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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이란다, 이런 젠장…》, 《아만자》
BOOK《암이란다, 이런 젠장…》, 《아만자》
I do things
I can do
어느 날 병이 나를 찾아온다면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죽음은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하지만 준비할 겨를도 없는 갑작스러운 죽음이 아니라, 살 만큼 산 후에 죽는 것이 아니라, 젊은 나이에 큰 병에 걸려 시한부 선고를 받게 된다면? 어느 날 병이 나를 찾아온다면, 내가 얼마 살 수 없다는 걸 알게 된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때 나는 무얼 해야 하는 걸까?
나도 이제는 그럴 나이가 되었는지 주변에 병에 걸린 사람들이 하나둘 생기기 시작했다. 열심히 회사에 다니다가 어느 날 자고 일어났는데 고개조차 돌릴 수 없을 정도로 몸이 굳어버려 기다시피 병원에 가서는 꼬박 두 달을 입원해야 했던 사람, 자꾸 살이 빠지고 피곤해서 검사를 받았더니 직장인지 췌장인지에 생긴 암이 간까지 퍼졌다는 사람, 아픈 데 하나 없이 명랑하고 활기찼는데 정기검진에서 꽤 진행된 유방암이 발견된 사람. 그들 모두 이제 고작 마흔 전후의 젊디젊은 사람들이다. 그리고 아직 할 일과 챙겨야 할 가족이 있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아직 아파서는, 죽어서는 안 되는 사람들이기도 하다.(물론 아파도, 죽어도 되는 사람은 없는 것이 사실이지만.)그들을 생각할 때마다 심란해진다. 나에게도 그들과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지 않은가. 심지어 나에게는 위암 가족력도 있다. 아픈 것이나 죽는 것도 무섭지만, 내가 아프거나 죽었을 때 그 일들을 남은 생애 내내 감당해야 할 가족들을 생각하면 거의 미칠 것만 같은 심정이 된다.
그래서 젊은 나이부터 거의 매년 건강검진을 받아왔다. 그래 봤자 유방암이나 자궁암, 갑상선암, 위암 정도지만, 별 이상이 없다는 결과가 나오면 최소한 1년 정도는 마음 편하게 살 수 있으니까. 하지만 생각해 보면 세상에 저 네 가지 암만 있는 건 아니지 않은가. 게다가 암이 아니라 다른 병에 걸릴 수도 있는 일이다. 아무리 조심한다고 해도 모든 걸 막을 수는 없다. 그렇다고 병에 걸릴까 전전긍긍하며 평생을 스트레스 속에 살아가는 것도 한심한 일이다. 아, 이러다가 진짜로 병에 걸렸다고 하면 차라리 안심할지도 모르겠다. ‘그럴 줄 알았다니까. 그러게 내가 뭐랬어.’
암으로 죽은 일본의 동화작가 사노 요코는 암 투병기가 너무 싫다고 했다. 암과 장렬한 싸움을 하는 사람도 너무 싫다고 했다. 암보다 훨씬 고통스러운 병도 얼마든지 있다는 거다. 암으로 죽는 것 정도는 더 심한 병들에 비하면 차라리 축복에 가까우니 엄살 부리지 말라는 이야기다.
사노 요코 할머니가 이 사실을 알면 ‘흥.’ 하고 비웃을지도 모르지만, 내가 읽은 두 권의 만화책은 젊은 나이에 암에 걸린 사람들이 죽음을 맞기까지의 이야기를 그린 일종의 투병기다. 하지만 이 두 책은 그냥 투병기가 아니다. 이들의 투병이 다른 이들과 다른 것은 암에 걸렸다는 잔인한 현실에서 달아나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들은 암에 걸린 상황을 부정하거나, 미화하거나, 비극적으로 포장하려 하지도 않는다. 이들은 암이라는 벽에 가로막힌 자신의 인생을 솔직하고 담담하게 기록한다.
《암이라니, 이런 젠장…》을 그린 미국의 카투니스트 미리엄 엥겔버그는 마흔세 살의 나이에 유방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아들이 고작 네 살 때의 일이다. 그녀는 암 확진 판정을 받으면서 평범한 아이 엄마에서 하루아침에 암 환자가 된 인생을 카툰으로 그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카툰은 제목처럼 평범하고 코믹하고 솔직하다 못해 신랄해서, 한때 미국을 중심으로 유행했던 ‘암은 축복이다’나 한국에서도 회자됐던 ‘암도 생명’ 류의 사이비 긍정주의에 익숙했던 사람들에게는 조금 거북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암과 나의 관계가 처음 시작되었을 때만 해도 나는 그것을 일시적인 어떤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내 인생의 상수(常數)가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늘 인생의 의미가 무엇이냐고 묻는 습관이 있었다. 어렸을 때는 지적 성취가 내 존재의 이유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학문의 길이 내 길이 아님을 알고서는 인생을 좀 더 즐기자는 쪽으로 나아갔다. 내가 좋아하는 비학술적 직장에 취직하고, 친구와 가족들과 자주 어울리고, 음악을 연주하고 듣고……. 그러나 암 진단을 받고 항암 치료를 하게 되면서 좋은 시간을 보내자는 관점에서 인생을 바라보기가 어렵게 되었다.
