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없는 마을]

구할 거야

아홉 산호초 섬

“파도가 오갈 때마다 우리의 땅은 조금씩 좁아져 
꼭 끌어안지 않으면 저 아래로 떨어질 것만 같아”

— 9와 숫자들, ‘엘리스의 섬(Song For Tuvalu)’

지구 저 어디쯤, 남태평양 중앙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하나의 왕국을 볼 수 있다. 그 왕국은 아홉 개의 산호초 섬으로 이루어져 푸른 바다에 둥지를 튼다. 섬과 섬을 잇는 물길, 그 위에 떠 있는 아홉 개의 땅덩어리. 아름답고 고귀한 그곳에서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었다. 사람들은 주로 바닷가에서 어업을 하며 생계를 유지했고, 말린 코코아 열매를 수출하면서 식구들을 먹여 살렸다. 우리가 매일 회사를 가고 밥을 먹듯, 가족을 만나고 책을 읽듯 평범한 일상이 이 왕국에도 이어지고 있던 것이다. 푸른 바닷물, 부서지는 햇살, 주변을 뛰노는 아이들 모습은 티 없이 맑고 깨끗하기만 했는데, 어느 날 바닷물이 산호초 섬 두 개를 삼켰다. 아이들은 당황했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지혜로 똘똘 뭉친 노인들도 당황했다. 순식간에 집이 바닷물로 찰랑거렸고, 복구는 커녕 하루아침에 집을 잃어 목숨이 위태로워졌다. 사람뿐만이 아니었다. 물고기와 벌레들, 해양 생물이 살아가는 산호초도 하얗게 변해 죽어가고 있었다. 얕고 맑은 바다 곁에서 햇볕을 한껏 받으며 아름답게 군집을 이루던 산호초는 변하는 수온에 도미노처럼 픽 픽 쓰러져갔다. 왕국에는 비상이 걸렸다. 두 섬이 물에 잠겨버리면서, 수도 푸나푸티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물이 왜 차오르는 것일까, 왜 우리 삶의 터전이던 바다가 무서운 괴물처럼 보이는 것일까 고민하던 사람들은 서서히 이유를 알아간다. 지구 기온이 자꾸만 높아져 만년설이 녹고, 남극과 북극의 얼음이 녹고, 해수면이 높아지면서 섬까지 잠겨버리게 된 것이었다. 수출해야 할 코코넛 나무가 죽어가고 있었다. 지하수에서도 짜디짠 소금물이 나와 물 한 모금이 귀해지고 말았다. 사람들은 배가 고팠고, 목이 말랐다. 그러는 동안에도 왕국은 자꾸 가라앉고 있었다. 

왕국의 이름은 뉴질랜드 앞바다의 아름다운 섬나라, ‘투발루’다. 더 이상 사람들이 살 수 없을 만큼 피폐해진 이곳. 결국 2001년, 투발루는 선포한다. “자연재해가 심각해졌습니다. 국토를 포기하겠습니다.” 그럼 이다음엔 어떻게 해야 할까. 투발루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살아갈 터전을 찾아야 했다. 이대로라면 사라진 두 섬을 되찾는 것은 고사하고, 나머지 섬도 다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었다. 아이들은 겁을 먹고 울었고, 어른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지혜로운 노인들도 살아갈 터전이 사라진다는 건 처음 겪는 일이었기에 마땅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했다. 정부가 나서 오스트레일리아와 피지, 이웃 나라에 구호 요청을 보냈다. “투발루 왕국 국민들을 이민자로 받아주십시오.” 모두가 고개를 저었다. 남은 일곱 개 섬에서 어찌어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앞으로’라는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하루하루 근심에 싸여 한 치 앞을 걱정하고 있었다. 짠물에 입이 버석하게 마른 지 오래였다. 그러던 중, 유일하게 뉴질랜드만이 이민을 허용했다. 그러나 조건이 붙었다. “40세 이하, 뉴질랜드에 직장을 가진 사람들만 이민을 허락하겠소.” 투발루엔 만 명이 넘는 사람이 있다. 그들 중 과연 몇이나 안전하게 뉴질랜드로 건너갈 수 있는 거지? 투발루 왕국을 둘러싼 바닷물은 매년 0.5센티미터씩 상승한다. 짜디짠 물은 마실 수 없게 되었고, 먹을 만한 것들은 계속해서 시들고 죽어간다. 뭔가를 제대로 먹지 못하는 아이가, 어른이, 노인이 점점 말라간다. 바닷물이 먼저 차오르느냐, 투발루 국민들이 생명을 유지하지 못한 채 먼저 죽느냐의 문제로만 끝나지 않을 것이다. 지금, 무언가를 멈추지 않는다면, 무언가를 실천하지 않는다면 지구는 차츰차츰 뜨거워질 테고, 마침내 그것이 6도에 다다르면 그땐 투발루 국민은 물론이고 지구의 모든 생명체가 사라져버릴 것이다.

