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로운 어느 날의 여행 기록

메르하바, 터키

메르하바, 터키

화려한 이스탄불, 동화 속 마을 사프란볼루, 세련된 수도 앙카라, 신비로운 카파도키아를 버스로 이동하며 아무것도 정해진 것 없이 발길 닿는 대로 여행했다. 아시아와 유럽 사이 터키는 이국적이면서도 우리나라와 많이 닮아있었다. 터키에서의 수많은 우연과 확률 속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마음껏 놀라워하며 즐거워했다.

프롤로그

스물아홉. 아홉 수에 네 번째 사표를 곱게 제출함과 동시에 월세 오십만원짜리 방을 뺐다. 그리고 퇴직금으로 160일 동안 여행을 떠났다. 많은 사람이 내게 회사를 그만두고 여행을 떠나는 이유를 물었다. 그동안 생각을 깊게 한 적이 딱히 없었기 때문에 한참을 생각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말이 통용되지만, 나의 청춘은 못 견딜 만큼은 아니었다. 하지만 내 하루를 온전히 내 것으로 보내지 못한 것은 맞았다. 내 인생인데. 내 것인데. 단지 여행을 가고 싶었던 것은 아니다. 그때의 나 자신으로부터 떠나고 싶었다. 물리적으로 떨어진다면 내 삶도 바뀌겠지. 비록 갔다 오면 제자리일지 모르지만 발악은 해봐야지. 난 젊으니까.

4월 10일
15킬로그램 배낭과 함께 어디든 가자.

15킬로그램의 배낭. 남들보다 느리게 걷게 된다. 더 생각해서 발걸음을 옮기고 신중해진다. 욕심의 무게가 주는 고통이 성질 급한 나에게 불가항력의 변화를 주었다. 무엇이든 빨리빨리 처리했다. 일도 관계도 식사도 감정도 심지어 내 시간도. 배낭여행이 주는 첫 번째 효과, 무엇이든 느리게 바라보게 한다.

인생은 과정이고 급하게 갈 것이 없는데 무엇이 그리 바빴을까. 남들보다 뒤처지면 안 된다는 강박감에 오롯이 나로 존재했던 시간이 얼마나 될까. 지금 나는 나로서 존재한다. 무거운 가방이 어깨를 누른다. 나의 어깨와 맞바꾼 시간.

4월 11일
첫 터키 친구 네셰Neise

이스탄불 탁심 광장 근처 이스티클랄에 있는 버거킹에서 햄버거를 먹다가 옆 테이블에 앉은 네셰 라는 터키 여자와 우연히 말을 하게 되었다. 근처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있는 29살, 나와 동갑이다. 네셰는 자신의 학교를 구경시켜 주었고 전망 좋은 강의실에 데려다 주며 사진을 찍게 해줬다. 영어를 잘하지 못하는 한국 여자와 나보다 조금 잘하는 것 같은 터키 여자가 만났다.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았다.

도대체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터키 여자들은 왜 머리에 보자기를 쓰고 있냐고 물어보니 머리카락은 영혼이라고 믿기 때문이란다. 한국의 사상과 무척 유사했다. 그럼 도대체 왜 머리보다 커 보이냐고 물으니 똬리를 틀고 있어서 그렇단다. 그 뒤로도 네셰는 숨겨진 이스탄불 곳곳을 구경시켜주고 이야기해주었다. 그녀는 나의 첫 터키 친구가 되었다.

4월 13일
IT JUST THE PHONE

비가 추적추적 온다. 비오는 이스탄불은 스산하다. 아침이 한참 지난 시간임에도 조금 쌀쌀하기도 하고. 호스텔 체크 아웃을 하고 5분 걸었을까. 우산을 쓰고 스마트폰 지도 앱을 보며 어디로 갈지 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후드를 뒤집어쓴 남자가 내 핸드폰을 낚아채 갔다. 순간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 소리를 질렀다. 정말 내가 살아생전 이런 괴성을 질러본 적이 있나 싶을 정도로 소리를 지르고 따라갔다. 안 그래도 달리기를 못하는데 15킬로짜리 배낭을 메고 그를 따라가는 것은 무리였다. 호스텔로 돌아가려는데 주위에 있는 터키 아저씨들이 경찰차를 불러주었다. 경찰차가 오고 나는 자초지종을 설명했지만 그들은 “No problem”이라고 말하며 찾을 수 없을 거라고 했다. 갑자기 울음이 터졌다.

