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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작가 김홍희
불빛에게
방랑을 물었다
사진작가 김홍희
떠남과 머무름 사이의 경계가 없는 사람이 있다. 그에게 삶은 방랑이며 방랑은 곧 일상과 연결된다. 떠나고 사진에 담고 사유하고 다시 일상에서 글을 쓰는 사람. 사진작가이자 여행가 김홍희에게 멀리 흔들리는 불빛은 어떤 의미일까.
Interview
사진작가 김홍희
《방랑》이 처음 나온 게 15년 전이에요. 어떻게 시작된 여행인가요?
일본 사진 유학 당시 일본인 형을 따라 홍콩으로 취재를 간 적이 있어요. 그때 주변 나라를 돌며 여행을 시작했죠. 특별히 어디로 가야겠다고 정한 건 아니었고, 그저 열심히 사진 찍으며 떠돌아다녔어요.
여행의 다양한 방식 중에 방랑을 택한 이유가 궁금해요.
어릴 적 부산 앞바다가 훤히 보이는 산복도로에 살았어요. 밤에 계단에 앉아서 기타 치고 놀고 있으면 달이 떠올라 바다 위로 노란 길이 생겨요. 그 길을 걸어가는 상상을 했어요. 바다 위를 걷다 보면 지구를 돌 수 있지 않을까 하고요.
책을 보면 방랑의 이유를 ‘공명’이라고 했어요. 어떤 의미인가요?
공명한다는 것은 상대의 울림과 나의 울림이 함께 울리는 거예요. 주파수가 맞아야 하는 일이죠. 다양한 나라와 다양한 시간대를 지나며, 그곳에서 만난 시간, 풍경, 사람과 공명하는 거예요.
노력한다고 되는 일은 아니겠죠?
각 나라의 문화는 그 공간과 시간 속에서 오랜 시간 쌓인 거잖아요. 저도 제가 살아온 환경 안에서 축적된 사유와 습관이 있는 거고요. 그건 억지로 노력한다고 되는 일은 아니고, 나와 다른 것을 만났을 때 저절로 공명하는 법을 익히는 거예요. 다름을 받아들이는 거죠.
제 첫 여행지는 인도였어요. 그때 아주 많은 충격을 받았는데, 몇 번의 여행이 쌓일수록 처음의 낯섦이 사라지더라고요. 이걸 공명이 덜하게 됐다고 봐야 하는 걸까요?
오히려 공명 관계가 깊어지는 게 아닐까요? 처음에는 충격을 받았지만 이제는 그걸 인정하게 되는 거겠죠. 길거리 한복판이나 철도 위에서 큰일 보는 인도인을 보며 처음에는 인간도 아니라고 생각하다가, 이제는 그런 세상도 존재하는구나 받아들이는 거죠.
더 이상 여행이 낯설지 않아서 슬퍼졌는데, 이제는 그러지 않아도 되겠네요.
익숙해져서 감동하지 않는 게 아니라, 같은 걸 보고도 자신의 머릿속 기준을 그곳에 맞춰 바라보는 거겠죠.
작가님의 여행 방식은 어떤가요?
잠깐만요. 저 카메라맨에게 한마디 하고 싶은데, 저 자꾸 눈 감지 않아요? 기왕이면 재미있는 아저씨처럼 찍어주세요(웃음). 아, 미안합니다. 질문이 뭐였죠?
여행 방식을 물어봤어요. 그런데 방금 말한 ‘재미있는’이라는 표현에 대답이 들어있는 것 같네요.
여행을 떠나면 혼자서 독고다이처럼 있는 것보다는 여기저기 사람들에게 말을 거는 편이에요. 한국에서 말을 걸면 이상한 사람 취급당하지만 여행지에서는 작은 것 하나로도 같이 웃을 수 있잖아요.
서로가 서로에게 이방인이라는 인식 때문에 좀 더 편해지는 걸까요?
그렇죠. 경쟁자가 아닌 관찰자이기 때문이겠죠. 저는 한국에 살면서도 홀리데이와 방랑을 늘 생각해요. 내 옆의 누군가를 경쟁자로 두기보다는 여행자로 살아가면 언제나 재미있는 아저씨가 되겠죠.
여행자의 삶이라는 게 부럽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떠남과 머무름의 반복이 조금 고될 것도 같아요.
한국에 있으면 나가고 싶고, 나가 있으면 들어오고 싶고, 누구나 비슷한 마음일 거예요. 충전이 필요할 때마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거죠.
멈추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나요?
