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그곳 : CAFÉ STOCKHOLM

스톡홀름

아마도 그곳, 스톡홀름

CAFÉ
STOCKHOLM

그리 특별하지 않아도 눈에 띄는 공간이 있다. 향초가 모여있는 책상 한구석이나, 놀이터가 보이는 내 방 베란다, 그리고 상수동에 있는 카페 ‘스톡홀름’이 그렇다. 모두 어느 날 우연히 발견한 공간이라 여겼었는데, 생각해보니 아주 갑작스러운 건 아니었다. 골목을 몇 번 오가며 흘끗 보았던 스톡홀름의 문을 두드릴 것을, 어쩌면 나는 예상했을지도 모른다.

그 동네 그 카페

당인리 발전소 앞 골목에는 유독 낡은 건물들이 많다. 그리고 오랫동안 자리를 지켜온 사람들의 일터가 있다. 참기름 가게, 설렁탕 가게, 세탁소 등이 있는데 그 틈에 카페 스톡홀름도 자리하고 있다. 스톡홀름은 아직 이 년 정도밖에 되지 않은 카페지만 특유의 고요한 분위기로, ‘이리카페’, ‘제비다방’, ‘김씨네 심야식당’ 등 아는 사람만 찾아간다는 매력적인 가게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하지만 이곳은 쉽게 지나칠 수도 있는 곳이다. 평범하다기보다, ‘한적한 골목의 분위기와 지나치게 잘 어울리는 외관’이라고 해야 할까. 하나의 풍경으로 스며든 모습이 보기 좋다. 화려하거나 눈에 띄는 곳이었다면 나는 아마 슬쩍 보기만 할 뿐 가게 문을 열지 않았을 것이다. 무엇보다 그런 인테리어는 ‘스톡홀름’이라는 이름과 어울리지 않으니까. 그런데 동시에 한 가지 궁금증이 더했다. ‘그럼, 스톡홀름과 어울리는 이미지는 뭘까.’ 나는 한 번도 스웨덴에 가본 적이 없었고 그렇기에 그곳의 수도가 어떤 분위기인지도 알 수 없었다. 이름을 지은 이유를 묻는 내게, 대표 전미연 씨는 이렇게 말했다. “저도 가본 적은 없어요.

이름을 정할 때쯤에, 그저 스톡홀름이라는 도시에 꽂혀있는 상태였어요. 그곳의 미술과 디자인에 관심이 많았거든요. 어떻게 보면 막연한 동경이기도 하고, 발견이기도 했죠. 카페를 시작한지 며칠 되지 않아서 스웨덴 손님이 왔었는데, 그 친구가 그러더라고요. 콕 집어 설명할 수는 없지만 전체적인 분위기가 비슷하다고. 상상이 만든 공간이지만 닮은 부분이 많았나 봐요.” 낡은 여관 밑에 있는 카페는 쉽게 볼 수 없는 짙은 보라색 페인트로 덮여 있어, 낮보다는 밤과 어울렸다. 목공소였을 때부터 썼던 투박한 나무 바닥과 초콜릿 모양으로 나누어진 창에서 새어 나오는 노란 불빛은 오묘한 분위기를 더한다. 19세기에도 스톡홀름이 있었다면 랭보나 보들레르 같은 시인들이 자주 들렀을 것 같다. 물론 이곳은 한국이지만 ‘고뇌하는 시인’과 어울리는 공간이라 생각했다. 어느 추운 겨울, 커피와 함께 나온 냅킨 위에 끄적인 시인의 혼잣말, 그의 구부러진 뒷모습 같은 것들이 떠올랐다.

또 하나의 책

그녀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건, 김경주 시인이 참여한 『시인의 책상』이라는 책을 통해서였다. 몇몇 시인의 책상에 관한 글이었는데, 김경주 씨는 두 페이지 정도를 처제와 나눈 이야기로 채웠다. 그때까지 나는 그 ‘처제’가, 이 ‘스톡홀름의 주인’이라고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들의 관계는 꽤 시간이 지나 책의 존재가 잊혀질 때 즈음, 스쳐 지나듯 본 어느 블로그에서 알게 됐다. 더불어 그녀의 친언니 전소연이 교토와 오사카를 여행하며 쓴 책, 『가만히 거닐다』의 저자라는 사실도 함께. 그녀도 출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지금은 거의 마무리 단계여서 이미 또 다른 책을 제안 받아 구상 중이라고. 다음 책은 단골손님의 이야기를 주제로 하고 싶다고 했다. “이곳에 오는 사람들에 따라 제 일상이 많이 달라져요. 그만큼 손님들과 소통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재미있는 일들도 많이 경험하죠.

