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절대 가질 수 없었을

마당에서 마당으로

아마도 절대 가질 수 없었을

마당에서 마당으로

마당 있는 집. 서울에 살면서는 살아본 적도 꿈 꿔본 적도 없었다. 월세는커녕 가스요금을 못 내는 날도 많았다. 그래서인지 남태평양의 외딴섬 보라보라에서 살게 되었을 때 가장 좋았던 건 형편에 맞춰 집을 구해도 어디나 마당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티아레 꽃과 망고나무가 자라고, 고양이 주드가 뛰어놀고, 남편과 함께 두툼한 천을 깔고 책을 보다 꾸벅 잠드는. 물론 자는 동안 모기에 엄청 뜯기긴 하겠지만.

포에 할머니의 마당

섬에서 처음 살았던 집은 동네의 터줏대감인 포에 할머니가 세를 내준 집이었다. 하늘색 페인트로 칠해진 집 뒤로 오테마누산이 누워 있었고, 앞으로는 걸어서 1분이면 도착하는 바다가 있었다. 포에 할머니가 직접 가꾸는 넓은 마당이 집을 둘러싸고 있었다. 우리가 이 집을 선택한 결정적 이유는 저렴한 월세였지만, 이 마당에서 과일나무들이 자라는 것도 큰 몫을 했다.포에 할머니와 우리의 집은 걸어서 몇 걸음이면 충분한 거리였다. 덕분에 포에 할머니는 과일을 가져다주려고 자주 다녀갔다. 혼자 먹기에 너무 많다고 했다. 바나나, 파파야, 망고. 하나같이 마당에서 직접 키운 것들이었다. 그렇게 다녀가는 길에 그녀는 달라진 마당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했다. 내가 다 알아듣지 못해도 그랬다. 

내 방 책상에 앉아있으면 창문으로 포에 할머니가 마당을 가꾸는 모습이 보였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포에 할머니를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뒷모습이다. 웅크리고 앉아서 양팔을 쉼 없이 움직이는 작은 등. 하루는 꽃잎을 따주고, 하루는 가지를 솎아내고, 하루는 갈퀴로 나뭇잎을 긁어모으며 집 앞뒤로 다 나있는 넓은 마당을 혼자서 가꾸었다.

그 성실함은 게으른 나조차 움직이게 만들어서 한 번씩 옆에서 일을 도왔다. 가끔이지만 남편과 친구들도 함께 나가서 손질을 거들었다. 포에 할머니는 신이 나서 내내 마당을 가꾸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조금도 부담스럽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드르르르 큰 소리가 나는 기계로 잔디를 깎으면서도 소리를 지르며 대화하려는 그녀였다. 

하지만 포에 할머니 덕분에 나무가 자라는 계절을 볼 수 있었다. 처음이었다. 도시에 살 때는 가로수에 이미 많이 자란 나무를 옮겨 심기 때문인지 몰라도 나무가 자란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관심도 없었다. 가로수 대신 야자수 아래를 걷는 지금이라고 아주 더디게 자라는 그들의 성장까지 알아보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내 눈에 똑같아 보인다 해도, 오늘의 나무가 어제와는 다른 나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주 작은 차이. 하지만 그 차이 덕분에 오늘이 조금 더 선명해진다.

주드의 마당

아침에 일어나면 가장 먼저 주드를 불렀다. 어디에 있는지 오지 않았다. 마당에서 뛰노는 걸 좋아하는 주드가 이 시간에 집에 있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주드의 그릇에 밥과 물을 채웠다. 너무 더운 날에는 물에 얼음조각을 띄웠다. 사료 봉지를 위아래로 흔들며 더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내면, 그제서야 주드가 나타났다. 흙 묻은 하얀 양말을 신고 미끄러지듯 달려와 밥 앞에 정확하게 세이프. 그래놓고 멋쩍어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괜히 귀를 긁고, 손발을 핥으며 딴청을 피우고 나서야 밥을 먹었다. 사료를 다 붓도록 돌아오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럴 때는 냉장고에서 고양이 간식을 꺼내 들고 마당으로 나갔다. 

마당의 주드는 나비를 쫓아다녔다. 나무를 긁었다. 천장에 붙어있는 도마뱀을 바라보았다. 꽃에 코를 대고 가만히 있었다. 포에 할머니에게 몸을 부비며 애교 부렸다. 앉은 채로 꾸벅 졸았다. 이웃 고양이 점박이와 놀았다. 가만, 싸웠었나. 아니 역시 놀았다. 서로 몸을 숨기고 재빨리 공격해 헤드록을 걸다가 다시 핥아주고는 했었다. 마당의 끝에서 끝까지 우다다다 뛰었다. 그러다 나무 그늘 아래서 까무룩 잠이 들었다. 

