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툰 감정을 쫓는 시선

사진 작가 혜란

서툰 감정을 쫓는 시선
사진 작가 혜란

사진에 대해 잘 모르지만 이 사람, 배치나 구도에는 도통 관심이 없어 보인다. 자주 흔들리는 것 같기도 하고, 렌즈에 뭔가 묻힌 채 찍은 것처럼 뿌옇기도 하다. 이리저리 뜯어 보아도 완벽한 작품은 아닌데 사진에서 시선을 돌리기 어렵다. 보고 나면 흐릿한 잔상이 오래도록 남는다. 예를 들면 누군가의 지친 두 눈, 편안해 보이는 두 발을 본 것 같다고 할까.

갑작스러운 실마리

간단한 자기소개 해주세요.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강혜란이에요. 스물다섯 살이고, 캘리포니아주의 패서디나Pasadena라는 곳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아트센터디자인대학Art Center College of Design에서 사진학과를 졸업하고, 개인적인 사진 작업과 사진작가 캐서린 레드너Catherine Ledner의 어시스턴트 일을 병행하고 있어요.

곧 이사를 간다고 들었어요.  

네. 지인의 소개로 제가 평소에 좋아하는 사진작가와 함께 일하게 돼서 브루클린Brooklyn으로 이사를 가요.

사진은 언제부터 찍게 됐나요?

고등학교 1학년 때 미국으로 유학을 왔어요. 2학년 때 사진 수업을 들었는데, 그때가 본격적으로 이 일을 시작한 시기에요. 

직업으로 해야겠다는 확신이 있었나요?

한참 만화책에 빠져 있던 적이 있었어요. 우연하게도 주인공이 사랑하는 사람은 사진작가였죠. 그걸 읽으면서 저도 막연히 사진작가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우습지만 진짜예요. 그맘때쯤 어머니가 저보고 뭘 하고 싶은지 물어보셨는데, 겁 없이 사진을 찍겠다고 말했어요. 왜인지는 모르지만, 확신이 있었거든요. 어쨌든 시작은 사진작가라는 직업이 막연히 멋있어 보였기 때문이에요.

저도 몇 달 전부터 어설프게 사진을 찍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카메라가 중요하구나.’라고 생각했는데, 같은 카메라로 같은 장면을 찍어도 사람에 따라 사진은 많이 다르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작가의 기술보다는 ‘시선’이나 ‘마음’이 궁금한 편이에요. 혜란씨는 사진을 찍을 때 중요시하는 게 있나요?

저도 동감해요. 그 순간의 솔직한 모습을 좋아하거든요. 친구들과 마음속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 가끔씩 굉장히 진실된 표정들을 보게 될 때가 있어요. 그 순간을 찍으려고 노력해요. 친한 친구들이다 보니 경계를 풀고 굉장히 편한 상태로 있거든요.

개인적으로 <HOPE FOR JOPLINE> 사진들이 기억에 강렬히 남더라고요. 토네이도에 관한 사진이 맞나요? 이 사진을 찍게 된 계기와 그때의 이야기를 해주세요.

2011년, 학기 과정이 반 정도 끝났을 즈음이었어요. 그때까지 저는 어떤 사진을 찍고 싶은지 잘 몰랐어요. 그러던 중 뉴스에서 큰 토네이도가 미국 중부를 강타했단 얘기를 들었는데, 문득 그곳을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방학이 돼서 조플린Jopline에 카메라들을 들고 갔어요. 실제로 그곳을 가보니 충격적이더라고요. 마치 하늘에서 큰 손이 내려와 쓸고 간 것 같았어요. 아무도 없는 곳에 계속 혼자 서있으니, 세계의 종말이 와서 저 혼자만 살아남은 기분이 들었죠. 그렇게 몇 시간을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의 흔적들은 찾고, 그 흔적들을 카메라에 담았어요. 

폐허가 돼버린 곳을 찍었지만, 사진은 참 평화로워 보여요. 전쟁 후의 고요랄까요? 

그래서 더 안타까운 느낌이에요.진실에 가까운 사진을 찍으려 하지만, 저도 모르게 낭만적으로 묘사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제 성격이에요. 그날의 조플린을 보고 제가 느낀 감정을 그대로 살리기 위해 노력했어요. 재해로 휩싸인 세상을 제대로 마주하기로 했죠. 모든 게 실제로 일어난 일이지만 어쩐지 꿈같이 느껴지기도 했는데, 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벅찬 나머지 그렇게 묘사했던 것 같아요.

