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적 소풍관과 낭만적 소풍관

동경진·이주희 — 계업식

산에 오르는 경진의 짐이 지나치게 단출하다. 작은 물통, 고열량 젤리, 작은 히프 색, 러닝화. 산을… 달려서 간다고? 규칙상 36시간 이내에 종주해야 하는 다섯 개 산을 첫 도전에 10시간 만에 나 홀로 성공하는 경진에게 산과 달리기란 때가 되면 밥을 먹는 것과 다르지 않다. 얼마 전엔 일곱 살 딸을 등에 태우고 북한산 꼭대기까지 올랐다고. “누가 협박하는 것도 아닌데….” 하며 고개를 젓는 주희도 심상치는 않다. ‘두이투어’라는 이름으로 낯 모를 이들을 모으더니 패키지 상품은 알아서 예약하라는 공지를 띄우는데….

만나서 반갑습니다. 두 아이가 한창 커가는 나이라 엄마 아빠로서 가장 바쁜 시기일 것 같아요. 오늘은 동경진, 이주희로 인사해 볼까요?

경진 안녕하세요, 을지로에서 닭을 업으로 하는 식당 ‘계업식’을 운영하는 동경진입니다. 지금은 7살 동그래, 4살 동그린 자매의 아빠 자아가 가장 크지만 사실 동경진은 모험심도 많고 즉흥적으로 떠나는 삶을 살던 사람이에요. 결혼하고 아이가 생기면서 많이 절제하며 지내고 있어서 이런 소개가 참 오랜만이네요. 

주희 계업식 브랜딩을 담당하면서 디자이너로 지내고 있는 이주희예요. 애들 때문에 정신없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어요. 특히 장녀 그래가 말이 많아진 시기라 오디오가 비지 않을 텐데, 오늘 괜찮을까요(웃음)? 저는 셰프님… 아, 저희는 오래전에 아르바이트하던 식당에서 만난 사이이기도 하고, 동경진이 계속 셰프 일을 하는 사람이라 셰프님이라 부르고 있어요. 셰프님이랑 저는 성향이 완전히 달라요. 셰프님이 갑자기 떠나던 사람이라면 저는 언제나 집에 있는 걸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거든요. 

 

벌써 흥미진진한데요(웃음). 경진 씨의 ‘훌쩍’이 궁금한데, 주로 어디로 가곤 했어요? 

경진 답답하면 강, 바다, 가리지 않고 자연으로 갔어요. 저는 항상 일을 하던 사람이어서 며칠씩 멀리 갈 순 없었고 잠깐 떠나는 식이었죠. 그땐 바이크가 있어서 차나 바이크를 타고 일이 밤 10시에 끝나도 여기저기로 떠나곤 했어요. 야간에 바다만 보고 와도 많은 게 정리되니까 그 잠깐의 시간이 좋더라고요. 지금은 어딜 가더라도 가족과 함께하곤 하는데 혼자일 때랑은 준비 과정이 완전히 달라요. 예전엔 퇴근한 차림 그대로 불쑥 떠나도 됐는데 지금은 애들 잠자리, 먹거리, 콘텐츠 같은 걸 생각하지 않을 수 없거든요. 전처럼 자주 떠날 수 없으니까 요즘은 짬짬이 혼자 산을 다니고 있어요. 

 

SNS에서 ‘#살기위해달리는자영업자런’ 시리즈를 감탄하며 보고 있는데, 보통의 등산이나 러닝과는 차원이 달라 보여요. 높고 험난한 산을 뛰어서 오르시던데요. 얼마 주기로 산에 가고 있나요?

경진 계절마다 다른데 겨울엔 매일 다니고, 보통 이틀에 한 번꼴로 북한산에 가요. 집이랑 가깝고, 서울에서 가장 높은 산이기도 해서요. 북한산이 다른 산에 비해 험해서 운동하는 기분도 들거든요. 보통 새벽에 출발해서 일출을 보고 출근하는데, 아무래도 다녀오면 땀이 나니까 씻는 시간까지 고려해서 출발하곤 해요. 겨울엔 아무리 달려 다녀도 땀이 안 나니까 하산하자마자 계업식으로 출근하곤 했어요. 6시에 출발해서 7시쯤 일출 보고, 내려와서 출근하면 시간이 딱 맞아요. 지금 같은 계절엔 해 뜨는 시각이 빨라지니까 4시에 출발해서 5시에 일출 보고, 집에 돌아와서 씻고 출근하는 루틴으로 지내고 있어요. 산에 못 가는 날엔 계업식까지 뛰어서 출근하고요. 

 

네? 집은 수유, 계업식은 을지로잖아요. 거리가…. 

경진 9킬로미터 정도 돼요. 빨리 뛰면 50분쯤 걸리죠. 퇴근할 때도 웬만하면 뛰어서 오려고 해요. 예전엔 혼자서 강으로, 바다로 훌쩍 떠나면서 기분 전환을 했다면 지금은 산이든 길이든 달리면서 환기하는 거죠. 

