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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자기 똥을 작품으로 생각한다

아이들은 자기 똥을
작품으로 생각한다

지금껏 들은 ‘육아설’ 중에 가장 충격적인 것은 ‘아이들은 자기 똥을 작품으로 생각한다.’는 이야기였다. 아이가 세상에 내어놓는 첫 번째 예술품이기에 똥을 누었을 때, 관객인 엄마의 “멋지다!” 같은 긍정적인 반응과 “아이코 냄새!” 같은 부정적인 반응은 아이의 자존감 형성에 큰 차이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그 여름, 초보 엄마는 기저귀 떼기 연습을 하는 딸이 실수할 때마다 호들갑을 떨었다. “이야~ 멋지다. 이렇게 예쁜 똥은 처음 봐.” 하지만 속으로는 조마조마. ‘엄마가 좋아하는 줄 알고 계속 실수하면 어떡하지?’ 걱정스러워 허둥지둥 덧붙였다. “그러니까, 딸아. 엄마 말은 말이야. 네 똥은 정말 멋진데, 그 예술품을 변기에서 창작하면 어떻겠니?” 이 정도였으니, 아이가 하루에도 수십 개씩 쏟아내는 그림을 보면 어땠겠는가? 격렬한 환호와 격려가 이어졌고, 더욱 활발한 작품 활동을 위해 요구르트병과 빈 상자, 휴지 심은 모두 버리지 않고 보관했다. 문제는 점점 규모가 커지는 그 작품들을 보관하기가 마땅치 않다는 것. 궁리 끝에 신발장 위에 전용 전시 공간을 마련했다. 운영 조건은 이렇다. ‘한 번에 다섯 작품만 전시한다. 새로운 작품이 들어올 땐 기존 작품에서 작가가 직접 하나를 골라 그 작품은 폐기 처분한다.’

아이를 키우는 내내 ‘창의력’, ‘예술성’은 나의 중요한 화두였다. 21세기를 살아가려면 ‘기술이 아니라 창의성’이 필요하다니, 단순히 ‘아이의 재능을 키워주고 싶다’를 넘어 반드시 이뤄내야 하는 비장한 과제가 됐다. 단순히 그림을 그리거나 점토 만들기 정도에 그치지 않고, 더욱 다양한 소재를 경험하고 큰 규모로 놀 수 있게 애를 썼다. 그림은 전지에 그리는 게 기본. 붓도 호탕하게 써보라고 페인트칠하는 크고 넓은 것을 사줬고, 롤러도 쥐여 주었다. 어느 날엔가 바닥에 김장할 때 쓰는 비닐을 깔고 밀가루를 두 포대나 부었다. “아이야, 마음껏 오감을 이용해 느끼고 표현해보렴!” 그 후 일주일도 넘게 아이 머리를 감길 때마다 허연 물이 나왔고, 콧구멍에서 하얀 코딱지가 나오기도 했다. 오감 체험을 위해 쌀과 콩을 한 바가지씩 줬을 때였다. 한밤중에 물 마시러 나왔다가 딱딱한 콩을 밟는 바람에 터져 나오는 비명을 참으며 결심했다. 다시는 이런 짓 하지 않으리라. 하지만 낮이 되면 다시 고민이 시작됐다. 아이의 예술성과 창의력은 어떡한담? 예술가의 어머니 노릇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는 벌거숭이 화가》에서 아이들은 물감을 발견하자 옷을 벗어 던지고 몸에 그림을 그린다. 얼룩 고양이와 인디언 추장으로 변신한 아이들은 상상의 세계로 들어간다. 아이들 놀이는 원래 그렇다. 시간과 공간 따위를 순식간에 뛰어넘는다. 아이들은 고래가 뛰어노는 큰 바다를 건너 독뱀이 사는 섬으로 간다. 그림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른다. 이수지 작가가 이렇게 화려한 색깔을 쓴 작품이 또 있던가. 후련하게 흩뿌려지는 색색의 물감들이 일상을 모험세계로 바꾸고, 아이들은 거침없는 예술가가 된다. 모든 아이들은 예술가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다. 놀이와 예술이 별개가 아니란 말도 알겠다. 신나게 노는 일이 예술이 되는 것이다. 잘 노는 아이가 뛰어난 예술가인 셈이다. 독자들도 그 세계를 함께 즐기면 좋겠다.

