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단어가 말했다

한 해를 정리하는 방법

어느 날 단어가 말했다

한 해를 정리하는 방법

이건 2017년 연말부터 시작되었던 질문과 답변이다. 한 해를 정리하며 그 사람에게 2017년은 어떻게 기억되고 있을까, 궁금했다. 드라마 <도깨비>의 뜨거운 열풍으로 다들 무언가를 할 때마다 날이 좋아서, 좋지 않아서라고 덧붙였고, 대통령이 바뀌었으며, 바다 밑에 꽁꽁 숨겨져 있던 세월호가 머리를 내밀었다. 오늘밤 주인공이 ‘나’라는 청년들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뜨겁게 환호했고, 최저임금은 7530원으로 결정되었다. 지진과 함께 처음으로 수능이 연기되는 장면을 목격했으며, 전자 화폐로 일확천금을 꿈꾸는 사람들도 있었다. 여느 해와 다르지 않게 다사다난했고, 여느 해와 다르게 빼곡히 쌓인 저마다의 의미가 있었다. 시간은 똑같이 흘러갔을 뿐인데 어쩐지 한 해를 갈무리하는 것이 쉽지 않다. 이 남은 여운을 정리하는 의식을 치렀다. 당신의 2017년을 나타내는 하나의 단어는 무언가요?

영화 기자 | 이지혜

2017년을 표현하는 단어 페미니즘. 2017년은 그 어느 때보다 페미니즘이 가장 활발히 발화되고 읽혔던 해였어요. 페미니즘 소설 《82년생 김지영》은 작년 한 해, 두 번째로 많이 팔린 도서였고, ‘#METOO’ 같은 해시태그 운동을 비롯해 일상 속에서 페미니즘이 가시화되었죠. 저 역시도 많은 영향을 받았고요.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일화 2017년 여름부터 겨울까지, 온스타일 <뜨거운 사이다>에 MC로 출연했어요. 여성의 시선으로 사회에 대해 이야기하는 토크쇼이다 보니 페미니즘, 여성 혐오, 성폭력 같은 이슈를 다뤘는데요, 회가 거듭될 때마다 달라지는 녹화장의 분위기가 기억에 남아요. 초등학교 교실까지 오염시킨 여혐과 직장 내 성폭력의 악랄한 사례를 공유할 때마다 한숨 소리가 가득했던 공기는 마지막 회에 이르러서는 어떤 확신으로 변했어요. 프로그램 초반만 해도 페미니즘에 큰 관심이 없던 코미디언 김숙 씨는 “전과 다르게 요즘 모든 게 너무나 불편하지만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진 않다.”며 앞으로 공부를 계속하겠다고 결심하기도 했죠. 페미니즘을 함께 이야기하고, 공부하는 여성들의 연대를 확인한 것 같아 마음 든든해지는 순간이었어요.

그 단어를 말해주고 싶은 사람 오늘도 일하고, 공부하고, 나답게 살기 위해 분투하는 모든 여성들. 특히 사회에 이제 막 발을 내디딘 20대 여성들에게 말해주고 싶어요. 저 역시 첫 직장에 입사했을 때 행사에서 여자만 음식을 나르고, 월급이 남자 동기와 다른 것에 대해 불쾌했지만 항의하지 못했어요. 하지만 사회생활을 하면서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의 정체를 알게 되었고, 그것을 표현할 언어 또한 페미니즘을 통해 배웠죠. 물론 당장 공고한 남성 중심 사회를 단번에 바꿀 순 없을 거예요. 페미니즘은 만병통치약이 아니니까요. 하지만 쉽게 변하지 않을 세상에서 나 자신을 잃지 않을 좋은 길잡이가 될 것만은 분명합니다. 지치지 않고 상황을 개선해나가길 원한다면 페미니즘은 당신의 가장 든든한 동료가 될 거예요.

그 단어의 반대말 혐오. 모든 사람이 젠더에 따라 차별받지 않는 상태를 추구하는 페미니즘에 정확히 대척점에 있는 것이 혐오예요. 그것은 여성에 대한 것일 수도, 성 소수자나 외국인 노동자, 아이에 대한 것일 수도 있어요. 각기 다른 대상을 향하는 것 같아 보이지만 혐오가 향하는 곳은 늘 같아요. 바로 사회의 약자들이죠. 가장 약한 계층을 착취하려는 혐오의 감각은 어느 사회든 발달했지만 한국에서 여성을 향한 혐오는 아주 뿌리깊고, 강력해요. 남아 선호로 인해 여성은 날 때부터 페미사이드의 생존자이고, 생애 전반에 걸쳐 언어적·물리적 성폭력을 경험해요. 이 혐오와 폭력의 고리를 끊는 데에 페미니즘은 시작이자 끝이 될 것이라고 믿어요.

