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절이 달라도 마음은 닮아서

바바사·황승수ㅡ서울레코드

서울레코드는 4대째 같은 방식으로 이어져 왔다. 음악을 사랑하던 점원들이 앞선 세대의 자리를 물려받으며 50년 가까이 지켜온 자리. 그렇게 이어진 것은 가게뿐만 아니다. 복음성가만 허락되던 방에서 라디오를 몰래 녹음하던 소녀의 마음은, 태어나기도 전 세대의 힙합 LP를 한참 바라보다 주머니에서 지폐를 꺼내 드는 중학생 손님들의 모습과 자연스레 포개진다. 시대는 달라져도 음악을 좋아하는 마음은 이 오래된 레코드숍 안에서 여전히 같은 얼굴로 만나고 있다.

황승수 사장님께 연락드렸더니, 바바사 씨를 꼭 만나보라고 추천해 주셨어요. 먼저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바바사 저는 싱어송라이터 바바사입니다. 음악을 하는 데 마가 하도 많이 껴서, 이제는 마가 좀 안 꼈으면 하는 마음에 ‘가나다라마바사’에서 ‘마’를 뺀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어요.

 

서울레코드와의 첫 만남이 조금 특별했다고 알아요.

바바사 처음엔 SNS에서 채용 공고를 보고 지원했어요. 음악 활동과 영상 링크를 첨부하는 란이 있어서 인상적이었는데, 결과적으로는 다른 분이 채용됐죠. 그런데 얼마 뒤 서울레코드 사장님께서 제 계정을 먼저 팔로우해 주셨어요. 감사한 마음에 DM을 보냈더니, ‘지원자가 100명이 넘어서 함께하지는 못했지만 저희와 잘 어울릴 것 같아 팔로우를 했다.’라고 말씀해 주시더라고요. 그렇게 인연이 이어졌고, 정확히 1년 뒤 직원을 다시 뽑을 때 공고를 올리기 전에, 저에게 먼저 연락을 주셨어요. 덕분에 바로 면접을 보고 지금까지 함께 일하고 있어요.

 

이곳은 직원이 가게를 물려받으며 이어져 왔죠. 서울레코드가 걸어온 시간이 궁금했어요.

승수 서울레코드는 1976년 문을 연 이후, 직원들이 가게를 이어받으며 4대째 이어져 온 곳이에요. 저도 직원으로 처음 인연을 맺었고, 2015년부터 가게를 물려받아 운영하고 있어요. 그동안 여러 번의 고비도 있었습니다. 1대 사장님 시절에는 MP3와 소리바다 같은 무료 다운로드 서비스가 등장하면서 가게를 정리할까 고민하셨다고 해요. 그때 함께 일하던 직원이 가게를 인수해 2대 사장님이 되었고, 마침 드라마 〈겨울연가〉를 계기로 한류 붐이 일어나면서 일본인 관광객이 크게 늘었어요. 한동안은 손님의 70퍼센트가 일본인이었을 정도였고요. 2대와 3대 사장님 시절에는 아이돌 음반과 일본인 손님 중심으로 운영됐다면, 제가 운영을 맡을 즈음에는 또 다른 변화가 찾아왔어요. 손님들이 하나둘 LP를 찾기 시작한 거예요. 처음에는 굿즈 형태의 LP 한 장뿐이었지만, 찾는 분들이 늘어나면서 조금씩 종류를 늘렸고, 매장을 정식으로 인수한 뒤부터 지금의 모습으로 자리 잡게 됐어요.

 

매장에서 수많은 손님들을 만났잖아요. 사람들은 어떤 마음으로 음반 한 장을 집어 드는 것 같나요?