– 미리엄 엥겔버그, 《암이란다 이런 젠장…》 중에서
유방암 검사에서 이상 소견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미리엄 엥겔버그는 까다로운 상황이 몰렸을 때 늘 하던 것처럼 TV를 틀어놓은 채로 생각한다. ‘난 죽을 거야. 아론은 엄마 없이 커야겠지. 난 결국 유명한 사람이 되기는 틀렸네.’ 이제 그녀에게 세상은 두 그룹으로 나뉘어 보인다. 암에 걸린 사람, 그리고 암에 걸리지 않은 사람. 그리고 자신이 암에 걸린 불운한 그룹에 들었다는 사실은 어릴 적부터 그녀가 품고 있던 ‘세상은 나만 미워해’ 라는 믿음을 다시금 떠올리게 한다.
암이 인생에 하나의 경종을 울리는 사건이라는 친구의 말에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그간 늘 하고 싶어 했던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려고 하지만 아무것도 생각나는 게 없다. 사람들은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면 하나같이 비슷한 질문을 한다. “집안 내력인가요?” 그녀는 그 질문 뒤에 숨은 동기를 안다. 모두 자기는 안전하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은 거라고. 그녀 역시 그랬기 때문이다.
만약 암에 걸리지 않았더라면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인생을 다시 즐길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해본다. 하지만 그녀는 예전에도 아이와 함께 손을 잡고 공원을 거닐면서 머릿속으로는 테러리스트의 침략이라든지, 팔뚝에 생긴 이상한 점의 정체 같은 쓸데없는 고민을 하면서 좋은 날들을 허비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뭔가 의미 있고 대단한 일을 하며 남은 생을 보내야 할 것 같지만, 인생은 어차피 시간 때우기로 점철되어 있다는 사실도.
나는 언제나 좋은 이야기에는 그것이 웃기는 이야기든, 심각한 이야기든, 냉소적인 이야기든, 감상적인 이야기든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해왔다. 그것은 바로 인생은 어떤 것이고, 인간은 어떤 존재인지에 대한 성찰이나 통찰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 이야기 속에 인생은 이런 것이야, 인간은 이런 존재야, 라는 확실한 답은 없을지도 모른다. 사실 그렇게 쉽게 답이 나오는 이야기는 어쩌면 사기일 수도 있다. 나는 그런 건 잘 안 믿는다. 하지만 주인공이나 작가가 그 답에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몸과 마음으로 전력을 다해 부딪치는 과정이 있다면, 그런 이야기는 진짜일 거라고 믿는다.
큰 병, 그리고 죽음이라는 존재는 우리에게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중요하지 않은지, 그리고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가짜인지를 걸러내 주는 필터의 역할을 한다. 그래서 큰 병에 걸려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진심으로 하는 말은 믿지 않을 수가 없다. 미리엄 엥겔버그는 암 검사에서 양성 판정을 받은 여자를 부러워하고, 놀이터에서 아이와 놀고 있는 부부를 부러워하고, 투자 금융사 직원들이 회사 건물 앞에서 장난치고 있는 것을 부러워하고, 목숨을 걸고 에베레스트를 등반하는 사람들을 부러워하고, 은퇴한 노인들을 부러워한다. 전에는 조금도 부러워하지 않았던 사람들이다. 하지만 지금은 부러워하지 않을 수가 없다.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그녀에게는 이룰 수 없는 목표이기에.
대학 다닐 때 어느 기말고사 주간에 나는 아주 무거운 마음으로 마지막 시험장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나는 기말고사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멀리 떨어진 곳에 사는 남자친구의 애매한 태도에 대해서도 걱정을 했다. 두 시간 뒤 나는 시험장이 있는 건물에서 빠져나왔다. 내가 기숙사로 돌아가는데 어두운 밤이 되었다. 나는 중간쯤에 멈춰 서서 밤하늘의 별들을 올려다보았다. 갑자기 내가 근심 걱정하는 사항들이 다 시시하게 보였다. 지금 그때의 그 느낌을 다시 느낄 수만 있다면…….