가장 가까운 곳에서의 발견

2013년도 작품에 나오는 짧은 머리의 여성이 궁금해요. 친구인가요?

같은 대학교 사진학과 에밀리 워터Emily Water라는 친구예요. ‘미국은 참 넓고, 특이한 사람이 많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해준 친구예요. 에밀리는 패션 감각도 독특하지만, 무엇보다 학교 복도에서 오페라를 부르는 등 자유분방한 성격으로 저를 많이 당황하게 했어요. 그런 솔직한 모습이 매력적으로 다가오더라고요. 그녀와는 사진을 찍으면서 더욱 친해졌어요.

에밀리와 한 남성이 서로 껴안고 있는 사진도 너무 좋았어요. 

졸업을 해서 이제는 뉴욕으로 떠나야 하는 에밀리를 찍고 싶었어요. 친했던 친구였으니까요. 기록을 남기고 싶었어요. 에밀리는 남자친구 숀과 룸메이트인데, 숀은 좀 부끄러움이 많아서 인사만 하고 방에서 게임을 하고 있었어요. 저와 에밀리는 얘기를 나누며 사진을 찍고 있었죠. 그러다 촬영이 끝나서 방으로 옷을 갈아입으러 갔는데, 갑자기 에밀리가 게임을 하던 숀에게 한마디 하는 거예요. 

“숀, 이리로 와봐, 우리 이제 떨어져 있어야 해.”라고요. 

숀은 LA에 남아있어야 했거든요. 둘은 서로 바라보다가 꼭 껴안았는데,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답고 슬프게 보이더라고요. 서로 사랑하지만, 에밀리에게 최선은 뉴욕행이었고, 숀은 그걸 알고 있었죠. 그 순간 ‘이건 찍어야 해’라는 생각도 없이 그냥 카메라 셔터를 눌렀어요. 방이 많이 어두웠는데 빛이 괜찮게 나오고, 그 둘의 애절함이 잘 표현된 것 같아서 좋아요. 가끔씩 이렇게 계획하지 않은 상황이 즉흥적으로 일어났을 때, 만족스러운 사진이 나오는 것 같아요. 

높은 구두를 신고 있던 남자도 기억에 남아요. 그에 대한 자세한 얘기를 해줄 수 있나요?

학교 친구인 로만 알렉산더 버가스Roman Alexander Vergas이고, 크로스 드레서(반대 성별의 옷을 입는 사람)에요. 그 친구의 성 정체성에 대해 따로 물어보거나 얘기해보지 않았지만, 집에 가보니 예쁜 킬힐과 화려한 여자 옷들이 있어서, 크로스 드레서구나 짐작했죠.

 

학교에서 볼 때마다 섬세하게 생긴 로만한테 시선이 가더라고요. 그래서 모델이 돼줄 수 있느냐고 물어봤고, 흔쾌히 수락해서 찍게 됐어요. 촬영할 때 로만의 정체성에 중점을 맞추기보다는 제가 항상 찍는 대로, 다른 친구들과 작업했던 것처럼 편하고 자연스럽게 찍었어요.

사진 속 주인공들의 공통점이 있다면요?

저랑 굉장히 친분이 두텁고, 대부분 예술을 전공한다는 점이에요. 물론 전공이 다른 친구도 있는데 예술을 보는 눈이나 취향은 비슷해서, 서로 이야기 나누는데 어려운 점은 없어요. 모두가 잘 맞는 친구이자 모델이죠. 

비록 홈페이지에는 올리지 못했지만 기억에 남는 사진이 있나요?

티파니Tiffany라는 친구가 전라인 채로 마리화나를 피우는 사진이 있어요. 그때의 지친 표정이 제게 정말 진실되게 느껴져서 항상 마음에 남는 사진이 됐어요. 웹사이트는 공개된 장소라 올리지는 않았지만 정말 좋은 사진이라고 생각해요.

친구들과 여행할 때에도 사진을 많이 찍나요?

혼자 하는 여행이 아닐 때에는 사진을 거의 찍지 않아요. 혼자서 떠날 , 많이 돌아다니면서 많이 느낀 후에 신중히 사진을 찍는 편이에요.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여행을 떠날 때는, 자는 모습, 밥 먹는 모습, 지친 모습같이 솔직한 사진을 많이 찍죠. 꼭 그들을 찍어야 한다는 강박 같은 건 없어요.

