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프지만 슬프지 않은 이야기

올드독 정우열

올드독, 정우열의
슬프지만 슬프지 않은 이야기

『올드독』이란 이름으로 많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은 만화가 있다. ‘소리와 풋코’라는 두 마리 개와 한 남자가 살아가는 이야기가 퍽 즐거웠던 것이 나만은 아닐 것이다. 그 책 속의 개들은 인기가 많아 다이어리로 만들어지기도 했고, 책은 베스트셀러 칸에 놓여있기도 했으니까. 시간이 흐르고 문득 만화 속에서 보던 개들이 보고 싶어져 그들을 어렵게 찾아갔다. 책을 쓴 남자는 여전히 그림을 그리고 있었고, 개와 함께 별다를 것 없는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다만, 둘 중 한 마리의 개가 하늘나라로 떠난 뒤였다.

어디에서나 비슷하게 사는 삶

제주의 시간은 느리게 흐르나요?

아무래도 조금 그렇긴 할 거예요. 약속을 잡거나 누굴 만나러 나가는 일이 드물고, 잡무에 덜 바쁘긴 하죠. 하지만 예전이나 지금이나 집에서 일하기 때문에 크게 다를 건 없는 것 같아요. 같은 생활방식을 유지하되 추가된 게 있다면, 마당을 쓸고 잡초를 뽑는 일이 새로 생겼고 개와 산책할 때 바다에 갈 수 있다는 것 정도예요.

서울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지를 묻기엔 아직 이른가요.

여기 온 지 1년 5개월 정도 되었거든요. 아직 다시 가서 살고 싶은 마음은 없고, 그냥 도시적인 것들에 갈증을 느낄 때가 있죠. 소프트리나 폴바셋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다거나,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영화를 보고 싶거나, 백화점 지하 식품관에서 맛있는 것 사 먹고 싶고 그럴 때요. 적극적인 의지만 있으면 비행기를 타고 가서 할 수는 있는데 그 의지가 별로 없네요(웃음).

이곳에서 지내면 생활비는 좀 줄어들 것 같아요.

오히려 좀 늘었어요. 지금 사는 집이 낡은 집이라 난방비가 많이 들거든요. 여름에는 더워서 냉방비가 많이 들고. 전에는 자전거나 전철을 타고 갈 수 있는 곳을 여기서는 차를 타고 가야 하니까, 교통비도 더 드는 것 같고요. 이런저런 이유에서 생활비가 덜 들진 않아요.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다를 것 같긴 해요. 제주에서는 바닷가나 시골에 사는 분들이 많잖아요. 그런 곳에서는 삶의 방식이 완전히 바뀌겠지만, 저희 집은 시내 쪽에 있거든요. 가끔 제주에 있다고 하면, 전원생활을 기대하고 그런 삶을 묻는 분들이 있는 데 저는 도시에서처럼 살아요. 시장도 가지만, 주로 인터넷을 통해 대형 상점에서 장을 보죠.

새로운 친구가 많이 생겼나요?

원래 알던 분들이 제주로 내려오기도 했고, 여기서 새로 만난 분들도 있고 그래요. 제주가 크잖아요. 동쪽에서 서쪽으로 가려면 두 시간이 걸리죠. 그래서 자주 보거나 하진 않고 가끔 만나요. 서울에서도 친구들을 자주 만나는 편은 아니었어요. 가족들도 마찬가지고요. 더구나 요샌 SNS나 온라인 메신저로 자주 대화를 나누니까 특별히 보고 싶다는 생각은 안 드네요.

집에 개가 있으면

개에게 말을 걸 때, 혼자 말하고 있단 생각 안 드세요?

주로 그래요. 대화가 되고 있다는 생각은 별로 안 하지만, 개와 함께 산 세월이 한참 되니까 꼭 말이 아니더라도 생활패턴 같은 건 서로 잘 알고 있어요. ‘어떻게 이런 것까지 서로 알고 있을까’ 하는 것들. 예를 들어 샐러드를 만들어 먹을 때, 채소를 자르고 마지막 한 조각은 늘 개를 줘요. 그래서 부엌에서 샐러드를 준비하는 소리가 들리면 옆에 와서 그걸 기다리고 있어요. 그러다 제가 드레싱 뚜껑을 열면 개는 조용히 사라져요. 이제 자기가 먹을 건 없다는 걸 아는 거죠. 그런 섬세하고 사소한 것들을 서로 알고 있어요. 그런 게 어떤 대화보다 재미있는 것 같네요.

반대로 개가 뭔가 말하고 싶어 할 때, 그걸 알아차려서 기쁜 적이 있나요?

