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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없는 마을
엄마와 일주일에 서너 번씩 자유분방한 시장엘 갔다면, 한 달에 두어 번은 부모님과 백화점이니 마트니 하는 조금 더 크고 질서정연한 건물에 다니곤 했다. 사는 품목은 대개 먹을 것들이었지만 때때로 기계나 전자제품, 부피가 큰 것도 있던 것 같다. 백화점에 도착하면 나는 “이따 나 찾으러 와!” 하고는 책이 있는 층으로 달려가기에 바빴다. 책방에서 집에 없는 이야기들을, 내가 미처 알지 못하는 세상을 탐방하고 있으면 장보기를 마친 엄마·아빠가 나를 찾으러 오는 게 우리 가족이 장을 보는 방식이었다. 다 읽지 못한 책을 끌어안고 궁둥이를 붙이고 있으면 아빠는 “어떤 책 갖고 싶어?” 물었고, 엄마는 전부 다 사줄 기세인 아빠를 막아서며 “딱 한 권만 골라 봐.” 하고 기회를 주곤 했다.
1994년, 12월 초입이었을 테다. 그날도 부모님은 으레 내가 책이 있는 층으로 달려갈 줄 알았으리라. 하도 오래전 일이라 이유 같은 건 기억나지 않지만 나는 그날따라 책을 읽는 대신 부모님을 따라 백화점 곳곳을 누비고 싶었다. 지하층 식품 코너도 함께 가고, 가전제품이 있는 코너도 같이 돌았다. 온갖 잡다한 물건에 시선을 빼앗겨 한참을 돌아다니다가 아빠가 끌고 다니는 카트에 문득 눈길이 닿았는데, 고르는 걸 본 적도 없는 바비 인형 학용품 세트가 놓여 있는 게 아닌가. “이건 뭐야?” 하고 아빠를 향해 묻는데, 엄마가 잽싸게 “아빠 친구 딸, 내일모레 생일이래.” 하고 대답한다. 나는 생일을 빌미로 갖고 싶은 물건을 꼽아두는 타입이 아니었고, ‘올해 생일 선물은 뭘까?’ 기대하는 편도 아니었지만 아빠가 담은 어린애의 물건이 내 것이 아니라는 데 마음이 상했다. 따지자면 얌전하고 순한 어린이였으나 내 마음에도 가끔은 불씨라는 것이 지펴졌다. 때때로 타오르는 그것의 이름은 ‘질투’. 그날 나는 처음으로 부모님에게 떼를 썼다. 바비 인형에 큰 관심도 없으면서 그 학용품 세트만큼은 갖고 싶다고 칭얼댔다. 지금도 잊히지 않는 그날의 조도와 온도, 분위기. 창피한 짓을 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내 거는! 나도 사줘!” 하고 밉살스럽게 군 기억이 선연하다. 아, 정말로 내 인생에 단 한 번뿐인 떼쟁이의 찰나.
