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끝으로 느껴질 순간

최송아 — 사진가

그녀의 사진을 아낀다. 어떤 사람의 사진을 좋아한다는 건 그의 시선을 ‘애정한다’는 말과 같다. 송아는 아주 평범한 순간의 가장 커다란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사람이다. 그 시선은 꾸밈없이 자연스러워 우리가 모르는 일상의 사랑을 찾게 만든다. 그렇게 보잘것없는 어떤 이의 하루마저 순수하게 빛나게 한다. 특별한 여행이지만 지극히 보통의 하루이기도 한 그녀의 베를린 여행기 사진집 《MATI》. 송아만의 시선을 따라 여행을 일상처럼, 일상을 여행처럼 바라보는 또 다른 시선을 찾아간다.

몇 해 전 《AROUND》에서 짧은 인터뷰를 한 적이 있어요. 요즘 날이 좋은데, 봄날을 어떻게 보냈는지 궁금해요. 

필름과 디지털 사진을 주제로 대화했었죠. 여전히 사진을 하고 있어요. 직접 찍은 사진을 기반으로 책을 만들고, 브랜드와 협업하고, 다양한 형태로 프린트 작업도 이어가고 있죠. 사실 최근에 목 디스크 증상이 생겨서 아프기도 했는데요. 4월의 절반은 병원에서 치료받거나 누워 지냈어요. 통증이 회복되고는 밤 산책도 나가고, 친구도 만나고, 귀여운 쌍둥이 조카들과 언니, 엄마랑 벚꽃 구경도 했어요. 끝 무렵엔 잠깐 제주에도 다녀왔는데 매년 가고 싶을 만큼 행복한 봄이었어요. 

 

회복의 봄날을 보냈네요. 사진집 《MATI》 이야기로 시작해 볼까요. 2022년에 출간했고, 2019년부터 베를린에서 지냈던 날들을 기록한 책이죠. 

6년 전 잠시 살았던 베를린에서의 여행을 담은 사진집이에요. 그때 함께 지낸 가족들의 일상이 담겼어요. 베를린 외곽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거기에서 만나게 될 자연은 어떤 모습일지 기대하고 떠난 여행이었어요. 제 사진의 피사체가 되어준 한 소녀에게 빠져들게 된 시간이기도 했죠. 엄마와 아이의 모습을 매일 바라보며 그들을 통해 제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그려보기도 했어요. 그 기록을 다시 꺼내어 2022년에 한 권의 책으로 엮었고, 3년이 지난 지금에도 가끔 책을 펼쳐볼 때마다 이 장면을 어떻게 카메라에 담았는지, 장 넘기다 보면 이유가 다 보여요. 저에겐 그때 느꼈던 감정을 다시 생생히 감각하게 해주는 책이에요. 

 

베를린 시골의 배나무 농장이 배경이었죠. 왜 그곳이었는지, 떠나게 된 과정이 궁금해요. 

코로나가 한창 유행하던 시기에 베를린에 있었는데, 당시 일정 구간 이상을 벗어나는 이동이 금지되어 있어서, 가까운 국가들을 여행할 수가 없었어요. 대혼란의 시간을 보내다 약간의 안정과 무료함이 찾아올 무렵이었죠. 자유롭게 수 있는 일은 마트에서 장을 보거나 약국을 가는 것뿐이었고 많은 부분에 제한이 있었어요. 그렇게 베를린에서의 생활이 무의미해지면서 새로운 환경이 필요했어요. 건강한 자연이 그리웠고, 한적한 시골에서 며칠 묵으며 풍경을 마음껏 담아내고 싶었죠. 막연히 외곽에 숙소를 예약할까 고민했는데 도시에서와 똑같이 지내고 싶지는 않았어요. 그러다 ‘WWOOFWorld Wide Opportunities on Organic Farms’에 참여하게 됐는데, 유기농 농장에서 봉사하면서 숙식을 제공받는 일종의 여행 프로그램이었거든요. 여러 곳 중에서 선택한 게 ‘마티’의 가족이 있는 배 농장이었죠. 당시 그곳은 저에게 답답한 일상을 벗어나게 해줄 기회 같은 거였어요. 

 

기대를 안고 떠났는데, 어땠나요? 