이 여행이 시작할 때부터 4년 넘은 핸드폰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예상은 했지만 그것이 너무 빨리 왔다. 더구나 내가 손에 들고 있을 때 가지고 갔으리라는 상상은 전혀 하지 못했다. 호스텔로 돌아와서 마음을 가라앉힌 후 나는 혹시 핸드폰을 찾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일정을 조금 변경했다. 그러자 함께 묵은 영국 친구는 “It just the phone”이라며 내가 다치지 않은 게 다행이라며 위로해 주었다. 좀 진정하고 생각해보니 다 맞는 말이다. 그가 칼이라도 들고 있었으면 얼마나 위험했을까. 난 어쨌든 살아있고 스마트폰 없이 살기로 했다. 단지 기계일 뿐이다. 하루하루가 버림의 연속이고 버라이어티의 연속이다.

4월 14일
소박한 예니 자미Yeni Camii

이스탄불 트램 길을 막연히 걸어가다 우연히 마주친 예니 자미. 처음 봤을 때는 작은 블루모스크를 보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웅장하지 않아서 화려함이 더 반짝이는 곳이다.(개인적으로는 사람이 항상 북적이는 블루모스크보다는 훨씬 좋았다.)사람도 별로 없는 이곳에 조용히 앉아 있으니 주책 맞게 눈물이 났다. 내가 가지는 종교에 상관없이 믿음의 기운에 압도되는 기분이다. 누군가는 사진 한 방 찍고 가는 관광 코스일지 몰라도 경계선 안에서 기도하는 이들에게 이곳은 종교 그 이상의 것 같다.

그들의 기도와 노래 소리는 알아들을 수 없기 때문에 오로지 느낌에 충실하게 된다. 시규어 로스Sigur Ros가 ‘Hopelandic’이라는 곡을 만들어 그들의 언어로 표현한 것이 이것과 비슷한 느낌을 주지 않을까. 언어가 주는 상상의 제한을 무너뜨리고 오롯이 소리가 주는 느낌에 모든 감각을 곤두세울 수 있다. 한참 동안 그들을 바라보며 알 수 없는 울림을 받았다. 내 옆에서 정성껏 기도하는 할머니의 알아들을 수 없는 소망이 애잔하다. 종교에 관심이 없는 내가 처음으로 그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4월 16일
시간이 멈춘 사프란볼루Safranbolu

사프란볼루는 이스탄불에서 버스로 여섯 시간 정도 떨어진 작은 마을이다. 사프란은 ‘꽃의 도시’라는 뜻이다. 우리나라의 섬유유연제 이름 역시 이 꽃의 이름에서 따왔다. 내가 이곳에 온 이유는 멋있는 장소가 있다거나 볼거리가 풍성해서가 아니다. 단순히 이름이 예뻐서였다. 이스탄불에서 야간버스를 타고 사프란볼루에 도착한 것은 새벽 다섯 시. 오랜 시간 이동으로 호스텔에 도착하자마자 곯아떨어졌다. 그리고 점심 때쯤 아잔(이슬람교에서 신도에게 예배시간을 알리는 소리) 소리에 눈을 떴을 때 햇빛이 창문 가득히 들어와 있었다.

이불 속에서 내가 느낀 사프란볼루의 첫 느낌은 후각으로 먼저 다가왔다. 향기다. 자극적인 냄새를 싫어하지만 사프란볼루의 향기는 은은하고 로맨틱하다. 빛바랜 리넨천 아래에 흰색 실로 정성스럽게 뜬 커튼. 그 너머로 동네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외국인들이 한옥마을을 보면 이런 기분일까? 스노우볼 안에 아기자기한 집들이 모여있는 것 같다. 호객행위로 시끌벅적한 이스탄불에 찌들어있다가 한적한 동네에 오니 기분이 상쾌했다. 붉은색 지붕에 흰색 벽. 세로로 긴 나무 창문들. 오밀조밀 난 풀과 나무 사이에 집들이 모여있고 중심에 하만(대중목욕탕)이 자리 잡았다.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으로 지정되어있다는 이 마을은 하루 반나절이면 걸어서 다 돌아볼 정도로 자그맣다. 취향에 따라 지루하고 볼게 없는 마을일지 모른다. 하지만 앉아있으면 먼저 말을 거는 순박한 사람들이 가득하다. 사프란볼루에서 동화 같은 며칠이 지나고 토요일이 왔다. 장이 서는 싱그럽다. 한적하던 다른 요일과 달리 상인들도 많아지고 관광객도 골목골목 많다. 토요일의 사프란볼루는 반짝반짝 빛이 난다.

