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없는 마을]

누군가 어디서

에디터 A씨와 이자카야

A씨는 에디터다. 여느 에디터와 마찬가지로 마감 기간이 되면 스트레스를 받고 야근도 하고 머리카락도 빠지고 말수가 적어진다. 커피 마시는 속도가 빨라지고 양이 많아지며 박카스도 왕왕 사 마신다. 박카스를 먹으면 정말 기운이 나느냐 물어본 적 있는데 “기분 탓인지 효과가 있는지는 모르겠어. 박카스도 중독이라는데 먹으면 그래도 좀 나아.” 이렇게 대답해서 실효과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대체로 그는 건강해 보인다. 가끔 투 샷 넣은 차가운 아메리카노를 마시는데, 그런 날이면 ‘힘든 기간인가 보네.’ 하고 건강을 빌게 된다.

그는 미련이 많아서 원고가 대강 마무리되어도 진정한 마감 날짜가 올 때까지 끝을 못 본다. 고치면 더 좋아질 텐데, 만지면 더 나아질 텐데… 하고, 글을 꽉 붙잡은 채 씨름하면서 다듬고, 또 다듬으며 끝나지 않는 과정을 건너는 것이다. 그는 마감보다 이르게 원고를 완성하는 걸 좋아한다. 글은 진작 완성되었지만 그 글을 만지고, 또 만지며 마감 하루 전날까지 주물럭대는 게 그의 방식이다. 그는 하얀 화면에 타이핑으로 글 쓰는 것도, 연필을 손에 쥐고 종이에 쓰는 것도 좋아하지만, 그런 그라고 글이 쉬운 건 아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 호르몬에 따라 어떤 주기에는 글이 아주 잘 써지는 반면 어떤 주기에는 애를 써도 글이 써지지 않는다는데, 특히 에세이가 죽도록 써지지 않는 날엔 일찍 퇴근해 이자카야에 간다고 했다. 조용하지만 안주가 맛있는 곳으로 향한다 했다. 그는 기본 안주로 양배추 내어주는 집을 좋아했고, 야키토리에 생와사비를 곁들여 먹길 좋아했다. 생맥주 한 잔이면 알딸딸하게 취기가 돌기 때문에 이자카야에 가도 취하는 데 드는 비용이 적어 가성비가 좋다고도 했다. 매일 술집에 가는 건 아니었기에 원고가 막힐 즈음 한 번씩 간다고 했던가. 그가 좋아하는 것은 야키토리 몇 꼬치와 구운 주먹밥 먹기. 숯불에 굽고 있는 셰프의 손을 보고 있으면 마감에 대한 압박에서 조금씩 멀어져 다른 차원의 세계로 빠져드는 것 같다고 했다.

하루는 친구들과 약속이 있어 작은 이자카야에 갔다가 A씨를 만난 적이 있다. 정확히는 나 혼자 지켜본 거니 ‘만났다’는 표현은 적확하지 않으리라. 그는 이어폰을 귀에 꽂은 채 다리를 까닥이며 오이 같은 걸 먹고 있었다. 그러면서 휴대폰에 쉼 없이 뭔가를 두드렸는데, 그 모습이 꽤 진지해 보여 나도 모르게 그의 액정을 흘끗 들여다보게 되었다. 누군가와 진지하게 대화라도 하나 했는데, 휴대폰 화면에 펼쳐진 것은 하얀 문서 화면이었다. 그러니까 그는, 맥주를 마시면서 ‘원고’를 쓰고 있는 것이었다.

언젠가 그가 고백한 적이 있다. 아무리 주당인 작가들도 술 마시면서는 글을 쓰지 않는다는데, 본인은 오히려 술이 있으면 에세이가 수월하게 써지노라고. 막혀서 진도가 나가지 않던 부분에서 맥주를 한 잔 마시고 조금 과감하게 적으면 글이 매끄러워질 때가 있노라고. 그래서 종종 혼자서 술집에 가노라고. 그런 그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왜 그가 간혹 술집으로 원고를 쓰러 가는지 알 것 같았다. 여느 때와 달리 거침없어 보이는 옆모습은 얌전한 광인 같기도 했고, 놀 생각에 신이 난 어린애 같기도 했다. 어쩌면 오늘도 A씨는 맥주 한 모금을 찾을지 모른다. 이자카야에서 구워지는 꼬치 몇 개를 들여다보며 백지를 켜두고 에세이 한두 줄쯤 쓰고 있지 않을까. 오늘따라 보이는 이자카야가 전부 그의 작업실인 듯해 자꾸만 들여다보게 된다.