농장에서 벌어지는 작업 과정을 가까이에서 보고 들으며 그들의 문화 속에서 일상을 함께 보낼 수 있다는 게 정말 감사했어요. 매일 느지막한 아침에 밥을 먹고 세 시간 동안만 배 수확을 도왔죠. 조용히 음악을 틀어놓고 사다리를 옮겨가며 배를 따는 일이 정말 행복하더라고요. 단순노동은 명상과 비슷하잖아요. 배 수확이 끝나면 개인적인 시간을 보냈어요. 근교로 나들이를 가기도 하고, 어떤 날은 낮잠을 잤다가, 가족들과 한식을 만들어 나눠 먹기도 했고요. 하루 끝엔 일기를 썼지만, 거의 대부분의 순간 사진을 찍었죠. 배를 수확하는 경험이 저에게는 어릴 적 추억과 닮아 있기도 하고, 치유받는 느낌이더라고요. 단순한 봉사 이상의 가치였어요. 

 

어릴 적 이야기가 궁금해지네요. 조부모님의 과수원에서 자주 시간을 보냈다고요. 

많은 순간이 떠올라서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은데요(웃음). 저희 가족은 여름방학 때마다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과수원에 갔어요. 과수원은 엄마의 어린 시절이 남아 있는 곳이죠. 차를 타고 가는 길부터 눈에 보이는 모든 게 엄마의 추억이라 그때의 이야기를 나누며 출발했어요. 엄마는 형제가 많아서 늘 친척들로 북적였어요. 도착하면 가까이 사는 가족들이 달려 나와 반겨줬죠. 명절이나 방학에만 볼 수 있는 사촌들과 뜨겁게 인사하고 하루 종일 붙어 다녔어요. 쨍한 여름 냇가에서 수영하고, 올챙이 잡고, 할머니 몰래 예쁜 사과 따서 깨물어 먹고, 어른들 심부름하면서요. 조금씩 커가면서 사과에 덮개를 씌우거나 수확하는 일도 열심히 도왔고요. 온 가족이 땀 흘려 노동하고 나면 상추랑 깻잎 따다가 가마솥에 고기도 구워 먹고, 깜깜한 밤에 아빠 차 보닛 위에 누워 코앞까지 펼쳐진 별을 구경하면서 하루를 마무리했죠. 자기 전에 다 같이 누워 무서운 이야기도 하고(웃음). 사과뿐만 아니라 자두, 배, 살구, 호두, 밤까지 다양한 나무가 있었는데 엄마는 제가 처음 보는 과일이나 채소를 하나하나 다 알려주셨죠. 

최근에 할머니랑 할아버지, 두 분 다 돌아가셨는데 화장하지 않고 과수원에 모셨어요. 할아버지를 모시던 날 비가 정말 많이 내렸는데 저희 평지로 시작되지만, 녹차밭처럼 산지로 구성되어서 언덕 위로 할아버지 관을 들고 올라가야만 했어요. 장례식장에서 과수원에 도착하니 동네 분들이 먼저 열악한 언덕 진흙 길을 포클레인으로 다 닦아놓으셨죠. 저희가 입을 우비와 장화도 잔뜩 준비해 놓고 기다리고 계셨어요. 빗속에 안개 낀 산이 여전히 너무나 아름다웠는데, 장화를 신고 푹푹 꺼지는 땅을 밟고 올라가서 할아버지에게 마지막 인사하고 무덤을 만들고, 할아버지 옆에서 가족들과 모여 앉아 오손도손 이야기하던 날도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추억이에요. 

 

너무 아름다운 이야기예요.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사진에 이유가 있었네요. 어릴 때는 어떤 아이였는지 궁금해져요. 

궁금한 것은 다 해결을 봐야 하는 아이였던 것 같아요(웃음). 호기심이 많고 혼자라도 무모한 모험을 하는 성격이었어요. 초등학생 땐 친구에게 둘만 아는 타임머신을 만들자고 하고, 서로에게 편지를 쓰고 좋아하는 것들을 담아서 땅속에 봉인한 기억이 나요. 열어볼 날을 진지하게 믿고 기다리는 일을 참 근사하게 여겼죠. 청소년 때는 성격이 진지해지면서 영화를 정말 많이 봤어요. 기록하기를 좋아했고요.