가끔은 나도 두툼한 천을 가져다가 잠든 주드 옆에 깔고 슬쩍 누웠다. 억지로 깨우지 않고 책을 읽으며 기다렸다. 그러면 어김없이 주드가 천 위로 올라왔다. 제 몸을 기대었다. 언제나 여름인 이곳에서 거의 유일하게 싫지 않은 온기. 주드를 예외로 해주는 건 포에 할머니도 마찬가지였다. 당신의 나무와 꽃을 주드에게만은 마음대로 만지게 해주었다. 주드가 이만큼이나 건강하게 자란 건 할머니와 할머니의 마당이 함께 키워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사를 가게 되었을 때, 우리는 모두 주드를 걱정했다. 이삿짐을 싸느라고 큰 상자를 몇 개나 꺼내 왔는데도 주드가 마당에만 앉아 있으니, 다들 쟤도 뭘 알긴 아는 것 같다고 말했다. 평소라면 상자에 들어가려고 사족을 못 쓰는 고양이였다. 이사하는 날에는, 차로 움직이는 내내 “야옹야옹.” 울었다. 결국 새 집에 도착하자마자 침대 아래로 숨어버렸다. 아무리 사료 봉지를 부스럭거려도 나오질 않았다. 그때,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고양이에게 상황을 다 설명해준다는 친구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바닥에 바짝 엎드려, 어둠 속에서 눈만 번뜩거리는 주드에게 말을 걸었다. 같이 집을 나누어 쓰던 친구들이 다 떠나서 우리끼리 감당할 수 있는 월세를 찾아야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자 주드가 침대 밖으로 나왔다. 알아들었을까. 아니었다. 남편이 뒤에서 고양이 전용 참치 캔을 흔들고 있었다. 참치를 먹어서인지 주드는 기운을 차렸다. 다시 호기심 어린 눈으로 풀지 않은 상자 주변을 맴돌다가 냄새를 맡고, 손으로 툭툭 건드려 보았다. 발코니에도 나가고, 계단에도 올라갔다.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점점 영역을 넓혀갔다. 

새 집에서의 주드는 매일 발코니에 앉아 바다를 본다. 파도인지 구름인지 흘러가는 무언가를 지치지도 않고 바라본다. 콘크리트 계단에 앉아서는 그림자가 길어지는 것을 본다. 그런 주드의 뒷모습을 사진으로 담으며 생각한다. 저를 그렇게나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태어나고 자란 마당을 아무렇지 않게 떠나오게 만드는 내 마음이란 것이 무척 시시하다는 걸 들키고 싶지 않다고.

우리의 마당

이렇게 외딴 바다마을에 살게 되면 누구나 빠지는 함정이 있다. 바로 소박한 삶을 꿈꾸게 된다는 것이다. 아니지. 어쩌면 그런 삶을 꿈꾸었기에 이곳으로 흘러 들어왔는지도 모르겠다. 나와 남편도 그런 로망이 있었다. 풍족하지 않아도 스스로 기른 채소를 따서 밥을 먹고, SNS가 아닌 진짜 이웃들과 하루를 나누는 자연스러운 삶. 유유자적, 자급자족, 그러니까 슬로우 앤드 미니멀 라이프. 

그래서였다. 새로 이사 온 집의 발코니에라도 작은 텃밭을 만들기로 마음먹은 건. 월세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바로 네이버 검색을 했다. 여러 블로그를 돌아보고 적당한 종류의 화분과 흙 그리고 씨앗을 샀다. 그러니까 슬로우 앤드 미니멀 라이프를 살기 위해 내가 처음 한 행동은 인터넷과 쇼핑이었다. 남편은 토마토를, 나는 멜론을 심었다. 

결과는 대실패였다. 집에 놀러 온 포에 할머니가 보고 고개를 저었다. 죽어가고 있다고 했다. 화분도 흙도 발육 상태도 다 엉망이라고 했다. 겉보기에는 쑥쑥 자라고 있었다. 작고 동그란 녹색 잎이 손바닥보다도 커졌었다. 덩굴손이 나와 무엇이든 잡히는 것에 제 몸을 감았고, 노란 꽃들도 피어나고 있었다.

포에 할머니는 우리가 벌써 취했어야 할 다양한 재배기술을 설명해주었다.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성실해야 했다. 포에 할머니처럼. 그런 삶을 살고 싶다는 마음만 있고, 구체적 계획은 없었던 우리에게 당연한 결과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포에 할머니가 가져다준 꽃을 심고 씨앗을 뿌렸다. 상대적으로 키우기 쉬운 작물들을 받았다. 민트나 허브 같은 것들. 잘 자랐다. 손으로 잎을 살짝 쓰다듬으면 알싸한 향이 났다. 하물며 이 작은 풀도 만져주고 알아줘야 향을 내는 것을. 나에게는 이 정도가 딱이었다. 

남편과 나는 여전히 삶의 부피를 줄이고 우리만의 삶을 살자고 다짐한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예전 우리가 의식했던 슬로우 앤 미니멀 라이프라는 것은 결국 우리가 좋아하는 삶이 아니라 남들 눈에 좋아 보이는 삶이었다는 것을. 이 외딴섬까지 와서 타인의 욕망을 살려고 했던 거다. 지금은 민트도 허브도 다 마트에서 사다 먹는다. 훨씬 편하고 좋다. 한국처럼 배달이 된다면 금상첨화일 텐데. 아. 패스트푸드 먹고 싶다. 부끄럽지만 나는 이런 인간인 것이다. 그리고 이것도 꽤나 이 섬에 어울리는 일이다. 아님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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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김태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