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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을 넘어서 시작된 이야기
보라보라 사람들
국경을 넘어서 시작된 이야기
한국에서 여러 달 살았던 프랑스 친구들이 내게 물었다. 한국 사람들은 왜 자기들이 밥 먹었는지를 그렇게 궁금해하느냐고. 누구를 만나도 비슷한 것들을 물어본단다. “식사하셨어요?”, “디쥬 잍 썸씽?”, “밥은 먹었어?” (아니면 궁금한 표정으로 눈을 맞추고 손으로 밥 먹는 제스처) 국제결혼을 한 남편도 나와 연애할 때 비슷한 생각을 했다고 한다. 끼니마다 잘 먹었는지, 뭘 먹었는지 꼭 묻는 내가 신기했단다. 그러고 보면 나도 한국에 다녀올 때마다 비슷한 말을 들은 것 같다. “가기 전에 맛있는 거 해줄게. 집에 와서 밥 먹고 가.”라든지 “거르지 말고 꼭꼭 챙겨 먹어.”라든지. 이곳 보라보라 섬에서는, 아무도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살인자에게도 밥은 먹고 다니느냐고 묻는 송강호가 있는 나라에서 와서 그런지, 조금은 쓸쓸했었다는 얘기다. 왜 과거형인가 하면 이제는 조금 ‘덜’ 쓸쓸하기 때문이다. 여전히 밥 먹었는지 물어주는 친구도 없고, 요리를 하다 보면 전기가 나가기 일쑤고, 배달 음식은커녕 밤 열 시가 넘으면 문 여는 식당도 없는 섬이지만- 그런 섬이기에 또 가능해지는 ‘한 끼’가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소설에 나온 빵들처럼 별것 아니지만 분명 도움이 되는 ‘한 끼’ 말이다. 그것을 알아가던 즈음에 대한 이야기다.
첫 번째 이야기
“감자 이리 줘봐.”
부엌에서 감자를 썰고 있던 남편이 내 말에 고개를 돌렸다. 각진 모서리만 조금씩 깎아내고 매끈해진 감자를 다시 건네주자 남편이 물었다. “그건 왜 하는 거야?”, “요리할 때 감자가 덜 떨어져 나와서 소스 맛이 깔끔해지거든.”, “필로가 알려준 거야?” 필로는 보라보라 전통 음식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말에 레시피를 제공해준 원주민 친구였다. 나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이런 건 기본이지.” 남편이 코로 웃었다. 내 말이 농담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는 요리를 잘 못했다. 시집가면 평생 할 거 미리 하지 말라는 집에서 자랐고, 요리는 배고픈 사람이 하는 거라는 남편과 살다 보니 이렇게 되었다(는 핑계고 역시 게을러서 그렇다). 물론 내가 먼저 배고픈 날이 압도적으로 많아서 요리도 거의 내 몫이 되었지만, 다행히 내게는 다양한 요리법을 쉽게 알려주시는 대한민국 블로거님들이 계셨다. 끓는 물에 손질한 야채를 넣으려는데 갑자기 퍽-하고 온 집 안이 깜깜해졌다. 전기가 나갔다. 또. 나갔다.
결혼 초에는 정전이 되면 먼저 집 안 가득 초를 켜두었다. 산소가 부족해지더라도 낭만을 찾던 시기였다. 지금은 일단 현관문을 열고 이웃집 불도 꺼졌는지 확인한다. 꺼져있으면 마을 전체가 정전이고, 아니라면 전기요금 내는 걸 까먹은 것이었다. 그랬다면 또 “자동이체로 해두자고 했잖아.”, “안 돼. 난 은행을 믿지 않아.” 같은 음모론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주고받았겠지만, 이날은 온 마을이 어둠 속으로 사라져 있었다. 남편은 머리에 쓸 수 있는 라이트를 두 개 가져와서 밴드가 작은 빨간 걸 자기가 쓰고 밴드가 큰 파란 건 내게 주었다(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다).