승수 앞서 말씀드린 MP3 이야기와도 이어지는데요. 저희 세대는 음악을 들으려면 CD를 사거나 테이프에 녹음하는 등 늘 손에 쥘 수 있는 형태로 음악을 만났어요. 그런데 MP3 플레이어와 스마트폰이 등장하면서 음악은 언제 어디서나 들을 수 있게 됐지만, 반대로 만질 수 있는 실체는 사라졌죠. 디지털 시대를 지나면서 오히려 무언가를 직접 소유하고 싶다는 갈증이 생긴 것 같아요.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생기면 음악을 듣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세계를 통째로 간직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거죠. 음반 한 장에는 음악뿐 아니라 재킷 디자인, 사진, 제작 과정까지 수많은 사람의 노력이 담겨 있잖아요. 그 모든 것을 함께 소장하고 싶은 마음이 지금의 열풍으로 이어지는 것 같아요.

매장 문을 닫은 뒤에도 음악이 흐르는 서울레코드의 ‘내일의 신청곡’ 문화가, 실은 어떤 작은 실수에서 시작되었다고 들었어요(웃음).

승수 맞 아요. 매장을 인수했을 때 간판 조명이 다 나가서 형광등을 LED로 교체하면서 매대 조명 설치도 같이 부탁드렸거든요. 그런데 알고 보니 타이머 설치 착오로 밤 12시에 간판 불은 꺼지는데, 퇴근하고 비어 있는 매대 조명은 꺼지지 않고 계속 켜 있게 된 거예요. 밤에 문을 닫고 셔터를 내리면 그 조명이 빈 셔터를 훤히 비추니까, 왠지 어색해 보여서 적당한 크기의 스티커를 셔터에 붙여두었죠. 그랬더니 가끔 인스타그램 같은 데에 손님들이 밤에 그 셔터 앞에서 사진을 찍으신 게 올라오더라고요. 그러던 어느 날, 셔터를 내리고 잔업을 하며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있었는데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어요. CCTV를 보니 손님 네 분이 매장 앞에 서서 한 시간 가까이 음악을 듣고 계시더라고요. 저도 나가기가 민망해서 가만히 지켜봤는데, 카메라가 있는 걸 아셨는지 음악이 끝나자 카메라를 향해 박수를 치고 가시는 거예요(웃음). 그걸 보고 저녁에 아예 음악을 좀 틀어놓고 가야겠다 싶어 이것도 새벽까지 나오게 타이머를 걸어두기 시작했어요. 처음엔 신청곡 없이 그냥 음악만 틀어놓고 퇴근했었어요.

 

그러다 사연도 받게 된 거군요?

승수 밤새 음악을 틀어놓고 다음 날 출근해 보면, ‘음악 잘 들었습니다.’라고 적은 메모를 꽂아놓고 가시는 분들이 종종 계셨어요. 그걸 보니 예전에 친구들과 모이기 위해 문 닫힌 서점에 ‘나 누구인데, 어디로 와라.’ 하고 쪽지를 붙여 놓던 옛날 생각이 나더라고요. 그 추억이 떠오르면서 ‘이왕 이렇게 된 거 정식으로 사연과 신청곡을 받아보자.’ 싶었죠. 처음에는 작은 메모지로 시작했는데, 나중에는 신청서 양식을 만들어 우체통까지 놓게 됐고, 그렇게 지금의 내일의 신청곡이 자리 잡았어요.

 

그동안 배달된 무수한 쪽지 신청곡 가운데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사연이 있을 것 같아요.

승수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연인이 되기 전, 썸을 타던 두 분의 사연이에요. 매장 앞에서 〈Let It Go〉를 신청했던 분들이었는데, 시간이 흘러 진짜 연인이 되어 다시 찾아오셨어요. 이번에는 사연과 함께 〈다정히 내 이름을 부르면〉을 신청해 주셨죠. 그 사연을 SNS에 소개했더니 원곡을 부른 경서예지의 경서 님과 예지 님이 직접 좋아요를 눌러주셔서 더욱 기억에 남아요. 그런데 얼마 뒤 ‘그 사연의 주인공이 저희예요. 지금은 결혼해서 잘 살고 있습니다.’라는 댓글이 달린 거예요(웃음). 우리가 틀어드린 음악을 함께 듣던 두 사람이 연인이 되고, 또 결혼했다는 소식을 알게 되니 참 신기하고 재밌더라고요. 