솔직함과 우울함은 무기

본인이 찍은 사진 중에 어떤 것을 가장 좋아해요? Zine(특정 팬들을 위한 잡지)을 자주 만든다고 들었는데, 좋아하는 사진위주로 선택하는 건가요?

딱 하나만 고르기 어려워요. 자신의 사진을 객관적으로 본다는 건 힘든 일인 것 같거든요. 그래서 진을 만들 때에도 다른 것보다 편집기술을 기르려고 노력하죠. 주제를 고르고, 사진간의 상호관계를 생각을 하면서요. 만들 때 중요시하는 것은, 책을 폈을 때부터 닫을 때까지 독자가 어떤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사진의 흐름을 만드는 거예요. 사진의 배치가 중요하더라고요.

SNS 활동을 하시나요? 작가들은 SNS를 통해서 작품을 많이 알리기도 하더라고요.

인스타그램(hae_ran)과 텀블러(haeranphotography)에 B컷 사진들을 많이 올려요.

요새 갖고 싶은 카메라가 있나요?

갖고 싶은 카메라는 정말 많지만, 요즘에는 Mamiya 7 II가 정말 탐나요. 미디움 6×7구성으로 크기가 작고, 핸드헬드(카메라 혹은 조명 장치 등을 손으로 드는 것)라는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오더라고요.

카메라만큼 탐나는 실력을 갖춘 작가가 있다면요?

최민식, 낸 골딘Nan Goldin, 비비안 마이어Vivian Maier, 다이앤 아버스Dian Arbus, 유르겐 텔러Juergen Teller, 옐레나 옘척Yelena Yemchuk, 헬렌 반 미네Hellen Van Meene, 로라 레틴스키Laura Letinsky, 아우구스트 잔더August Sander 등등 굉장히 많네요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있나요?

젊은 아티스트들이 힘든 현실에서 발버둥 치는 모습을 사진으로 표현하고 있어요. 사람들이 짐작하는 예술가의 아름다운 겉모습이 아니라, 예술을 하는 젊은이들이 아등바등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본 모습을 찍고 있어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어떤 일이든 힘들지 않은 게 없겠지만, 예술을 직업으로 한다는 일은 참 고단한 것 같아요. 인정해주는 사람이 없으면, 생활수익으로 이어질 수 없다는 점이 그래요. 또 그렇다 하더라도 대부분 예술가들은 그 시기가 늦더라고요. 이런 예술가의 이면을 담고 싶었어요. 그들을 보고 있으면 마냥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은 묘한 감정이 들어요. 그들만의 모습이 아닌 거죠.

혜란 씨가 사진으로 말하고 싶었던 건 뭔가요?

저는 노래 ‘가을 동화’를 좋아해요. 4분 동안 이어지는 멜로디에 푹 빠지고, 공감하게돼요. 그 이야기가 머리에 그려진다고 할까요. 저도 그 노래처럼 사람들이 제 사진의 색감과 피사체의 감정을 보고 공감해줬으면 해요. 좀 슬프고 우울하지만, 인간의 인생이 늘 행복한 것만은 아니고, 이런 우울한 20대 시절이 있다고 얘기하고 싶었어요. 어떻게 보면 로맨틱한 일이 아닌가 싶어요. 이런 방황의 시간이 있다는 건.

그녀가 보내준 사진에는 옷을 입지 않은 인물들이 많았다. 그걸 보며 나는 홀로 얼굴을 붉혔는데, 그건 낡은 사고방식이라기보다 이유도 모르고 보는 살색 향연에 불편함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열 번이 넘게 그녀와 연락하는 동안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가 나를 이해시킨 건 아니고, 그저 사진을 열 번 넘게 봤기 때문이었다. 물끄러미 바라본 결과, 사진 속 인물이 나를 이해시킨 것이다. 그녀가 말하고자 했던 게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꾸밈없는 몸짓과 표정에서 나오는 순수함. 사진 속 여자의 전라가, 울고 웃는 얼굴이 낯설 게 다가왔던 건, 그 모든 모습이 내게는 서툰 감정표현이라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녀는 많은 걸 투영하고 있었다. 자기 스스로조차도 발견하지 못하는 행복, 고독, 외로움 같은 서툰 소리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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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이혜인

사진 강혜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