 

제가 상상한 것보다 훨씬 극한의 강도인 것 같은데, 얼마 전엔 유아용 캐리어로 딸 그래를 업고 산에 다녀오셨죠. 

경진 종종 같이 달리는 친구가 어느 날 유아용 캐리어가 있는데 써보지 않겠느냐 묻더라고요. 원래 자기 딸을 데리고 다니려고 구입한 건데 한 번 산에 가보더니 딸이 다시는 안 간다 그러더래요. 그래서 우연히 얻게 된 건데, 기회만 벼르고 벼르다가 지난주에 드디어 업고 가보게 됐어요. 근데 그래가 너무 좋아하는 거예요. 뒤에서 조잘조잘 떠들고, 좋다 그러고, 과자도 먹고, 잠도 잘 수 있겠다고 하니까 힘들다는 느낌보다는 ‘유레카!’ 싶었죠. 육아랑 운동을 동시에 할 수 있게 됐으니까요.

힘들지 않으셨어요? 

경진 음, 그 힘들다는 개념이 저한테는 좀 달라요. 유도 선수로 지낸 시절이 있어서 ‘힘들어야 운동이 되지.’라는 생각이 강하거든요. 저는 체력 관리나 다이어트처럼 목적을 두고 일부러 시간을 내서 운동하는 게 아니에요. 때가 되면, 배가 고프면 밥을 먹는 것처럼 산을 달리는 거죠. 

주희 저는 절대 못 해요. 누가 칼 들고 협박하는 것도 아닌데, 셰프님은 계속 이렇게 운동을 해왔어요. 그래를 업고 산에 간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땐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었는데, 막상 그래가 좋아하는 걸 보니까 또 가겠다는 말이 납득이 되더라고요. 

 

주희 씨는 어때요? 일상이 답답할 때 특별히 하는 게 있나요? 

주희 애들이 있으니까 자유롭게 다니긴 힘들어요. 디자인 업무로 인쇄소에 갈 때 가끔 콧바람을 쐬는데, 학생 때부터 가던 데를 애들이랑 가는 게 신기할 때는 있어요. 그래도 집이 가장 좋지만요(웃음). 

 

그런데 얼마 전에 ‘두이투어’ 모집을 시작하셨던데요, 집순이가 기획한 투어라니! 

주희 셰프님이 일중독이라 연애할 때도, 결혼 초에도 혼자 놀 때가 많았어요. 주말에 딱히 할 게 없어서 여행이나 갈까 싶어 이것 저것 찾아보다가 쿠팡에서 국내 여행 상품들을 발견했어요. 아는 사람만 가고, 모르는 사람은 못 가는 그런 상품인데요. 어느 날 정선 광고가 떠서 눌러 보니까 당일치기 국내 여행 상품이 꽤 있더라고요. 그 목록을 보는 것만으로도 왠지 재미있는 기분이었어요. 그래서 덜컥 SNS에 “정선 갈 사람?” 했더니 저 같은 이상한 애들이 둘 모이더라고요(웃음). 살면서 정선에 갈 일이 얼마나 있겠냐 싶어서 당일치기로 떠나보려던 게 진짜 실행된 거죠. 패키지 상품 내용은 정선에 있는 작은 역, 시장, 그리고 산에 가는 거였어요. 저희 말고도 투어 상품을 신청한 아주머니·아저씨들이랑 같이 다니면서 시장에서 콧등치기 국수도 먹고, 막걸리도 마신 것 같고…. 너무 오래돼서 확실한 기억은 안 나지만 어떤 강을 건너는 배를 보기도 했어요. 처음엔 이런 상품이 판매되고 있다는 게 웃겼는데, 막상 신청자를 모집하니 신청한 사람이 있다는 것도 웃기고, 우리 말고 다른 신청자가 많다는 것도 웃기고, 모여서 떠나는 것도 웃기더라고요. 그게 두이투어 시즌1이었어요. 

 

이번이 처음이 아니로군요? 

주희 세 번째예요. 두 번째 두이투어 이후 아이를 낳게 돼서 한동안 못 하다가 8년 만에 다시 모집하게 됐어요. 아이가 없을 때를 시즌1이라고 한다면, 지금은 아이들도 함께할 테니 시즌2가 되겠네요(웃음). 그래서 이번엔 잘 아는 지역인 원주 상품을 골랐어요. 제가 원주 출신이거든요. 비상 상황이 생기거나 화장실이 급하다거나… 그럴 때 대비할 수 있어야 할 테니까요. 딸기 따기 체험도 포함돼 있어서 애들도 좋아할 것 같아서 SNS로 패키지를 소개하고 “원주 갈 사람?” 했더니 열 명 정도가 모이더라고요. 

 

저는 주희 씨가 가이드인 투어인 줄 알았어요(웃음). 

