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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틀랜드
“자유와 아름다움 그 자체는 그냥 지나치기에 너무 완벽하다.” 영화<인투 더 와일드Into the Wild>에서 남자 주인공이 한 말이다. 모든 걸 버리고 자연으로 떠난 그의 삶을 나 역시 한 번쯤 살아보고 싶었다. 여행에서 거대한 자연을 잠시 마주할 때마다 여기에 살고 있는 나를 상상하곤 했다. 그리하여 작정하고 모든 일정에서 대자연을 만나겠노라 계획한 적은 있었지만, 번번이 무산됐다. 여행일정에서 잠시 들렀던 대자연은 아주 유명한 곳뿐이어서 경이로운 자연에 감탄하기보다는 어마어마한 인파에 지쳐 내가 도대체 뭘 본건 지 기억나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건 사람이 많지 않은 곳을 찾는 거였다. 마침 유럽으로 떠날 일이 있어 지도에서 근처를 찾던 중 영국의 스코틀랜드가 눈에 들어왔다.
주변에 스코틀랜드를 다녀왔다는 사람은 없었고, 검색을 해봐도 단체로 관광버스를 타고 투어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렌터카를 빌려 일주한 몇몇 가족도 있었다. 그들 뒤로 보이는 풍경은 척박했다. 아무것도 없는 벌판이지만 많은 것을 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냥 지나치기에 완벽한 아름다운 자연은 바로 여기에 있는 게 아닐까. 결국, 남편과 나는 돌이 막 지난 아이와 함께 자동차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도시가 아닌 곳은 많은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기에 어린아이를 데리고 간다는 결정은 쉽지 않았다. 일단 몇 군데 숙소를 미리 예약했다. 예전에는 구석구석에 있는 숙소를 예약하기란 힘든 일이었는데 에어비앤비airbnb를 통해 사진으로 집의 내부를 확인하고 선택 할 수 있었다. 우리는 아이가 있다고 말을 하고, 집 전체 혹은 한 층을 다 사용할 수 있는 큰 집을 구했다. 지도로 보니 숙소는 아주 후미진 곳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광활한 자연 속에 던져질 우리 모습을 생각하며 걱정과 기대가 뒤 섞인 묘한 감정을 품으며 스코틀랜드로 떠났다.
*스코틀랜드
영국(United Kingdom)은 스코틀랜드(Scotland), 잉글랜드(England), 웨일스(Wales), 북아일랜드의 연합으로 구성된 나라다. 지금은 한 나라가 되었지만, 불과 삼 백년 전만 해도 그들은 따로 왕을 섬기는 독립된 나라였다. 이들 가운데 인구도 가장 많고 힘을 가진 잉글랜드가 웨일스를 침략한 후,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를 합병하게 된 것이다. 아일랜드가 독립될 때, 북아일랜드가 영국의 일부로 남아 지금의 연합왕국이 완성되었다. 스코틀랜드인들은 이런 상황에 불만을 품고 있고 최근까지도 독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스코틀랜드는 영국의 북부에 위치한 곳으로 척박한 자연을 가졌고, 그들만의 역사와 문화는 잉글랜드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스코틀랜드의 수도 에든버러Edinburgh에 도착했을 때에는 비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사람들은 두툼한 패딩을 입고 있었다. 우리는 갑작스러운 추위에 긴장상태였고, 옷을 빨리 사 입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렌트한 차를 찾아 에어비앤비Airbnb를 통해 구한 숙소로 이동했다. 비는 그쳤지만 구름 낀 칙칙한 날씨는 여전했다. 숙소는 구시가지의 번화가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길을 찾기 어려웠다. 사람들에게 주소를 보여주면 친절하게 길을 알려주었지만, 자꾸 엉뚱한 곳으로 가르쳐 주곤 했다. 가파른 계단을 한참을 오르니 우리가 머물 집이 보였다. 동화 같은 풍경이었다.