해가 지기 전에 히드르륵Hidirlik 언덕에 오른다. 환상적인 일몰을 보고 난 후 어둑해지면 하나둘씩 장난감 같은 집들이 불을 켠다. 피에르 로티에서 바라본 이스탄불의 야경과는 많이 다르다. 이스탄불의 집들과 자미가 레드 문과 어우러져 반짝이는 모습을 화려하다고 표현한다면, 사프란볼루의 야경은 작게 접어서 가지고 다니고 싶을 정도로 예쁘다. 

나는 왠지 이 마을이 좋다.

4월 18일
로쿰Locum을 아세요?

나는 젤리를 싫어한다. 찐득찐득 달기만 한 설탕 덩어리 젤리가 뭐가 맛있는지 잘 모르겠다. 로쿰은 언뜻 젤리 같지만 설탕과 전분으로 만들어져 있다. 아몬드나 피스타치오 같은 다양한 견과류들이 박혀있거나 장미수나 레몬즙으로 맛을 낸다. 영어로는 ‘Turkish delight’라고 한다는데, 얼마나 맛있으면 터키의 기쁨이겠는가.

<나니아 연대기>에서는 에드먼드가 로쿰의 맛 때문에 마녀들에게 형제들을 팔아넘겼다. 형제를 배신할 만큼의 치명적인 맛. 주사위와 비슷한 크기와 모양의 로쿰은 몰랑몰랑 입안을 즐겁게 한다. 달기도 달다. 하지만 너무 달다 싶을 때마다 씹히는 고소한 견과류 때문에 나도 모르게 로쿰을 또 먹게 되는 걸 발견한다. 이 매력에 빠진 사람은 혀끝의 미각만으로 로쿰을 찾아 낸다고 한다. 정말 터키의 딜라이트다.

4월 19일
버스의 천국, 터키

터키의 버스에서는 스튜어디스처럼 버스 직원 한두 명이 서비스를 해준다. 안전 점검을 해주고 음료와 과자를 제공한다. 그리고 바닥에 향기나는 것들을 뿌려주고 영화도 볼 수 있게 해준다. 다만 지정된 좌석을 꼭 지켜야 한다. 이스탄불에서 사프란볼루로 가는 사프란 야간 버스를 처음 탔을 때 우연히 만난 한국 사람과 이야기를 한다고 아무 좌석이나 앉았더니 제자리로 돌아가라는 얘길 들었다

버스는 텅텅 비어있었는데 말이다.(물론 나중에는 배려해 주었다.)그리고 처음엔 직원이 과자를 줄까 하고 물어보길래 유료인줄 알고 괜찮다고 했다. 그러다 사람들이 몇 번이나 음료와 과자를 먹는 걸 본 뒤 무료라는 걸 알고 마음 편히 먹었다.

4월 21일
앙카라 속 우주

앙카라 근처 코자테페 자미kocatepe camii에 갔다. 벗은 신발을 들고 가면 될 뿐, 머리카락을 감춘다거나 하는 제약은 없었다. 자미 중앙에는 반짝이는 아주 큰 구가 있고 주위에 똑같은 모양의 구가 여러 개 둘러싸고 있다. 가장자리는 3층으로 되어 어디서든 중앙 공간을 볼 수 있다. 곳곳에 기도하는 이들이 있다. 중앙 천장에 매달린 화려한 구의 장식이 태양 같다. 햇살이 들어오면 화려한 색의 스테인드글라스 때문에 통과한 햇살이 영롱하게 느껴진다. 

천장에서 뻗어나온 파란색, 하늘색, 빨간색으로 이루어진 문양이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뻗어 나온다. 이 커다란 자미 귀퉁이에 앉아 신기하고도 오묘한 건물을 바라보고 있자면 천장 끝 돔에 있는 중앙 원에 블랙홀처럼 빨려 들어갈 것만 같다. 고요하다. 여러 패턴이 섞인 푹신한 빨간 색 카펫에 앉는다. 자미가 반구 모양이라 그런지 이곳에 오면 우주를 부유하는 기분이다.

4월 22일
항아리 케밥 모델

카파도키아 괴레메Cappadocia Goreme는 항아리 케밥으로 유명하다. 가게마다 방식이 조금씩 다른데, 항아리 위에 덮은 빵을 먹는 곳도 있고 버리는 경우도 있다. 항아리는 우리나라 뚝배기 같은 거라 시간이 지나도 케밥을 뜨겁게 유지해 준다. 항아리 케밥을 레스토랑 야외에서 혼자 먹고 있는데, 시장은 홍보를 하겠다며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이 케밥은 이렇게 먹는다. 이 케밥은 원조다.”라면서 밥 먹는 나를 홈쇼핑 모델처럼 활용한다. 그러자 지나가는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고는 가게 안으로 우르르 들어왔다. 이거 뭐, 할인이나 음료수 서비스를 해주고 그러던가…….

