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없는 마을]

둘도 없는 식탁

내일부터 도시락 내가 쌀 거야!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하던 날, 실내화를 챙기며 설레는 마음을 주섬주섬 가방에 함께 담았다. 출근 첫날, 아직 할 수 있는 게 없어 끄덕끄덕 배우기만 하고 집에 돌아왔을 때 엄마가 물었다. “점심은 어떻게 해?” 사 먹는다고 하자 엄마는 오늘 내가 했던 것처럼 그저 ‘끄덕’ 한 번 하더니 다음 날 출근하는 내 손에 보따리를 하나 쥐여주었다. “맛있게 먹어.” 점심시간 풀어본 보따리 속에는 조그마한 밀폐 용기 안에 김밥이 가지런히 담겨 있었다. 초등학교 운동회 날 먹던 김밥처럼 반갑고 소박한, 집에 있는 반찬들이 알알이 박혀 있는 익숙하고 단정한 모습. 하나씩 하나씩 한 시간을 들여 꼭꼭 씹어 먹었다. 그렇게 매일 엄마가 싸주는 도시락을 먹으며 일에 익숙해질 무렵, 두 번째 회사에 들어갔다. 

두 번째 회사에선 도시락을 함께 먹을 친구가 생겼다. 여전히 매일 아침 엄마 도시락을 들고 다녔다. 조금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젠 밀폐 용기가 아니라 귀여운 도시락통이 생겼다는 것. 우리는 12시가 되면 부리나케 공용 테이블에 도시락을 올렸다. 반찬이 두 배가 됐고 식탁이 풍성해졌다. 우리는 내친김에 국까지 챙겨 먹자며 쌀국수 육수 원액을 사다가 회사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쿰쿰한 냄새가 나는 그것을 몇 스푼 떠서 텀블러에 담고 뜨거운 물을 부으면 근사한 육수가 됐다. 쿰쿰한 냄새가 생각보다 강해서 뚜껑을 열면 코를 막곤 했지만, 물을 붓고 나면 그보다 따듯할 수 없었다. 동료는 종종 집에서 만든 카레나 부대찌개 같은 것도 싸 들고 왔다.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으면 갓 차린 밥상처럼 푸근하고 풍성해서 마음부터 불렀다. 동료와 떠들며 밥 먹는 점심시간은 매일 즐거웠다. 첫 회사에선 느릿느릿 꼭꼭 씹어 먹는 점심시간을 보냈다면, 두 번째 회사에선 풍족한 식탁을 사이에 두고 웃느라 정신없이 보냈다. 다른 동료들이 뭐가 그렇게 웃기냐고 물을 정도로, 소리 내 웃느라 혼이 쏙 빠질 정도였다. 많이 웃고 울었던 두 번째 회사를 퇴사하고, 이젠 제법 사회인 느낌을 풍기며 세 번째 회사에 입사했다.

어엿한 사회인이 되었지만 아직도 마음이 영글지 못해 매일 아침 엄마가 도시락을 싸주는 게 얼마나 대단한 수고인 줄 몰랐다. 그저 고맙다는 말로, 맛있다는 말로 보답하는 게 전부였다. 엄마는 가끔 밥에 완두콩으로 하트를 그려주었다. 감태를 뿌려 마리모 같은 주먹밥도 만들어줬고, 마파두부 덮밥, 갈비, 부침개, 달걀말이, 불고기, 떡갈비, 떡 튀김….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푸짐하게 싸줬다. 매일 도시락을 여는 게 설렜다. 밥 친구가 “오늘 도시락 뭐야?” 하고 물으면 “내가 안 싸서 몰라.”라고 답하는 게 부끄러운 줄 몰랐다. 그러다 팬데믹 시절이 오고, 사람 많은 전철에 타는 것이 무서워 나는 회사에 조금씩 일찍 가기 시작했다. 그 조금이 점점 빨라져 나중에는 수 시간 일찍 가는 패턴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꼭두새벽부터 출근 준비를 하다가 방문 열리는 소리를 듣고 문득 깨달았다. ‘아, 내가 일찍 일어나서 부산을 떨면 엄마가 도시락 싸는 시간도 당겨지는구나.’ 나 때문에 엄마 잠 시간이 줄고 있었다. 