– 미리엄 엥겔버그, 《암이란다 이런 젠장…》 중에서
김보통의 《아만자》는 암에 걸린 26살의 청년의 이야기다. 어느 날 허리가 아파서 병원에 갔더니 의사는 위암이 척추까지 전이되었다고 한다. 슬프고 놀라운 것이 아니라 어이가 없는 일이다. 그렇지 않은가. 고작 26살이다. 이제 겨우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를 다녀오고 자신만의 인생을 시작할 나이인데, 시작하기도 전에 그의 인생은 빈틈없이 단단한 벽에 가로막혀 버린 것이다.
청년은 함께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가족들에게 담담히 말한다. 나는 암에 걸렸고 말기이고 수술도 할 수 없고 앞으로 살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엄마는 무슨 말이냐고 되묻고 아빠는 화를 내고 동생은 어리둥절해 한다. 그는 말한다. 그렇게 됐으니까 그냥 밥 먹자고. 언제 이렇게 같이 밥 먹어보겠느냐고. 그날 이 가족은 울면서 꾸역꾸역 저녁을 먹는다.
무궁화호를 타고 천천히 여행을 하고 있었는데, 검표원이 다가오더니 손님. 이제부터 초고속으로 달릴 겁니다. 라는 말을 들은 기분이에요. 어차피 죽는 거야 다 똑같겠지만, 너무 빠르니까 창밖으로 보이는 것도 없고, 원래는 칙칙폭폭 칙칙폭폭 이었는데, 지금은 칙폭칙폭칙폭!
– 김보통, 《아만자》 중에서
웹툰의 제목 ‘아만자’는 ‘암 환자’를 발음 그대로 쓴 것이다. 젊디젊은 나이에 암 말기 판정을 받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지독한 고통에 시달리는 한 청년의 하루하루가 지켜보기 힘들 정도로 사실적으로 그려진다. 항암치료의 괴로움, 병원비의 압박, 가족도 아니고 결혼할 사이도 아니었던 여자친구와의 관계 같은 것들. 동시에 괴로움과 통증으로 정신을 잃을 때마다 그는 숲과 사막이 있는 이상한 세계로 떨어진다. 그곳에는 귀엽고 엉뚱한 괴물들이 살고 있다. 괴물들은 몸의 이곳저곳이 부서지는 그에게 숲을 사막으로 만들고 있는 사막의 왕을 무찔러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사막의 왕을 무찌르기 위해서는 이 세계로 떨어지면서 잃어버린 그의 마음을 되찾고 자신의 이름을 알아내야만 한다. 왜냐하면 그는 이 세계에서 이름도, 병에 걸린 사실도, 이곳에 온 이유도,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현실에서는 암의 고통과, 환상에서는 사막의 왕과 싸우는 청년이 그토록 되찾고 싶어 하는 것은 대단한 것이 아니다. 시시해 빠진 보통 인생이다. 너무 지겹고 힘들어서 가끔은 그냥 반납해버리고 싶은 우리들의 인생이다. 그래서 이 웹툰을 보다 보면 아무리 냉정한 사람이라도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가 없다.
아마, 이대로 병상에 누운 채 삶이 끝날 것이다. 여행을 가거나, 영화를 보거나, 데이트 같은 것은 다시 못할 것이다. 대부분의 것들이 이미 마지막이 될 줄 몰랐다. 그저, 삶이 계속 될 것이라 믿었다. 나는, 영국에 가보고 싶었다. 맛없다는 피쉬 앤 칩스를 직접 먹어보고 싶었다. 취직도 하고 싶었고, 번쩍이는 뺏지를 달고 졸업식장에 가고 싶었고, 지옥철 출근도, 지겨운 야근도, 결혼도, 출산도, 육아도 해보고 싶었다. 내 아이의 자라는 모습을 보며 웃고 울고 싶었다. 그렇게 평범하게 살고 싶었다. 조금 시시하고, 조금 지루해도. 살고 싶었다. 살아갈 것이라 믿었다. 지루하고, 지겹고, 시시하고, 고되기만 해서 헛살았다는 느낌만 가득한 삶이 기다릴지라도 살고 싶다.
– 김보통, 《아만자》 중에서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다. 청년의 몸은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그는 고통 속에서 몸부림친다. 그 고통은 육체의 고통이며 또한 마음의 고통이다. 너무 빨리 찾아온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는 한 인간의 몸부림이다. 공포와 분노 속에서 홀로 울부짖던 그는 숲을 황폐하게 만든 사막의 왕은 바로 그 자신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또한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해야 하는 일,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도 알게 된다. 그리하여 마지막 순간 잠시 눈을 뜬 그는 자기 죽음을 배웅하러 모인 사람들에게 마음으로 말한다.