서른세 살에 결혼해서 첫 아이를 서른다섯에 낳았어요. 마흔쯤 됐을 때 변산에 가서 사진을 찍었는데, 그때 저 멀리 불빛 한 점을 보게 됐어요. 불빛에게 물었죠. “거기가 끝이냐?” 그랬더니 불빛이 대답하더라고요. “여기가 시작이다!” 불빛에 다다르면 유명해지고 돈도 많이 벌고 새로운 인생이 시작될 줄 알았는데, 그 이후에도 가야 할 길이 더 있더라고요. 사십이 다 돼서 깨달은 거죠. 이런 유형의 삶은 끝없이 지속되는 거구나 하고요.
그 불빛에 끝내 다다르지 못할 수도 있겠네요.
인간이 신을 보며 그와 닮기를 추구하는 것처럼, 중요한 건 그곳으로 가려는 마음이에요. 갈 수도 있고 못 갈 수도 있지만 거기에 너무 목매지는 말아야 하겠죠. 거기서 또 다른 불빛을 발견하고 물어보면 되는 거니까요. 그렇게 깨달은 다음부터는 삶에 여유가 생겼어요. 인생이 홀리데이가 된 거죠.
일상도 여행도 홀리데이, 좋은데요?
젊을 때는 제가 가진 에너지를 100퍼센트 사용했어요. 하지만 이제는 70 정도만 사용하고 쉬어요. 바닥난 에너지는 다시 채우기 힘들잖아요. 여행도, 술도, 머무는 것도 살살 하는 게 좋아요. 천천히 하세요. 서두를 필요 없이 릴렉스하게.
하지만 지금의 여유 있는 표정과는 달리 《방랑》에 드러난 이미지들은 하나같이 쓸쓸해 보여요. ‘겨울날 여인숙’, ‘술 취한 사내’, ‘거울의 비친 초상’ 같은 것들이요.
아내에게 많이 미안해요. 저는 늘 떠도는 삶을 살 수밖에 없잖아요. 그러지 않으면 생활비를 벌 수 없으니까. 부단히 노력해서 하루하루 사는 중인데, 가끔 나 자신이 일당 노동자 같아요. 봉급을 받지 않고 생활을 유지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거든요. 항상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지만 내일을 믿고 가는 거죠.
불안할 거 같아요.
불안과 믿음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거죠. 세상에 긍정만 있거나 부정만 있으면 재미없잖아요. 그 사이 긴장을 즐기면서 가는 거예요. 위대한 왕 솔로몬이 이렇게 말했어요. 평생을 살며 행복한 순간을 모아봐야 하루가 채 안 된다고요. 그걸 알고 사는 것과 모르고 사는 것은 큰 차이가 있겠죠.
기쁨이 하루 분량이라면 나머지 대부분은 어떤 감정일까요?
무던한 거겠죠. 흔들리지 않는 마음 같은 것. 어제도 친구와 크게 싸웠는데, 아침에 일어나면 또 그 친구를 인정해요. 걔는 그렇게 생각하고 나는 이렇게 생각하니까 그걸 이기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이에요.
무던함이라는 말이 나와서 이어 질문해볼게요. 《방랑》에 죽음과 관련한 에피소드가 여럿 나와요. 절름발이 삼촌의 죽음, 참새의 죽음, 떨어진 벚꽃처럼 세상을 떠난 친구의 죽음. 죽음을 대하는 작가님의 태도가 궁금해요.
《나는 티벳의 라마승이었다》라는 책에 라마승들이 큰 연을 만들어서 하늘에 띄우는 장면이 나와요. 연이 크기 때문에 탈 수가 있는데, 연이 고꾸라지면 같이 떨어져 죽는 거예요. 거기에 “연이 떨어져 승려도 함께 죽었다.”라는 문장이 나와요. 그런데 문장 뒤에 마침표를 찍고 다른 얘기로 진행돼요. 태연자약하게 죽음을 서술하는 거죠. 제가 올해 예순 살이에요. 만약 곧 죽음을 맞이하면 어떻게 될까 생각할 때면 그 문장을 떠올려요.
조용히 잠자듯이 오는 죽음처럼 말이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죠.
화제를 조금 전환해볼게요. 여행을 다니며 가장 관심이 가는 게 무엇인가요?
역시 사람이네요. 사람의 뒷모습. 뒷모습이 주는 무게감이 있어요. 삶의 무게, 응어리라고 할까요. 사람들의 뒷모습은 늘 쓸쓸해요. 뒤뚱거리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는 기분 같죠.
뒷모습이라면 정작 나는 볼 수 없는 내 모습이죠.
그렇죠. 다른 사람의 뒷모습에 내 감정을 투영할 수는 있겠죠. 그것도 일종의 공명이에요.
카메라 없는 여행도 하나요?