그날 저녁, 다부진 목소리로 말했다. “내일부터 도시락 내가 쌀 거야!” 그 뒤로 단 하루도 엄마에게 넘기지 않고 도시락을 쌌다. 엄마를 위해 시작한 일인데, 금세 재미가 붙어 점점 본격적이 됐다. 원통 나무 도시락에 종이 포일을 깐다. 큰 대접에 따끈한 밥을 조금 퍼서 후리카케를 뿌린다. 동글동글 조그맣게 굴려 도시락통의 3분의 1 정도 차게끔 쫑쫑 담는다. 대파, 양배추, 양파, 버섯, 좋아하는 채소를 볶는다. 대체로 미소에 볶는데, 가끔 간장이나 굴소스일 때도 있다. 채소 종류가 매번 다르기 때문에 매일 볶아도 항상 맛있다. 어묵을 볶고 연근도 튀긴다. 소시지나 미니 돈가스 같은 걸 두어 개 올리기도 한다. 도시락통을 꽉 채우고 나면 마음이 일렁거린다. ‘나루토’라 불리는, 빙글빙글 도는 빨간 소용돌이 모양의 오뎅을 살짝 잘라 올리니 어쩐지 귀엽다. 그리고 엄마 요리처럼 맛있게 보이는 마법, 깨를 솔솔 뿌려 마무리한다. 내가 싼 도시락인데 스스로 만족스러워서 매일 아침 사진을 찍었다. SNS에 올리고 기록하는 게 조그마한 기쁨이 됐다. 마감이 밭아 잠을 못 잔 날이면 엄마가 도시락을 싸준다고 하는데, 그럴 때도 손사래 치며 직접 싸겠다고 성화를 부리는, 이상한 쪽으로 고집스러운 딸이 된 건 기쁨일까 아닐까.

엄마 밥이 제일 맛있어

면 요리라 함은 우리 집에서 일주일에 두어 번은 먹는 음식이다. 칼국수라든지, 멸치국수라든지, 비빔국수라든지, 골뱅이소면이라든지…. 엄마는 아주 자주 면으로 밥상을 차려주었다. 어릴 때부터 그런 점심밥을 먹었기에 특식이라거나 별식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국수나 한식을 사 먹자고 하는 친구들이 늘 신기했다. 집에서 먹는 것들을 굳이? 이젠 엄마가 자주 차려주는 평범한 메뉴가 별식이란 걸 알게 됐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칼국수와 수제비고, 또한 부침개다. 

우리 집엔 언제나 부침가루가 있다. 엄마는 뭐든 넣어서 부친다. 가끔은 아무것도 넣지 않고 부침가루만 부쳐서 먹기도 한다. 봄이 오면 봄동을 부치고, 감자가 들어오면 채 썰어서 부치고, 호박이 생기면 호박 넣어 부치고, 햄을 넣어 부치고, 오징어를 사면 부추랑 같이 부치고, 김치 부침개는 맘만 먹으면 매일 먹을 수도 있다. 처음 한식 주점에 가서 모둠전을 먹은 기억이 난다. 그 당시 물가로 2만 원 가까이 했는데, 공짜로 먹는 엄마 부침개가 200배는 더 맛있었다. 집에서 짜장라면을 끓여 먹을 수 있어도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사 먹고, 집에서 파스타를 해 먹을 수 있어도 사 먹곤 하니까, 바깥 음식은 그만의 색다른 맛이 있으니 모둠전도 그럴 줄 알았는데… 실망했다. 우리 집에서 먹는 게 훨씬 맛있었다. 바삭하고, 재료도 다양하고, 따듯하고, 원하는 만큼 먹을 수 있고. 무엇보다 나는 부침개를 케첩에 찍어 먹는 사람이기 때문에 케첩과 함께 먹을 수 있는 집 부침개가 훨씬 좋았다. 