저희 개는 주장이 강해요. 막 졸라요. 그래서 뭔가 알 수 없는 경우는 드물어요. 예를 들어, 빵을 꺼내놓으면, 테이블 밑에 조용히 와서 보고 있어요. 아침에 일어나면 밥을 달라고 머리를 막 긁고요. 이런 것 말고도 너무 많죠. 오래 같이 살다 보니까 뭔가를 요구할 방법은 다 알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특별히 알아차려서 기쁘다, 그런 건 없는 것 같아요.

못 알아차려서 미안했던 적도 있었을 것 같은데….

풋코는 밖에 나가면 들짐승이 되어서 짖고 뛰어다녀요. 그런데 그 짖음이 아직도 뭘 요구하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 바다에 나가면, 그냥 혼자 뛰는 게 아니라 저한테 와서 짖고 뛰고를 반복하거든요. 그럴 때 얘가 뭘 말하고 싶은 건지 알고 싶어요. 전문가를 만나면 물어보고 싶네요.

혹시 개를 보면서 어린 시절이 떠오를 때가 있나요?

제가 어렸을 때, 저희 집에는 항상 개가 있었어요. 저희 할머니가 마당에서 밥이나 라면을 주고 키우던 개들이요. 그땐 쥐가 많아서 쥐약을 놓곤 했는데, 개가 그걸 먹고 죽었어요. 또 다른 한 마리가 이유 없이 시름시름 앓다가 죽은 적도 있고요. 그때 엄청나게 슬퍼했어요. 그래서 지금 같이 사는 개들을 보면, 그 개들이 생각나요. 그때부터 나는 개를 키울 운명이었구나,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어떤 소년이었을지 궁금해져요.

처음 받는 질문이라 고민이 되네요. 이건 그때 저를 겪어본 친구들에게 물어봐야 정확히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도 제 기억에 의존해서 답해보면, 그림 그리는 걸 항상 좋아했고요. 그때만 해도 만화라는 게 저급한 문화로 취급받던 때라 가족들이 좋아하지 않았던 기억이 나요. 아, 그리고 숫기가 없어도 너무 없었어요. 친구네 집 앞에서 친구를 불러야 하는데, “누구야 놀자!” 이걸 못 했어요. 그래서 여동생이 늘 대신해주곤 했죠. 그런 소년이었던 것 같네요.

캠핑을 싫어한다고 말하면서, 개들과 캠핑을 자주 가는 것 같더라고요.

저는 캠핑이 좋은 게 신기해요. 씻는 것, 먹는 것 모두 너무 불편하잖아요. 요즘 캠핑이 유행이라 그런지 텔레비전에 많이 나오던데, 캠핑장에 차를 가지고 가서 그 옆에 텐트를 치는 모습이 좀 이상했어요. 그런데 굳이 캠핑하는 이유를 물어보신다면, 개를 위해서예요. 개를 재워주는 숙소는 거의 없는데, 개와 여행은 하고 싶거든요. 바다 수영도 시켜주고 싶고 같이 산에도 가고 싶고요. 그래서 찾은 방법이 캠핑이에요. 처음과 지금의 캠핑 모습은 달라요. 처음엔 요리 도구, 장비 같은 걸 잔뜩 갖고 갔는데 그게 다 온종일 노동이더라고요. 쉬러 가 뭐 하고 있는지 싶어서 지금은 장비를 많이 줄였어요. 텐트도 팝업 텐트(놓는 순간 펼쳐지는 텐트)를 사용하고, 음식도 김밥이나 과일 같은 걸 사서 가요.

주로 어디서 캠핑하세요?

서울에 있을 땐, 서해에 ‘대이작도’라는 섬을 자주 갔어요. 사람도 별로 없고, 가게 같은 것도 없고요. 물이 빠지면 ‘풀등’이라는 모래 섬이 생겨요. 보트 타고 거기에 가는 것도 좋았죠. 개는 공짜예요. 제법 변화무쌍한 작은 산도 있고요. 놀기 좋고, 살고 싶기도 한 곳이에요. 제주로 와서는 가까운 함덕 해변을 자주 가요. 여전히 캠핑을 좋아하진 않지만, 산이나 바다에서 잘 때 ‘개와 나 그리고 자연뿐이구나’라는 느낌을 받는 걸 좋아해요

사람과 한집에 살다 보면 화가 날 때가 있잖아요. 개랑 살 때도 그런 게 있겠죠?