긍정적 혹은 부정적 긍정적. 뿌리깊은 남성 중심주의는 아이들이 즐겨 보는 BJ의 채널에서, 성폭력이 만연한 사무실에서 여성들을 혐오하고, 평가 절하했지만 페미니즘은 우리를 더 이상 침묵하지 않게 했어요. 여성들은 성폭력을 고발하고, 목소리를 낸 피해자를 위해 나섰죠. <매트릭스>에서 빨간 약을 먹은 ‘네오’가 진짜 세상을 만난 것처럼, 페미니즘이라는 빨간 약을 먹은 여성들은 더 이상 과거로 돌아갈 생각이 없어요. 2018년에도 젠더와 페미니즘은 중요한 이슈일 테고,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 또한 바꿀 거예요.

단어를 마주하는 책 《나쁜 페미니스트》. 페미니즘을 나의 일상률로 삼겠다고 결정한 후 많은 여성들이 종종 빠지는 함정은 완전무결해야 한다는 것이에요. 저 역시도 그랬고요. 좋아했던 영화나 드라마에서 여성 혐오적인 표현을 발견한 뒤에는 아예 그것과 담을 쌓아야 하거나 그렇지 못했을 때에는 스스로를 자책하죠. 성차별적인 상황을 쉽사리 해결하지 못할 때도 자신을 한심하게 느끼기도 하고요. 그러나 《나쁜 페미니스트》는 그러한 부담을 떨쳐버리라고 말해요. “나는 나를 따라다닐 나쁜 페미니스트라는 꼬리표를 환영한다. 왜냐하면 나는 인간이니까. 그래서 엉망진창이니까. 누군가의 본보기가 되려고 애써 노력하지 않는다. 내가 모든 해답을 갖고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나는 그저 내가 믿고 있는 것을 지지하고, 이 세상에 뭔가 도움이 될 만한 일을 하고, 온전히 나 자신으로 남고 싶을 뿐이다.” 페미니즘을 추구한다고 해서 우리가 ‘진짜’ 페미니스트이며 ‘진정한’ 여성이라는 것을 매순간 증명할 필요는 없어요. 누구도 그것을 평가할 수도 없고, 그렇게 둬서는 안 되죠. 그저 매일 페미니스트로서 내가 옳다고 믿는 것을 조금씩 실천하는 것, 그것이면 충분합니다.

일러스트레이터 | 설찌

2017년을 표현하는 단어 오늘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일화 작년 어느 날 외할아버지의 건강이 악화되었다는 연락을 받았어요. 저를 기억 못 할 수도 있을 거라고 하셨죠. 눈앞이 캄캄해진다는 말의 의미를 이날 처음 알았어요. 그때부터였어요. 오늘 행복해질 수 있는 일을 여러 핑계로 내일로 미루고 있었다는걸요. 그래서 바로 표를 예매해서 부모님과 시간을 맞춰 할아버지 댁으로 갔어요. 할아버지께서는 계속 고맙다는 말만 하셨어요. 그리고 우리는 노을 지는 분홍빛 하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죠. 아직 초록색인 은행잎에 대해서도요. “작년에 왔을 때는 잎이 노란색이었는데 올해는 아직 초록색이네요,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이번엔 여름이 늦게 가고 싶었나 보다. 분홍 하늘이 참 예쁘네.” 하시며 팔짱 낀 저와 걸음을 맞추며 걸었어요. 짧은 대화였지만 할아버지와 제가 이렇게 대화해본 적도 별로 없었다는 걸 새삼 깨달았어요. 저는 그때의 ‘오늘’이 참 행복했어요. 그날부터 사소한 오늘의 행복을 놓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죠. 

그 단어를 말해주고 싶은 사람 쑥스러워서 오늘 “사랑해”라고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요. ‘내일 해야지, 내일 해야지.’ 하다 보면 2028년이 되어 있을 거예요.

그 단어의 반대말 내일. 내일이 오기 전에 내 사람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보세요.

긍정적 혹은 부정적 저에게 오늘은 늘 긍정적이에요. 기쁜 오늘, 슬픈 오늘, 화나는 오늘, 외로운 오늘들이 지나고 지금의 제가 있는 거니까요. 지나간 오늘들에 감사해요.