한번은 어떤 여자아이가 가게에 찾아와 핫초코 가격을 묻는 거예요. 그래서 얼마일 것 같으냐고 되물었더니, ‘천 원’이라고 자신 있게 대답하더라고요. 어찌나 귀엽던지. 다 마시고 나서는 오백 원짜리 동전 두 개를 주고 갔어요. 이 꼬마는 지금도 여전히 찾아 오는데 벌써 초등학교 6학년이 됐어요.”카페에 머문 세 시간 동안 다양한 사람들이 오갔다. 늦은 오후가 돼서야 우유 배달을 해준 아저씨, 오분 만에 밥을 먹고 떠난 단골손님, 남의 카페에 와서 맛이 좋다며 채소 스프를 한 솥 끓이고 간 어느 카페 주인. 그녀는 이 모두가 익숙하다는 듯 사람들을 맞이했다. 어쩐지 내가 본 장면이 오늘의 모습만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말하는 ‘굳이 아는 체 안 해도 잘 있구나, 하는 익숙함’이 무엇인지 얼핏 알 것 같았다.1111

40년된 카페에서 배운 것

카페를 하기 전, 일본에서 일 년 정도 머문 적이 있다며 그곳에서의 추억을 상기하기도 했다. 오십 세가 넘는 두 할아버지가 운영하는 카페에서 함께 일하게 된 이야기였다. 그곳은 주로 아침에 단골손님이 많이 찾아오는데 주인 할아버지는 언제나 한결 같은 모습으로 커피를 내리고 그들을 맞이했다고 한다. ‘한결’ 같다는 건, 일상의 ‘무딤’이나 ‘흔함’을 뜻하기도 한다. 그녀는 두 노인의 일상에 매번 등장하는 인물로, 자연스레 그 일상을 함께 공유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 날들을 아주 단조롭지만 특별한 시간으로 기억하고 있는 건지도 몰랐다.오늘 보여준 그녀의 행동에서 그 카페의 모습을 대략 그려 볼 수 있었다. 손님이 나가고, 그녀가 가장 먼저 한 일은 구석에 있던 기타를 드는 것이었다. 테이블 위에는 아무렇게나 놓인 커피잔과 물컵이 오고 간 손님들의 흔적을 알렸지만, 멀뚱히 바라볼 뿐 기타를 가볍게 연주하며 놀았다(사실은 G 코드밖에 못 친다고). 다음 손님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를 잠시 미뤄두는 모습은 게으르다기보다, 좀체 서두르지 않는 사람의 행동으로 여겨졌다. “손님이 머물다 간 자리는 조금 뒤늦게 치워요. 보이지 않는 그림자가 뒤늦게 따라 나가는 느낌이랄까요. 커피의 잔향 같은 작은 아쉬움과 허전함이 좋아서 묘하게 미소 짓게 되더라고요.”

가게 안의 물건 대부분은 그녀와 닮았다. 요즘은 잘 쓰지 않는 ‘석유 난로’나‘사이펀(압력을 이용해서 커피를 추출하는 커피기구)’ 같은 경우가 그랬다. 조금 느려도 그녀의 손때가 탄 물건들은 곳곳에서 잘 쓰이고 있었다. 난로 위에는 귤이 달궈지고 있었으며, 일본에서 사용했던 사이펀 안에는 커피가 끓고 있었다. 그녀는 커피를 한 번 저으며 말했다. “오래된 것들을 좋아해요. 하지만 커피머신을 사용하지 않는 나름의 이유가 있어요. 사이펀으로 커피를 내리는 시간은 고요하거든요. 맛도 깔끔하고요. 에스프레소를 만들 때는 모카포트를 사용해요. 그래서 바쁘기도 하지만 그 시간을 즐기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녀는 예전에 푸드 스타일리스트 일을 했다. 그래서인지 맛에 앞서, 그 음식에 담긴 정서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카페의 대표 음식인 ‘가지밥’을 설명하면서도 어떤 재료를 썼는지, 어떤 맛이 나는지를 얘기하기보다, ‘언젠가 친구가 해줬던 음식인데 맛이 좋아서 항상 끼니를 찾는 동네 주민들에게 맛보게 해주고 싶었다’는 말을 했다. 그녀는 알게 모르게 일본에서 많은 것들을 배운 듯했다. 40년 된 가게의 역사를 2년 된 가게에서 발견하는 건 역시 어렵겠지만, 그녀에게서 두 노인의 모습을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내 머릿속에 무의식적으로 자리 잡은 공간은 많다. 홍콩의 파랗고 붉은 네온사인이나, 핀란드의 목조로 만들어진 집들이 그런 경우다. 실제로 여행한 적은 없지만 내게는 그런 얼굴로 남아있다. 하지만 정말로 그곳을 가본 적이 없을까. 생각해보면 나는 영화 <중경삼림>에서, 동화책 『무민』에서 그곳을 본 것 같은데. 스톡홀름도 같은 의미가 아닐까 싶다. 상수동에 있는 ‘스톡홀름’에서 스웨덴의 ‘스톡홀름’을 상상하며, 나는 잠시 여행한 건지도….

CAFÉ STOCKHOLM
서울특별시 마포구 상수동 336-16
Open 월~토 13: 00~23:00
일요일 휴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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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이혜인

포토그래퍼 박소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