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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더듬거리며 무엇을 만들어가는가
우리는 더듬거리며
무엇을 만들어가는가
세 명의 작가 이야기
침대에서 방 입구까지는 세 걸음 정도 걸어야 한다. 난 조용히 침대에서 일어나 손잡이를 찾아 더듬거렸다. 거실엔 불이 켜져 있었다. 어머니는 책상 위 컴퓨터 앞에 앉아 피곤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내 글은 왜 이렇게 진부한 걸까…?”
어머니와 아버지가 긴 여행에서 돌아오셨다. 그리고 바로 다음 차례로 나의 휴가가 예정되어 있었다. 우리 집에는 털이 하얗고 눈이 까만 강아지가 두 마리 있다. 한 마리는 많이 늙어서 보살핌이 필요하고 한 마리는 분리 불안이 심각해 사람들과 떨어져 지내질 못한다. 그들을 보살피기 위해 우리 가족은 이렇게 번갈아가며 자리를 비운다.
어머니는 여행 중간중간에 여행지의 감상을 담은 여행기를 적어놓았다. 어느 곳에서 무엇을 보고 어느 곳으로 이동하는 길에 무엇을 느끼고…. 그런 식으로 글을 적어 내려가다 보니 어느새 도착과 동시에 두꺼운 책이 한 권 완성되어 있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처음으로 모두 합쳐진 글을 읽어보고 있는 중인데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지나치게 많은 정보를 쏟아붓고, 지나치게 많은 감상을 쏟아부은 자기 자신을 질책하고 있었다. “네가 좀 읽어봐라. 넌 젊으니까.” 어머니는 나에게 일독을 권했다. 나는 글에 대해 논하기 이전에 궁금증이 하나 생겼다. 어머니는 왜 자꾸 뭘 하시는 걸까?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되지도 않는 일로 분주하게 지내는 나에게 어느 날 친구가 물었다.
“넌 왜 자꾸 뭘 하는 거야?” 무슨 질문이 이렇담….
“세상에 뭘 안 하는 사람도 있나?”
나도 모르게 툭 튀어나온 반문은 지금 생각해도 정말 훌륭한 대답이었다. 그걸로 친구의 입을 막는 데 성공했으니까.
“그치…. 세상에 뭘 안 하는 사람은 없지….”
그런데 친구의 그 질문 한마디는 이상하리만큼 오랫동안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힘겹게 돌아온 주말에 그림을 그리면서, 퇴근 후 피곤한 몸을 이끌고 책상에 앉으면서 나는 몇차례나 생각했다. 나는 왜 자꾸 뭘 하는 걸까? 관심을 받고 싶어서? 돈을 벌고 싶어서? 돈과 관심 어느 것도 얻지 못한 경우라면? 도대체 나는 왜 자꾸 뭘 하는 거지?
“갔다 와서 읽어볼게요. 저 내일 암스테르담 가요.”
난 어머니의 글을 읽는 대신 짧은 인사를 건네고 방으로 들어갔다. 불을 끄고 더듬거리며 난 또다시 침대로 향했다.
암스테르담의 한 조각가와 나는 각별한 사이를 지속하고 있다. 나는 그녀의 스튜디오 한쪽에 있는 소파에 앉아 몇 시간이고 그녀가 작업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녀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많은 사람들이 제 집 드나들 듯 그녀의 스튜디오에 드나들었다. 그때마다 난 몇 번이고 같은 말을 반복했다.
“잠시 어디 갔어.”
“오~!” 사람들은 한결같이 사랑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돌아갔다.
잠시 뒤 조각가는 그녀의 어시스턴트와 함께 복잡하게 생긴 기계장치를 들고 들어왔다. 다시 밖으로 나가 “무거운”이라는 말로밖에 설명할 수 없는 어떤 덩어리를 들고 돌아왔다. 그리고 그곳에 “눅눅한”이라고 설명할 수 밖에 없는 어떤 액체를 섞으며 심각하게 작업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건 어때?” “조금 묽어?” ”조금 더 섞어볼까?” ”근데 너무 미끈거리지 않아?”
”넌 어때?”