개랑 살면서 그런 적은… 있죠. 있어요. 예를 들면, 지금 소리가 죽고 풋코가 혼자 남아서 제가 꼼짝도 못 해요. 풋코는 분리 불안증이 좀 있어요. 그래도 소리가 같이 있으면 제가 외출해도 괜찮았는데, 지금은 없으니까 풋코가 조절을 못 해요. 혼자 두고 나갔다 온 적이 있는데 난리가 났더라고요. 그래서 소리가 죽은 후로 한 번도 극장에 영화를 보러 가질 못했어요. 그런 점이 화가 난다기보다는 불편해요. 저도 풋코도 아직은 소리가 없는 삶에 적응을 못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이별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자세

블로그를 통해 개가 아프고 죽기까지의 과정을 지켜봤어요.

블로그에 개의 죽음에 대한 글을 썼던 때랑 지금은 생각이 좀 달라요. 소리가 지난 2월에 죽었는데, 그 후 더 큰 일들이 어딘가에서 생겼고 그걸 지켜보면서 생각이 많아졌어요. 세상에 너무 말도 안 되게 슬픈 일이 많은데, 그저 제가 키우던 한 마리 개의 죽음에 대해 이렇다저렇다 쓴 게 지금은 좀 우스워요. 

자연스레 담담해진 것 같기도 하네요.

우주적 관점에서 보면, 개가 죽었는데 그런 건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사라져버렸잖아요. 제 기억 속에는 분명히 있지만, 개의 육신이나 감정 같은 게 완벽하게 없어졌죠.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에 우주는 무관심한 것 같아요. 내가 얼마나 절실하고 사랑하고 사랑받았는지 그런 건 결국 다 지나가는 거 같아요. 원래 다들 알고 있는 사실이겠지만, 겪어보니 지금은 더 피부에 와 닿죠. 이걸 통해서 ‘내가 어떻게 살아야지’ 같은 결심은 하지 않지만, 그런 경험이 삶에 스며들어 저도 모르게 어디론가 저를 흘려보내겠죠. 너무 심각한 얘긴가요.

아뇨. 사람들이 이 일에 관해 관심을 두고 위로의 말을 전하는 게 부담스럽진 않나요?

부담스럽다기보다는 고마워요. 특히 그중에는 언젠가 꼭 은혜를 갚아야겠다고 생각하게 하는 분들도 있어요. 남의 일을 그렇게 자기 일처럼 걱정해주는 분들이 있다는 게 조금 신기하기도 해요. 잊지 말아야겠다고 늘 생각해요. 그리고 좀 미안한 감정도 들어요. 개를 떠나 보내는 경험은 개를 키우는 사람은 누구나 하는 건데, 다른 사람들에 비해 유난을 떤 느낌이 있거든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큰 슬픔이 지나가고 나면, 슬픔뿐만 아니라 기쁨까지도 잘 느낄 수가 없더라고요. 감정에 무뎌지는 느낌이랄까. 저만 그런 걸까요?

그렇죠. 저도 그 마음이 뭔지 알 것 같아요. 소리가 큰 병에 걸렸다는 걸 알고 나서부터, 계속 그랬어요. 처음엔 슬펐는데 언제부턴가 슬픔과 기쁨이 아무것도 아니란 느낌이 들더라고요

왜 그런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언젠가 개가 죽을 걸 예상하고 있었는데…. 아, 설명하기가 어렵네요. 저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어떤 생각이 들면 왜 그런지 생각해서 글이나 그림으로 그걸 풀어요. 그게 제가 하는 일인데, 이건 아직 설명하기가 어려워요. 좀 붕 뜬 것 같기도 하고, 이런이상한 상태에서 한참을 지내고 있는 것 같아요.

슬픔이 지나간 후, 가장 슬픈 점은 그런 것 같아요. 

그러게요. 개가 죽기 전에는 몰랐는데, 저도 모르게 모든 게 무의미하단 생각을 하게 되네요.

소리가 죽기 전의 시간은 어떻게 보냈어요?

병원에 가고 소리가 뇌종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죽을 병이었던 거죠. 우리나라에서는 개의 뇌종양을 치료할 수 없었는데, 마침 한 병원에서 그것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었거든요. 할 수 있을 줄 알고 기다렸어요. 그런데 갑자기 상태가 나빠지더라고요. 혼수상태가 되었죠. 분명 의식이 없다고 의사 선생님이 그랬는데, 제가 가서 “소리야” 부르니까 얘가 힘들 게 일어나는 거예요. 평소에 그런 개가 아니거든요. 부른다고 아는 척하고 따르고 그런 개가 아닌 주제에, 제가 부르니까 일어난 거예요. 그런 개가 아닌데 원래…. 너무 슬펐죠. 그때. 

