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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헤비만이
10년도 더 된 일이다. 혼자 KTX를 타고 대구에 간 건. 언제가 처음일까 궁금해 1년, 2년, 3년, 4년… 10년 전 다이어리까지 되돌아가 보았는데 줄곧 기록이 남아 있다. 그러니까 11년 전, 12년 전에도 나는 혼자 대구에 갔다. 한 해에 적게는 두 번, 많게는 대여섯 번도 갔다. 친척 집이 있는 것도 아니고, 친구가 사는 것도 아니었다. 좋아하는 장소나 음식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내가 대구를 찾은 건 오로지 음악을 듣기 위해서였다. 좋아하는 음악이 있었고 좋아하는 뮤지션도 있었다. 그들이 지방에서 공연을 하게 되면, 그곳이 대구라면, 반드시 장소는 ‘클럽 헤비Heavy’였다.
나는 음악을 듣고 보기 위해 2000년대 초부터 자주 홍대를 찾았다. 처음 클럽에 가보겠다 마음먹었을 때는 아직 앳된 학생이었다. 클럽이라는 단어가 워낙 어른의 것 같아 머뭇거리다가 어느 날 큰맘 먹고 전화를 걸었다. 지금은 사라진 클럽 쌤SSAM이었다. “교복 입고도 입장이 되나요?” 관계자는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몇 번을 되묻다가, 비로소 이해하고는 “된다.”는 말게 함께 호탕하게 웃었다. 나는 히든카드를 거머쥔 만화 주인공처럼 비장한 마음이었다. 클럽 쌤을 찾아가기 위해 종이에 약도를 그려 몇 번이나 확인했다. 스마트폰이라든지, 로드맵이라든지 하는 게 없던 시절이었다. 몇 차례 헤매다 도착한 쌤. 이 공간이 익숙해 보이는 언니·오빠들 사이에서 교복이 부끄러워 얼른 캄캄함 사이로 틈입한 나는 객석 중간에 덩그러니 세워진 기둥 뒤에 몸을 숨겼다. 쌤이 익숙해지고 나니 그 기둥은 시야를 방해하는 성가신 것이 됐지만, 그땐 작고 소심한 나를 가려주는 좋은 방패처럼 느껴졌다. 음악에 고개를 까딱거리다가 누가 볼세라 주변을 두리번대며 기둥 뒤에 몸을 숨기던 시절. 그때 너는 몰랐겠지, 너 같은 아이는 좋아하는 밴드가 공연을 하면 대구건 부산이건 광주건 제주건 거침없이 보러 가는 어른이 된다는 걸.
10년도 훨씬 더 된 기억이라 첫 여정은 어렴풋해졌지만 헤비의 첫인상만큼은 선연하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 끝에 뭐가 있을지 궁금해하며 벽에 잔뜩 붙은 포스터를 기웃거리던 어느 오후. 공연 전 무대는 사연을 간직한 악기들만이 알 수 있는 이야기 같았다. 관객들은 그 사연의 힌트라도 얻기 위해 무대 앞에서 까치발을 떼곤 했다. 객석 분위기는 때마다 달랐다. 어떤 밴드의 관객들은 지나치게 다정했고, 어떤 밴드의 관객들은 소란하고 유난스러웠다. 어떤 뮤지션의 관객들은 이상하리만큼 소극적이었고, 어떤 뮤지션의 관객들은 예민하고 뾰족했다. 나는 그걸 알 만큼 많은 뮤지션을 바삐 보러 다니던 어린애였는데 그런 나에게도 ‘최애’라는 것이 있었다. 어느 날 헤비에서 나의 ‘최애’가 ‘88년’이 들어가는 노래를 부르기 전에 물었다. “여기 혹시 1988년도에 안 태어난 사람도 있나요?” 쭈뼛거리며 손을 들었더니 어디선가 “꺅!” 소리가 들렸다. 뭉툭하고 따뜻한 손 네 개가 사방에서 나를 꽉 끌어안았다. 헤비에만 가면 나는 막내가 됐다. 아마도 그 당시 30대였을 대구 언니들은 내가 헤비에 갈 때마다 버선발로 뛰어나와 안아주곤 했다. “왔어? 안 힘들었어?” 나는 이름도 모르는 언니들을 십수 년간 만나며 그 사이에서 소심하게 어깨춤을 추었다. 때로는 양발을 떼 콩콩 뛰어보기도 했다. 대구에는 어떤 안심 같은 게 있었다. 음악으로 둘러싸인 방패 같은 것이, 뮤지션을 볼 땐 덤덤하지만 나를 보면 “꺅!” 소리 지르던 언니들의 유난한 상냥함 같은 것이. 그런 것을 사위에 두고서 나는 어른이 되었다. 꼭 그때 그 언니들만큼의 나이가 되었다.