주희 저는 누군가 판매하는 상품 내용을 SNS로 홍보하고 같이 갈 사람을 모집할 뿐이죠. 투어 상품을 올린 판매자랑 저는 아무 관련도 없고요. 패키지 상품이다 보니까 별의별 콘텐츠가 다 있어요. 지역 축제에 가는 상품도, 풍물놀이가 끼어 있는 패키지도 있어요. 소싸움처럼 원하지 않는 프로그램이 구성된 경우도 있고요. 저는 그런 상품 중에 제가 가고 싶은 걸 고르고 같이 가자고 알리는 건데, 물론 전 호스트가 아니니까 예약도 참여자가 스스로 해야 해요. 이전에는 저도 가본 적 없는 곳들이라 상품에 포함된 이미지가 정보의 전부였거든요. 근데 원주는 제가 나고 자란 데여서 홍보도 조금 더 현실적으로 해볼 수 있었어요. 원주 중앙시장 지하는 돈가스, 쫄면, 만두, 칼국수, 메밀전병 같은 게 유명하거든요. 휴대폰 사진첩에 이미 사진이 많으니까 그걸로 홍보했더니 열 명이나 모이더라고요. 어떤 여정이 될지 저도 궁금해요. 

 

모르는 분들이랑 떠나는 건데 겁나거나 걱정되진 않으세요? 

주희 저도 제가 왜 이런지 잘 모르겠는데 걱정이 하나도 없어요. 저는 이분들을 몰라도 이분들은 저를 안다는 점 때문인지 아예 모르는 사람 같지도 않고…. 애초에 두이투어를 신청하는 사람들도 정상은 아니라는 생각이 있어서 안심이 되는 것 같아요(웃음). 여행 상품이 당일치기다 보니까 새벽에 모여서 떠나게 되거든요. 다들 집결지로 얼굴이 퉁퉁 부어서 오는데 그것부터가 재미있어요. 모르는 사람이어서 불쾌하거나 위험했던 경험도 전혀 없고요. 오히려 신기한 인연이 닿은 적은 있어요. 두이투어 시즌2 때 알게 된 여성분의, 친구의, 어머니가 약수에 있는 조리원 원장님이셔서 거기서 산후조리를 받았거든요. 이런 걸 보면 사람 인연이라는 게 참 묘하다 싶어요.

듣고 보니 경진 씨는 혼자 하는 외출을, 주희 씨는 여럿이 하는 외출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주희 제가 아이들 데리고 인쇄소도 가고, 제가 자주 다니던 가게들도 가고, 두이투어도 열고, 하니까 SNS만 보면 활동적으로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일 텐데 저는 철저한 내향인이에요. 근데… 리더십이 있어요. 그래서 자꾸 사람을 모으게 되죠. 두이투어 말고도 엄마들 모임도 만들었어요. 한 달에 한 번 키즈 카페 가는 모임, 일명 ‘한한키모’(웃음). 하지만 강조하건대 저는 집을 사랑해요. 

경진 저랑은 완전히 반대죠. 저는 무조건 나가야 해요. 집에 있으면 답답하거든요. 집에만 있어야 한다면 종일 잠만 자게 될 것 같아요. 집이라는 기운이 저를 그렇게 만들거든요. 

 

이렇게 성향이 다른데 연애할 땐 어떠셨어요. 데이트할 때 절충이 필요했을 것 같아요. 

경진 연애할 때는 자기 자신을 다 내려놓는 법이죠. 주희 둘 다 필터가 씌워진 상태라 뭘 하든 좋았어요. 지금은 성향을 너무 잘 아니까 영화도 따로 보고, 취미 생활도 각자 해요. 

경진 음식 취향도 완전히 달라요. 저는 요리하는 사람이니까 조금 더 다양하게 경험하는 걸 좋아하는데 주희는 추억의 음식을 좋아해요. 옛날부터 먹던 것들이요. 저는 간이 센 걸 좋아하지만 주희는 그렇지 않고요. 그래서 경주에 살 때도 서울 나들이를 가면 식사는 따로 했어요. 

 

정말로요? 

경진 네. 서울도 시간 내서 한 번씩 올라오는 건데 그렇게 안 하면 서로 먹고 싶은 걸 먹을 수가 없거든요. 저는 보통 라멘을 먹거나 새로 생긴 식당을 찾아가는 편이라면 주희는 ‘웨스턴 철판 볶음밥’이라고, 지금은 없어졌지만 홍대에 있던 진짜 오래된 식당을 고집했어요. 주희는 조금이라도 간이 세거나 향이 나는 건 못 먹으니까 라멘도 못 먹어서 그럴 바에야 따로 먹는 게 서로 마음이 편하죠. 주희 부부라고 굳이 같이 다녀야 하나요, 식사하고 다시 만나면 되지(웃음). 

 

두 분이 바깥 활동을 온전히 함께할 수 있게 된 건 아이들 덕분인 것 같기도 해요. 