그 많던 시엉은 누가 다 먹었을까

“어? 시엉이 다 있네. 먹어봐.”
“엄마, 장난치는 거지?”
“시골이잖아, 괜찮아. 엄마 어릴 때 많이 먹던 거야.”

일본의 어느 시골을 걷는 중이었다. 높은 건물도, 낮은 집도 얼마 없고 사람도 드물게 있는 조용한 시골. 이국의 마을에서 엄마와 나는 하염없이 걸었다. 산책이라기엔 길고, 운동이라기엔 가벼운 걸음이었다. 엄마와 나는 길 중간중간 피어 있는 ‘시엉’을 똑 따서 입에 넣고 우물우물 씹었다. 이미 오염된 지구에서 뒤늦게 태어난 나는 내리는 눈을 먹는다거나(먼짓덩어리다!), 기분 좋게 비를 맞는다거나(머리 빠진다!), 개울물을 마신다든가(벌레 있는 거 아냐?), 길가 풀을 뜯어 먹는 행위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물론 아주 어릴 때는 샐비어를 똑 따서 꿀을 쪽 빨아 먹은 기억도 있다. 하지만 그건 할머니 댁 마당에 자라던 거니까 좀 안심이 되었달까. 길을 걷다가 흙바닥에서 풀을 떼서 먹어보라는 엄마를 보면서 시간 여행을 하는 기분이었다. 그렇지만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시골이잖아.” 하고 말하는 엄마를 믿지 않을 재간은 없었다. 어쩌면 여행 중이니까, 한껏 설레 있었으니까 굳이 이것저것 따지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반신반의하며 입에 자그마한 풀을 담았다. 이로 잘근잘근 씹자 새콤한 맛이 났다. 미간이 찌푸려지는 시큼한 맛이 아니라, 입안에 가만히 퍼지는 반가운 신맛이었다. 나는 기분 좋은 감탄을 뱉으며 이게 무엇이냐 물었다. 엄마는 말한다. “시엉.”

그 뒤로 나는 시엉을 좋아하게 됐다. 그날 이국의 작은 시골에서 만난 이후로 한 번도 본 적 없지만, 그래도 그 맛을 잊지 못해 시엉을 계속 좋아하게 됐다. 시엉은 작은 풀이다. 잎사귀가 제법 뾰족하고 가장자리에는 물결무늬의 톱니가 있다. 어린잎이어서 입에 담고 굴려도 바스락거리지 않고 기분 좋게 녹았다. 시엉은 새콤한 맛과 달리 아주 부드러운 질감을 가지고 있었고, 나는 그날 그 시골을 몇 바퀴나 산책하며 길에 있는 시엉을 많이도 뜯어 먹었다. 그 기억은 그림처럼, 아주 어린 날의 일기처럼 기억 저편에 자리하고 서서히 녹아들었다. 어느 날 불현듯 ‘그런 풀이 있었지….’ 하고 생각하는 날이면 엄마한테 “엄마, 시엉 생각나?” 하고 묻곤 했다. 엄마는 어릴 때 자주 먹던 풀이니까 언제나 당연하게 “그럼!” 하고 말했다.

얼마 전 일이다. 티브이로 다큐멘터리를 보시던 아빠가 “싱아에 꽃이 다 있네.” 하신다. 딴짓을 하고 있던 나는 “싱아가 뭐야?” 하고 물었다. 아빠는 “박완서 소설도 있잖아.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나는 싱아꽃이 궁금해 아빠가 보던 티브이로 시선을 돌렸고, 싱아꽃이 눈에 들어오기도 전에 엄마 말에 신경이 홱 돌아갔다. “시엉이네. 시엉꽃.” 그러니까 엄마가 먹여준 시엉이 박완서 선생님 소설의 그 싱아였단 말이야? 세상에 없는, 나만 아는 풀을 먹었다고 생각했는데 실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그 풀이었단 말이야? 그럼, 정말이지 길을 걸으면 발에 채였다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먹은 거지? 

어쩌면 엄마와 그 작은 마을에서 먹은 것은 싱아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 많던 것이 한날 사라질 순 없는 거니까, 흙바닥에서 똑 따 먹을 수 없게 된 건 이상하니까. 차라리 세상 누구도 먹어본 적 없는 풀을 떼어 먹었다고 믿는 편이 덜 이상할 테다. 그렇다면, 나는 그 풀에 시엉이란 이름을 붙이기로 한다. 우리 모녀가 그 많던 시엉을 다 먹었는지도 모르겠다고, 그냥 그렇게 생각하기로 한다.