짝지와 나는 2012년쯤 알게 되었다. 우리가 처음 만난 건 역시 공연장이었다. 짝지를 처음 봤을 때, 어쩐지 그녀는 나와 정반대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다. ‘저 사람은 나를 좋아하지 않을 거야.’라고 지레짐작한 것도 같다. 그런 우리는 이상할 정도로 음악 취향이 똑같았고, 나는 공연장에서 매번 그녀를 보았다. 일주일에 한 번, 많게는 서너 번까지 공연장에서 마주치곤 했다. 나는 대체로 혼자였는데 그녀는 혼자일 때도, 누군가와 함께일 때도 있었다. 좋아하는 걸 함께한다는 건 확실히 매력적인 일이다. 가끔 그 매력이 어떤 분위기와 맞물려 엄청나게 증폭될 때가 있는데, 짝지와 내가 함께 있던 어느 공연장에서 딱 그랬다. 이상한 힘에 이끌려 절대 말 섞을 리 없다고 생각한 그녀와 통성명을 했고, SNS 계정을 주고받았다. 이제는 X라는 이상한 이름이 된 트위터에서 우리는 몇 번 말을 섞었다. 주로 공연에 관한 정보였다. 우리는 그 뒤로도 줄곧 공연장에서 만났지만 눈인사하거나 꾸벅 목례하는 게 다였다. 십수 년 공연을 보다 보니 친해진 관객도 있고, 단둘이 만나게 된 친구도 생겼는데 짝지와 나는 그 누구보다 자주 같은 공간에 머물면서도 단둘이 만나거나 사적인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었다. 나한테 그녀는 여전히 이국의 사람처럼 멀게만 느껴졌다.
그러다 어느 날, 좋아하는 밴드가 나흘 내리 대전-대구-부산-전주 공연을 하겠다는 파격적인 안내를 해왔다. 지방 투어였다. 으레 이런 공연은 주말마다 진행되기 마련인데, 이색적이게도 연속 나흘의 행진이었다. 평일도 끼어 있는데, 지역도 다 다른데, 나흘 모두 갈 수 있을까? 가고 싶은데? 생각하던 나는 짝지 또한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나는 짝지 손을 덥석 잡고 말했다. “해보자, 미친 짓!” 그렇게 우리는, 단둘이 만나 제대로 시간을 보낸 적도 없던 우리는 나흘 동안 네 지역을 여행했고 비슷한 목소리로 환호했다. 같은 음악을 따라 불렀고, 같은 선율에 춤을 추었다. 나는 그때 그녀가 내 짝지임을 확실히 알았다. 평생 이렇게 나와 떠돌아 줄 진짜 짝지. 그 뒤로 대구, 전주, 대전, 부산, 광주, 심지어 일본까지 많이도 함께 다녔다. 그러니까 짝지와 헤비에 가는 건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이미 혼자서도, 같이도 많이 다니던 공간이니까.
10년쯤 전인가, 우리는 헤비에 가기 위해 대구로 향했다. 각자 일이 바빠 공연 시각이 임박해 대구역에 도착한 우리는 택시를 타기로 했다. 부랴부랴 택시에 올라 “클럽 헤비요!” 외치고는 들썩이는 궁둥이를 가라앉히기 위해 안전벨트를 맸다. 그런데 좀 이상했다. 기사님이 자꾸 옆으로 새고, 낯선 길로 진입하는 것이 아닌가. 우리한테 “서울에서 왔나?” 하고 물은 뒤부터 동선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평소 같으면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손톱만 물어뜯었을 텐데, 공연 시각이 임박했음을 알게 됐을 때 내 안에서 뭔가 뜨거운 것이 올라왔다. “기사님, 지금 돌아가시는 거죠! 저 헤비 알거든요! 공연 시작한단 말이에요!” 기사님이 말을 얼버무리면서 이게 더 빠른 길이라고 했지만 그런 말이 들릴 리 없었다. 결국 10분 정도 늦게 도착해 따지지도 못하고 공연장에 입장했는데, 잔뜩 성이 난 마음은 헤비의 익숙한 노란 조명 속으로 들어가는 순간 모두 잊었다. “나는 노란색 헤비에 들어가면 마음이 편해져.” 그런 내 말을 듣고 짝지가 물었다. “노란색? 헤비가?” 무대에선 두 번째 곡이 한창이었지만 우리는 좀처럼 집중하지 못한 채 헤비의 색에 대해 이야기했다. 같은 공간에 선 우리는 갸웃거리며 서로의 시각을 의심했다. “이거 봐, 노란색이잖아.”, “무슨 소리야? 초록색이잖아.” 결국 아무 결론도 내리지 못한 채 우리의 의문은 음악 속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나에게 헤비는 그런 곳이다. 친구 집보다 훨씬 먼데도 친구 집보다 훨씬 더 자주 간 공간. 헤비 무대 뒤쪽을 꾸미고 있던 반짝이는 종이와 색지들은 조악해서 사랑스러웠고, 고양이 모양을 곁들인 헤비 로고는 그 자체로 사랑스러웠다. 나는 헤비에서 많이도 울고 웃었다. 라이브엔 생각보다 훨씬 더 큰 힘이 있어서 작은 소리에도 흠뻑 설렜고, 작은 몸짓에도 금세 감격했다. 대구의 명물은 헤비. 오로지 그뿐이었다.