4월 23일
벌룬 타고 하늘을 날다

고소공포증이 있어 놀이공원에서도 회전목마밖에 못 타던 내가 드디어 벌룬을 탔다. 롯데월드 천장에 매달려가는 벌룬도 무서워서 바구니에 쪼그려 앉아 있던 내가 말이다. 벌룬은 생각보다 안정적이고 미동이 거의 없었다. 다만 열기로 인해 머리 부분이 뜨거우니 벌룬을 타게 된다면 가장자리에 타는 게 좋다.

어쨌든 상상 이상이다. 랜딩할 때 바구니가 엎어지면서 가장자리에 타고 있던 내가 안에 있던 아줌마를 덮치며 누워버렸는데, 직원이 나를 꺼내 주려고 하니 밑에 사람이 아프고, 밑에 사람을 꺼내려고 하니 안 꺼내지고. 깔린 아줌마와 나는 웃음이 계속 나서 한동안 애를 먹었다.

4월 24일
세계 일주 중인 신혼 부부를 만나다

호스텔 식당에서 즉석밥에 고추장을 비벼 먹는 한국인 신혼부부를 만났다. 그들과 나는 4일간 같이 지냈다. 그들은 신혼여행으로 일 년간 세계 일주를 한다고 했다. 마흔 가까이 된 나이에 둘 다 직장을 그만둔 용기와 서로를 믿고 의지하는 모습에 나는 연신 부러워했다. 그들에게 ‘왜 여행을 하냐’고 묻는 내게 그들은 답했다. “머리에서 발끝까지의 거리가 가장 길다고, 머리로 생각만 하는 것이 아니라 발로 실천을 하고 싶었어”라고. 그들을 보며 다짐했다. 나도 반드시 하겠다고. 세계일주든, 신혼여행이든. 안되면 개 한 마리라도 끌고 같이 여행하리라.

4월 25일
500원 짜리 화장실과 물

터키에서는 식당에 딸린 화장실이 아니고서 대부분의 화장실이 유료다. 1리라는 우리나라 돈으로 500원 정도이다. 터키에서 만난 한국 사람들이 하나같이 하는 말이 500원이 큰 돈이 아닌데도 이 돈이 그렇게 아깝단다. 그래서 어떤 이는 뽕을 뽑으려고 없는 힘까지 다해 큰일을 일부러 본다는 사람도 있었다. 또 하나의 뜻밖의 유료는 물이다. 우리나라는 식당에 가면 물부터 내온다. 하지만 터키 식당에 가면 반드시 물을 주문해야 한다. 빵을 공짜로 줄지언정 물은 돈을 받는다. 페트병에 든 물을 따서 마실 때마다 처음엔 항상 흘렸다. 페트병의 입구 부분이 우리나라에 비해 길이가 짧다. 그래서 목에 항상 흘렸던 것이다. 그럴 때마다 문득문득 느낀다. ‘아, 내가 터키에 있구나.’

4월 30일
여행 철칙

내가 여행을 하면서 만들게 된 개인적인 규칙이 있다. 첫째, 걸을 수 있는 만큼만 보자. 둘째, 절대 무리하지 말자. 오늘 무리하면 내일을 버릴 수 있다. 셋째, 숙소는 좁더라도 최대한 깨끗한 곳으로 정하자. 그리고 사람들에게 물어서 찾기 쉬운 큰 무언가가 있는 곳으로 잡자. 넷째, 점심 또는 저녁 한 끼 정도는 제대로 된 식사를 하자. 다섯째, 아는 길도 물어서 가자. 물어서 나쁠 것 없다. 여섯째, 무언가를 봐야 한다는 강박을 버리자. 일곱째, 어디서든 글을 쓰자. 기억은 그렇게 믿을 만한 것이 못 된다. 이렇게 여행철칙을 지키다 보니 이제 여행이라는 기분보다는 일상이고 생활이라는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김유정

스물아홉 살. 내일모레 서른. 7년간 디자이너, 모션그래퍼, 일러스트레이터로 살아왔다. 직업을 물어보면 딱히 뭐라고 설명하지 못하는 불분명한 신분으로 살다가 지금은 160일을 계획으로 여행 중이다. 추석이 지나면 한국에 들어온다. 앞으로 무엇을 하고 살지, 아직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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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박선아

글·그림·사진 김유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