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을 닮은 여행

자동차로 아이슬란드 여행하기

위에서 내려다보는 아이슬란드는 팔짝 뛰어오르는 양의 형상을 닮았다고 한다. 고개가 갸우뚱거려지는 설명에 다시 지도를 펼쳐 십여 일 동안 운전했던 길을 손가락으로 따라갔다. 양의 머리와 두 앞다리 그리고 통통한 몸뚱이, 뜻밖에 꽤 그럴싸한 형체가 그려졌다. 그러니까 우리의 여행은 바로 양의 허벅다리 안쪽에서부터 시작한 셈이었다.

다정한 인사

아이슬란드를 돌아보는 가장 편리한 방법은 자동차를 빌려 섬을 둥글게 한 바퀴, 그러니까 양의 몸통을 삥 둘러싼 1번 링 로드ring road를 따라 움직이는 것이다. 비교적 날씨가 온화한 7~8월에는 대중교통이 자주 운영되어 일부 여행자들은 자전거여행이나 도보횡단을 계획한다고도 하지만, 우리같이 사전 계획 없이 움직이는 게으른 여행자에게는 렌터카만한 선택이 없었다. 대신 링 로드가 아닌 샛길과 비포장도로를 주로 이용하기 위해 사륜구동 차량을 예약했다.

그렇게 남편과 나는 십일 간 매일 5~6시간가량을 운전하며 아이슬란드를 돌아보았다. 차 안에서 보낸 짧지 않은 시간이 지루하지 않았던 것은 끊임없이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던 아이슬란드의 자연 덕분이었다. 우와 하고 절로 감탄 소리가 새어 나오면 차를 멈추고 아이슬란드의 풍경과 공기를 눈과 입과 코로 한가득 들이마셨다. 

곳곳에서 어슬렁거리는 귀여운 양떼를 마주치는 일은 운전을 즐겁게 하는 또 다른 이유였다. 전체 인구의 60% 이상이 거주한다는 수도 레이캬비크Reykjavik 일대와 유명 관광지가 모여있는 골든 서클Golden Circle을 벗어난 후로는 사람보다 오히려 양을 더 자주 만났다. 그도 그럴 것이 아이슬란드는 사람 수보다 양의 숫자가 네 배 이상 많은 나라였다. 몇 마리씩 무리를 지어 다니는 양떼를 지나칠 때마다 나는 열심히 메에에 소리를 내며 인사를 건넸다. 내 소리가 꽤 그럴듯하여 속아 넘어간 것인지 혹은 너무 어설퍼 황당해서였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양떼는 엔진 소리에 놀라 도망가다가도 이내 뒤를 돌아 우리를 쳐다보곤 했다. 이런 우리의 일방적인 교류는 여행 내내 계속되었다. 여행 중 내가 양에게 인사하기를 까맣게 잊어버린 유일한 순간이 있다면, 맛있고 신선한 양고기 요리를 먹을 때뿐이었다. 

양과의 동침

출발 일주일 전에야 항공권을 살 만큼 덜컥 와버린 여행지였다. 준비 없이 떠나는 여행은 그만큼 설레지만 예기치 못하는 사건 사고가 생기기 마련이다. 아니나 다를까 출국 며칠 전 급하게 예약했던 호텔에서 연락을 받았다. 

내용인즉슨 호텔 측의 실수로 다른 숙박객과 우리의 예약이 겹쳤으며 우리가 더 늦게 방을 예약했기에 요청한 삼박 사일 중 이박 삼일만 숙박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호텔은 샴페인으로 사과의 뜻을 전했다. 무료 샴페인은 얻었을지언정 갑자기 하룻밤을 허허벌판에서 보내게 된 우리는 긴급 대책을 세웠다. 바로 와일드 캠핑이었다. 지난 몇 년간 조금씩 사모아 온 캠핑용품을 드디어 쓸 기회가 생긴 것이니 오히려 기쁘기도 했다. 밤이 되자 마치 우리 둘의 첫 집이라도 짓는 것인 양 우리는 사뭇 진지해졌다. 나름대로 건축을 업으로 하는 남편과 나인데 우리 집 첫 장만을 어느 하나 허투루 할 수는 없지. 먼저 집의 위치로 말할 것 같으면 일단 전망이 좋아야 하고 침실은 자고로 남쪽을 향하되 교통이 크게 불편하지 않으면서도 조용한 곳이 적합하달까. 

그렇게 실없는 이야기를 나누며 텐트를 세울 곳을 찾아 꽤 오랜 시간을 보냈다. 해가 지지 않아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것이 이럴 땐 참 다행이었다. 몇 곳을 돌아보다가 드디어 마음에 꼭 드는 장소를 발견하였다. 움푹한 골짜기 안인 그곳은 지형상 바람이 닿지 않아 한결 아늑하였고 잡초가 얕게 깔려 바닥도 부드러웠다. 큰길에서 멀지 않으면서도 인적이 없기도 했다.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텐트를 세웠다. 에어 매트리스와 침낭을 깔고 작은 전등까지 달고 나니 이 작은 공간이 꽤 근사하고 포근했다. 다음으로는 서둘러 쌀을 씻어 밥을 지었다. 밥이 뜸이 들여질 동안 달걀 세 알을 풀어 계란찜도 만들었다. 거기에 바로 이전 여행지였던 베를린의 한식당에서 사 온 반찬거리를 내고 인스턴트 된장국까지 준비하니 어느덧 근사한 저녁 식사가 차려졌다. 꿀맛 같은 식사를 마치고 텐트 안에 누우니 바람 소리가 들렸다. 침낭에서 꼼지락거리다 어느새 잠이 들은 우리를 깨운 것은 이른 아침부터 메에에, 하고 우는 양이었다. 그들도 우리 텐트 옆에서 밤을 보낸 모양이었다. 이곳은 양에게도 명당이었나 보다.