엄마는 집에서 생선도 자주 구웠다. 나는 일주일에 두 번, 세 번, 많게는 네댓 번씩 생선구이를 먹었다. 당연히 다른 집도 생선을 일반식으로 먹는 줄 알았다. 그런데 듣자 하니 냄새랑 연기가 고약해서 집에선 잘 못 먹는 음식이란다. 살아온 날이 많아지면서 엄마가 차려준 식탁이 특별한 행복이었음을 알게 됐다. 한번은 친구한테 미운 소릴 들은 적이 있다. 백반을 먹으러 가자기에 “왜?”라고 물었다. 굳이 찌개를, 굳이 반찬을, 굳이 흰쌀밥을 찾아가서 먹는다는 것에 의미를 찾지 못했고, 사실 파스타가 먹고 싶어서 그랬다. “한식은 집에서 먹으면 되잖아!” 스스로 철이 없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돌아보니 이땐 정말 철이 없었다. 친구는 “자취생 마음도 모르고!” 하며 톡 쏘아붙였다. 엄마 밥이 먹고 싶다고 했다. 

아, 그렇구나. 내가 엄마의 존재를 너무 당연하게 생각했다. 그땐 어렸고… 어렸다는 말로 무마할 수 없는 무심함이었다. 친구에게 금세 미안해졌다. ‘엄마 사랑해, 엄마 보고 싶어, 엄마 나 예쁘지?’ 그런 말을 다 커서도 달고 사는 딸이면서 엄마가 차려주는 밥은, 아빠가 사다주는 식재료는 당연하게 생각했다. 생선조림이 먹고 싶다고 하면 그날 저녁 뚝딱 생선조림이 차려지고, 엄마가 끓여주는 오징어고추장찌개가 제일 맛있다고 하면 아빠가 오징어를 사 오고, 엄마 닭볶음탕이면 밥 두 그릇이라는 메시지에 닭볶음탕이 차려지는 식탁. 그것은 분명한 사랑이고 애정이었다. 어릴 때, 엄마가 식사 대용 알약이 있으면 좋겠다고 한 적이 있다. 속 좋게 “왜? 엄마 밥이 얼마나 맛있는데!” 그런 소릴 했던 기억이 난다. 예나 지금이나 먹는 데 전혀 취미가 없는 엄마가 먹는 게 귀찮아서 하는 소리인 줄 알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하루에도 몇 번씩, “엄마 밥이 제일 맛있어!” 소리를 (철없이) 해왔다는 것이다. 수만 번쯤 한 그 말이 엄마한테 얼마큼의 위로가 되었을까. 위로였기는 할까. 아빠가 외식하자고 해도 집에서 먹자며 차리는 엄마를 보며 나는 그저 요리를 좋아해서, 가족과 먹는 게 즐거워서 그렇다고 생각했다. “오늘은 뭘 차리지?”라는 말은 요리의 기쁨을 상상하며 선택지를 헤아리는 줄 알았는데, 그건 아마 걱정이고 한탄이었을 테다. 내가 평생 누린 맛있는 기쁨을 엄마가 조금이라도 누렸으면… 하고 이제야 생각해 보는 것이다. 오늘은 엄마 대신 고민해 봐야지, 엄마한테 뭘 차려줄까? 엄마가 뭘 좋아했는지 하나씩 헤아리다 보니 왠지 모르게 맘이 시큰거린다.

아침밥 먹어요?

어릴 때부터 아침밥을 먹지 않았다. 눈 뜨자마자 뭘 먹는 게 거북했다. 근데 내 위는 생각이 좀 달랐나 보다. 아침에 뭘 먹는 게 번거롭고 입맛이 없다는 마음과 달리 학교에 가면 2교시가 채 되기 전에 꼬르륵 소리가 났다. 매일 아침 그랬는데도 뭘 먹지 않은 데는 어리석게도 중학생 때까지 내 꼬르륵 소리는 나한테만 들린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시험 날, 2교시에 수학 시험을 보았는데 배 속에서 천둥 치는 소리가 났다. 시험이 끝나고 답을 맞춰보는데 친구 한 명이 “주연이 배고팠지? 꼬르륵 소리 진짜 많이 나더라.” 하기에, 그제야 내 꼬르륵 소리가 남한테도 들린다는 걸 알았다. 얼굴이 새빨개진 채 “그게 들렸어?” 하고 바보처럼 물은 기억이 난다. 그렇다고 해서 아침을 챙겨 먹었느냐 하면, 아니, 안 먹었다. 어릴 때부터 그렇게 살아왔는데 꼬르륵 소리 안 나게 하겠다고 갑자기 밥을 먹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다 어른이 되고 나서야 좀 부끄러워졌다. 특히 회의 시간에 들리는 꼬르륵 소리는 웃음을 사거나 집중되기 십상이었기 때문에 그 상황만은 피하고 싶었다. 동료들이 창피할까 봐 못 들은 척해주는 건 더 고역이었다. 그즈음부터 아침밥을 먹기 시작했다.