나는 냉동고에 뭐가 들었는지 확인했다. 정전이 길어질 상황을 대비해서 녹아버리는 음식들을 먼저 먹어야 했다. 다이어트 하겠다며 사다 두고 까먹은 닭 가슴살이 있었다. “보라보라 전통 음식은 다음에 먹지 뭐.” 저녁 메뉴가 바뀌었다. 깜깜한 부엌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닭 가슴살을 블로거님들에게 배운 대로 우유에 담그고 있자니 문득 민망해졌다. “나 이렇게 우유로 잡내를 없앤 거랑 아닌 거랑 구분 못 할 것 같아.” 남편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조금 쑥스럽게 “미투.”라고 대답했다. “우리 이거 왜 하는 거야.” 내 말에 남편은 웃으며 말했다. “몰라. 기분이 좋아지니까 괜찮잖아.”, “그게 뭐야.”, “왜 크레페 만들 때 밀가루 체에 거르거나, 계란 흰자 저어서 머랭 올리고 그럴 때 기분 좋아지지 않아?” 이번에는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남편이 말하는 게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완성된 요리는 뒷마당에서 먹기로 했다. 정전이 찾아온 밤에는 별자리가 더욱 선명해지기 때문이다. “이거야말로 보라보라 전통 음식 아냐? 정전 속에서 요리한 음식.” 우리는 간장, 설탕, 고춧가루 그리고 당면이 들어가 누가 봐도 찜닭인 요리를 보라보라 음식이라 우기며 먹기 시작했다. 반짝이는 별들 사이로 흐르는 은하수를 보며 닭을 뜯고 있자니 칼 세이건이 《코스모스》라는 책 첫 페이지에서 아내에게 바친 헌사가 떠올랐다. “공간의 광막함과 시간의 영겁에서 / 행성 하나와 찰나의 순간을 / 앤과 공유할 수 있었음은 나에게는 하나의 기쁨이었다.” 남편에게 그 헌사를 말해주자 오래전 신혼이 지나간 우리에게도 다시 낭만이 타는 냄새가 났다. 그 냄새를 모기떼도 맡았다는 게 문제였다. 먹는 동안 모기떼의 엄청난 습격을 받았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보라보라 전통 음식에 딱 어울리는 일이었기 때문에, 그 정도는 모른 척 참고 넘어가기로 했다.
두 번째 이야기 (상)
모기떼의 습격을 모른 척 참고 넘어가서는 안 되는 거였다. 뎅기열이나 치쿤구니아 같은 모기가 원인일 거라 말하는 의사를 보며 응급실에 누워있자니 절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른 아침에 보라보라 진료실에 갔다가, 종합병원이 있는 이곳 타히티까지 무려 비행기로 응급 후송되었다. 의사는 잘 삶아진 꽃게처럼 빨간 발진으로 가득한 내 몸을 여기저기 꾹꾹 눌러보더니 피 검사를 비롯해 여러 검사를 시작하겠다고 말했다.
하루 종일 피 뽑고, 고열에 시달리다 약 먹고, 토하고, 근육통에 다시 약 먹고, 또 토하고 여러 개의 링거를 맞았다. 육체의 한계를 느꼈다. 하지만 그보다도 언어의 한계를 고스란히 느꼈다. 담당 의사의 말을 알아듣는 게 너무 힘들었다. 프랑스인이 분명한 그는 외국인인 나를 위해 불어를 좀 더 느리고 좀 더 분명하게 발음해주는 친절한 의사였다. 하지만 그가 아무리 느리고 분명하게 말해줘도 애초에 모르는 단어를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이를테면 혈소판이라는 단어를 모르는데 “혀얼-소오-파안-.” 이렇게 말해준다고 어찌 알겠는가. 무례를 무릅쓰고 영어로 질문했더니, 조금씩 영어를 섞어서 대답해주다가도 이내 불어로 돌아왔다. 그렇다고 바쁜 그를 잡고 몇 번이나 물어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사방이 환자들이었고, 모두가 절박했다. 사실 그가 온전히 영어로만 말한다 한들 의학 용어 같은 고급 어휘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가능성이 컸다. 그의 나라에서 그의 언어로 말하는 그는 잘못이 없었다. 하지만 그를 이해하는 것과는 별개로 응급실에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알아듣지 못하는 단어는 늘어갔고, 나는 점점 더 고립되어갔다.
다행스럽게도 열이 내리고 근육통이 사라지자 좀 기운이 났다. 침대에 기대앉아 눈으로 응급실을 둘러보았다. 지어진 지 오래되지 않은 종합병원이었다. 그리 넓지 않은 평수에 응급 환자들이 가득 차 있어서 좀 비좁아 보이긴 했지만 무척 깨끗했다. 그때 한 젊은 의사가 차트를 들고 다가왔다. 머리를 뒤로 깔끔하게 올려 묶은 여자였다. 그녀는 내게 불어와 영어 중 더 편한 언어를 물었고, 내가 영어라고 답하자마자 바로 안부를 물었다. “Hello. How do you feel?” 단번에 마음속에 엉켜있던 매듭이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좋은 소식이 있다고 했다. 검사 결과에 따르면 수치들이 정상보다 많이 떨어져 있기는 하지만, 입원할 정도로 심각하지는 않기 때문에 바로 퇴원해도 된다는 소식이었다. 서두르면 오늘 안에 집에 돌아가는 비행기를 탈 수 있을 거라고도 말해주었다. “이렇게 병원을 오가는 비행기 값은 무료인 거 알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었지만 다시 들어도 반가운 소식이었다.
두 번째 이야기 (하)
현관문을 열고 집에 들어서자 퇴근한 남편이 기다리고 있었다. 남편을 보자마자 긴장이 풀려서 그런지 다시 통증이 몰려왔다. “힘들어도 뭐 좀 먹고 쉬어.” 주방으로 가는 남편을 보며 겨우 식탁에 앉았다. 하루 종일 한 끼도 먹지 못했다는 데 생각이 미치자, 문득 따뜻한 닭죽이 떠올랐다. 그런 게 있을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입안 가득 진한 닭죽의 맛이 느껴져 침이 고였다. 남편은 식탁 위에 오렌지 주스와 콘플레이크 그리고 바게트 빵이 담긴 쟁반을 내려놓았다. 뿌듯한 얼굴로 “아플 땐 미지근한 주스가 더 좋아.”라고 말하는 그를 보고 있자니 헛웃음이 나왔다. 프랑스에서 출산했던 친구의 말은 사실이었구나. 출산한 바로 다음 날 첫 식사로 바게트 빵과 오렌지 주스가 나왔다는 말.