단어를 마주하는 책 제 취미는 그림책을 수집하는 것이에요. 최근에 데려온 책 중에 《숨어있는 그림책》이라는, 글이 하나도 없는 책이 있어요. 액자에서 빠져나온 새가 편지를 전달하는 여정을 아침부터 저녁까지 시간 변화에 따라 전개한 작품인데요, ‘사랑이 담긴 편지를 전달하기에 오늘 하루는 충분한 시간이다.’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어요.

당인리책발전소 운영자, 방송인 | 김소영

2017년을 표현하는 단어 자유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일화 다니던 회사를 퇴사하게 되었는데, 원래 계획한 일은 전혀 없었어요. ‘올해(2017년)의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겠구나, 그래도 괜찮아.’라고 생각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책방 주인이 되어 있네요!

그 단어를 말해주고 싶은 사람 지금 어디로 가야 할지 정말 모르겠어서, 주저앉아 있는 사람들요. 저도 그랬거든요. 

그 단어의 반대말 음, 체념이요. ‘희망을 버리고 단념하는 마음’. 사실 저는 자유로운 삶을 선택할 자신이 없었을 때나 도전이 두려웠을 때, 여러 가지를 미리 체념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내가 여기서 뭘 더 할 수 있을까, 욕심을 버리고 이것도 저것도 내려놓자고 하면서요. 말이야 쿨했지만 결국 더는 꿈꾸지 않으려고 했던 거였죠.

긍정적 혹은 부정적 아무래도 긍정적이죠. 새해에는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조금은 이뤄지고 있는 것 같아요.

단어를 마주하는 책 임경선 작가의 《자유로울 것》이라는 책을 말하고 싶어요.
“누가 문득 내게 물었다. “행복하게 지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중략) 얼마 전 우울감을 겪으며 알게 되었다. 행복이란 얼만큼 행복한 일들이 내게 일어날까, 라는 객관적인 조건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그것을 행복으로 느낄 수 있을까, 라는 주관적인 마음의 상태로 결정된다는 것을. 이제는 행복감을 느끼는 일이, 안일한 위로를 향한 도피가 아닌 엄청난 재능임을 안다. 그것은 사실 이것이 있어서 행복하다가 아니라, 이것이 없어도 행복하다고 느낄 수 있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아뜰리에15구 대표 | 최연정

2017년을 표현하는 단어 시작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일화 8년 동안 몸담고 있었던 레스토랑 문을 닫고 새로운 일을 시작했어요. 프렌치 요리를 가르쳐주는 아뜰리에 문을 연 지 딱 일 년이 된 것 같아요.

그 단어를 말해주고 싶은 사람 같이 일하고 있는 친동생이요. 저희는 레스토랑부터 지금까지 둘이서 하고 있거든요. 책도 마찬가지고요.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을 빼고는 온종일 같이 있어요. 매번 싸우고 화해하고 이 시간을 반복하지만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예요.

그 단어의 반대말 정체. ‘프렌치’ 분야에서 일을 하고 있지만 레스토랑의 경우 몇 달 동안 같은 메뉴가 나가거나, 어떤 메뉴가 인기가 있으면 가게 문을 닫을 때까지 똑같은 메뉴로 유지를 해야 해요. 그래서 쳇바퀴 굴러가듯 일을 할 수밖에 없죠. 어쩌면 제 핑계일 수도 있겠네요(웃음). 레스토랑을 그만두고 수업을 시작하니까 남에게 나의 지식을 알고 있는 범위에서 알려주게 되었어요. 그래서 정체되어 있거나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돼요. 그래서 반대말로 ‘정체’를 골랐어요. 시작했으면 앞으로 한 계단 한 계단 발전해야 할 것 같아요. 나를 위해서 그리고 아뜰리에를 위해서도요.

긍정적 혹은 부정적 너무나 긍정적이에요. 가끔 불안할 때도 많아요. 자신감이 가득 차다가도 어느 순간 또 잘못 생각을 하면 불안감에 휩싸일 때도 있더라고요. 그래도 아직 시작하는 단계고 차근차근 밟아가는 단계이기 때문에 수정도 할 수 있어요. 많이 받아들일 수도 있고요. 최대한 많은 것을 부정하지 않고 받아들일 생각이에요. 저는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서 아주 보수적이라서 실패와 쓴맛을 많이 봤죠. 그런 단계를 또 밟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시작’이라는 단어가 무척 가슴 떨리고 행복한 말이에요.