바바사 씨는 주로 주말에 매장을 지킨다고 들었어요. 주말의 풍경은 어때요?

바바사 손님들의 국적도 다양하고 연령대도 폭넓어서 일하는 재미가 있어요. 아무래도 주말에 근무하다 보니 커플끼리 오시는 분들도 많고요. 무엇보다 어린 친구들이 LP를 사 갈 때 가장 신기해요. ‘진짜 요즘은 LP가 다시 대세구나.’ 하는 걸 실감하거든요. 얼마 전에는 중학생쯤 되어 보이는 남학생들이 듀스 LP 앞에서 한참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어요. 듀스가 얼마나 멋있는지 열정적으로 이야기하다가 영상도 같이 찾아보고, 결국 그 15만 원짜리 음반을 사 가더라고요. 주머니에서 꼬깃꼬깃 접힌 5만 원권 지폐 세 장을 꺼내 계산하는 모습이 너무 귀여웠어요. 저도 슬쩍 끼어서 같이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습니다(웃음).

 

타인의 음악을 열심히 소개하고 건네는 일을 하고 있지만, 바바사 역시 본인만의 음악을 짓는 창작자죠. 처음 노래를 만들게 된 순간은 언제였나요?

바바사 어릴 때부터 재즈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었어요. 집에 TV도 없고 피아노만 있어서 하루 종일 피아노를 치며 놀았죠. 그러다 학창 시절 인간관계로 힘들었던 시기가 있었어요. 그날도 피아노를 치며 혼자 스트레스를 풀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연주를 하면서 제 이야기를 중얼거리고 있더라고요. 참아왔던 감정이 노래처럼 흘러나온 거죠. ‘어라?’ 싶었어요. 피아노를 치면서 노래까지 나오니까 신기했거든요. 물론 처음엔 엉성했지만, 급히 이면지를 찾아 방금 떠오른 가사를 적기 시작했어요. 정확히 중학생 때였는지, 고등학생 때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때 처음 써 내려간 가사가 제 노래 만들기의 시작이었어요.

 

이곳의 손님들처럼 음반을 처음 손에 쥐었던 날도 기억 나요?

바바사 아직도 기억나요. 본가가 창원이라 창원 교보문고에 갔는데, 그때는 재즈에 푹 빠져 있어서 재즈 CD를 두 장 샀어요. 하나는 에디 히긴스의 [Bewitched], 다른 하나는 허비 행콕의 〈Watermelon Man〉이 수록된 앨범이었죠. 음반을 하나 더 사고 싶었는데 CD를 살 돈은 부족하더라고요. 그래서 카세트테이프 코너로 갔어요. 그때는 ‘섹시한 한국 가요’를 듣고 싶었어요(웃음). 지금 생각해 보면 아마 R&B 장르를 찾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저희 집에 TV가 없다고 했잖아요. 게다가 부모님이 독실한 기독교 신자셔서 어릴 때부터 복음성가만 듣고 자랐다 보니 순전히 상상을 해야 했어요. 카세트테이프에 있는 가수들 사진만 보고 ‘어떤 음악이 섹시한 음악일까?’ 하며 고른 게 코요태였는데요. R&B와는 전혀 거리가 멀죠(웃음). 당시 코요태 3집 앨범이었는데, 재킷 사진을 보면 멤버 셋이서 무지개색 목도리를 같이 나눠 두르고 있고 가운데에 신지 씨가 서 있었어요. 그걸 보면서 ‘이 여자 분 진짜 인기 많아 보인다, 음악도 되게 섹시하겠지?’ 생각하고 골랐던 거예요. 막상 집에 와서 들었더니 상상했던 음악과는 전혀 달랐지만, 그래도 충분히 좋았던 기억이 있어요.

 

마음껏 접할 수 없어서 오히려 간절함이 컸겠어요. 그럼 그 시절에는 음악을 어떤 식으로 즐겼어요?