주희 맞아요. 유년 시절 기억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니까 더 신경 써서 함께 있으려고 하죠. 경진 다 같이 나갈 때도 아이들 콘텐츠 먼저 생각하는 거고요. 최근에는 고성 가진해변에 있는 테일커피 플리마켓에 계업식이 참가하게 돼서 가족이랑 다 같이 다녀왔어요. 1년에 두 번씩 열리는 플리마켓인데 인기가 많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처음에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바닷가에서 한다니까 식구들이랑 가도 되겠다 싶더라고요. 음식만 있는 게 아니라 소품이나 볼거리도 많은 플리마켓이라 애들도 좋아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같이 가자고 했어요.

주희 생각해 보니 고성 갈 때도 따로 갔네요. 플리마켓은 일요일이었는데 저는 그래·그린이랑 하루 먼저 가서 맛있는 거 먹고, 놀고, 자고, 셰프님은 일요일 새벽에 닭강정 튀겨서 따로 왔거든요.

경진 현장에는 조리 시설이 없기 때문에 판매할 음식을 준비해서 가야 했는데, 토요일은 가게 영업일이니까 퇴근하고 집에서 씻고, 다시 가게로 와서 두어 시간 자고 새벽에 닭 튀겨서 고성으로 출발했어요. 항상 그런 패턴으로 살아서 특별히 무리한 건 아니지만 가게에서 잔다고 하면 다들 놀라시더라고요. 일요일에 날 밝자마자 팀원들이랑 고성에 가서 판매도 하고, 가족이랑 놀기도 하고, 바다도 보고…. 일도 하고 놀기도 하니까 굉장히 좋았어요.

주희 애들도 계속 좋았다고 하더라고요. “플리마켓 또 언제 해?” 묻는 거 보고 다행이다 싶었어요.

그러고 보니 너무 자연스럽게 여기까지 넘어왔는데, 계업식 소개를 들어봐야겠군요.

경진 계업식은 경주에서 시작한 식당으로 어느덧 영업 8년 차네요. 경주에서 한남동을 거쳐 지금은 을지로에 자리를 잡고 운영해 나가고 있어요. 경주에서 시작한 계업식은 첫 자식 같은 느낌이었어요. 목수랑 3개월 동안 공간을 직접 디자인하고 설계하면서 하나하나 저희 취향대로 만든 곳이었거든요. 파사드부터 시작해서 실시간으로 사진 찍고, 그림 그려가면서 비율 조절해 가며 창문도 만들고…. 모든 부분에 취향을 녹였기 때문에 정이 많이 간 공간인데, 안정적으로 장사가 잘되다 보니까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 싶더라고요. 지인이 많은 마포구가 아닌 한남동 쪽으로, 일부러 새로운 데 자리를 잡고 이전했는데 첫 계업식이랑은 느낌이 좀 달랐어요. 경주에서 매번 올라올 순 없으니까 계업식에 비해 개입한 부분이 적어서 처음엔 어색한 느낌이 들었어요. 그래서 영업하는 동안 저희 색깔을 만들기 위해 익숙한 소품이나 기물들을 가져다 두고, 너무 새것처럼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 때를 묻히는 작업도 많이 했죠.

주희 한남동에서는 좋은 인연을 참 많이 만들었어요. 그게 한남동 계업식의 가장 큰 성과라고 봐요. 이번 을지로는 열자마자 앞선 두 계업식과는 반응이 확연히 달랐어요. 단골들이 “이게 계업식이지.” 하시더라고요. 두 번의 계업식을 운영하면서 뺄 건 빼고, 남길 건 남기면서 소품도 상징적인 것들만 장식해 두었는데 거기서 저희 색깔이 많이 드러난 것 같아요.

경진 계업식은 단골이 많은 가게예요. 계업식 이전부터 제가 요리를 해온 17년 동안 쭉 찾아와 주시는 단골도 계시거든요. 그러다 보니 저의 요리 역사, 계업식 역사를 아는 분이 많은데 그분들이 “이제야 진짜 너희 가게 같다!”고 말씀해 주시는 게 좋았어요. 

 

계업식은 두 분이 마음껏 소풍을 나설 수 없게 만드는 일터이기도 하지만 방문하는 이들에게는 소풍의 목적지일 수도 있겠네요. 

주희 재미있는 건 저희 전 직원들도 소풍 오듯 계업식에 온다는 거예요. 어느 날 계업식에 아는 얼굴이 모여 있어서 약속을 잡고 온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요. 한 명씩, 한 명씩 각자 온 건데 한날한시에 모이게 된 거죠. 그만큼 자주 드나들기도 해서 가끔은 계업식이 전 직원들 놀이터 같기도 해요(웃음). 휴무일엔 가게 주방 좀 써도 되냐고 연락해 오는 직원도 있어요. 그럼 저희는 흔쾌히 쓰라 그래요. 종종 공유 주방이 되는 거죠.