제대로 차려진 밥상이라기보단 식빵 한 장을 반으로 갈라 토마토소스와 딸기잼을 발라 구워 먹는 간단한 식사였다. 그렇게 살아온 지 3년쯤 되었나? 여행을 가도 조식 챙기는 일이 없었는데, 빵 반쪽이라도 먹어 버릇하니 어느 날엔 ‘조식을 먹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호텔 조식이 여행에서 가장 설렌다던 친구가 있는데, 이참에 나도 그 설렘 한번 느껴볼까 싶었다. 일본 여행을 계획하고 호텔을 예약하면서 ‘조식 포함’ 항목에 체크했다. 세상엔 나처럼 간단히 빵으로 아침 때우는 사람이 많은지 “서양식과 일본식이 있는데, 어떤 걸로 하시겠어요?” 하는 말을 듣게 됐다. 뭐든 고르는 게 너무 어려운 사람이기에 그 한마디를 앞에 두고 오래 주저했다. 일본어를 못 알아듣는다고 생각했는지 친절한 직원이 영어로 다시 한번 물어왔다. 머릿속이 바빴다. 간편하고 익숙한 스크램블드에그와 구운 빵이냐, 정갈하고 소박한 일본식 밥상이냐. 

정하고 나니 그리 고민할 일이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됐다. 뷔페식이었기 때문에 셰프가 차려준 메인 메뉴 하나만 다를 뿐 서양식이든, 일본식이든 마음껏 갖다 먹을 수 있었다. 차라리 다행이다 싶었다. 뭘 고르는 게 대단히 곤혹스러운 사람이라 고민하지 않고 접시들을 가져오기 시작했다. 자그마한 종지에 담긴 음식들이니 양도 많아 보이지 않아 종류별로 담았다. 식탁에 앉지 않고 몇 번이나 접시를 나르고, 나르고, 또 날랐다. 그러다 보니 식탁이 꽉 차고 말았다. 아니, 잠깐만. 꽁치구이에 삼치조림에 훈제 연어, 지금 생선만 세 종류를 가져온 거야? 구운 빵이 종류별로 다섯 점, 파스타만 두 종류, 곤약조림에 감자샐러드에 낫토에 요거트에 수프에 미소 된장국에 음료만 세 개? 나 설마 위 네 개 가진 소야? 내 식탁을 보고 웃음이 났다. 건장한 남성 둘이 앉아 있는 식탁보다 많아 보였다. 아침 거하게 먹고 점심 거르면 되지, 하는 생각으로 양손을 걷어붙이고 하나씩 먹기 시작했다. 가져온 음식을 남기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하나씩 비워나갔다. 다행히 한 접시에 담긴 양이 많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맛있어서 조식 시간 내내 앉아 찬찬히 먹으니 끝이 보였다. 배가 불러 먹지 못하고 남긴 빵과 요거트를 제외하고 깔끔하게 먹었다. 마지막으로 차 두 잔을 연거푸 비우고 나니 배가 빵빵해졌다. 나는 식탁에 잠시 엎드려 오늘 일정을 생각했다. ‘기차 타고 옆 동네에 가서, 널찍한 정원에서 책 좀 읽고, 저녁이 되기 전에 바다까지 보고 돌아와야지. 밥은 어느 타이밍에 먹지?’ 인간은 어리석고 우습다. 배가 불러 널브러진 와중에도 밥 먹을 시간을 계산하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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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주연(산책방)

일러스트 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