이번에 친구들과 카메라 없는 여행을 했어요. 예전에는 카메라를 두고 다니면 기가 막힌 장면을 놓칠 것 같은 불안이 있었는데, 이제는 없죠. 카메라를 들면 일을 하게 돼요. 일종의 자기 멍에 같은 거죠.
저는 사진가도 아니면서 카메라가 없으면 괜히 불안해하고 그래요(웃음). 이번 일본 여행은 어땠나요?
나오시마에 다녀왔어요. 예술 섬으로 만든 곳으로 안도 다다오의 지중 미술관도 있고 이우환 미술관도 있어요. 천천히 둘러보기 좋은 곳이죠. 그리고 테시마 섬의 미술관도 다녀왔는데, 맨발로 조용히 앉아 있으면 마치 성당에 있는 것처럼 경건한 마음이 돼요. 자신의 근원에 대해 생각하는 거죠.
근원, 일본이 제2의 고향이나 다름없으시죠?
1989년도니까 서른 즈음에 일본으로 건너가 정식으로 사진 공부를 했어요.
유학 1년 만에 니콘 살롱에서 개인전을 열었다고요.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던데요.
아마 저를 가르치던 선생들도 남몰래 응모했을 거예요(웃음). 당시만 해도 니콘에서 전시하면 명실상부 실력 있는 놈으로 인정받은 거였으니 다들 부러워했죠. 열심히 준비하기도 했지만 운이 좋았어요.
전시와 관련해서 마쓰자키 선생과의 일화가 재미있었어요. 아주 괴짜 캐릭터더라고요.
당시에 선생이 니콘 살롱에서 전시를 하면 일을 맡기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한 거죠. 전시 후에 전화를 했더니 선생이 말하길, 소도 뒷걸음질 치다가 쥐를 잡는다고 세 번은 더 전시하라는 거예요. 그때 아주 큰 배신감을 느꼈죠(웃음).
얄밉네요(웃음).
그렇죠. 하지만 프로로 성장할 수 있는 가장 기초적인 걸 가르쳐준 거죠. 스스로 실력을 키워서 인정받으라는 의미로요.
작가님 역시 지금 제자를 가르치는 입장에서, 아무래도 마쓰자키 선생이 생각날 것 같아요.
많은 영향을 받았죠. 직접 누군가를 가르쳐보니 더 크게 느끼게 돼요. 사진을 배우러 누구나 오지만 모두가 좋은 사진가가 되는 건 아니거든요.
전에 사진기 공부와 사진 공부가 다르다고 쓰신 글을 봤어요.
일반적으로는 카메라 사용법을 알려줘요. 조리개와 셔터 속도 같은 걸 가르치는데, 그것만 연마하면 사진을 잘 찍을 수 있겠죠. 하지만 좋은 사진가가 되기 위해서는 그보다 더 큰 공부가 필요해요. 사진 한 장에 철학과 인문학적인 자기 당위성을 담는 거예요. 왜 이렇게 찍을 수밖에 없는가에 대한 이유인 거죠. 그건 배짱이 필요한 일이에요.
어떤 공부가 필요할까요?
끝없이 질문하는 거예요. 예를 들어 수업 때 누군가 ‘현재’라는 단어를 썼어요. 그럼 당신에게 현재는 무엇인지 물어보죠. 현재를 지칭할 수 있는지,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 말이에요. 그 단어를 썼지만 한 번도 진지하게 고민해본 적이 없다면 틀린 거겠죠.
언어에 대한 자기 확신이 중요한 거네요.
당연히 있어야죠. 저는 그들이 사유를 확장하고 견고하게 만드는 걸 도와주는 역할인 거고요.
기술자와 작가의 차이는 곧 인문학적 고민에서 비롯되는 거네요.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을 견고한 언어로 재무장하는 게 필요하죠.
그것에 대한 확신이 있나요?
그렇기에 지금 이렇게 떠들고 있는 것 아니겠어요? 나만의 방식으로(웃음).
좋네요. 아주 먼 과거에서부터 방랑이 시작됐잖아요. 그 마지막이 어디에 닿을지 궁금해요.
우리 모두 인생의 끝을 알죠. 저 역시 그 끝을 알고 있고요. 그렇기에 하루하루를 더 재미있고 즐겁게 살았으면 해요. 티베트 속담 중에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겠네.”라는 말이 있어요. 우리가 하는 걱정 중에 80퍼센트는 안 해도 될 걱정이고요. 그러니까 가능하면 걱정을 버리고 간다고 보는 거죠.
다음 방랑은 어디인가요?
인도예요. 첸나이에 초청받아서 사진도 찍고 전시도 하기로 했어요.
몸조심하세요.
괜찮을 거예요(웃음).
에디터 김건태
포토그래퍼 안가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