“이렇게 먹어도 될까?”, “콘플레이크라 소화가 잘될 거야.”, “소화는 죽이 더 잘되지 않을까?”, “그게 뭔데?” 죽이 뭔지 영어와 불어를 섞어 설명하다 보니 갑자기 목이 메는 기분이 들었다. 울화가 치밀었다. 정전도 싫고 모기도 싫고 아픈 것도 싫고 콘플레이크도 싫었다. 그냥 엎드려 울고 싶었다. 꾹 참고 그냥 오렌지 주스를 마셨다. 편도선이 부어 따끔따끔했다. “나 잘게.” 내 귀에도 내 목소리가 너무 냉정하게 들려서 조금 놀랐지만 그대로 침대로 갔다. 억지로 눈을 감자, 하나의 생각만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나 여기서 뭐 하는 거지. 다른 국적, 다른 언어, 다른 피부색,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과 함께 다른 나라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낯설었다. 이제껏 잘 살아놓고선 정말이지 새삼스러웠다.
어느새 잠이 들었는지, 눈을 떴을 땐 다음 날이었다.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가자 남편이 식탁에 앉아있었다. “일어났어? 안 그래도 깨우려고 했는데.” 남편은 얼른 주방으로 들어가 그릇에 무언가를 덜어왔다. 흰죽에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고 있었다. “이게 네가 말한 음식 맞아?” 나는 놀라서 고개를 끄덕였다. 살짝 떠먹어보니 고소한 맛이 났다. 식감이 부드러워 목 넘김도 편했다. 고수향도 났지만 무척 맛있었다. 남편은 내가 그릇을 깨끗이 비우는 걸 기다렸다가 물었다. “괜찮아?” 맛있다고 대답하자 남편이 살짝 웃더니 다시 물었다. “아니 내 말은… 기분 괜찮아졌어?” 따뜻한 말 한마디. 곧바로 죄책감이 들었다. “어제는 내가 미안해.” 정말이지 엉뚱한 사람한테 화를 내버렸다. “괜찮아. 너 배고프면 원래 성격 나빠지잖아. 게다가 아팠으니까.”, “내가 그래?” 남편은 당연한 걸 왜 묻느냐는 듯 대답했다. “너도 알잖아? 너 배고프면 진짜 무서워져.” 이제 와서 아닌 척 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남편은 어림잡아도 나와 수천 번의 식사를 함께 한 사람이니, 나의 한심함을 그보다 더 잘 알 사람은 없었다. 지금도 잔뜩 먹어서 그런지, 타히티에 다녀오며 생겨났던 꿉꿉함이 다 사라지고 없었다. 민망하고 미안해 말을 돌렸다. “이건 어떻게 만들었어? 레시피 찾아봤어?” 남편은 눈알을 굴리더니 답했다. 그리고 그 대답은 끝내주게 섹시했다. “바이타페 근처에 중국 음식점이 있더라고. 거기 가서 물어봤더니 만들어줬어.”, “중국 음식점이 있다고? 보라보라 섬에?”
그날부터 내가 그 집의 단골이 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정말이지 낯선 타국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모든 것이 얼마나 나아지는지 안다면 깜짝 놀랄 거다. 여기서 맛있는 음식이란 그 자체의 절대값보다 먹을 때의 상황이나 함께 먹는 사람 또 한국 음식과 비슷한 맛이라는 변수들 때문에 과장됐겠지만, 덕분에 빠른 속도로 건강을 회복했다. 건강식이 아닌데도 그랬다. 맛있는 음식 덕분에 정전도, 모기도, 콘플레이크도, 외국인 남편과 배고파지면 무서워지는 나도, 그럭저럭 다시 견딜 만한 것이 되었다.
세상은 더하고 빼면 남는 게 없는 법이라더니 보라보라 섬이 딱 그런 것 같다. 좋은 점이 있으면 나쁜 점도 있고, 좋은 일이 생기면 어김없이 나쁜 일도 생긴다. 행복하다기엔 만만치 않고, 불행하다기엔 공짜로 누리는 것투성이다. 깨끗한 공기, 따뜻한 바다, 선명한 은하수. 그게 어디든 더하기만 있거나, 빼기만 있는 곳은 없을 거다. 그건 나도 알고 당신도 알고 우리 모두 안다. 하지만 늘 까먹으니 문제지. 지금 같아서는 된장국에 밥 말아 먹는 더하기 하나를 꼭 받고 싶다. 음식에 대한 글을 쓰고 나니 그 생각뿐이다. 콩이라도 키워야 하나. 내일의 일은 모르겠다.
글·사진 김태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