단어를 마주하는 책 김화영 교수님의 《행복의 충격》이요. 이 책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책이에요. 마음이 흐트러지거나 생각이 복잡할 때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읽는 책이죠. 생각할 수 있는 구절이 많아서 줄도 많이 그어져 있어요. 그 글귀만 읽어도 행복해지죠. “생명이 간직하는 것은 오직 새로이 시작하는 현재, 오직 영원한 현재뿐임을.”

작가 | 장우철

2017년을 표현하는 단어 눈雪입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일화 늘 눈이 오길 바랐어요. 눈이 오는 계절이든 오지 않는 계절이든 상관없이 여기로 눈이 내려서 보이는 모든 것들이 파묻히길 바라면서요. 농담이 아니에요. 튼튼한 방수 바지와 장화를 사두었고, 그럴 수 있다면 눈 속에서 과일을 먹거나 무슨 냄새를 맡아보고 싶었죠. 블라디보스토크와과 나가노현, 강원도의 날씨를 자주 검색했죠. 그리고 12월 18일 아침 서울에 함박눈이 내렸을 때, 저는 용산역 플랫폼에 있었어요. 그 기분을 자주 떠올리곤 해요.

그 단어를 말해주고 싶은 사람 딱히 이렇다 말해주고 싶지 않아요. 그저 혼자 간직할 일쯤 아닌가 싶어요. 어쩌다 말하게 된다면 그 순간의 분위기나 리듬을 따르게 되겠죠.

그 단어의 반대말 지금 생각해본 건데, 일본어로 ‘나츠메夏目’라는 발음은 항상 제게 어떤 이미지를 던지곤 해요. 그 이미지가 매번 다르다고 할 수도 있을 테니까요. ‘여름 하’ 자에 ‘눈 목’ 자이니, 겨울과 눈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하는 것도 같고요. 도쿄의 여름을 도쿄의 겨울만큼이나 좋아해요.

긍정적 혹은 부정적 어떤 단어에 대해 얘기하는 중이니까 이렇게 말해도 되겠죠. 긍정과 부정이라는 단어를 여기서만큼은 거절하고 싶어요. 눈을 생각하건대, 그 말은 전혀 어울리지가 않는 것만 같아서요.

단어를 마주하는 책 황인찬의 첫 시집 《구관조 씻기기》가 생각나요. 어떤 구절이라기보다, 그 시집이 제게는 더하거나 덜하거나 온통 ‘흰’ 것들이 추는 춤이 아닌가 싶거든요. 백자든 화이트 진이든 그것들의 그림자든 간에 말예요. 언제나 겨울이면 들추고 싶은 책이에요.

작가 | 서늘한여름밤

2017년을 표현하는 단어 괜찮아.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일화 아주 사소한 실수를 했었어요. 별일도 아니었는데 그 실수를 한 내가 너무 끔찍하게 싫었죠. 이 정도 작은 실수를 용납하지 못하는 제가 이중으로 싫더라고요. 그때의 나에게 “괜찮아.”라고 말해주지 못한 게 두고두고 마음에 걸려요. 

그 단어를 말해주고 싶은 사람 일단 나에게 자주 얘기해주고 싶어요. 왜냐하면 저는 자주 불안해지곤 하거든요. 

그 단어의 반대말 “망했다.” 괜찮지 않으면 망했다고 생각하는 거 같아요. 사실 그 사이에 무수히 많은 그저 그런 것들이 있는데 말이에요. 

긍정적 혹은 부정적 부정을 딛고 일어선 긍정이라 생각해요. 힘든 일이 없었다면 괜찮다고 다독일 필요도 없으니까요. 

단어를 마주하는 책 뻔뻔스럽지만 제 책 《어차피 내 마음입니다》를 추천하고 싶어요. “잘하는 것은 당연한 게 아니다. 그걸 당연하게 생각하는 순간 인생이 끝도 없이 피곤해진다.”라는 구절을 기억하려 해요.

《어라운드》 에디터 | 이현아

2017년을 표현하는 단어 농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일화 저는 농담을 잘 못 하는 사람이에요. 거짓말도, 연기도 좀 어설퍼요. 농담을 잘 하는 사람을 만나 오랜 시간 나도 그런 척 연기를 해왔죠. 농담이 영원히 지속될 것처럼 사는 것도 나름대로 즐거웠지만, 연기를 오래 하다 보니 진짜 마음을 말하기 어려워졌어요. 그래서 친구를 잃었죠.

그 단어를 말해주고 싶은 사람 없어요. 이제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농담을 하고 싶지 않아요.