바바사 부모님이 대중가요를 전혀 못 듣게 하셨기 때문에, 복음성가 말고 다른 음악들은 정말 몰래몰래 들어야 했어요. 그래서 제가 음악을 들을 수 있는 통로는 라디오였는데요. 라디오에서는 노래를 1절만 틀어줄 때도 있고, 한창 노래가 나오는데 중간에 DJ가 멘트를 쳐서 말을 얹을 때가 있잖아요. 그럴 때는 정말 속상했어요(웃음). 그렇게 라디오로 음악을 접하다 보니 오히려 음악 편식을 많이 안 하게 되더라고요. 라디오에서 나오는 노래들은 재즈틱한 것도 있고, 락스러운 것도 있고, 발라드나 댄스까지 장르가 정말 다양하잖아요. 저는 가리지 않고 다 좋았던 것 같아요.

 

그때 가장 자주 듣던 라디오도 있었나요?

바바사 채널을 계속 바꿔가며 들었지만, 특히 ‘친한 친구’라는 라디오를 많이 들었어요.

 

친한 친구! DJ마다 분위기가 조금씩 달랐잖아요. 누구와 함께한 시절을 가장 오래 기억하세요?

바바사 조정린 씨가 DJ일 때였어요. 그 프로그램은 유독 음악을 많이 틀어줬거든요. 상황극 코너에서도 배경음악이 자주 나왔고, 새 음반을 홍보하러 온 가수들이 라이브를 하거나 음악을 들려주는 시간도 많았어요. 당시 녹음은 ‘옙YEPP’이라는 MP3 플레이어로 했는데요. 부모님이 전자기기를 사셨는데 사은품으로 딸려온 MP3였어요. 그걸로 라디오 음악들을 소중하게 녹음해 두고두고 들었죠. 

서울레코드에서 일한 뒤, 음악을 바라보는 시선에도 변화가 찾아왔을 것 같아요.

바바사 예전에는 피지컬 앨범에 큰 욕심이 없었어요. 오히려 조금 회의적인 편이었죠. ‘내가 앨범을 내봤자 얼마나 많은 사람이 들어줄까?’ 하는 생각이 늘 있었거든요. 그래서 디지털 싱글 위주로, 명함처럼 제 음악을 소개하는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며 활동을 시작했어요. 그런데 여기서 일을 하다 보니 그게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매장에 있는 수많은 앨범을 눈으로 보고, 손님들이 자주 찾는 음반들은 ‘이걸 왜 찾으실까?’ 하고 제가 직접 다 들어보게 되거든요. 사실 전에는 유튜브로 디깅도 많이 하고 라이브 영상도 자주 봐서 음악을 충분히 많이 들어왔다고 생각했었어요. 여기 와서 앨범을 직접 손으로 만지며 보고, 또 제가 사서 들어보는 건 완전히 다르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저도 모르게 ‘나중에 내 앨범은 이렇게 만들고 싶다.’는 상상을 하게 됐어요. 예전에는 앨범을 만드는 일 자체에 회의적이었다면, 지금은 언젠가 제 이름으로 오래 간직하고 싶은 음반을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이에요.

 

만들고 싶은 음반을 상상하면서 ‘좋은 음반’에 대한 나름의 기준도 생겼을 것 같아요.

바바사 예전에는 좋은 음반의 기준이 철저히 뮤지션 중심이었어요. 대중적인 성공과 상관없이 제가 100퍼센트 만족하면 좋은 음반이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최근에 그 생각이 완전히 바뀌게 된 계기가 있었어요. 얼마 전 밴드 혁오의 음반이 재발매됐는데 매장으로 예약 문의가 쏟아지고, 발매 당일에는 줄을 서서 사 가실 정도였어요. 특히 [23] 앨범은 가장 빨리 품절됐는데, 음악은 물론이고 디자인과 구성까지 정말 잘 만든 LP였거든요. 두 장의 LP가 포함된 구성이라 가격도 부담스럽지 않았고요. 그걸 보면서 ‘나라도 이 앨범을 사고 싶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 역시 혁오의 팬인데, 팬을 배려해 만들었다는 느낌이 분명히 전해지더라고요. 그래서 지금은 좋은 음반이란 단순히 뮤지션이 만족하는 결과물이 아니라, 자신의 시간을 내 공연장에 오고 기꺼이 음반을 구매해 주는 팬들을 얼마나 세심하게 생각했는지가 담긴 음반이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언젠가 바바사라는 이름으로 음반을 낸다면, 서울레코드 진열대에 어떤 모습으로 놓여 있기를 바라세요?