경진 지난 금요일엔 점심쯤에 그래 운동회가 있어서 잠깐 자리를 비워야 해서 요리하는 친구에게 가게를 봐달라고 부탁하게 됐어요. 근데 그 친구가 역제안을 하더라고요. 가게를 보는 동안 자기 메뉴를 팔아도 되겠느냐고. 그래서 계획에 없던 작은 팝업을 했는데, 이런 일이 꽤 잦아요. 다들 계업식을 편하게 생각하고 놀이터처럼 여겨준다는 느낌을 받아요. 물론 저희 분위기와 맞지 않아서 일찍 그만둔 직원도 있지만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일을 그만두고도 다 함께 어울리고, 다른 식당에 취직하면 그 식당 팔아주러 함께 방문하고 그러면서 지내고 있죠. 주희 고인물 파트타이머 친구가 한 명 있는데, 그 친구는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볼일을 보고도 다시 계업식으로 와요. 여기가 집 같대요. 직원들이 왜 여길 편하게 생각하는지 모르겠는데 설명할 길이 없어서 ‘계업식 세계관’이라 부르고 있어요(웃음). 왜 이런 현상이 생기는지 저희도 모르겠어요. 급여가 다른 데보다 많은 것도 아니고, 대단한 혜택을 주는 것도 아니거든요. 오히려 마감도 빡세고 청소도 힘든데…. 이유를 찾자면 요리에 관해서라면 전폭적인 지원을 해준다는 점 덕분인 것 같아요. 우리는 닭 요리 전문점이지만 일하는 친구가 주먹밥을 만들고 싶다고 하면 팝업을 열어줘요. 작고 귀여운 수익도 가져가 보고, 그때만큼은 내 요리를 선보이는 메인 셰프가 되는 거니까 재미있잖아요. 지인들한테 공식적으로 자기 요리를 선보일 수도 있고요. 

 

듣자 하니 “회사 가기 싫어!”를 외치게 하는 일터는 아닌 것 같아요. 

주희 100퍼센트 그렇진 않을 거예요. 셰프님이 청결에 엄격해서 청소가 힘들거든요. 그걸 어떤 환경에서 버틸 수 있게 하느냐, 어떤 추억으로 이겨낼 수 있게 하느냐, 어떤 동료와 지내게 하느냐… 그런 문제인 것 같아요.

경진 다른 데보다 힘들면 힘들었지, 덜 힘들지는 않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기서 재미를, 힘듦을 완충할 콘텐츠를 찾아주는 거죠. 사실 말은 이렇게 해도 저는 계업식을 회사처럼 다녀본 적은 없으니까 정작 일하는 친구들 속내는 다 알 수 없겠지만요(웃음).

이번 호 주제는 ‘나들이’, ‘소풍’이에요. 두 분은 이 단어에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세요? 

주희 너무 설레요.

경진 쉬는 시간이 떠올라요. 휴식 없이 살아온 저한테는 가만히 누워서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어딘가로 떠나서 사람들과 멀어져 있을 때 진짜 휴식한다는 기분이 들거든요. 환기도 되고요. 저한테는 소풍이 그런 이미지예요.

 

앞서 그래 운동회에 참석했다는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늘 소풍을 주도하는 양육자 입장에서 그래가 초대한 운동회는 새로운 측면의 환기였을 것 같아요.

주희 정말 재밌었어요. 저희가 제일 열심히 참여했어요. 특히 셰프님은 뭐든 첫 번째로 나가고, 응원단장도 하고(웃음). 경기하다 넘어지는 바람에 ‘타박상’을 탔는데 그것도 재미있더라고요. 아무래도 낯서니까 보호자들이 처음엔 쭈뼛쭈뼛하는데 막상 시작되면 굉장히 열심히 하세요. 그런 걸 보면서 어쩌면 어른들도 어릴 때 추억이 남아서 저절로 움직이게 되는 게 아닌가, 즐거워지는 게 아닌가 싶더라고요. 아이가 생겼을 때야 할 수 있는 새로운 환기인 건데 이런 행사가 더 많아지면 좋겠어요. 아이들한테도, 보호자한테도 추억이 될 테니까요. 

경진 저는 어릴 때부터 운동회나 체육대회, 축제 같은 행사에 필사적이었어요. 제 몸을 갖다 바쳐서라도 이겨야 하는 거죠. 그런 성향 때문에 운동을 한 거기도 하고요. 이런 적극적인 마인드를 잊고 있다가 이번에 오랜만에 다 표출하고 나니까 즐겁더라고요. 주 6일 가게를 운영하고 일요일 하루는 온전히 아이들에게 쏟으며 지내고 있는데, 매번 그런 일주일을 살다가 이런 시간을 가지니까 ‘맞아, 나 이런 걸 즐기는 사람이었지.’ 하고 깨달았어요.

 

환기의 경험은 일상의 활력이 된다고 생각하는데 매일 이벤트를 바랄 순 없잖아요. 나만의 환기 루틴이 있나요?