바라는 게 있다면, 부디, 부디 모두가 깊은 슬픔에 빠져 있지 않길. 나를 잊지 말아 주길. 그리고, 언제나 행복하게 살아가길. 내 이름은 박동명. 동녘 동(東)자에 밝은 명(明)자를 쓰며 올해로 스물일곱이었습니다.
– 김보통, 《아만자》 중에서
이 웹툰이 한 인터넷 사이트에 연재될 때 누군가가 댓글을 남겼다. 누군가가 자신의 이름을 말하는 일이 이토록 슬픈 일인지 몰랐노라고. 그가 끝내 자신의 이름을 되찾은 것은 죽음을 향한 분노와 절망과 무력과 공포에서 자유로워졌음을 말하는 것일 테다. 그래서 죽음에 속수무책으로 쫓겨 다니던 암 환자가 아니라, 동녘 동자에 밝은 명자를 쓰며 올해로 스물일곱이었던 한 청년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나를 잊지 말아 달라는 사실을 세상에 알릴 수 있었던 것이다.
인생은 한 번뿐이고, 또 유한하다. 그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죽지 않을 것처럼, 죽음이 오지 않을 것처럼, 죽음을 외면하면서 산다. 10년도 더 전에 엄마 친구의 딸이 스물여덟의 나이에 암에 걸렸다. 3개월 만에 암은 속수무책으로 온몸에 퍼졌고 결국 죽음을 기다리며 요양원에 들어갔다고 했다. 엄마가 병문안을 갔을 때 그 여자는 씁쓸하게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연애라도 한 번 해볼 걸 그랬어요.”
그때 스물여섯인지, 스물일곱인지 그랬던 나는 그 얘기를 듣고 돌아와 혼자 방에서 통곡했다. 나 역시 그렇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더는 이렇게 쓰레기처럼 살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여자는 얼마 안 가 죽었고, 나는 살아남았다. 그리고 10년 동안 나는 무엇을 하며 살았던 걸까. 그때 그 여자라면 영혼을 팔아서라도 갖고 싶었을 그 10년을 나는 어떻게 흘려보낸 걸까. 죽은 그녀가 나를 본다면 무슨 생각을 할까.
만약 내가 다시 한 번 살 수 있다면, 온 세상을 떠돌아다니며 노래를 불렀을 거야. 그래서 사람들을 만나고,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썼을 거야. 그리고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더 많은 사람을 사랑하고! 더 많은 사람을 용서했을 거야! 더 많은 기쁨과 슬픔을! 더 더 많은 환희와 절망과! 그보다 더 많은 두려움과 두근거림을 느끼며 살았을 거야! 그래서 정말 살았을 거야. 단 한 순간도 망설이지 않고 그저 살았을 거야. 물론 숱하게 상처받고, 많은 시간을 후회하겠지. 때로는 삶 자체가 흔들릴 정도로 괴로운 순간도 있을 거야. 하지만, 망설이는 거로 삶을 낭비하지는 않았을 거야. 그게 살아있다는 거니까. 산다는 거니까.
– 김보통, 《아만자》 중에서
언제 올지 모를 나의 죽음에 대해서는 어떤 태도를 보여야 할지 아직 잘 모르겠다. 그건 닥쳐봐야 알 일이다. 다만 죽은 자들이 남긴 말들을 흘려들어서는 안 될 것 같다. 죽은 자들에게 미안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제대로 살아야겠다. 망설이는 거로 삶을 낭비하지 않겠다. 앞으로는. 그게 살아 있다는 거니까. 산다는 거니까.
암이란다, 이런 젠장…
미리엄 엥겔버그 지음 | 고려원북스 | 250쪽 | 148x210mm
유방암에 걸린 책의 저자는 암을 진단받기 전부터 자신의 이야기를 만화로 그린다. TV를 돌려보고, 퀴즈를 푸는 그녀의 일상은 상상하는 암 환자의 모습에서 조금 빗겨 나 있다. 그녀는 시종일관 유쾌하고 또 발랄한 모습으로 누구나 걸릴 수 있는 병과 누구나 살 수 있는 삶에 관해 이야기한다.
아만자 1~5
김보통 지음 | 예담 | 1,192쪽 | 170x194mm
아만자는 스물여섯 살 말기 암 환자의 일상을 그린 만화다. 병실에서의 투병기와 사막의 왕을 찾아 숲을 여행하는 꿈속 이야기가 교차하는 이 만화를 보면 먹고 싶은 것을 먹을 수 있다는 것, 편하게 잘 수 있다는 것,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평범한 일에 고마움을 느끼게 된다.
사진·에디터 이현아
글 한수희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