작고 귀여운 건물들과 체크무늬 치마를 입은 남자, 마법사 분장을 하고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야기꾼. 창문 너머로 한 눈에 보이는 구시가지의 풍경은 동화 속 풍경처럼 소박하고 예뻤다. 그리고 찬찬히 숙소를 둘러보았다. 오래된 가죽소파, 영화에서 봄직한 벽난로, 창문은 위를 향해 여는 나무문으로 되어 있었다. 집안 여기저기에는 낡았지만 멋스러운 장식들로 가득했다. 주방은 깨끗하고 요리할 수 있는 장비들이 충분히 갖춰져 있었다. 겨우 하루 묵기에는 아쉬운 집이었다. 근처 마트에서 잔뜩 장을 봐와서 그럴듯하게 밥을 먹으니 이제서야 실감이 났다. “우리가 스코틀랜드에 왔구나.”
스코틀랜드에서 캠핑을 한다는 건 왠지 우아해 보였다. 캠핑과 우아함이 어울리지 않겠지만, 아주 근사한 자연 아래에서 잠을 자고 밥을 먹고 뛰어논다는 건 뭔가 큰 혜택을 얻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수많은 캠핑장 중에서 우리는 스코틀랜드 서쪽에 위치한 포트윌리엄의 글렌 네비스 캠핑장Glen Nevis Holidays으로 향했다. 에든버러에서 이곳으로 가는 길은 아주 아름다웠다. 다듬어지지 않은 풀들이 내 허리 위까지 올라와 이리저리 요동쳤다. 머리와 뺨을 사정없이 후려치던 바람이 조금 잦아지니 저 멀리 캠핑카 한 대가 보였다.
영국은 캠핑카를 타고 여행하기 아주 좋은 지리다. 깊숙한 시골에도 잘 빠진 도로가 있었고, 경사도 거의 없었다. 그들은 시설이 잘 갖춰진 캠핑장보다는 불편함을 감수하고 자연에 뛰어드는 걸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 길을 가다 마음에 드는 장소가 보이면 멈춰 하룻밤을 보낼 수 있다는 건 꽤 근사한 일이다. 우리는 대부분 시간을 차에서 보내야 했지만, 마음에 드는 곳을 발견할 때면 잠시라도 멈춰 쉬다 가곤 했다. 차나 사람이 많지 않아 조용히 집중하며 우리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가끔 지나가는 사람 중에 자전거를 타고 하이킹을 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이 풍경을 천천히 느끼고 싶다면 자전거나 하이킹이야말로 좋은 방법인데 아쉽게도 우리에게는 작은 꼬맹이가 있으니 이 정도로 만족해야 했다.
캠핑장을 찾아가는 길로만 여겼던 이곳은 스코틀랜드에서 비경을 자랑하는 하일랜드지역의 ‘글렌코Glencoe’였다. 글랜은 협곡이라는 의미인데, 도로를 지나다 보면 종종 만날 수 있다. 이 지역의 대부분은 평야가 끝없이 펼쳐지고 그 끝에는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한참 이곳을 달려오면서 내가 본건 그저 흙과 풀과 하늘이다. 그것은 날 것 그대로의 투박한 자연이었다. 훼손되지 않은, 감히 훼손할 수도 없는 자연. 지나가는 사람들은 모두 느릿하게 걷고 있었고, 말없이 고요히 풍경을 바라볼 뿐이었다.
클렌코를 넋 놓고 보느라 포트윌리엄 Fort William의 캠핑장에는 저녁이 다 되어서야 도착했다. 저녁 6시가 넘었는데도 주변은 환했다. 점점 날씨가 우중충해지는 게 곧 비라도 내릴 것 같았다. 이곳 날씨는 5분 만에 비가 오다 금세 해가 뜨는 일을 반복했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늦장을 부리는 사이 빗줄기가 굵어졌다. 남편은 빠르게 텐트를 치고 우리는 비를 피해 텐트 안으로 들어왔다. 어느새 캄캄해지고 있었다. 꼬마가 잠이 들어 남편과 둘이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우리 텐트는 초경량으로 높이가 낮아 내부에서 활동하기에는 불편했다. 상상한 근사한 캠핑과는 달리 쏟아지는 비를 피해 텐트 안에 웅크려 난민촌을 방불케 하는 저녁 식사를 해야 했다. 어제저녁에 먹다 남은 음식이 그리운 순간이었다.