주희 계획하지 않고, 따지지 않고 무작정 실행하기. 최근에는 갑자기 피부과를 예약하고 점을 빼러 다녀왔어요. 또 어느 날은 일을 보고 집에 들어오는데 벚꽃이 예뻐 보여서 계획 없이 아이들 데리고 바로 벚꽃을 보러 떠났죠. 옛날 같으면 2순위, 3순위로 미루어 두었을 일들을 그때그때 실행하면서 일상을 환기하고 있어요. 실제로 그런 건 아니지만 인생이 얼마 안 남은 느낌이 들어서, 근 1년 사이 실행력이 부쩍 높아졌어요. 생각만 할 시간에 실행하면 어떤 결과든 나오니까 뭐든 해보자 싶어진 거죠.

 

경진 씨는 어때요?

경진 저는 굳이 환기해야겠다고 마음먹을 필요도 없이 잠깐의 외출만으로도 환기가 빠른 사람이에요. 그런 성격으로 타고나서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서 잠깐 다른 일을 하고 나면 잊어버리죠. 전환이 쉽고 좀 단순한 편이에요.

주희 그 점이 가끔 얄미워요. 똑같이 추진력이 있는 성격이어도 셰프님은 낭만을 향해 있고, 저는 생산을 향해 있어요. 같은 문제에 직면했는데 저는 심각하게 고민하는 반면 셰프님은 여유롭거든요. 똑같은 걱정을 해도 생각하는 정도와 깊이가 다른 것 같아요.

 

매일 산을 달리는 만큼 평정심을 유지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 같아요. 경진 씨가 산을 좋아하는 건 어린 시절의 역할도 큰 듯한데, 아버지와 주말마다 산에 가셨다고요.

경진 사실 그때는 되게 귀찮았어요. 산은 일찍 가야 하니까 늦잠 자고 싶은데 주말 아침이면 아빠가 깨우셨거든요. 근데 아빠 존재가 워낙 컸기 때문에 군말 없이 따라나선 거죠. 아버지는 지금도 항상 산에 가세요. 출근 전에, 퇴근 후에…. 어떻게 보면 저랑 똑같아요.

주희 외모도 그래요. 아버님을 보고 있으면 미래의 경진을 보고 있는 것 같아요. 말투, 덩치, 몸태… 곧 이 분이 되겠구나, 하는 기분? 

경진 아버지가 말이 없는 편이셔서 “가자.”고 하시면 울림이 커서 따라나서야 하는 분위기가 있었어요. 방학이 오면 텐트 들고 바다에 가서 일주일 있다 오고… 그런 어린 시절을 보냈죠. 

 

텐트에서 일주일을 묵는 거예요?

경진 네. 제가 어릴 때만 해도 텐트가 굉장히 무거웠는데 십여 킬로짜리 텐트를 짊어지고 스마트폰도,내비게이션도 없이 지도만 보고 이 바다, 저 바다를 찾아가곤 했어요. 어릴 때부터 자연 속에 있는 게 익숙해서 저도 여기저기 혼자 훌쩍 떠날 수 있던 것 같아요. 그런 경험 덕에 어딘가에 간다는 데 두려움이 없죠. 새벽이든, 야간이든 가고 싶을 때는 무작정 떠날 수 있거든요. 사람들은 출발하자마자 험난하고 무서워서 그냥 내려오는 산도 아무렇지 않게 타고요.

아, 그러고 보니 저는 경진 씨 SNS에서 ‘불수사도북’ 이라는 단어를 처음 봤어요. 이게 뭐지 싶어서 검색했다가 깜짝 놀랐어요.

경진 불암산, 수락산, 사패산, 도봉산, 북한산의 줄임말이에요. 이 다섯 개 산을 일시 종주하는 프로그램인데 등산하는 사람들의 로망 중 하나예요. 보통은 큰 계획을 잡고 가요. 근데 저는 단순하게 불수사도북이라는 게 있네, 가보고 싶다, 하다가 어느 날 주희가 애들 데리고 친정에 간다고 하길래 ‘이때다!’ 하고 떠났어요. 첫 도전은 ‘가볼까?’ 하는 가벼운 마음이었는데 성공을 해버린 거예요. 심지어 비까지 왔는데 10시간 만에 종주했죠. 성공했다는 글을 SNS에 올리니까 등산하는 사람들이 연락을 엄청 많이 해왔어요. 보통 산 타는 사람들이 20시간 정도 걸리는데, 절반 시간에 종주한 데다가 산을 탄 지 얼마 안 된 초보자가 성공했다는 게 신기했나 봐요(웃음). 인제 산을 타는 사람이 어떻게 도전할 생각을 했냐, 게다가 어떻게 성공을 한 거냐…. 굉장히 많은 질문을 받았어요. 지금은 다섯 번 정도 종주했는데 이젠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갈 수 있어요.