시인 B씨와 산책길

B씨는 시인이다. 2014년 등단한 이 시인의 시는 시라는 단어보다 소설이란 단어와 가까워 보인다. 그의 글은 이야기로 읽히기도 하고, 거대한 서사가 만져지는 것도 같은데 이것은 ‘시’라는 장르로 분류된다. 그래서 B씨는 시인이다. 명확히 어떤 글을 두고 시라고 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세상에 그걸 정의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지도 잘 모르겠지만, 여하튼 B씨가 쓰는 건 시이고, 그는 시인이다. B씨가 다른 시인들과 특히 좀 다른 구석이 있다면, 한컴 오피스나 워드 같은 문서 프로그램으로 시를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B는 의자에 앉아 오래 작업하기 위해 보조 기구를 두지도 않고, 허리 디스크로 고생하지도 않는다. 뭇 작가들이 큰맘 먹고 들인다는 스탠딩 데스크에도 B씨는 아마 큰 관심이 없을 테다.

B씨는 자주 밖으로 나간다. 버스나 전철, 자가용이나 자전거 등 이동수단을 타고 멀리 나가는 것이 아니라 두 다리로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걷는다. 다른 이들이 외출 준비를 하며 휴대폰과 지갑을 찾을 때, 그는 잘 펼쳐지는 노트 한 권과 필기구를 양손에 쥔다. 걷기 편한 신발을 고른 뒤 집 밖으로 나서서 한 발짝, 두 발짝 걸음을 옮기며 쓰는 것이다. 서사를, 글을, 이야기처럼 보이는 ‘시’라는 것을. 산보와 함께 단어와 문장을 한 자 한 자 적어 내려가는 게 그의 스타일인데, B씨가 산보하며 시 쓰는 걸 직접 본 적은 없어 그가 쓰는 게 펜인지, 볼펜인지, 연필인지, 샤프인지 정확히는 알 수 없다.

그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걸어 다니면서 시를 쓴다고 했다. 비가 온다고, 눈이 내린다고 회사에 안 갈 수는 없는 것처럼 그 역시 날씨가 어떻든 시를 써야만 하는 시인인 것이다. 비가 내리면 노트가 젖어버릴 것이 분명해 “비가 올 때는 어떻게 쓰는 것이냐.”고 물으니 그는 우산을 목과 어깨 사이에 끼고 고개를 최대한 비틀어 우산을 고정한 뒤 한 손엔 노트, 한 손엔 펜을 들고 글자를 적는다고 했다.

하루는 눈이 오는 날 저 멀리서 걸어오는 B씨를 본 적이 있다. 둥근 안경, 둥근 얼굴, 둥글게 걷는 게 분명한 B씨인데, 얼굴을 들지 않아 긴가민가해 하면서 가까이 다가간 날이었다. 그는 익히 들은 것처럼 한 손엔 노트, 한 손엔 펜을 들고, 우산을 비스듬하게 목과 어깨 사이에 끼운 뒤 걸으며 시(인 게 분명한 것)를 쓰고 있었다. 아는 척을 할까, 하다가 멀찌감치 떨어져 그의 걸음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그가 남긴 발자국은 의외로 고른 직선이었고, 그는 두 눈을 노트에 꿰고도 흔들리지 않고 산보를 이어나갔다. 그렇게 한참이나 B씨를 바라보고 있었다. 흔들리는 건 오로지 우산뿐이었고, 그는 우산의 틈새를 비집고 침투한 눈송이 따위엔 아랑곳하지 않으며 단어들을 적어 내려가는 것 같았다. 눈으로 덮인 온 세상이 그의 작업실인 것 같아 그날은 왠지 발길 닿는 곳마다 그의 공간에 초대받은 기분이었다.