 

때로는 천진하고 때로는 진중했던 아이였네요. 《MATI》에도 그런 아이가 등장해요. 이름이 ‘마틸다’인가요? 

맞아요. 마틸다는 정말 말괄량이 같은 아이였어요(웃음). 저를 끌고 다니고, 갑자기 와서 뽀뽀해 주고, 친구처럼 챙겨주고요. 따가운 잔디밭도 맨발로 겁 없이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에너지 가득한 아이였어요. 연극배우였던 엄마를 닮았는지 마틸다도 카메라 앞에서 자연스러웠어요. 나중에는 표정도 지어주고 포즈도 취해주면서 사진 찍는 게 놀이가 됐죠

함께한 다른 사람들 이야기도 궁금해요. 

‘사스키아’라는 친구가 중간에 새로운 식구로 왔어요. 그녀는 네덜란드 사람이었는데 작은 밴을 몰고, ‘릴루’라는 강아지도 함께였고요. 책에도 릴루 사진이 담겨 있죠. 사스키아는 릴루랑 둘이서 유럽 일주를 하고 있었어요. 저녁에 도착해서 같이 밥을 먹었는데 식사가 끝나자마자 제집처럼 능숙하게 설거지도 하고 농장 식구들과 잘 알고 지냈던 것처럼 차분하게 이야기를 나누더라고요. 신기했어요. 엄청 씩씩하고 강한 친구였어요. 며칠 후엔 수확한 배를 트럭에 가득 채우고 멀리 있는 주스 공장에 가서 배를 착즙하고 병에 담아서 돌아와야 했는데, 사스키아가 태연하게 본인이 다녀오겠다고 하는 거예요. 배를 담은 트럭이 저한텐 아주 커 보였거든요. 사스키아는 일을 깔끔하게 마무리하고 늦은 밤, 역시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돌아왔어요. 혼자서 뭐든 다 해내는 그 친구가 아주 용감하고, 성숙해 보였어요. 

 

저는 추억이 사람을 만든다고 생각해요. 자주 여행을 떠나던데, 그 기억들이 지금의 나에게 어떤 영향을 줬을까요? 

추억이 사람을 만든다는 말에 깊이 공감하지만, 여행을 통해 어떤 사람이 되었는지 생각해 본 적은 없는 것 같아요. 여행이 분명 즐겁고 중요한 시간이긴 하지만, 결국 제가 어떤 사람인지 더 또렷이 느껴지는 순간은 돌아온 일상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달려 있더라고요. 지금 떠오르는 문장이 있어요. ‘여행을 일상처럼, 일상을 여행처럼.’ 참 흔한 말이지만, 그런 하루를 보냈을 때 훨씬 더 단단한 오늘을 보냈다는 생각에 안정감이 들곤 해요. 여행에서 바쁘게 움직이기만 하고 돌아오면 기억에 남는 게 없잖아요. 그래서 조금은 일상처럼 보내는 시간도 분명 필요한 것 같아요. 

 

이번 《AROUND》 주제가 ‘나들이’거든요. 일상 속의 가벼운 전환인데, 여행과 나들이를 나누는 기준이 있을까요? 

너무 단순하게도… 저에게는 짐을 하루 종일 싸야 하느냐 아니냐의 차이인 것 같아요(웃음). 여행 갈 때 가방 싸는 데 시간을 많이 쓰거든요. 큰 짐을 꾸릴 때 머릿속에 생각이 많아져서 조금 지치기도 해요. 마침 다음 주에 다시 베를린에 갈 예정인데 큰 짐을 꾸릴 생각하니까 벌써 버겁네요. 

 

여행은 짐을 싸고 풀어내는 일과 같다는 말도 있죠(웃음). 짧은 나들이를 떠날 때 꼭 챙기는 게 있어요? 

이것도 너무 단순한데요(웃음). 카메라를 꼭 여러 개 챙겨요. 습관처럼 선글라스를 가방에 넣고요. 물건은 아니지만 떠나기 전에 꼭 청소도 해요. 

 

문득 이런 질문도 하고 싶네요. 우리는 왜 여행할까요? 

각자의 이유가 있겠지만 저에게 있어서 여행은 내면의 확장을 돕는 일 같아요. 여행을 떠나면 셀 수 없는 자극에 놓이게 되고 그런 기억이 누적되면 좋은 책을 읽었을 때처럼 결국 나의 세계를 넓힐 수 있는 것 같아요.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큰 에너지를 쓰지 않고 감당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진달까요.

