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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녀왔습니다, 도서전
매년 여름, 책을 사랑하는 이들은 코엑스로 향한다. 한국에서 가장 규모 있는 책 축제, ‘서울국제도서전’이 열리기 때문. 2025년에도 ‘AROUND’라는 이름으로 이곳에 참여한 우리는, 책을 사랑하는 수많은 인파에 또다시 압도되었다. ‘믿을 구석’이라는 주제 아래 성황리에 끝난 도서전. 올해의 축제를 회고해 본다.
새해를 맞아 올해가 어떻게 흘러갈지 톺아보던 나는, 2025년의 허리춤에서 잠시 멈췄다. 한 해의 중간인 6월은 어라운드가 기다리는 축제가 있는 달이었지. 아직은 겨울의 한중간이던 그때, 나는 다가올 여름을 설렘 반 부담 반으로 그려봤다. 그 축제의 이름은 바로 서울국제도서전. 독자들을 마주하며 우리를 직접 소개하기 위해 2024년에 처음으로 참여해 봤는데, 이럴 수가. 우리는 젊은 세대를 주축으로 한 독서 광풍에 실려온 엄청난 인파를 맞이했다. 작년 방문객은 무려 15만 명. “이건 책이에요, 잡지예요?”, “주제는 매번 달라지는 건가요?” 호기심 어린 질문으로 우리를 알아가려는 분들부터, 《AROUND》는 내가 오래전부터 사랑해 왔다며 폴짝폴짝 뛰는 독자분들도 만났다. 사람들이 책장을 넘기는 모습을 두 눈으로 확인하며, 우리는 정말 누군가에게 가닿는 책을 만들고 있었다는 걸 감각한 시간. 올해는 어떤 독자를 만나게 될까, 작년과 달리 어떻게 우릴 소개할까 떠올리며 한 해를 시작했다.
이 행사가 무어냐 하면, 매년 코엑스에서 열리는 국내 최대의 책 축제다. 대한출판문화협회와 서울국제도서전이 주최, 출판사·잡지사·제지사 등을 비롯한 다양한 브랜드가 ‘책’을 주제로 모여 부스를 꾸리고, 자신들을 소개할 도서와 상품으로 그 안을 채운다. 작가 사인회, 이벤트 등도 마련해 고유한 브랜드 경험을 더 많은 사람에게 선사하는 것이 목표. 유구한 출판 역사와 나란히 걸어온 ‘민음사’, ‘창비’, ‘을유문화사’ 등은 물론이고 독립 출판사까지 모여든다. 2025 서울국제도서전은 17개국, 535개 참가사가 모였다.
전시장의 문이 열리면, 사람들은 각 부스에 마련된 볼거리를 즐긴다. 독서를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책을 만드는 이들과 직접 교류하고, 다양한 참가사를 만나며 독서 취향을 확장할 수 있는 가슴 뛰는 자리다. 도서전만을 위해 준비된 한정 굿즈나 신간 및 할인 도서도 만날 수 있기에 백팩과 운동화는 이곳의 필수품. 여행용 캐리어를 끌고 다니는 사람도 종종 마주칠 수 있다. 참가사에게도 도서전은 역시 귀한 기회다. 독자들과 눈을 맞추고, 우리는 이런 책을 만든다 이야기할 수 있는 장. 더 많은 사람에게 읽힐 좋은 책을 만들기로 다짐하는 공간이니까.
전시장을 빼곡히 채운 사람들을 마주하면 누구든 같은 질문을 얻을 것이다. ‘독서율은 나날이 떨어진다는데 책 좋아하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았던가.’ 작년에 이어 올해도 비슷한 수의 방문객이 이곳을 찾았다. 나는 이 아이러니한 북적거림 속에서 낙천주의자 혹은 반항아가 된다. ‘거봐, 종이책은 사라지지 않을 거라고 했지. 영원히 사랑받을 거라고!’ 같은 것을 열렬히 좋아하는 사람이 이 세계 어딘가에 있다는 확신. 나는 이 확신 속에서 앞으로도 책을 만들 것 같다.
해마다 도서전 주제는 달라지는데, 올해 주제는 믿을 구석(The Last Resort)이었다. 단단하고 든든해 보이는 이 네 글자는 어떤 의미일까. 주제 소개 일부를 이곳에 옮겨 본다.
