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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비엔나의 공원’에 있다
am 09:52
비엔나는 지나치게 조용하고 한가하다. ‘Seit’에서 사먹은 시큼한 치즈케이크 맛 젤라토처럼 생소한 맛이다. 지나치게 조용하고 한국어도 들리지 않는 관광지는 드물다. 조용한 덕에 이곳의 시간은 더디게 간다. 느리게 가는 시간 때문에 지루하다는 생각이 든다. 먼 곳까지 와서 이렇게 좋은 풍경을 두고 지루해 하는 나를 자책했다. 뭔가 부지런히 느끼고 봐야 할 것 같은 압박감이 들었다. 하루면 다 돌아볼 수 있는 이 작은 도시에서 어떤 시간을 보내게 될까.
pm 12:20
시립공원Stadtpark으로 가는 길이었다. 나는 사진 찍느라 정신이 없었다. 정신을 차리고 앞을 보니 오빠 손에 장미꽃이 들려있었고, 오빠 곁에는 집시 한 명과 유모차를 끄는 험상궂게 생긴 남자가 서있었다. 처음엔 그냥 선물로 주는 건가 싶었는데 분유통을 들이밀며 말하는 걸 보고 그들이 돈을 요구한다는 걸 알아챘다. 나는 꽃을 돌려주고 그냥 가려는데 오빠는 이미 꽃을 받아버려서 안 된다고 했다. 머뭇거리는 우리를 보고 부부는 위협적인 표정을 지었다. 오빠는 5유로를 줬다. 그러자 여자 집시는 알 수 없는 말을 하며 다시 분유통을 내밀었다. 결국 5유로를 더 주고 나서야 우리보고 가라는 표시를 했다. 걸어가는 우리 등 뒤로 부부는 깔깔 웃었다. “뷰티풀”을 외치며 조롱하는 소리가 들렸다. 오빠는 꽃을 보면 화가 치솟는다며 내가 든 꽃을 빼앗아 버리려고 했다. 그냥 여행 중에 있는 실수라고 생각하라는 내게 자신은 실수하는 것이 싫다고 말했다. 동생에게 보이기 싫은 오빠의 모습을 보여 더 화가 났을 것이다. 그런 오빠를 보며 화가 난다기보다는 안쓰러웠다. 사실 여행에 낭만은 없다고 생각한다. 여행은 자신의 밑바닥을 확인하는 과정이다. 예외와 변칙이 난무하는 여정에서 유일한 낭만이라 한다면 일정이 끝난 뒤의 달콤한 잠이 아닐까. 여행은 원래 피곤하고 고생스럽다. 낯선 곳에서 실수를 하며 그 실수를 통해 부족한 나와 대면하고, 낮은 마음으로 어떻게 수정해갈 것인지를 고민하는 출발점이 여행이다. 실수를 두려워하는 오빠의 자책이 안쓰러워 등을 다독여주고 싶었다.
pm 12:42
이곳 비엔나 공원엔 여행자를 위한 세세한 안내 표지판이 없다. 그만큼 구속도 없다. 조용한 공간. 참새 소리도 노래 소리도 그 많던 비둘기도 적다. 날아다니는 건 나비뿐이다. 이렇게 조용해도 되나 싶을 만큼 조용하다. 루시드폴의 《사람들은 즐겁다》 노랫말이 또렷이 들린 적은 처음이다. 이런 조용함을 낯설고 지루하다고 느끼는 것은 어떻게 보면 그동안 내가 소음 속에서 살았기 때문이다. 시끄럽게 사는 것에 익숙해서 사람 사는 고요함이 어색한 것이다.
pm 10:06
저녁시간엔 각자 혼자의 여행을 즐기기로 했다. 혼자서 카페를 찾기 위해 다시 공원을 가로질렀다. 어떤 길로 무작정 들어선 순간 그 길목엔 나 혼자뿐이었다. 난 누가 봐도 관광객임을 알 수 있는 램브란트 우산을 쓰고 있었다. 여행지에서 여행자는 가장 약자다. 순간 두려움이 엄습해왔다. 무슨 일이 생겨도 이상할 것이 없는 고요함이었다. 두려움이 들자 내가 낯선 곳에 와있음이 실감났다. 공원의 적막은 타지에 덩그러니 남겨져 있음을 실감하게 했다. 조용함 속에서 나를 느낄 수 있었다. 푸른 녹음이 좋아 공원에 머물던 시간이 많았다. 처음엔 비엔나의 고요함이 낭만이 아니라 낯섦이었지만 점차 익숙해지면서 고요 속에서 여유를 발견할 수 있게 되었다. 공원 안에서 집시에게 사기를 당하기도 하고 길을 몰라 헤매기도 했다. 하지만 공원에서 겪은 이러한 어려움과 두려움이 여행이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계획을 짜도 어떤 길로 빠질지 알 수 없는, 실수의 연속. 하지만 다행인 건 어떤 길의 끝이던 그곳은 ‘비엔나’라는 것이다. 실수해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 그래 봤자 여긴 비엔나니까. 더 이상 길을 잃을 곳도 없다.
비엔나 시립공원
Stadtpark
1862년에 조성된 비엔나의 첫 시립공원이다. 바이올린 켜는 요한 스트라우스 2세의 황금 동상과 꽃시계가 아름다운 곳이다. 황금동상은 금박을 긁어가는 사람들이 있어 골치를 썩고 있다고. 큰 나무 밑에 가만히 이파리 사이로 언뜻 비치는 햇빛이 여유롭게 느껴질 것이다. 집시가 건네는 장미를 함부로 받아서는 해코지를 당할 수 있으니 주의할 것.
글 사진 김무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