더 외딴 곳으로

스네팰스네스반도Snaefellsnes에서 여유로운 며칠을 보내고 양의 머리 부분에 해당하는 서부 피오르Westfjordur 지역에 들어섰다. 도로가 험해지는 만큼 인적이 드물어졌고 우리의 하루는 주유소의 위치를 확인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풍광은 더욱 경이로워졌다. 보라색 꽃이 넘실대던 들판, 웅장한 소리를 내며 물줄기가 떨어지던 딘잔디 폭포Dynjandi, 넘실대는 바다 파도가 바로 코앞에 있는 지열온천, 빠른 속도로 산봉우리를 덮어버렸던 안개까지. 이 모두를 지나자 아이슬란드에서 가장 북쪽에 있는 도시라는 이사 피오르Isafjordur가 나타났다. 도시라기보다는 아담한 해안마을에 가까워 보였지만 이만한 마을이 첩첩산중에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은 고향을 향한 아이슬란드 사람들의 애정과 끈기 덕분이었을 것이다. 그 생각을 하니 마음 한구석이 ‘쿵’ 하고 울렸다.

마을은커녕 인기척조차 없는 곳도 있었다. 바로 북에서 남으로 섬의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하이랜드Highlands였다. 하이랜드를 거치는 길은 매우 거칠어서 사륜구동 차량만 지나다닐 수 있고 날씨에 따라 종종 폐쇄되기도 한다. 며칠 전 작은 차 고장이 있었던 터라 하이랜드에 가는 것이 조금 주저 되었지만 멈추고 싶지 않았다. 주유소에 들러 연료를 가득 채우고 인터넷으로 날씨와 길 상황을 확인하였다. 눈이 많이 쌓인 다른 루트는 폐쇄되었으나 다행히 난도가 비교적 낮다는 F35번 길은 통행이 가능하였다. 112 아이슬란드 앱을 이용해 우리의 출발시각과 위치를 등록한 후에서야 비로소 출발하였다.

먼지 날리는 거친 길을 달리느라 덜커덩거리는 차 안에서 보이는 것은 만년설로 뒤덮인 산과 화산석 덩어리가 굴러다니는 황무지뿐이었다. 거센 바람과 낮은 온도로 생명이라고는 존재할 수 없을 것 같은 비현실적인 느낌을 주는 곳이었다. 하이랜드를 벗어났을 때 즈음에는 차 안 곳곳이 까만 먼지로 수북이 덮였다. 

외진 곳을 찾아다녔던 우리의 열정은 란드마나뢰이가Landmannalauguar 트래킹, 정확히는 그곳에서의 부부싸움으로 끝을 맺었다. 늦은 오후에 시작한 트래킹이었던데다가 반대 방향으로 등산로를 진입한 탓에 얼마 지나지 않아 산속에 아무도 남지 않은 것이 원인이었다. 위로 올라갈 수록 등산로 표시는 점점 알아볼 수도 없을 만큼 허술해진데다가 자욱한 안개에 강한 바람까지 부는 이 대자연 속에 우리 둘뿐이라는 사실에 불안해졌다. 게다가 내가 가진 것은 생수 반병에 배터리가 거의 닳아버린 휴대전화뿐이었다. 오묘한 색의 조합을 가진 신비로운 산봉우리도, 금방이라도 다시 끓어오를 것 같은 광활한 라바 필드(화산 폭발시 들판으로 흘러내린 용암이 굳어 형성된 지형)도 더는 눈에 담기지 않았다. 겁먹은 나와 달리 남편은 자꾸 더 위로 향했다. 지금껏 우리가 서로에게 완벽한 여행 동반자라고 생각했건만 겁에 질린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남편이 야속했다. 화가 나 점점 커지는 내 목소리가 산에서 메아리를 칠 때쯤 결국 남편이 길을 돌아섰다. 마지못해 내민 남편의 손과 후들거리는 내 다리를 붙잡고 서둘러 하산했다.

우리가 방황하는 것은 고향에서 멀리 떨어져서가 아니라 나 자신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라던 하루키의 글이 문득 떠올랐다. 내 인생의 방향과 속도에 의구심이 들 때면 내 마음도 길을 잃어 헤매곤 한다. 낯설기에 더 신비로웠던 아이슬란드의 자연 안에서 지난 내 마음의 방황은 위로받았다. 아름답던 풍광의 감동이 점차 희미해지고 나의 방향성이 다시 흔들리게 된다면 남편과 함께 다시 이 섬에 찾아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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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이현아

글·사진 이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