사적인 어려움도 쉬이 감당해 내기 어려운 존재가 인간인데, 2025년은 우리를 도무지 가만두질 않는다. 이 세계의 끝이 가까이 왔다는 걸 확신할 증거가 매일 발밑에, 코앞에 쌓인다. 이 혼돈 속에서 서울국제도서전은 “여러분이 의지해서 어려움을 함께 넘는 믿을 구석”은 무엇이냐 묻는다. ‘믿을 구석’이란 표현을 사용했지만, 그 뒷면에는 책이란 존재가 있음을 암시한다. 책은 고민의 해답을 찾고 위로와 배움을 얻으며 삶의 지혜를 발견하기 위해 인간이 오랫동안 기대왔던 물건. 이를 옆구리에 끼고 저마다의 언덕을 열심히 넘어보려는 독서인들을 떠올려 본다. 서울국제도서전은 언덕을 넘으려는 모든 시도와 분투를 치하하며, 각자의 믿을 구석을 공유하는 자리를 만들었다.
디자인 스튜디오이자 출판사 ,워크룸프레스,에서 제작한 올해의 포스터에는 다음과 같은 일러스트가 담겼다. 나란히 앉아 서로의 어깨와 허리를 팔로 두른 두 친구, 사다리를 오르는 인물 그리고 안전한 울타리를 치듯 바닥에 원을 그리는 사람. 짐작건대 이건 분명 독서인의 모습이다. 책을 친구, 사다리, 든든한 경계 삼고 이를 의지하는 독서인 말이다.
내년엔 어떤 주제로 방문객을 맞이할까? 어떤 부스가 새롭게 마련될까? 다음 여름이 돌아올 때까지 서로의 존재를 믿을 구석 삼아, 더 읽고 감탄하고 따라 쓰자. 내년에도 같은 마음으로 우린 한자리에 모일 테니까.
올해 주최 측에서 마련한 전시 및 프로그램은 믿을 구석이란 주제 아래 유기적인 흐름으로 탄탄하게 기획되었다. 참가사들도 작년보다 더 많고 다양해진 브랜드 콘텐츠를 들고 방문객을 맞이했다. 2025 서울국제도서전, 주목할 만했던 네 가지 관람 포인트를 돌아보자.
1. 주제전시
〈믿을 구석 – The Last Resort〉
매년 도서전에서는 그해 주제어와 연관된 전시를 선보인다. 이번 해는 작가와 독자가 꼽은 ‘각자가 생각하는 믿을 구석을 담아낸 책’ 400권을 선보였다. 전시 공간은 인류에 닥친 재앙을 대비해 식량의 기본 재료인 유전자원을 안전하게 보존하는 ‘씨앗 저장고’가 모티브. 한 권의 책은 씨앗이자 새로운 가능성으로 비유되었고, 관람자는 칸이 빼곡한 수납함을 열어 안에 담긴 책을 꺼내 읽을 수 있었다.
2. 토크 프로그램
작가의 생각을 직접 듣거나 연사에게 배움을 얻는 자리도 도서전에서 빠질 수 없다. 이번 축제에서는 강연 및 세미나, 북토크, 작가와의 만남 등의 프로그램 370여 개가 준비되었다. 대표적으로 한국과 중국 여성 SF 작가 6인을 비롯해, 출판사 ‘무제’ 대표이자 배우 박정민과 소설가 김금희의 북토크가 열렸다. 스페인의 사진작가 요시고는 시인이자 사진가인 이훤과 마지막까지 간직하고 싶은 장면을 이야기했으며, 그 밖의 다양한 토크 행사가 도서전 내내 이어졌다.
3. 한국에서
가장 좋은 책
서울국제도서전이 독창성, 심미성, 차별성을 고려해 가치 있는 한국 책에 수여하는 상. 올해는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 / 즐거운 책 / 재미있는 책 / 지혜로운 책’ 총 네 분야에 걸쳐 공모를 진행, 수상작을 선정했단다. 도서전 현장에 마련된 특별 전시에서는 수상작을 직접 넘겨보며, 각각의 작품이 좋은 책으로 꼽힌 이유를 음미해볼 수 있었다. 역대 선정작은 서울국제도서전 공식 홈페이지에서 살펴볼 수 있다.
4. 다양해진 콘텐츠와
참가사
지난해는 대체로 참가한 출판사가 단순히 책을 소개하는 경향이 짙었지만, 올해는 볼거리가 다채로워졌다. 작년 엄청난 인파로 도서전의 가능성을 확인한 출판사들이, 방문객에게 브랜드를 효과적으로 각인시키고 젊은 세대의 독서 문화에 발맞추기 위해 콘텐츠를 다양화한 것. 2025년에는 책갈피, 엽서 등 구매를 유도하기 위한 무료 증정품이나 키링, 에코백, 배지까지 물성을 지닌 상품이 확실히 늘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번 도서전에서 어라운드 부스 방문했던 사람? 작년에 이어 매거진팀 구성원들이 기획부터 설치, 운영까지 담당했다. 하얀색 기본 벽을 검은 현수막으로 덮어, 여러 브랜드 사이에서 눈에 띄고자 했다. 2025년은 어라운드의 단행본이 연달아 세 권 출간된 해. 그중 최신작인 김건태 작가의 《괜찮은 척하면 진짜 괜찮아져》는 텀블벅 펀딩 이후 도서전에서 최초 공개되었다. 매거진 《AROUND》 신간 호와 더불어 과월호까지 자유롭게 열람하는 자리도 있었지. 풍성한 이벤트 역시 어라운드 부스의 재미! 매거진 및 온라인 구독 시 포스터, 에코백, 과월호 등 알찬 증정품을 안아갈 수 있도록 했다. 분주한 와중에 우리가 살뜰히 살피지 못한 분들도 있었을 텐데, 부스를 찾아 다정한 관심 보내주신 모든 분께 다시 한번 감사를 전한다!