심각한 대화 중에 내게도 질문이 주어졌지만 난 그녀에게 도움이 될 만한 대답을 내지는 못한 것 같았다. “음….” 그녀는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다시 토론을 이어갔다. 도면도, 상세한 설명도, 무얼 하겠다는 약속도 없이 그들은 더듬어가며 무언가를 찾아가고 있었다. 어린아이가 소꿉놀이를 하는 것처럼 논리도 욕망도 조금도 담기지 않은 토론이었다.내 어릴 적 취미는 그림 그리기였다. 수업 시간이나 쉬는 시간이나, 책상에 앉아 있을 땐 항상 그림을 그렸다.
아이들은 유독 내 그림에 관심이 많아서 내가 무어라도 그리고 있으면 꼭 다가와 말을 걸었다. “뭐 그려?” 난 그런 관심이 무척 부담스러웠다. 한 번도 무엇을 그려야겠다고 정하고 그린 적은 없었기 때문에 늘 당혹스러웠다. “헬리콥터!” 난 즉흥으로 대답하고 대답에 맞게 형체를 그려나가곤 했다. 무언가를 그릴 때 그 대상이 없을 수도 있다는 걸 난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 그녀가 진행 중인 작업에 대해서, 그래서 난 그녀에게 무엇을 만들고 있는 중인지 물어보지 않았다.
저녁을 먹고 조각가와 근교의 숲을 찾아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좀더 긴 대화를 나눴다. 두려워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걱정하는 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작업에 대한 이야기도 약간 나누었는데, ‘그것이 망할지 어떨지 모르겠다.’는 정도로 아주 초연한 자세였다. 우리는 더 깊은 주제에 대해 이야기했다. 삶에 대해서,
죽음에 대해서, 늙는 것에 대해서. 아주 현실적인 문제지만 일상에서는 잘 다뤄지지 않는 주제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것을 그녀의 작업과 연관 지으려는 의도는 아니었지만, 나는 대화를 나누는 도중에도 끊임없이 그녀의 작업에 대해 생각했다. 불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녀의 스튜디오에서 본 얇은 비닐을 떠올렸다.
욕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스튜디오 한편에 서 있는 둔탁한 조형을 떠올렸다. 길고 긴 대화의 시간 동안 계절의 변화가 느껴졌고, 쌀쌀한 바람이 불어왔다. 숲에 들어온 지 몇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우리가 일상에서 얼마나 많이 멀어져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둘러싸고 있는 숲의 형태가 마치 우리를 둘러싼 늑대와 강아지와 하이에나 무리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오 신기하다.” 우리는 자전거를 끌고 달빛을 따라 이미 어두워진 숲속을 더듬듯 빠져나왔다.
문에서 침대까지 거리는 얼마나 될까? 다섯 걸음 정도? 얼핏 3~4미터가 채 안 되는 거리다. 그러면 문에서 불을 끄고 침대에 다다르기까지의 거리는 얼마나 될까? 그것은 차마 가늠하기 힘들다. 우리는 불을 끄고 벽을 더듬으며 어둠을 통과해 지나갔다. 겨우 불을 껐을 뿐인데 거리와 시간과 촉감이 모두 뒤죽박죽되어버렸다.
우리는 모두 무언가를 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가끔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궁금할 때가 있다. 우리는 왜 자꾸 무엇을 하는 걸까?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사람들은 되도록 밝은 불을 밝힌다. 그리고 내가 어디쯤 있는지, 누구 곁에 있는지 반복해서 확인한다. 그렇게 눈으로 확인한 것에는 별로 흥미로울 만한 내용이 없다. 우리는 가끔 불을 끄고 손으로 더듬는 일을 한다. 난 개요도 없이 생각나는 대로 글을 적는다. 조각가는 더듬어가며 어떤 형상을 빚는다.
“형 다녀왔다!” 서울에 도착해서 강아지들에게 먼저 인사를 했다. 강아지들보다 더 반겨주는 건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어서 글을 읽어보라며 원고를 내밀었다. 어머니의 표정은 밝아져 있었고, 원고는 떠나기 전보다 한결 얇아져 있었다.
“우리는 한여름 매미 소리처럼 지루하게 보내고 있었다.”
원고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게으르게 소파에 앉아 여행을 계획하던, 벌써 지나와버린 여름의 이야기로 시작하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 조각가의 전시가 있었다. 직접 가보지는 못했지만 다른 매체의 보도로 접할 수 있었다. 크고 가벼운 물체가 텅 빈 무대 위에 담담하게 서 있었는데, 가끔 불어오는 바람에 흔들거리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우리는 더듬거리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글·그림 한승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