부모님과 대구에 몇 번인가 놀러 갔다. 가족과 자주 기차 여행을 했기에 기차역이 있는 대구도 몇 번인가 찾게 된 지역이었다. 그날도 나는 헤비에 갔다. 공연을 보러 대구에 가겠다는 딸내미 여정에 편승해 가족여행이 이루어진 것이었다. “공연 끝나면 8시쯤 될 것 같은데?” 사실 알고 있었다. 8시를 훌쩍 넘길 거란 걸. 공연이 끝나고 나면 감도는 분위기를 좋아한다. 밀려오는 아쉬움과 채 가라앉지 않은 달뜬 설렘이 섞여 드는 그 분위기를. 특히 라이브가 귀한 지방 팬들에겐 특유의 어수선함이 있었다. CD로 입을 가리고 “꺄아!” 하는 수줍은 팬이 있는가 하면, 아무렇지도 않게 앨범 열댓 장을 쌓아놓고 전부 사인을 받아 가는 팬들도 있다. 그런 면면을 보는 것이 나는 좋았다. 그날도 그랬다. 공연 구석에서 귀여운 어수선함을 즐기며 두리번대다 보니 금세 9시가 됐다. 엄마아빠가 밤까지 저녁을 굶고 있다는 걸 퍼뜩 깨닫고 계단을 올라가 급히 택시를 잡았다.
예의 택시 기사님과는 달리 안전히 운전해 ‘김광석 거리’로 나를 데려다준 기사님. 김광석 거리를 산책하던 부모님을 만나 사진을 몇 장 찍었다. 대구에는 재미있는 장소가 많다. 김광석 거리, 닭똥집 골목, 막창 골목…. 대구에서 나고 자란 친구 말로는 우리나라 프랜차이즈 대부분이 대구 것이란다. 특히 치킨. 그래서 치킨 축제도 하는 거라나? 그날 우리가 선택한 저녁 메뉴는 막창이었다. 가리는 게 몹시 많던 내가 드디어 음식의 참맛을 하나씩 알아가던 때였다. 그러니까 막창이니 곱창이니 하는 것을 이제 막 먹어보고 ‘맛있잖아!’ 하던 때. 호기롭게 대구 막창을 먹자고 출사표를 던졌다. 우리가 도착한 식당은 제법 유명하다는 곳이었고 사람들로 시끌벅적했다. 야외 테이블까지 꽉 찬 그곳에 엉덩이를 비집고 한 자리 차지하고는 막창 볶음을 주문했다. 깻잎과 양배추가 수북한 요리를 보면서 맛있겠다고 생각하던 찰나 불쑥 고릿한 냄새가 코를 찔러왔다. ‘이게 무슨 냄새지?’ 하면서 막창이 익기를 기다리는데, 막창을 볶아주던 알바생에게 아빠가 너스레를 떨었다. “여기 막창이 그렇게 맛있다면서요?” 사춘기처럼 보이는 알바생은 대꾸하기 싫다는 투로 시선을 불판에만 꽂은 채 “아… 예.” 한마디만 남기고 입을 다물었다. 순식간에 머쓱해지는 분위기. 나는 재빨리 아빠 입에 쌈을 싸서 넣어주었다. 엄마 입에도 넣어주었다. 그리고 내 입에도 넣었는데, 응? 목구멍이 탁 막히는 기분이었다. ‘이게 무슨 맛이야?’ 이상한 냄새가 나는 통에 두어 점 먹다 그만두어야 했다. 나중에야 알았다. 내가 먹고 맛있다고 생각한 막창은 소의 것이었고, 그때 먹은 건 돼지의 것이었음을. 대구는 나에게 여러 처음을 맛보게 한 도시다. 돼지 막창도, 악의 있는 택시 기사도, 지방 클럽도…. 대구는 그런 도시다. 음악이 있고, 밴드가 있고, 나를 안아주는 언니들이 있고, 속여먹는 택시 기사도 있는, 사춘기 알바생의 쭈뼛거림과 돼지 냄새가 진동하는 그런 동네. 꼬부랑 할머니가 되어 지팡이를 짚고 헤비에 가는 상상을 한다. 숱한 추억의 가지를 지나고 나면 그 뿌리는 반드시 헤비에 닿으므로, 먼 미래에도 내게 대구란 오롯한 헤비일 것이다. 대구가 있는 이상 헤비도 있고, 헤비가 있는 이상 대구도 있다. 오직 헤비만이 나의 대구다.
글 이주연(산책방)
일러스트 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