그림 그리는 C씨와 작업실

C씨는 그림을 그린다. “내가 그림 그리는 사람이오.” 하고 일러스트레이터나 만화가, 화가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타입은 아니지만 하루의 절반 이상을 그림만 그리며 산다. 그것은 수채화도 유화도 아니고, 신식 태블릿에 그리는 그림도 아니다. 그는 좀 고리타분한 성격이어서 갱지를 한 무더기 사놓고 사면이 닫히는 파일에 몇 장씩 넣어 가지고 다니면서 HB 연필로 그림을 그린다. 모든 도구를 아껴 사용하는 편이라 연필엔 모자 같은 캡이 뾰족하게 씌워져 있고, 짧아진 연필엔 깍지를 끼워 오래도록 사용한다. C씨는 한낱 갱지 한 장도 함부로 쓰지 않는다. 한 장 한 장 정성껏 그림을 담아 면면을 채우고 약간의 간격을 두고 그림이 빼곡해졌을 때 비로소 뒤집어 새로운 것을 그려나간다. 지우개는 닳고 닳아 없어질 때까지 새것을 뜯지 않으며 필기구가 담긴 원형의 헝겊 필통은 귀퉁이가 해져 두꺼운 캔버스 천이 야들야들해진 상태다. 모닝글로리 상표가 붙은 걸 보면 꽤 오래전에 산 필통 같다.

C씨는 아침에 일어나면 스트레칭을 하고 세안한 뒤 가방을 챙겨 작업실로 간다. 집에서 10여 분 떨어진 그곳은 작업하기 좋은 은은한 조도와 편안한 향…이 있는 곳이 아니라 그저 작업만을 위한 네모난 공간이다. 그곳에 있는 것은 책상, 의자, 온열기 오로지 그뿐이다. 그는 집을 나설 때면 작업실에서 먹을 걸 하나씩 챙기는데, 대부분 베이글이고 때때로 고구마다. 고구마는 그의 엄마가 텃밭에서 키우는 것으로 보통의 고구마보다 훨씬 크고 두툼하다. 울퉁불퉁 못생긴 고구마는 달지도, 고소하지도 않지만 그래서 끼니로 삼기에 좋다. 너무 단 것은 금세 물리고 너무 고소하면 시도 때도 없이 당길 테니까 그는 딱 이 정도가 좋다고 생각한다. 가끔 입이 심심할 때를 대비해 그가 작업실에 가져다 둔 것은 건빵이다. 뚜껑이 빨간 압축 용기에 담아두면 여름철에 눅눅해지지 않고, 겨울철에도 지나치게 딱딱하지 않다. 그림을 그리다 조금 심심해지면 오도독오도독 건빵을 씹어 먹으며 그림을 그리고, 작은 빗자루와 쓰레받기로 지우개 가루, 그리고 건빵 가루를 털어내는 게 그의 소일거리다.

아무것도 없는 작업실, 그래서 집중하기 쉬운 그곳에서 그는 그림을 그리며 항상 무언가를 ‘듣는다’. 그것은 음악이 아니다. 대체로 팟캐스트이거나 드라마 같은 것이다. 눈은 오로지 갱지에 두고 귀로만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그가 이 아무것도 없는 작업실에서 딱 한 가지 아쉬워하는 게 있다면 창이다. 방음이 좋지 않은 것도, 옆방의 낯선 아저씨가 조금 수상한 음식을 왕왕 건네는 것도 괜찮은데 창이 없어 바깥에서 눈이 오는지 비가 오는지 좀처럼 알 수 없다는 게 그의 유일한 불만이다. 볕이 좋은 날 산책하길 좋아하는데 날씨를 한눈에 알 수 없다는 게 아쉬워서 그는 종종 옥상에 오른다.

C씨는 집에 와서도 그림을 그린다. 작업실에선 갱지를 붙잡고 지우개 가루날리며 그림에 몰두했다면 집에서는 태블릿에 움직이는 그림을 그리곤 한다. 그는 10여 년 전에 산 태블릿을 여전히 소중히 사용하고 있으며 깨끗하게 관리하기 위해 태블릿에 항상 에이포 용지를 붙이고 터치펜을 사용한다. 닳지 않게 하기 위함인데, 효과가 있는지 10년째 한 번도 탈이 난 적이 없다. 집에서도 그는 베이글을 먹고, 건빵을 먹고, 때때로 식빵을 굽는다. 작업실과 한 가지 다른 게 있다면 발아래 작은 강아지가 있다는 건데 낑낑거릴 때마다 C씨는 허리를 굽혀 강아지의 안부를 묻는다. 그의 작업 시간은 화려하지도, 분주하지도 않고 언제나 단정하다. 네모난 공간, 최소한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조용하고 묵묵하게 해나가는 것이다. 그의 정돈된 작업 세계 안에 켜켜이 쌓인 지우개 가루를 보며 ‘아, 오늘도 고민했구나.’ 짐작한다. 누군가의 작업은 이토록 조용하고 담담하다. 요란하지 않아서 더없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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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주연

일러스트 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