주희 불수사도북 리드해 달라는 연락이 와서 불려 나갈 때가 있는데, 밤에 산에 들어가서 시작하는 일정이거든요. 입산 금지 시간이 있어서 그 시간을 피해 밤에 미리 들어가 있는 건데 그럼 10시간 이상 자리를 비우니까 저로서는 얄미울 때도 있죠. 왜 꼭 가이드가 있어야 하느냐며 투덜대기도 하고요.

경진 불수사도북은 경험자가 길을 안내해 주지 않으면 종주가 힘든 프로그램이에요. 밤에 시작해야 하니 길 찾기가 더 어렵기도 하고요. 처음 불수사도북을 하는 사람들은 여러 번 경험이 있는 사람 리드 하에 서너 명씩 팀을 짜서 떠나곤 해요. 그런 코스를 생각 없이 혼자 첫 도전에 성공해 버렸으니 더 이슈가 된 거죠. 주목을 받으려고 한 건 아니었고, 혼자 있는 시간을 온전히 누리고 싶었어요. 10시간가량 혼자 산을 타니까 확실히 생각 정리가 되더라고요.

 

경진 씨의 외출이 체력을 소모하는 쪽이라면 주희 씨는 추억을 환기하는 쪽인 것 같아요. 레트로하고 오래된 공간을 좋아하시죠. 아이들 데리고 ‘스파게티가 있는 풍경’이나 다방 ‘시티커피’ 같은 곳에 다녀온 기록이 정말 재미있었어요.

주희 제가 90년대에 좋아한 곳들이죠. 요즘 특히 자주 가는 데는 이 동네 학교 앞에 있는 떡볶이집이에요. ‘맘마샘하우스’라고 오래된 분식집이 있거든요. 슬러시, 컵 떡볶이, 피카츄 돈가스 같은 걸 저렴하게 파는 곳이죠. 어릴 때 학교 끝나고 들러서 군것질 하나씩 사 먹던, 그런 분위기의 분식집이에요. 한남동에 살 땐 애들이랑 간식 먹으러 가면 3만 7천 원씩 나오곤 했는데 여기서는 1,500원이면 돼요. 물가를 떠나서 이런 문화가 여전히 남아 있다는 게 좋아요. 맘마샘하우스는 초등학생뿐 아니라 중학생도, 고등학생도 자주 오거든요. 근데 이전에 살던 한남동만 해도 이런 문화가 없었어요. 어떻게 보면 그래·그린이 세대 중에는 학교 끝나고 떡볶이 사 먹는 문화를 모르는 애들이 많아진다는 거잖아요.

 

떡볶이 2백 원어치 주문하면 위생 봉투에 열 개 담아주던 시절도 있었는데. 달달한 떡볶이 국물이 맛있어서 국물 꼭 많이 달라 그러고(웃음).

주희 그런 게 너무 아쉬워요. 이런 재미있는 생활을 못 해보고 자란다는 게요. 제가 어릴 때 그런 문화를 유독 좋아했어서 그린이랑 그래도 그런 걸 알길 바라는 마음에 더 자주, 많이 데리고 다니게 돼요. 어릴 때 저는 방방이 타는 걸 정말 좋아했는데 지역마다 부르는 이름이 다르다고 하잖아요. 근데 애들은 방방이라는 명칭조차 모르고 자란다는 게 아쉽더라고요. 키즈카페에 있는 트램펄린이랑은 또 다르니까요. 이런 문화를 정부에서 무형문화재로 지정하고 관리해 주면 좋겠다고까지 생각해요.

경진 방방이 뛰고 달고나 먹는 게 어릴 때 루틴이었는데(웃음).

주희 공터 구해서 방방이 장사를 해볼까 싶어요. 30분에 5백 원? 2천 원? 어때?

경진 30분은 너무 긴데?

주희 절대 안 길어. 타는 애들 입장에선 30분이 3분처럼 느껴진다고. 1시간은 쉬지 않고도 탈 수 있는데!

 

저는 ‘퐁퐁’이라 불렀는데. 한참 타다 내려오면 아스팔트 바닥에서도 탄성이 느껴지잖아요.

주희 아! 맞아요. 땅이 나를 잡아당기는 느낌! 진짜 그립네요(웃음).

두 분과 이야기 나누다 보니까 새삼스럽게 부모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긴 시간 아이들을 위해 지내왔으니 두 분께 상상 속 나 홀로 휴식 시간을 드릴게요. 1박 2일, 뭘 해볼까요?

주희 동경진, 동그래, 동그린, 동경매(고양이) 다 내보내고 혼자 집에 있을 거예요. 

경진 전 지리산이나 설악산에 갈래요.

 

아, 이 대답도 이렇게 나뉘나요(웃음)? 