결국 내 몫의 바비 학용품은 사지 못한 채 입을 비죽 내밀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나는 책 한 권도, 학용품 세트도 얻지 못한 비운의 어린이였다. 그러고 나서 며칠이 지났을까. 성탄절을 기념해 유치원에서 재롱잔치와 파티가 열렸다. 우리는 그간 연습한 대로 대열을 만들어 앉아 핸드벨을 울리며 캐럴을 연주했고, 나는 줄줄 다 내려온 하얀 스타킹을 추켜올리며 발레 공연도 했다. ‘믿음반’ 대표로 단독 구연동화도 하고 박수를 받으며 자리로 돌아갈 때였던가, 여운을 즐길 새도 없이 새로운 주인공이 나타났다. 별안간 무대로 등장한 새빨간 사람. 친구들은 산타 할아버지가 나타났다며 소리를 지르고 손뼉을 쳤다. 산타 할아버지는 손바닥을 보며 우리 이름을 하나씩 호명했고, 제각기 달리 포장된 선물을 하나하나 나눠주셨다. 산타 할아버지가 내 이름을 부르며 다가왔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점이었다. 풍성한 하얀 수염으로도 채 가려지지 않은 커다란 점. 체육 선생님의 한쪽 볼에 건포도처럼 솟아 있는 점과 꼭 같은 점. 산타는 내게 바비 학용품 세트를 선물했다. 그해 겨울, 떼를 써버린 대가였을까. 나는 산타를 처음 만난 날 의심할 것도 없이 그의 정체를 꿰뚫어 버렸다. 산타는 체육 선생님이구나, 선물은 엄마·아빠가 준비하는구나. 모든 잔치가 끝나고 친구들과 헤어질 때 “산타 할아버지, 체육 선생님이었지?” 한마디를 건넨 이후 나는 친구들에게 ‘바보’라고 놀림을 받았지만 아무렴 상관없었다. 친구들은 모르는 산타의 정체. 나만이 알고 있는 비밀이 나를 조금 더 큰 여섯 살로 만들어 주는 기분이었다.
나는 여섯 살 ‘믿음반’을 거쳐 일곱 살 ‘소망반’이 되었다. 어김없이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재롱잔치가 열렸다. 여섯 살 때와 같이 나는 단독 구연동화를 맡아 한복을 입고 억양을 살려가며 또박또박 이야기를 읊었고, 손짓을 곁들여 구연동화를 완성했다. 한껏 올라간 광대로 원장 선생님의 둥그런 안경이 제자리를 벗어나는 걸 보면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미약한 긴장이 풀리고 건방지게도 ‘잘하고 있구나!’ 뿌듯해 마지않던 그해 재롱잔치도 무사히 끝이 났고, 예년처럼 체육 선생님은 구연동화가 끝난 뒤 산타 분장을 하고 나타났다. 평균대 위를 걸을 때면 손을 잡아주던 친절한 체육 선생님. 북슬북슬한 흰 수염 사이로 까맣고 커다란 점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체육 선생님. 이렇게나 확실한데 왜 아무도 산타 할아버지가 체육 선생님인 걸 모르는 걸까? 나는 그해에도 ‘바보’가 된 채 나만의 비밀을 끌어안고 귀가했다.
그해 받은 선물은 페이스페인팅 책이었다. 스프링 제본이 된 페이스페인팅 책에는 장장이 전 세계 어린이 얼굴이 담겨 있었다. 한 페이지에 하나씩 페이스페인팅을 한 아이의 얼굴과 제목이 붙어 있었다. 어떤 페이지엔 보라색 리본 머리띠를 한 서양 어린이가 고양이 분장을 하곤 익살스럽게 미소 짓고 있었고(제목은 ‘캣 우먼’), 어떤 페이지엔 검은색 망토를 두른 남자 어린이가 ‘키메라’라는 이름으로 검정, 빨강 무늬를 얼굴에 뒤덮고 있었다. 책은 페이스페인팅용 물감과 팔레트, 붓이 책과 일체형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그해 크리스마스 선물을 풀었을 때 난생처음 보는 모양의 책이 낯설어 ‘이게 뭐지?’ 생각한 기억이 난다. 어리둥절한 나와 달리 반색을 하고 붓부터 꺼내 들던 우리 엄마.
