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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결혼이 같을 필요는 없다
결혼을 준비하면서 달갑지 않은 불청객을 여럿 맞이했다. 그중 하나가 패배감이다. 결혼 비용에 관한 기사를 읽은 날은 특히 그랬다. 기사에 따르면 신부에게는 통상 삼천만 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나로서는 두 번 태어나봐도 결혼 언저리에도 못 갈 금액이었다. 더 불쌍한 쪽은 따로 있었다. 신랑은 주택자금으로 무려 일억 이상을 보유해야 한다는 것이다. 부부가 같이 살 집을 남자의 몫으로 지정해버린 태도가 몹시 불공정하게 느껴졌다. 나와 주변 친구들의 형편을 생각해보면, 일억은 마흔이 되어도 겨우 모을까 말까 하는 액수다. 안 그래도 전무후무한 용기를 내야 하는 시점인데 시작도 전에 사기가 꺾이니 패배감이 뒤따를 수 밖에.
나는 패배감의 구체적인 원인을 알고 싶었다. 결혼 준비 목록을 되짚어봤다. 스드메(스튜디오·드레스·메이크업) 패키지, 신혼여행비, 예식장 이용비, 예단, 예물, 혼수, 이바지 등. 결혼 한번 하는데 왜 이렇게나 많은 품이 드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특히 신부 꾸밈비에 과도한 비용이 책정된 것은 아닌지 의문스러웠다. 예비부부를 상대로 돈을 버는 웨딩 시장에 묻고 싶었다. 왜 웨딩드레스는 빌려 입는 데만 백만 원을 호가하며, 스드메는 어째서 패키지로만 판매되고 개별 가격이 비공개인지!
다행히도 내가 마냥 패배감에 빠지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사려깊은 부모님의 태도 덕분이었다. 예비 시부모님은 예단과 이바지가 필요 없다고 거듭 강조하셨다. 두 분은 체면을 위한 거라면 한사코 사양하셨고, 나의 부모님도 같은 뜻이었다. 거추장스러운 과정들이 양가 합의로 생략되었다. 우리의 형편을 헤아려주는 부모님께 감사하며 나는 이 일을 꿀꺽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뜻밖에 소박한 내 취향도 감사의 영역이었다. 과시를 꺼리는 내게 명품 가방은 필요없는 항목이었다. 새삼 나 자신이 좋아지는 순간. 구체적인 항목을 따져보니 안개가 걷힌 것처럼 시야가 명료해졌다. 그때 그 기사는 다양성의 고려 없이 비대하게만 작성된 것이 분명했다. 해볼 만하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동시에 우리의 결혼에 필요한 것을 똑똑하게 분별해야겠다고 절실히 느꼈다.
결혼을 준비하는 동안 나는 시무룩했다가 희망에 차오르기를 반복했다. 겉치레가 만연한 관습에 저항하다가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신부’라는 말에 현혹되어 항복하는 매일. 전쟁 같은 날을 보내면서 환멸과 자격지심에 상처받지 않도록 마음을 잘 지키는 일이 중요하다는 걸 배웠다. 모두의 결혼이 같을 필요는 없다. 나는 그저 뜻을 발견하며 걸음을 옮겨가기만 하면 된다.
예비 시부모님 댁에서 함께 저녁을 먹은 날, 어머님이 나무로 만든 함을 내오셨다. 내 나이보다 어릴 때 시집오며 받은 패물함이라고 하셨다. 그 안에서 보석들이 은은한 빛을 내고 있었다. 시부모님은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보라고 하셨다. 보석은 머나 먼 땅의 아랍어만큼 모르는 터라 한참을 고심하다가, 그중 제일 작은 원석이 달린 목걸이를 골랐다. 생김새가 꼭 비비탄 같았다. 그걸 그 애가 목에 걸어줄 때는 어머님의 역사 한 귀퉁이를 내어 받은 것 같았다. 값으로 매길 수 없는 유산이자 가족으로 맞아주는 따뜻한 환대. 다시금 그 애가 가진 많은 것이 어디로부터 왔는지 알 수 있었다.
예물은 약식으로 했으니 결혼반지는 진짜로 하라며 시부모님이 보태주신 돈을 가지고 종로 3가를 찾았다. 생애 첫 커플링이 결혼반지가 될 줄은 몰랐지만, 반지야말로 결혼에 없어서는 안 될 증표다. 우리는 마음에 쏙 드는 커플링을 육십만 원대에 구하고, 흥정해서 깎은 삼 만 원으로 삼겹살을 먹으며 축배를 들었다. 태백산맥보다 거대해 보였던 결혼인데 막상 발을 내딛자 작은 동산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고깃집 형광등에 결혼 날짜를 새긴 심플하기 그지없는 반지를 비춰봤다. 딱 이 결혼반지만큼만 심플하게 살면 좋을 것이었다.
결혼은 죽는 날까지 서로를 품겠다는 서약이다. 게으르고 자주 토라지며 못된 아이처럼 굴 때도. 반복해서 실패하는 인생의 어느 때도. 주름으로 가득 차 지금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 날에도. 지긋지긋한 모든 것에 안녕을 고하고 싶을 때조차도.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는 사랑이 아니면 안 되고, 사랑만으로는 안된다. 부부의 길에는 여태까지 살아온 날만큼이나 셀 수 없는 헌신과 눈물과 갈등과 기도가 필요할 것이었다.
결혼을 결심하기 전에 그는 내 경계를 풀었고, 아픔을 함께 품으며 믿음을 주었다. 그건 최신형 가전과 고급 의류를 사주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 아닌가. 눈에 보이는 만연한 풍습에 현혹되어 그가 보여준 것들을 잊지 않도록 마음과 몸에 자꾸만 새겨야 할 것만 같다.
브런치에 글을 연재해 7,000명의 구독자를 모은 에세이스트입니다. 어떤 문은 큰 노력 없이 쉽게 열리지만, 어떤 문은 문고리를 잡는 것조차 버거운데요. 재산이라곤 200만 원의 잔고뿐인 이혼가정 자녀에겐 ‘결혼’이라는 문이 딱 그랬습니다. 무거운 문을 열고자 하는 이들의 마음속 안개를 걷어주는 글이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습니다.
글·그림 윤지영 크리에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