경진 저는 서울을, 제가 있는 동네를 안 벗어나요. 그러니까 집 가까운 북한산에 계속 오르는 거죠. 집도, 가게도, 식구도 제가 지켜야 하는데 어떻게 벗어나요. 못 벗어나죠. 그러니까 혼자만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동네 상관없이 오르기 힘들다는 산들을 정복하고 싶어요. 한라산도 가보고 싶다는 욕심은 있는데 산은 높지만 코스가 쉬워서 1박 2일로 다녀오기에는 조금 아쉬울 것 같으니, 지리산이나 설악산 중에 고민해 볼게요.

 

그럼 이번엔 온전히 두 분만 함께할 수 있는 소풍 시간을 드릴게요. 어디로 가볼까요? 

경진 어디 갈래? 

주희 진짜 주시는 거예요? 일본 가야죠.

경진 저희한테 일본은 전환점 같은 여행이었거든요. 저희는 식을 올리지 않고 결혼했는데, 문득 ‘신혼여행은 가야지.’ 싶더라고요. 그 당시엔 직장인이었는데 대표님께 신혼여행을 다녀오겠다고 이야기하고 휴가를 받았어요. 이틀 이상 쉬어본 적 없이 일만 하던 사람이라 일주일 휴가는 처음이었죠. 그때, 일본 여행을 다녀온 이후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한 번도 일만 하고 살아온 것에 후회해 본 적이 없는데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는 자각이 들더라고요. 일주일을 온전히 우리 시간으로 보내고 나니까 잊었던 것들이 돌아오는 기분이었어요. 그땐 운동마저 쉬던 시절이거든요. 운동, 산, 바다… 제가 좋아하던 것들이 하나씩 떠올랐죠. 그 여행 후에 ‘내 가게를 해야겠다.’ 마음먹게 됐고, 경주에 있을 때는 여름방학, 겨울방학을 정해서 일 년에 두 번은 떠나곤 했어요.

주희 이제는 아이도 생기고 생활도 바뀌어서 자연스럽게 가게에 방학이라는 개념이 사라졌지만 자연스러운 수순이기 때문에 아쉽지는 않아요. 지금은 또 지금 할 수 있는 나들이를 하면서 지내니까요.

 

좋아요. 그럼 자연스럽게 넷이 떠나는 소풍을 그려 볼까요?

경진 역시 일본에 갈 것 같아요. 매년 계업식이 〈모리미치이치바〉라는 일본 페스티벌에 참여하고 있어요. 나고야 근교 가마고리에서 하는 행사인데, 놀이동산 전체를 사용해서 하는 대규모 페스티벌이거든요. 매년 가고 있어서 아는 언니, 동생들이 생기니까 그래가 “나고야 또 언제 가?” 묻더라고요. 올해는 사정상 참여하지 못했는데, 그래서 더 다 같이 일본에 가고 싶어요. 해외에 애들 데리고 가는 건 솔직히 힘들어요. 근데, 생각보다 훨씬 좋아요.

주희 그래가 ‘나고야’라는 단어를 아는 게 신기해요. 저 어릴 때는 나고야는커녕 다른 나라가 있다는 것도 몰랐는데(웃음). 셰프님 말대로 아이들을 데리고 여행을 가면 변수가 많아서 힘들어요. 매번 좋은 경험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아이들은 루틴 안에서 돌보는 게 편한데 그럴 수 없으니까요. 근데 여행이니까, 여행이어서 그게 다 용납이 돼요. 밥을 못 챙겨 먹어도, 잠을 제대로 못 자도 여행이니까 괜찮아지는 거죠.

 

그래서 우리는 크고 작은 외출을 해나가는 것 같아요. 일상을 환기하기 위해서, 항상심을 유지하기 위해서. 두 분은 앞으로 또 어떤 것들을 계획하고 있어요?

주희 당장 다음 주가 두이투어예요. 패키지 상품을 이용하는 거라 참여 인원이 미달되면 취소되거든요. 무사히 출발할 수 있는지 내일은 판매자에게 전화해서 확인해 봐야겠어요. 저랑 아이들한테는 바로 코앞에 예정된 소풍이 있네요.

경진 저는 여전히 산을 달리고, 출퇴근을 뛰어서 하면서 똑같은 일상을 보낼 것 같아요. 그러다 내년이 오면 많은 게 바뀌겠죠? 그래가 내년이면 초등학교에 가거든요. 이건 오프 더 레코드인데…. (속닥속닥) …그런 시기라 정리할 게 많은데, 자세한 이야기는 따로 할 기회가 있겠죠?

우리는 대화를 마치고 그래·그린이에게 외출복을 입힌 뒤 근처 산으로 짧은 소풍을 나섰다. 산모기가 세차게 윙윙대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놀이터를 제 방인 것처럼 누비는 그래와 아무렇게나 지은 노래를 부르는 그린. 그런 아이들을 보면서 어느 누구 할 것 없이 모두가 웃고 있었다. 두 딸을 고스란히 시야에 담는 경진과 주희를 보면서, 이 둘이 달이 차고 이지러지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변화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 모습이 긍정과 사랑을 향해 있다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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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이주연(산책방)

포토그래퍼 Hae R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