성탄절이 지나고 본격적인 추위가 시작될 때부터 몇 년 동안이나 우리 모녀는 무료한 한낮이나 잠들기 전 이벤트로 페이스페인팅을 하곤 했다. 볼에 귀여운 장식을 그려 넣는 간단한 버전이 아닌, 얼굴 전체를 가면처럼 꾸미는 페이스페인팅이었기에 시간이 꽤 드는 작업이었지만 엄마는 한 시간이 넘도록 내 얼굴에 집중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림 작업을 하는 엄마에게 페이스페인팅은 일상에서 크게 벗어나는 일은 아니었을 테지만, 도화지 대신 딸의 얼굴에 색을 칠하는 데서 또 다른 재미와 흥미를 느낀 게 분명했다. 내 얼굴에 바짝 붙어 눈이 둥글게 구부러진 채 책을 들여다보며 내 얼굴에 합법적 낙서를 하던 엄마. 그건 아마 삼십 대 엄마의 유희가 아니었을까. 페이스페인팅에 재미를 붙인 엄마 덕에 내 어린 시절 사진첩엔 얼굴에 그림을 그린 사진이 꽤 많이 남아 있다. 짧은 니트 치마에 멜빵을 달아 단정하게 차려입고 양쪽으로 머리를 땋은 채 눈두덩이가 까만 강아지 얼굴을 한 내 모습, 엄마의 슬립 잠옷을 걸치고 팅커벨을 표현한 허연 얼굴 그대로 잘 준비를 한 내 모습, 정체 모를 페이스페인팅을 한 채 소파에 모로 누워 낮잠 자는 내 모습….
내가 일곱 살이던 소망반의 해에도 엄마·아빠는 12월 초입 딸애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기 위해 백화점에 갔을 것이다. 어떤 것을 사주면 좋아할지 고민했을 것이고, 아이 몰래 선생님께 포장된 선물을 건네는 앙큼한 행위도 있었으리라. 한편, 무대 위에서 우리가 그간 갈고닦은 무언가를 뽐내는 동안 무대 뒤엔 새빨간 옷을 챙겨 입고 선물이 섞이지 않도록 이름을 쓰고 ‘허허허’ 웃음을 연습하던 체육 선생님이 있었을 테다. 재롱잔치가 무사히 끝나도록 무대 앞에서 진두지휘하던 원장 선생님의 마음이나 사랑반, 믿음반, 소망반을 맡은 선생님들의 노고 같은 것을 생각하다 보면 다들 지금쯤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을까 생각하게 된다. 어른이 된 후로는 얼굴에 그림을 그리는 일 따위 상상한 적도 없는데, 어린 시절 성탄절엔 참 말도 안 되게 귀여운 일이 많았다. 그런 연유로 누군가 내게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언제로 갈래?” 물으면 늘 같은 대답을 해왔다. “유치원 때!”
내 세상에 친절과 안전과 사랑만 있어서 그것이 무엇인지 굳이 생각할 겨를도 없던 시절. 내가 행복을 조금이나마 아는 어른으로 자랄 수 있던 데는 믿음반과 소망반의 지분이 단연코 막대할 테다.
우리 부모님은 성탄절 유치원 이벤트가 아니고서야 고집스럽게 ‘선물’을 챙기는 편은 아니다. 생일이나 기념일이 밝더라도 뭔가를 사서 포장하는 일보다는 평소보다 맛있는 것을 먹고 함께 여행을 떠나 여기저기서 추억이라는 무형의 것을 남기는 편을 훨씬 선호하는 분들이다. 반면, 나는 어려서부터 자그마한 선물을 포장하거나 이벤트를 만드는 걸 좋아했다. 부모님 결혼기념일이면 모두가 잠든 새 집 안을 풍선으로 가득 채워 놓는다거나, 생일이 오면 겨우 모은 돈으로 신발이나 커플티 같은 걸 사서 선물한다거나… 하는 식이었다. 무엇이 맞고 틀리느냐는 없었다. 무엇이 더 바람직하고 그렇지 않으냐도 없었다.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자기만의 방식으로 특별한 날을 기념하며 지내는 것을, 마치 선물 그 자체인 양 좋아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게 정말 특별한 선물이 도착한 날이 있었으니… 때는 바야흐로 고등학교 2학년 시절. 