후회로 남은 게 있나요?

가끔 생각을 해보는데 후회할 만한 부분은 없어요. 적절한 시기에 잘 보내줬던 것 같아요. 그런데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건 아프다는 신호가 있었을 텐데,그걸 못 알아준 것 같아 아쉬워요. 더 오래 살 줄 알았는데, 12년밖에 못 살아서 그것도 아쉽고요. 너무 짧았어요. 제주에 온 지도 1년이 조금 넘었는데, 충분히 못 놀고 보낸 것 같아요. 그래도 분명한 것은 개들의 삶을 만약 상, 중, 하로 나눌 수 있다면 소리는 ‘상’의 삶을 살았어요. 가볼 곳 다 가보고, 먹을 것도 다 먹고, 잘 놀았고요.

좋아하던 드라마 제목이기도 한데, 혹시 ‘이별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자세’가 있을까요?

곧 풋코가 제 곁을 떠나겠죠. 그땔 생각하면 눈앞이 캄캄해요. 무슨 낙으로 살아야 할까. 그런데 그걸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해서 덜 아프게 하는 그런 건 없지 않을까 싶어요. 자연스럽지도 않고. 그런데 제 친구가 그런 얘기를 했어요. “많이 받았으니까 견뎌야지 어떻게 하겠어.” 그게 참 어떤 위로보다 와 닿았어요. 꼭 개가 아니더라도 다양한 이별이 찾아오겠죠. 그걸 준비할 수 있는 자세가 있다면, 결국 더 많이 사랑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기회가 있을 때, 서로의 소중함을 느끼면서 아껴주는 게 좋은 거 같아요. 그리고 그렇게 많이 주고받은 이가 떠나고 나면, 산산이 부서져야죠. 한동안 힘들어하면서 그렇게 살아야죠.

기억나는 소리의 모습이 있을 것 같아요.

일광욕하는 걸 좋아해서 햇볕을 찾아다니며 그곳에 앉아있는 모습이 많이 생각나요. 여름에는 선풍기 앞에, 겨울에는 난로 앞에 앉아있던 모습도 그렇고요. 가장 최근 기억은 장난감을 물고 오던 모습이에요. 장난감을 물어서 제자리에갖다 놓는 걸 할 줄 아는 개였거든요. 그런데 아플 때, 장난감을 자꾸 입에서 놓치더라고요. 떨어뜨리고 나서 저를 멍하니 쳐다보는 게 자꾸 생각나요. 그 생각을 하면 또 괜히 미안하고요. 

그런 소리가 보고 싶을 땐, 어떻게 하나요? 

동영상을 봐요. 옛날 사람들은 사람이 죽으면 그 사람의 물건을 다 불로 태웠잖아요. 그런데 저는 다 갖고 있을 거예요. 잊으려고 하거나 덮어두려고 하기보다는 꺼내 보면서 살고 싶거든요. 어차피 이러고 사나 저러고 사나 길어도 100년을 살 텐데, 잊고 싶지 않아요. 그걸 잊으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기도 하고요. 그걸 보면서 힘들어지고 삶을 건강하게 유지할 수 없다면 안 보는 편이 낫겠죠. 그런데 저는 삶이 작은 즐거움과 큰 괴로움으로 이뤄졌다고 생각하고 살거든요. 괴롭고 고단한 일상을 살다가 어쩌다 작은 즐거움을 만나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만났던 작은 즐거움을 잊고 싶지 않아요. 계속 찾아서 보니 잊기 어렵죠. 근데 그렇게 살고 싶어요.

『개를 그리다』 정우열 지음 | 일에이치코리아 | 372쪽 | 152 X 190mm

한 남자와 두 마리의 개가 만나 10년간 살아온 이야기를 엮은 책이 얼마 전, 출간되었다. 그는 “개는 어느 날 문득 부숭부숭하고 작은 털 뭉치로 사람에게 와서 마음을 온통 사로잡은 다음 서둘러 떠나는 존재”라고 말한다. 개가 어떻게 사람을 사로잡는지는 딱히 그에게 물어보지 않아도, 주변 사람들에게 이 책을 보여주고 알 수 있었다. 책을 보는 반응이 대체로 비슷했다. 책장을 한 장씩 넘기다 “아”, “와”, “어머” 같은 감탄사와 함께 무장해제로 웃어버린다. 두 마리 개가 보여주는 사랑스러운 모습에 보는 사람들은 행복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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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포토그래퍼 박선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