잠이나 자자며 일찍 잠자리에 들었는데, 엄청난 비와 바람 때문에 텐트가 터지거나 날아가 버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서든 잠을 잘 자던 나였는데 도통 잠을 잘 수 없었다. 춥고 캄캄하니 서럽기까지 했다. 우리 꼬마는 잘 자고 있는 건지, 코에 숨이 나오고 있는지 손가락을 대고 몇 번을 확인했는지 모른다. 해가 뜨기만을 간절히 기다리며 이리저리 뒤척였다. 다행히도 7월이라 밤에는 해가 늦게 지고, 아침에는 일찍 떴다. 밝아지는 기운을 확인하고는 바로 텐트 밖으로 나오니 여전히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나는 당장 이곳을 빠져나가야 한다며 남편을 깨웠다. 꼬마가 일어나기 전에 얼른 짐을 싸자고. 정신없이 짐을 다 챙기고 나니 마침 비는 그치고 언제 그랬냐는 듯 해가 쏟아졌다. 따스한 온기가 캠핑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꼬마는 여기저기 뒤뚱뒤뚱 걸으며 신나 있었고 나도 이곳저곳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넓은 캠핑장에는 텐트 존과 캐러밴 존으로 분리되어 있었고, 전기사용 여부나 사전예약과 현장구입 등 옵션별로 위치나 혜택이 달랐다. 캠핑장까지 산골 굽이굽이 들어오면서 오지에 그냥 잔디밭만 덩그러니 있는 거 아니냐는 우려와 달리 모든 게 잘 갖춰져 있었다. 샤워실은 칸막이로 깔끔했고 온수도 콸콸 잘 나왔다. 샤워 후 머리카락이나 뒷정리를 할 수 있는 청소도구가 바로 앞에 있었는데, 내가 들어갔을 때도 이렇게 깔끔한 걸 보니 사용 후 사람들은 청소를 하고 나오는 모양이었다. 샤워실 옆 세탁실은 밤새 비가 왔던 탓인지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여기에 있는 동안 관리자를 본 적은 없었지만, 어디를 가든 깔끔했고 사람들은 알아서 모든 시설을 잘 이용하고 있었다. 캠퍼들이 이곳을 아끼는 마음이 곳곳에 느껴졌다. 오늘 하루 이곳에 자리를 빌려 사용하고 원래 상태가 유지되도록 모두가 함께 힘쓰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온 사람 중에 우리처럼 작은 텐트를 친 사람은 없었다. 다들 집 거실보다 큰 텐트에 이것저것 많은 살림살이들을 가지고 왔다. 캠핑용품은 그 넓은 텐트 안에 철저하게 다 숨어 있었다. 사적인 공간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인지 비가 자주 오는 걸 이미 알고 대비하는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우리나라처럼 타프를 치거나 텐트 앞에 용품들을 정리해 두는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남의 눈을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텐트나 캐러밴 안에 모든 것을 두고, 티브이도 보고, 요리도 하고, 먹고, 떠들었다. 그러다 날씨가 좋을 때면 잔디에서 아이들과 뒹굴고 자전거를 타고 놀았다. 그들에게 캠핑장은 집 앞마당 정도로 보였다. 나는 한국으로 돌아가면 제일 먼저 커다란 텐트를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캠핑장에서 2박을 할 예정이었는데, 간밤에 충격으로 결국 예정에도 없던 스코틀랜드 북부에 있는 스카이 섬Isle of Skye으로 향했다. 스카이 섬이야 말로 아는 정보도 없고, 무작정 가게 된 것이다. 사실 포트윌리엄에서 지도를 보는데 이름이 마음에 들었다. 촌스럽긴 하지만, 하늘을 닮은 섬이라니! 말레이그Mallaig라는 어촌 마을에서 배를 타고 30분 정도 가니 섬에 도착했다. 많은 사람이 관광을 하러 오지 않는 곳인지 인적이 드물었다.