나는 교복을 입고 7시 50분까지 등교해 21시까지, 고3 때는 22시까지 학교에 머무는 극강의 루틴을 소화하는 철야의 고등학생이었다. 초등학생 때부터 교실 문을 열쇠로 따고 들어가던 학생이었기에 남들보다 학교에 머무는 시간이 조금 더 길었다는 걸 생각하면 고등학생 3년 동안 정말 긴 시간을 학교에서 보낸 셈이다. 학교와 집이 멀어 등하교에도 시간이 꽤 걸렸으니 내게 자유 시간이란 거의 없던 것과도 같았다. 그 당시 학교는 생일이라고 결석하거나 특별한 걸 할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니었기에, 생일날에도 이례 없이 공부를 하고 급식을 먹었다. 친구들의 자잘한 축하를 제외하면 별거 없이 지나간 그날, 부모님은 밤에 케이크라도 함께 먹자며 하교 시각에 맞추어 나를 데리러 왔다. 그날 조금 이상한 점이 있었다면 평소 같으면 아빠는 집 앞에 나를 내려주고 “주차하고 들어갈게.” 했을 터인데, 그날따라 묵묵히 주차장에 차를 대고 나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탔다는 것이다. 미묘하게 이상한 기운이 있긴 했지만 크게 신경 쓰진 않았는데, 집에 도착하자마자 아빠가 내 손목을 잡고 책이 있는 방으로 데리고 가는 것이었다. “갑자기 왜? 뭐야?” 어리둥절한 채 아빠에게 손목을 잡혀 도착한 책장엔…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없던 책들이 한가득 꽂혀 있었다. 내가 익히 잘 아는 책, 그러나 집에 둬 본 적 없는 책. (그 당시에 나온) 《명탐정 코난》 전권이었다.
평생 만화책은 나쁜 것, 폭력적인 것,이라는 이상한 프레임에 갇혀 있던 나는 어릴 때부터 교육용 만화가 아니고서야 만화를 읽는 일은 없었는데, 어느 해 DVD를 빌리러 갔다가 티브이로 자주 보던 〈명탐정 코난〉을 책으로 읽게 된 이후, 만화로 읽는 《명탐정 코난》의 매력에 흠뻑 빠지고 말았다. 성우 목소리로 따라가는 스토리도 좋았지만, 내 속도대로 목소리와 상황을 상상하며, 흑백의 그림에 색깔을 마음껏 입혀가며 책장을 넘기는 과정이 몹시 황홀했다. ‘아, 이게 만화라는 거구나.’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명탐정 코난》을 한 권씩 섭렵하기로 작정한 나는 며칠 가지 않아 출간된 책을 몽땅 읽어버렸고 ‘다음 권은?’ 하고 손꼽아 기다리곤 했는데, 내가 몇 번이나 읽어온 그것들이 전부 책장에 꽂혀 있는 것이 아닌가. 아빠는 “생일 선물. 엄마한테 안 들키려고 여기 숨겨놨어.” 하고는 케이크를 먹자며 뒤돌아 먼저 방을 나섰다.
그날로부터 시간이 꽤 흘렀는데도 아직 완결나지 않은 《명탐정 코난》은 어느덧 108권을 향해 가고, 우리 집 책장엔 《명탐정 코난》이 위풍당당한 기세를 자랑하며 거대한 군락을 이루고 있다. 열여덟의 기억 때문일까, 나는 코난의 갈색 벽돌 표지를 보면 잘 포장된 선물이 떠오른다. 아빠의 의기양양한 어깨 너머로 보이던 거대한 코난의 물결. “이리 와 봐.” 하고 내 손목을 잡아끌던 그날의 산타. 어느 해의 생일을 회상하고 있자니 설레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나는 일평생 산타와 함께 살아왔구나. 성탄절에도, 생일에도 산타는 어김없이 다녀갔구나. 지금도 손 뻗으면 산타의 둥그스름한 어깨를 만질 수 있구나.’ 하고.
글 이주연(산책방)
일러스트 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