랬다. 현지 사정과 지리에 어리숙한 관광객이 소매치기범의 손쉬운 표적인 것은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일 텐데 왠지 이번만큼은 그 말이 쉽게 흘려지지 않았다. 

원래도 칠칠치 못해 물건을 종종 잃어버리는 나인지라 아주 작정을 하고 짐을 꾸렸다. 특히 손가방 안의 수납에 더욱 주의를 기울였다. 얼마의 현금과 신용카드는 지퍼가 달린 지갑에 넣었고 지갑을 다시 작은 파우치에 담았다. 파우치는 다시 가방의 깊숙한 안쪽에 찔러 넣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보통은 어깨에 가볍게 걸치고 다니는 짧은 끈의 숄더백을 몸통에 대각선으로 가로 멨다. 가방은 내 몸에 딱 달라붙은 채 내 가슴팍에 놓였다. 내가 봐도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었다. 음료수 하나라도 사 먹을라치면 도대체 지퍼를 몇 번 여닫아야 하냐며 남편이 껄껄 웃었다.

그런 그가 얄밉기도 하여 나도 질세라 남편을 약 올렸다. “그리스에서 당신이 굳이 독일인이라는 것을 밝히지 않는 게 좋겠어. 안 그래도 요즘 그리스 금융지원에 대한 독일의 강경한 입장이 매일같이 뉴스에 나오는데 괜히 적대감을 사게 될까 걱정되지 않아? 나야 한국인이니까 문제없을 것 같지만….” 일반화의 오류에 앞뒤 논리도 전혀 맞지 않는 급조된 내 놀림은 역시나 ‘독일인’ 남편에게 먹히지 않는 것 같았다.

다음날 예정대로 아테네 공항에 도착하였고 시내로 가기 위해 택시에 올라탔다. 시내 초입에 들어서자 이내 교통체증이 시작되었다. 거북이 운전이 지루했던지 택시 기사가 백미러로 흘끔 우리를 보더니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묻는다. 황급히 남편이 답했다. “I come from Switzerland(스위스에서 왔어요).” 예상하지 못한 남편의 대답에 나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간신히 참았다. 남편을 슬쩍 쳐다보니 찡긋 눈짓을 한다. 독일인이지만 스위스에서 살고 있으니 틀린 말은 아니지 않으냐는 변명을 둘러댈 그의 모습이 선했다.

그들이 사는 방법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지갑 단속은 느슨해졌고 다행히 우스꽝스러운 차림도 벗어났다. 그것은 그리스인의 꾸미지 않은 친절함과 편안함 때문이었다. 스위스에서 살면서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여유로운 미소는 경계태세를 풀기에 충분히 다정했다. 초봄이었지만 바람은 부드러웠고 햇볕도 따뜻한 날이라 레스토랑마다 야외 테라스가 북적였다. 우리도 어느 식당의 야외 테라스에 자리를 잡았다. 관광객답게 우리의 첫 끼니는 모두 ‘그릭Greek’이란 단어가 이름에 포함된 들어간 요리로 채워졌다. 올리브가 가득 올려진 그릭 피자, 진한 향의 페타 치즈와 깔끔한 오이가 어울리는 그릭 샐러드, 부드럽고 담백한 그릭 요거트까지, 접시를 깔끔히 비우고 나니 기분 좋게 배가 불렀다. 살랑살랑한 바람에 라벤더 향기가 잔잔히 밀려왔다. 남아있던 조금의 긴장마저 슬며시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그제야 나는 내 머릿속에서나마 그들을 일방적으로 오해한 것이 미안해졌다.

사실 나 역시 다른 문화 속에서 제대로 이해받지 못해 불편하기도, 심지어 억울하기도 했던 적이 종종 있었다. 전학 한번 없이 줄곧 한동네에서 자라온 ‘토박이’였던 내 신분이 열입곱살 무렵 갑자기 ‘이방인’으로 바뀌면서부터 줄곧 경험하는 상황이었다. 어쩌다 보니 그 이후로 서너 해마다 바다를 건너 주소를 옮겼는데 나라만 바뀌었을 뿐이지 나는 여전히 ‘이방인’의 사전적 정의 그대로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이었다. 현지인인 ‘그들’과 이방인인 ‘나’ 사이에 얼마만큼이 서로에 대한 그릇된 편견으로 메꿔지는 것은 언제나 비슷하였다. 그것에 너무 익숙해진 것일까. 그들을 직접 만나기 전부터 나조차도 편한 대로 해석하고 담을 쌓았던 것이다.

그들이 사는 시간

아테네 시내 한복판에서도 미완공된 채 방치된 건물의 앙상한 뼈대를 종종 마주쳤다. 언제쯤 공사가 재개되어 저 음산한 건물도 반짝이는 유리 옷을 입고 사람들의 활기를 느낄 수 있을까. 골조만 덩그러니 남은 건물만큼 애처롭지는 않아도 썰렁하기는 도심의 백화점이나 상점도 마찬가지였다. 진열장 속의 물건은 십여 년 전의 유행으로 돌아간 마냥 어딘가 모르게 촌스러웠고 여기저기 할인 행사를 알리는 홍보물에 둘러싸여 산만하게 늘어져 있었다. 

조용한 시내와 다르게 아크로폴리스 주변은 이른 아침부터 관광객으로 북적였다. 아테네 골목길을 채워야 할 활력은 모두 유명 유적지에 빼앗긴 것 같았다. 각국의 보조금을 받는다는 재건공사도 몇천 년이 된 그 돌덩이에 다시금 예전의 생기와 호흡을 불어넣으려는 듯 한참이었다. 그렇게 모두의 눈길과 관심은 파르테논 신전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현재의 아테네가 아니라 몇천 년 전의 아테네를 향했다.

아테네를 떠나 미케네 문명의 발상지인 펠레포네소스 반도에 도착하자 오래된 것의 울림은 더 깊어졌다. 사자의 문을 지나 고대 미케네 성채에 들어서자 제각각의 모양을 가진 육중한 돌이 이음매가 맞춰져 켜켜이 쌓여있다. 돌덩이라고 하지만 그 당시의 지혜와 정성을 그대로 머금은 것이었다. 성채 안을 천천히 걷다가 생각보다 훨씬 깊은 작은 지하 저수지의 입구를 발견했다. 99단쯤 된다는 어둑한 터널 속의 계단을 조심스레 내려가는데 안이 아직도 축축하고 끈끈했다. 지금도 사용되고 있는 우물이 아닐까 하는 착각이 스치며 마치 먼 기억이 되살아나는 듯한 묘한 기분이 들었다. 지금까지도 공연이 열리는 에피다우르스Epidaurus 극장를 오를 때는 수천 년 전의 그들과 지금의 내가 같은 돌을 밟고 서 있다는 사실이 감격스러웠다. 그 감동은 이방인의 경솔하고 가벼운 오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깊숙이 울려 퍼지는 그들의 메아리였다.

AROUND 온라인 구독

어라운드의 모든 콘텐츠를 무제한으로 읽어보세요.

구독 시작하기

에디터 이현아

글·사진 이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