하지만 읽어주는 엄마는 속으로 조마조마하다. ‘왜 이렇게 난장판을 만드는 거야? 이렇게 물감을 뿌려대면 저 뒷감당은 누가 하나? 온 벽에 물감이 튀면, 특히 목욕탕 타일 사이 하얀 줄에 물감이 스미면 얼마나 지저분한데. 맙소사 저거 다 엄마 청소 거리야. 심지어 엄마에게도 물감을 뿌리네? 엄마는 너희를 씻기는 것만으로도 벅차단다. 얘들아 저리 가!’그러다가 문득 정신을 차린다. 내 몸 좀 편하자고 아이의 놀이와 예술 본능을 억누르는구나. 그러면서 아이의 창의력과 재능에 대해 걱정하다니. 아, 부끄럽구나.

엄마가 아이의 창의력을 북돋워 주기는커녕 있는 것이나마 억누르지 말자고 생각할 즈음, 아이는 학교에 입학했고 나는 또 다른 갈등과 만나게 되었다. 미취학일 때는 미술과 음악과 체육이 그렇게나 중요하게 느껴지더니, 학생이 되고 나니 그것들은 그저 취미였으면 좋겠다 싶은 것이다. 공부부터 하고! 응?김대규 작가의 《춤추고 싶어요》 그림책을 보면서 속으로 또 한 번 조마조마했다. 주인공 사자는 용맹하게 싸우기보다 마냥 리듬과 음률에 몸을 맡기고 춤을 추고 싶다. 싸움이 아니라 춤추고 싶은 사자라니! 밀림의 왕자가 그게 뭐야. 또 한 명의 주인공은 피리 불기를 좋아하는 소년이다. 사냥 대신에 피리를 불고 싶은 소년이라니? 넌 전사가 되어야 하는데 피리가 웬 말이냐. 피리 대신 창을 들어야지. 다 너희를 위해서 하는 얘기야.

어느 날, 사람들과 사자들 사이에 큰 싸움이 일어나기 직전, 팽팽하게 긴장감이 감도는 그때, 어디에선가 음악 소리가 들린다. 소년이 피리를 불기 시작한 것이다. 사자는 피리 소리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한다. 이제 조금씩 분위기가 바뀐다. 사자들도, 사람들도 표정이 바뀐다. 이윽고 그들은 함께 춤을 추고 음악을 즐긴다. 두 예술가 덕분에 전쟁의 비극을 피하고 행복한 순간이 찾아온 것이다. 예술의 힘을 이보다 더 잘 표현할 수 있을까. 아름다움은 한 사람으로 시작했더라도 전체를 바꿀 수 있다. 삶을 바꾸는 예술을 목격하면서 엄마는 조마조마했던 것이 부끄럽고 미안하다.

우리는 벌거숭이 화가
글 문승연, 그림 이수지|길벗어린이

이수지 작가의 거침없는 선과 신나게 뿌린 물감들이 아이를 자극한다. 이 책을 읽고 “나도 그릴래.”라고 하지 않을 아이는 별로 없다. 부모는 지켜보기만 하면 된다. 아이에게 값비싼 체험 미술 수업보다 더 효과적인 예술 교육은 빈둥거릴 수 있는 시간과 마음껏 놀 수 있도록 지켜봐 주는 부모뿐이다. 목욕하기 전, 낡은 칫솔에 물감을 적셔 손으로 튕겨보는 놀이를 해보자. 우리도 벌거숭이 화가!

춤추고 싶어요
글·그림 김대규|비룡소

사자와 소년은 사람들의 고정관념과 비난을 뛰어넘는 꿈을 꾼다. 주어진 기대에 따라 꿈을 꾸는 것이 아니라, 진정 자신이 원하는 것을 꿈꾼다. 가끔 나 자신에게 물어본다. 내 꿈은 누군가에게 세뇌당한 꿈이 아니라 진정 내가 원하는 것인가? 아니, 지금 나는 꿈이 있기는 한지? 《춤추고 싶어요》를 읽으며 반성한다. 나는 아이에게 마음껏 꿈꾸도록 응원하는 부모인가? 아이의 꿈을 나의 기준, 세상의 평가 기준으로 판단하지 않고 끝까지 지지하는 부모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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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김현지

글 전은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