플라스틱 소금

“시간이 흐를수록 제철 재료의 의미는 점점 더 퇴색될 거예요. (…) 제철 음식의 첫걸음은 제철 재료가 제때 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이 계절엔 뭐가 나는지 알려고 하는 마음 같아요. 물론 제철 재료가 제때 난다면 좋겠지만, 당장 바꿀 수는 없으니 지금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는 게 중요한 거죠. ‘호박은 이맘때가 제일 맛있는 것 같아.’ 하고 내가 먹는 재료를 의식하는 것. 그러다 보면 마음에 채소 달력이 하나 생길 거예요.”

— 《AROUND》 Vol.72 <계절을 속삭이는 식탁> 중에서

우리는 매일 신용카드 한 장만큼의 플라스틱을 먹고 있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식탁에 신용카드가 오른다면 기겁할 텐데, 미세하게 잘라내서 내어주니 하루 내내 먹고도 모르는가 보다. 2년 전쯤 요리연구가 요나에게 물은 적이 있다. 제철 재료에 관심을 갖다 보면 환경 문제에도 자연스레 관심이 생기지 않느냐고. 요나가 말한다. “날이 갈수록 환경에 대한 관심은 점점 더 커지는데, 어제는 바다 오염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됐어요.” 바다 오염. 나도 티브이에서, 책에서, 지나가는 이미지로도 적지 않게 보았다. 물고기 입에 있어서는 안 될 것들이 가득 박혀 있는 모습, 1초도 지긋하게 바라볼 수 없을 정도로 무시무시하게 떼죽음을 당한 해양 생물들, 바다에 쌓여버린 너무 많은 쓰레기들. 차라리 약육강식의 문제였다면 가엾게라도 여길 터인데, 전부 다 인간이 그런 거였다. 강하지도 않은 인간이 자기 편하자고 휘두른 것들에 애꿎은 자연이 하나씩 범해지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바다 이야기를 듣자마자 물고기를 떠올렸다. 생명이 죽어 나가는 모습을 처연하게 상상할 준비를 마치고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들려온 말은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바다가 무시무시한 속도로 오염되고 있어서 아마 천일염도 곧 사라지거나 귀해질 거래요.” 지금이야 많이 대두된 이야기지만 그때만 해도 크게 생각해 본 적 없는 이야기였다. 소금, 소금이 없어진다고? 바다에서 언제든 건져 올릴 수 있다는 믿음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가. “사람들이 계속 일회용 플라스틱을 사용한다면 그것들이 썩지 않고 바다에 쌓일 거예요. 그럼 소금에도 걸러낼 수 없는 미세 플라스틱이 남아 있게 되겠지요.” 끔찍했다. 내가 먹는 찌개에, 국에, 달걀 프라이에 소금과 미세 플라스틱이 함께 나뒹구는 모습을 상상했다. 위 속을 돌아다니는 작은 플라스틱 조각들. “그런 소금을 먹고 살면 우리 몸도 빠르게 망가지겠죠? 하지만 소금 말고도 이미 악화된 자원이 수없이 많아요. 저는 요리라는 수단으로 그런 문제에 계속 질문을 던지고 싶어요. 비관적인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이 지구가 그리 오래 버텨줄 거라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하지만 우린 이런 시대에 살고 있고 지구는 신호를 보내오니까 할 수 있는 건 다 해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날 이후로 소금에 관해 자주 생각한다. ‘내가 지금 가진 돈을 다 모아서, 은행에 빚을 져서 전 세계 천일염을 다 사들인다면 나는 행복할까?’ 하고. ‘나 하나 안전한 소금으로 요리해 먹고 산다고 뭐가 좀 나아질까?’ 하고. 설사 내가 그렇게 전 세계 천일염을 다 사들여 미세 플라스틱 없는 소금을 가진다 한들, 나는 또 다른 곳에서 미세 플라스틱 덩어리와 마주하게 될 터이다. 아니, 종국엔 깨끗한 소금이 잔뜩 있어도 해 먹을 수 있는 재료가 전혀 없을지도 모른다. 아니, 그 전에 내가 사라질지도 모르겠지. 문득 우스운 농담을 떠올린다. 나중엔 성형수술Plastic Surgery을 받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그런 실없는 농담. 이렇게 매일매일 신용카드 한 장 크기의 플라스틱을 섭취하는 중이라면 플라스틱 서저리가 왜 필요하겠는가. 우리는 금세 플라스틱 인간이 되어버릴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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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주연

일러스트 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