바바사 아직은 그 음반을 만들 자격을 갖추는 과정에 있는 것 같아요. 작년 4월부터 어쿠스틱 악기 하나를 들고 혼자 무대에 서기 시작했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연말에는 밴드 편성으로도 공연을 해봤어요. 공연을 할수록 제 음악의 질감과 색깔이 조금씩 선명해지는 걸 느끼고 있어요. 제가 지향하는 음악을 ‘위세스 팝WSAS Pop’이라고 부르는데요. 여러 장르를 섞어가며 지금도 계속 만들어가는 중이에요. 그래서 언젠가 서울레코드 진열대에 제 음반이 놓인다면, ‘바바사라는 음악이 이 한 장에 담겼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면 좋겠어요. 그리고 그 이후에는 서울레코드에서 일하면서 ‘서일하 밴드’도 꼭 해보고 싶어요. ‘서울레코드에서 일하다 만든 밴드’를 줄인 이름이에요(웃음). 사장님도 음악에 워낙 관심이 많으셔서 함께 재미있는 작업들을 준비하고 계세요. 다만 그보다 먼저, 바바사라는 이름으로 제 몫을 충분히 해낸 뒤에 시작해야 더 의미 있는 밴드가 될 것 같아요.

 

서일하 밴드, 입에 잘 붙는 이름이에요(웃음). 바바사 씨에게서 이곳과 함께하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자연스럽게 느껴져요.

바바사 저한테 정말 고마운 곳이에요. 근무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회식을 한 적 있어요. 그날이 마침 제 생일이었는데, 제가 셀프로 케이크를 하나 사 갔거든요(웃음). 그런데 사모님께서 직접 만드신 케이크를 선물해 주셔서 그날 회식이 자연스럽게 제 생일파티가 됐어요. 그런 작은 일 하나만 봐도 두 분이 사람을 얼마나 따뜻하게 챙기시는지 느껴져요. 사장님도 음악 하는 친구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도움이 되고 싶어 하시고, 사모님도 늘 세심하게 마음을 써주세요. 그런 분들과 이곳에서 함께할 수 있어서 감사한 마음이 커요.

문 닫힌 레코드숍에서 흐르는

내일의 신청곡

쏜애플, [서울병](2016)

쏜애플이나 아마도 이자람 밴드 같은 음악가들을 보면 가사 하나하나에 깊은 정서와 감성을 눌러 담아냈다는 점이 특징이에요. 고등학교 시절 친구와 이어폰을 나누어 끼며 참 많이 들었던 앨범이기도 해요. 과거에는 소리에 현혹되는 걸 중요하게 생각해서 화려한 케이팝 위주로 많이 들었는데, 귀에 들리는 사운드보다 마음을 움직이는 가사 한 줄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해준 아티스트예요.

도마, [도마 0.5](2015)

도마라는 아티스트는 실제로 가깝게 지냈던 친구예요. 지금은 안타깝게도 세상을 떠나서 이제는 오직 음악으로만 추억할 수 있게 되었지만요. 저는 언니네 이발관의 특유의 감성이 여성의 목소리로 피어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가공되지 않은 어쿠스틱 선율 위에 얹힌 덤덤하고도 서정적인 목소리를 잘 담아낸, 이제는 음악으로만 만날 수 있는 소중한 앨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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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황진아

포토그래퍼 박은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