일단 숙소를 위해 중심지인 포트리로 향했다. 스카이 섬에는 드문드문 크고 작은 마을이 있었는데, 내 생각과는 달리 생활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을 만큼 마트나 가게가 오밀조밀 모여 있었다. 특히 포트리라는 동네는 작고 귀여운 시골 마을이었다. 한때는 도자기로 유명한 곳이어서 수공예 가게가 많이 보였다. 숙소에서도 호스트인 주인아주머니가 내어주는 모든 그릇 종류들은 꽃무늬가 새겨진 영국의 전통 도자기 제품이었다. 오밀조밀 모인 작은 건물들 옆으로 걷다 보면 해변이 보이는데 그 주변으로 유명한 식당이 많았다. 우리는 인기있는 식당을 가려고 몇 번을 시도했지만, 마감되었다는 답만 들어야 했다. 겨우 찾은 빈자리가 있는 레스토랑의 맛조차 수준급이었다.
포트리에 있는 동안 먹은 모든 음식은 완벽했다. 특히 해산물 요리는 비리거나 느끼하지 않으면서 부드러웠다. 우리가 묵은 숙소는 전형적인 영국 할머니의 집이었다. 꽃무늬 원단이 여기저기 있었고, 찻잔이며 주방용품도 전통적인 영국스타일이었다. 주인아주머니는 친절한 말씨는 아니었지만, 부족하지 않게 이것저것 챙겨주었다. 아침에는 앞치마를 두르고 곱게 음식을 차려 주었다. 우리는 깨끗하게 먹어치운 접시로 화답했고, 무표정이었던 아주머니가 “나이스.”라고 웃으며 말했다.
괴물이 산다는 네스 호Loch Ness를 지나 인버네스 밑으로 내려가다 보니 황량한 벌판에 덩그러니 집이 보였다. 에어비앤비에서 봤던 사진 속의 그 집이었다. 스카이 섬에서 네스 호까지 구경하고 오니 늦은 밤이 돼서야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환하게 웃으며 우리를 맞아주던 호스트는 차근차근 집 내부를 안내해 주었다. 하루 정도는 숙소에서 온종일 시간을 보내고 싶어 조금 깊숙한 곳을 선택했다. 주변에는 풀만 무성하고, 노루가 뛰어 다니기도 했다. 전면 유리로 된 테라스에서는 도자기 체험을 할 수 있고, 앞마당에는 닭과 고양이가 보였다. 동물을 보면 흥분하며 쫓아다니는 꼬맹이는 집 앞마당을 뱅글뱅글 몇 번을 돌았는지 모르겠다. 스코틀랜드의 마지막 일정이라는 생각에 우리는 이곳에서 가장 느슨해졌다. 짐은 엉클어진 채 널브러뜨려 놓고 여행에서 처음으로 늦잠까지 잤다. 주방을 마음껏 쓸 수 있으니 조식시간에 맞춰 일어날 필요도 없었다. 우리가 묵은 2층으로 올라가는 나무 계단도 추운 날씨에 주전자를 보글보글 끓일 때 나오는 김도 좋았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일상의 모습이었다.
스코틀랜드는 우리의 생각과는 달리 아무리 깊숙한 골짜기라도 시원하게 도로가 나 있었고, 황량한 벌판에서도 조금만 가면 크고 작은 마을이 나왔다. 곳곳에 마트가 있고, 식자재 가격은 아주 저렴했다. 어디서도 본 적 없는 황홀한 광경이 끝없이 펼쳐졌다. 평생을 이렇게 차로 달리다 멈춰 쉬는 것을 반복해도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그동안 지나오면서 만난 것들이 머리 속에 조각처럼 모였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엉클어진 짐을 챙겼다. 완벽한 자유와 아름다움을 간직한 이 여행을 계속 이어나가고 싶어졌다. 우리는 여기서 영국의 남부로 쭉 내려가기로 했다. 영국 안에서 서로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잉글랜드로.
글·사진 김이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