지금 떠오르는 여행의 기억이 있다면 어떤 걸까요? 

베를린에서 살았을 때 기억이 많은데요. 저에겐 여행보다는 삶에 가까운 추억들이에요. 보통 집 뒤에 뜰이 있고 쓰레기 분리수거장이 있어요. 제가 사는 집도 그랬는데 어느 날 쓰레기를 버리러 갔다가 뒤뜰에 너무 예쁜 꽃이 피어 있어서 카메라를 가지고 다시 그 꽃을 찍으러 나왔어요. 1층 집의 발코니 바로 앞인 데다가, 창문도 열려 있어서 누군가와 마주치기 전에 조용히 찍어야겠다 싶던 순간에, 안에 있던 젊은 남자가 나오는 거예요. 집 안을 몰래 찍었다고 오해할까 봐 얼른 사과하고 상황을 설명하려 했는데 그분이 “가위 가져다줄까?”하고 말을 건네더라고요. 꽃을 잘라 가라는 뜻이었어요. 왜인지 그때 기억이 선명하게 남았어요. 또 그런 날들도 꽤 있었죠. 길가에서 꽃을 찍고 있으면 지나가는 분이 멈춰서 그 이름을 말해주고 간다거나, 다정한 사람들에 대한 기억이 많아요. 남은 것은 추억뿐이고, 이렇게 다시 떠올릴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나도 누군가에게 감동을 줘야지 하고 마음을 가다듬으며 살아가게 돼요. 

 

다정한 사람만이 다정한 기억을 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인지 사진이 참 따뜻하고… 그런 면이 여실히 느껴져요. 

따뜻하게 바라봐 주셔서 감사해요. 저는 언제나 늘 꾸밈없는 상태를 아끼는 것 같아요. 사람이든 물건이든 풍경이든 그것이 가진 원초적이고 고유한 모습을 관찰하다 셔터를 누르고 있어요. 사진에서 특유한 질감이 느껴지는 것도 좋아요. 습기라든지, 웃을 때 생기는 주름이나, 머리카락처럼 손끝으로 느껴질 것 같은 순간들을 담고 싶어 해요. 제가 오랫동안 사진 찍는 일을 좋아하는 이유가 명확히 있어요. 사진에는 정답이 없지만 찍는 순간은 마치 문제를 풀고 답을 찾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 과정에서 나만의 좋은 결과를 얻었을 때 마음에 폭죽이 터지는 것 같아요. 그런 환희가 있어요. 

 

끝으로, 이 책이 출간될 시기엔 여름이 다가오고 있을 텐데, 그땐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 궁금해요. 

최근에 ‘바게트케이’라는 국내 베이커리 브랜드와 협업한 책 출간을 앞두고 있어요. 준비 과정이 1년 정도 걸린 것 같은데 제 사진과 셰프님 이야기가 담긴 책이에요. 가을쯤 나올 예정이라 여름에는 아마 책을 마무리 짓는 일에 집중하겠네요. 그리고 요즘에는 접사에 관심이 생겨서. 올 하반기에는 그 연습을 많이 하고 싶어요. 꽃과 나비를 꼭 찍고 싶은데, 나비는… 가능할지 모르겠네요(웃음). 언젠가 나비를 쫓아다니면서 찍은 사진들을 모아 전시나 책을 통해 보여드릴 기회가 있으면 좋겠어요.

Bookᅳ《MATI》 최송아

우리가 살아가며 놓치고 있는 소중한 순간들이 참 많다. 오늘 아침 컵에 담긴 맑은 물을 마시는 일, 창문을 열어 숨을 크게 들이쉬는 일, 문득 올려다본 하늘이 예뻤던 일, 길을 걷던 순간에 나를 감싸는 빛을 바라보는 일, 그 모든 순간, 사랑하는 사람과 얼굴을 마주하며 웃는 일. 그녀의 사진을 보면 나의 이런 순간들이 떠오른다. 그리고 생생하게 감각하게 된다. 그때 우리를 감싸고 있던 온도와 공기의 무게, 감정의 질감까지. 이런 게 일종의 여행이라면 나는, 이 사진들과 함께 늘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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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김지수

사진 최송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