그 단어의 반대말 사탕. 저에게 농담을 알려준 사람에게서 처음으로 받은 편지가 떠올라요. 그 안에 사탕에 얽힌 이야기가 있었죠. 그건 농담이 아니어서, 읽을 때마다 울게 돼요.

긍정적 혹은 부정적 긍정적이지도 부정적이지도 않아요.

단어를 마주하는 책 밀란 쿤데라의 《농담》에는 이런 말이 있어요.
“사실상 내가 한 여자에게서 좋아하는 것은 그녀 자체가 아니라 그녀가 내게 다가오는 방식, <나에게> 그녀가 의미하는 그 무엇이다. 나는 한 여자를 우리 두 사람의 이야기의 등장인물로서 사랑한다. 햄릿에게 엘시노어 성, 오필리아, 구체적 상황들의 전개, 자기 역할의 <텍스트>가 없다면 그는 대체 무엇이겠는가? 무언가 알 수 없는 공허하고 환상 같은 본질 외에 그에게 무엇이 더 남아 있겠는가? 마찬가지로 루치에도 오스트라바의 변두리가 없다면, 철조망 사이로 밀어 넣어 주던 장미, 그녀의 해진 옷, 희망 없던 내 오랜 기다림이 없다면, 내가 사랑했던 루치에가 더 이상 아닐지도 모른다.”

바리스타 | 정성문

2017년을 표현하는 단어 민주주의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일화 대통령선거요. 민주주의에서 선거와 투표를 빼놓을 수 없고, 또 제가 투표한 대통령 선거 중 처음으로 당선된 경험이었거든요. 

그 단어를 말해주고 싶은 사람 외국의 젊은이들이요. 특히 공화정에서 다시 독재국가로 역전된 나라에 있는 젊은 친구들에게 말해주고 싶어요. 세계사적으로도 촛불 민주주의가 정말 의미 있는 혁명이었다고 생각해요. 아마 그들에게 희망이 되지 않을까요?

그 단어의 반대말 무관심이요. 민주주의의 반대말은 ‘독재’지만 그 독재를 만드는 것은 국민들의 무관심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긍정적 혹은 부정적 긍정적이죠. 시민들의 적극적이고 자발적인 의사 표현을 통해 헌법정신을 훼손시킨 대통령을, 헌법의 절차대로 끌어내렸으니까요. 

단어를 마주하는 책 최규석 작가의 만화 《100도씨》는 1987년의 ‘6월항쟁’에 관한 책이에요. 만화라 쉽게 읽히지만 그 어떤 소설이나 역사서에 비견해도 손색없는 깊이를 지녔어요. 이 책을 읽고 올해를 다시 되돌아보면 감회가 새로울 것 같아요. 그중에 이런 구절이 있어요.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걸음.”

위트앤시니컬 운영자, 시인 | 유희경

2017년을 표현하는 단어 2017년 한해 내내 사람을, 사람과 사람 사이를, 그사이의 의미를 생각했어요. 그러니 ‘사람’을 꼽으려 합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일화 서점을 열어 내내 사람을 만났어요. 그들과 이야기를 했고요. 멀리서 또 가깝게 사람의 이야기들을 들었어요. 어떤 이야기는 차마 듣기 어려웠고, 어떤 이야기에선 희망을 품었죠. 어찌되었든 사람의 이야기였어요. 싸움도, 불편과 어색도, 화해의 가능성도 모두 사람의 일이라고 믿고 싶어요. 나도 대상도 사람이니까 믿음이,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 단어를 말해주고 싶은 사람 누구에게 전할 수 있을까요. 이 단어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어요. 동시에 누구도 모르고 있고요. 그리고 우리 모두가, 멸종하기 전까지 내내 배우려고 노력해야 할 거예요.

그 단어의 반대말 사람의 반대말은 절멸이에요. 사람을 포기하기에, 우리는 너무 멀리 왔어요. 너무 많은 것들이 희생당했죠. 이제는 믿는 도리밖에 없는지도 모르겠어요.

긍정적 혹은 부정적 글쎄요. 희망적이기엔 아득하고, 절망적이기엔 막막하네요. 과제라고 할까요. 책무라고 할까요. 어느 쪽이든 고민해야 할, 남은 일입니다.

단어를 마주하는 책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호》. 시인 황지우의 산문집이에요. 이제는 절판되어 구하기 쉽지 않지만, 책을 구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니 매력적이지 않을까 싶어요. “나는 다른 사람에게도 나와 비슷한 혹은 전혀 다른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어쨌든 나와 다른 사람은 뭔가 서로 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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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포토그래퍼 이자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