“어라운드를 알리러 도서전에 참여했다지만, 다른 출판사 부스 구경도 놓칠 수는 없죠. 에디터들은 행사장을 구경하며 소장하고 싶은 책을 골라 왔어요. 제 눈길을 끈 건 전형적인 책의 꼴로 차분한 모습을 갖춘 도서들 사이에서, ‘괴짜’ 같은 면모를 보여주는 작품이었습니다. 재밌는 편집 방식과 그림을 함께 구경해 볼까요?”
01 《프레시 커트》
마카리우스 엥, 정재이 옮김 | 소장각
그래픽 디자이너 노성일의 1인 출판사 겸 디자인 스튜디오 ‘소장각’의 신간입니다. 종이를 신선하고 깔끔하게 자르는 법을 일러스트와 함께 소개해요. 겉싸개에는 칼집이 두 줄 나 있는데, 이는 ‘프레시 커트’ 정신을 담아 소장각과 동료 디자이너들이 직접 잘랐다고 해요.
02 롱블랙 노트
콘텐츠 플랫폼 ‘롱블랙’이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처음 선보인 노트로, 디자인 스튜디오 ‘모스그래픽’과 함께 제작했다죠. 이건 평범한 노트와는 달라요. 웹에서 감상할 수 있는 롱블랙의 오리지널 콘텐츠가 노트 절반에 담겼거든요. 저는 카피라이터 오하림의 인터뷰가 실린 노트를 골랐답니다.
03 《뉴욕 스리프터》
딕 캐럴, 유현선 옮김 | 워크룸프레스
평소 좋아하는 출판사 부스에 이르니, 알록달록한 일러스트가 벽면을 꽉 채우고 있었어요. 신간에 실린 일러스트라기에 얼른 책을 펼쳤습니다. 자신을 ‘옷 벌레’라고 칭하는 작가가 2017년부터 연재한 패션 만화를 엮은 단행본입니다.
“서울국제도서전이 열리는 코엑스로 향하는 길, 어느 날은 비가 쏟아지고 어느 날은 볕이 뜨거웠어요. 곧 다가올 완전한 여름을 실감하며 몇 권의 책을 골라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여름을 담은 또는 그 시기를 연상시키는 책들을 품에 안고, 다가오는 휴가에 작열하는 계절 속으로 빠져들래요.”
01 《버릴 수 없는 티셔츠》
쓰즈키 교이치 엮음,이홍희 옮김 | 안그라픽스
여름에 자주 손이 가는 것, 아무리 둘러봐도 없는 사람 찾기 힘든 것. 바로 ‘티셔츠’지요. “남자를 소년으로, 여자를 소녀로 만들어주는 존재”로 티셔츠를 꼽은 엮은이가 불특정 다수에게서 받은 70장의 옷과 그 옷에 스민 시절을 모았어요.
02 《식물스케일》
박세미 | 시간의흐름
좁은 골목을 쏘다니듯 분주히 둘러보다 박세미 작가의 산문집을 발견했습니다. 건축전문지 기자와 시인을 넘나드는 그는 식물을 척도로 자신의 삶과 공간, 관계를 톺아봤대요. 어느 여름날 풍경 같은 표지를 넘기면 삶의 기록이 수수한 모양새로 이어져요.
03 《아무튼, 여름》
김신회 | 제철소
부스 한 면, 눈물이 맺힌 소녀 그림을 보자마자 출판사 제철소임을 알아차렸지요. 제가 이 무더운 계절을 사랑하도록 만든 김신회 작가의 《아무튼, 여름》이 김참새 화가의 신작으로 새 얼굴을 가졌거든요. 같은 책을 또 사냐고요? 얼굴이 다르면 완전히 다른 책인걸요!
04 《믿을 구석》
김멜라, 김복희 외 12인 | 서울국제도서전
“당신의 믿을 구석은 무엇인가요?” 한 가지 질문 아래, 작가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답을 전한 이 책은 올해 도서전 주제를 담은 기획 도서입니다. 지탱할 것 없이 힘겨운 여름도 서로의 믿을 구석들을 나누다 보면 조금 가뿐히 보낼 수 있지 않을까요?
에디터 차의진
자료 제공 서울국제도서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