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무엇으로 이루어지는가?

누드크로키

사람은 무엇으로 이루어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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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애인을 보았다. 그녀는 가족들과 함께 저 멀리 강변을 산책하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한참 동안 관찰하다가 예기치 않은 실망감을 느끼게 되었다. 평소 누구보다 아름답다고 생각하던 애인의 모습이 너무나 초라하게 느껴졌다.

그녀의 얼굴은 부모님의 얼굴을 어리숙하게 조합한 모조품에 불과했다. 길고 가늘고 냉소적인 그녀의 눈이 사실은 그것보다 더 냉소적일 수 있다는 사실이, 짙고 검은 눈썹이 지금보다 훨씬 더 원시적으로 보일 수 있다는 사실이 그녀의 오리지널리티에 적지 않은 손상을 가져왔다. 그렇다고 그녀의 부모님이 그 디자인의 원조 격인 것도 아니었다. 그녀의 부모님의 부모님, 그 부모님의 부모님의 부모님. 부모님의 부모님의 부모님의 부모님…. 디자인의 원작자를 찾아 한 세대씩 거슬러 올라갈수록 그녀의 희소성은 2의 n제곱 비율로 뚝뚝 떨어져 갔다. 한 사람의 얼굴은 수많은 종류의 피가 섞인 조합물이다. 이는 해독 주스를 만드는 지저분한 과정을 떠올리게 한다. 처음엔 고운 빛깔의 열매였지만 당근과 브로콜리와 양배추를 섞어 넣으면 주스의 색깔은 점점 괴측해져 간다.어느 날 우연히 애인의 주변 사람들과 술자리를 갖게 되면서 그녀에 대한 실망감이 조금 더 자라났다. 주변 사람들이 모두 그녀와 같은 말투를 사용하고 있었다. 워낙 친한 친구들이라 그런 거라고 변명해보지만 그런 변명이 통할 리가 없다. 어느 시점에 이야기를 멈추는 방식이라든지 맛을 음미하는 표정이 친구들과 적잖이 비슷했다. 와인잔을 쥔 손 모양도 모두 비슷했다. 그녀의 친구 한 명이 와인을 쏟아서 테이블보가 보라색으로 변해버렸는데, 그때 테이블에 반사된 조명이 그녀들의 얼굴을 모두 보랏빛으로 바꾸어버렸다. 

몇 번은 그녀와 만났던 남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그녀가 어느 음악가와 종일 걸었다는 그곳을 지날 때면 그녀가 이곳에서 걸음을 배운 거라는 착각이 들었다. 그녀가 옷을 입는 대범한 스타일은 이전에 만났다는 패션 디자이너에게 영향을 받은 것일까 생각해보았다. 그녀가 즐겨 보는 영화, 그녀가 즐겨 가는 음식점 등 그녀가 가진 취향이 정말 그녀의 것인지 의심이 들었다. 수많은 사람을 스쳐 가며 비로소 한 사람이 완성되어 간다는 것. 한 덩어리로만 느껴졌던 그녀의 모습이 겹겹이 포개어 만들어진 케이크처럼 느껴졌다. 그녀를 테이블보와 해독 주스에 비교했던 것에 비한다면, 이번 비유법은 그래도 조금 사랑스러운 것이었다.

어느 날, 우리는 침대에 누워 도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도형의 조합에 대해 이야기했다. 모든 도형의 근원은 삼각형이라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사각형은 두 개의 삼각형으로 나누어질 수 있고 육각형은 여섯 개의 삼각형으로 나누어질 수 있다. 그녀는 그렇다면 곡선은 삼각형으로 어떻게 표현할 거냐고 물었고, 나는 피자 조각을 예로 들어 이야기해주었다. 둥근 피자를 반으로 나누고 또 반으로 나누고 그렇게 수십 번 반복하다 보면 피자는 수많은 삼각형들의 조합이 된다. 날 보는 그녀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그녀는 도형이 눕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난 도형이 눕는 것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어.” 어떤 도형은 누워있을 수 있고, 어떤 도형은 누워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직사각형은 누울 수 있지만, 정사각형은 누워있을 수가 없다. 그녀는 그것이 침대가 편해 보이는 이유이고, 주사위가 긴장한 것처럼 보이는 이유라고 말했다. 난 그녀가 생각하는 대범한 방식에 놀라며 삼각형은 어때 보이는지 물었다. ‘삼각형은 가장 안정적인 구조라서 평생 쓰러지지 않는다’고 말하며. 그러자 그녀는 그것을 어떻게 장담하느냐고 물었다. 말문이 막혀버렸다. 마치 수달과 대화하는 것 같은 황홀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도형을 가지고 노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했다. 도형을 가지고 노는 방법은 숫자처럼 더하거나 나누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는 숫자에 대한 이야기도 했는데 1과 자기 자신으로밖에 나누어지지 않는 숫자는 무수히 많은 반면, 1과 자기 자신으로밖에 나누어지지 않는 도형은 삼각형밖에 없을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녀는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네가 겨울철에 내뱉는 입김이 정말 삼각형으로 나누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니? 네가 어제 내 등에 뱉은 정액이 뾰족한 삼각형으로 이뤄졌다고 생각하면 너무 가려워!” 반박하고 싶었지만, 연기의 두리뭉실함이나 정액의 미끈거림은 아무래도 삼각형으로 만들어낼 수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버렸다. 누워서 대화만 나눴을 뿐인데 벌써 시간은 새벽 세 시를 지나고 있었다.

그러지 말고 우리 도형을 가지고 노는 다른 방법에 대해 궁리해보자. 그녀가 말했다. 나는 도형을 합치거나 나누는 것 외에 정말로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녀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도형을 물에 담글 수도 있고, 쓰다듬을 수도 있잖아.” 난 그녀의 생각이 정말로 위대하다는 생각을 하며 퍼뜩 떠오른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리고 조각을 만들 수도 있어!”

그때 내 머리엔 소비에트 연방의 거대한 조형물이 떠올랐다. 지독한 독재자는 높고 한적한 곳에 자신만의 도형을 세워놓는다. 그것을 높은 곳에 세우는 이유는 그것이 모두에게 보이길 바라는 마음이고, 그것을 한적한 곳에 세우는 이유는 그것이 유일하길 바라는 마음일 것이다. 독재자의 도형은 어떤 도형으로도 나눌 수 없을 것 같은 어려운 모양이다. 나는 지독한 독재자로서, 다른 사람을 떠올리게 하는 어떤 도형으로도 존재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크다. 어디에서도 잘 보이고 누구와도 비견될 수 없는 유일한 도형이고 싶어 한다. 

그녀에게 난 어떤 도형일지 궁금해 물어보았다. 난 네가 다른 사람과 전혀 다른 도형이길 바랐어. 그런데 사실 누군가와 겹쳐 보일 때가 많아 실망하곤 했어. 네가 보기에 난 어떤 도형이야? 그녀는 이제 졸음이 왔는지 자세를 고쳐 눕고 잠꼬대하듯 평온하게 이야기했다. 1.2.3.5.7.11.13.17……. 삼각형, 돌멩이, 주사위… 그리고 한참 더 뒤에 너의 이름도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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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그림 한승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