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인지 아니면 인공위성인지

그녀가 잃어버린 것을 향한 애도

별인지 아니면 인공위성인지

그녀가 잃어버린 것을 향한 애도

아델로 수녀는 지방의 어느 소도시에서 자랐다. 그 도시는 인구 10~20만 정도의 번잡하지도, 적막하지도 않은 어중간한 도시다. 작다고 하기엔 시내 거리가 제법 상권을 갖췄고, 크다고 하기엔 그 번화한 거리가 멀게 이어지지 않는다. 맥도날드가 있다고 확신하지만, 버거킹은 장담하기 어려운 바로 그런 동네다. 이곳에 거주하는 시민 대부분은 도시 주변에 있는 공장, 관광단지, 대학교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다. 도시의 중심인 기차역 앞에 제법 구색을 갖춘 거리가 있다. 사람들은 그 근방을 ‘시내’라고 불렀다. 역에서 버스로 세 정류장 거리에 있는 아파트 단지에 사는 사람들은 시내에 나와 외식을 하고 오리털 패딩을 구매했다. 시내를 둘러싼 주거 지역을 한 발짝만 벗어나면 도시도 아니고 시골도 아닌 어중된 영역에 모텔, 식당, 부동산이 흩어져 있다. 그것들은 변두리 특유의 체념과 짜증을 덮어쓴 채로 호황인 듯 보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바깥쪽으로 더 나가면 인적이 없는 야산과 논밭이 펼쳐지며 도시의 분위기는 완전히 사라진다.

아델로가 성직자가 되기 위해 수련기를 보낸 수도회는 그녀가 살던 아파트 단지로부터 6키로미터 정도 떨어진 도시의 경계에 위치했다. 지독하게 한적한 곳이다. 이십여 년 전 아델로는 집을 떠나 그곳에 들어갔고, 성소를 확인하기 위해 수년간 그곳에 머물렀다. 숲으로 둘러싸여 있고 입구가 눈에 띄지 않는 탓에 주변에 거주하는 농민들조차 그곳에 그토록 멀쩡한 시설이 있음을 알지 못했다.

수도회 정문은 지방도로 변으로 나 있다. 주위는 온통 논밭이고 그 중간에 자재 창고 같은 건물 몇 채와, 빛바랜 간판을 내세운 주유소, 오리고기 전문점이 있다. 도시 쪽으로 눈을 돌리면 고층 아파트가 버섯처럼 솟아난 모습이 신기루처럼 피어오르고, 반대편으로는 고속도로 진입로가 보인다. 일반적인 관점에서 풍광이 멋진 곳은 아니다. 개발 진행이 멈춘 탓에 여기저기 콘크리트 냄새만 난다. 어느 구청장의 선거 공약으로 확장된 왕복 4차선 국도는 중앙분리대만 요란할 뿐 다니는 차가 거의 없어서 갈라진 아스팔트 틈새로 잡초가 돋아나는 중이다. 신호등은 노란불만 깜박이며 쓸모를 잃었다. 어쩌다 행인이 있을라치면 길고양이마저 관심을 보일 정도로 지나다니는 사람이 드물다.

수도회로 통하는 정문에는 바리케이드처럼 여닫을 수 있는 철문이 설치돼 있는데, 초등학생도 한 다리만 걸치면 쉽게 넘을 정도로 높이가 낮고, 그마저 낮에는 열려 있어서 좀처럼 주변과 위화감이 없다. 입구로부터 좁은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안쪽으로 50미터 정도 들어가면 단정한 정원에 둘러싸인 수도회 건물이 나온다. 세 채의 건물은 외딴 위치에 어울리지 않게 위엄 있고 단단해서 마치 단과대학 캠퍼스처럼 보인다.

그중 가장 큰 건물에 예배를 드리는 공간이 있다. 예배당 내부는 비교적 검소하고 아담하지만(바티칸 대성당과는 다르다) 높은 위치에 난 창문이 외부에서 들어오는 빛을 엄하게 단속해서 그런지 분위기가 사뭇 신비롭다. 아무 장식 없이 흰색 페인트로 마감한 벽이 휑뎅그렁해서 실제 기온보다 2도 정도 춥게 느껴진다. 아닌 게 아니라 그곳은 확실히 서늘하고 축축하고 어둡다. 좌우로 늘어선 목제 벤치는 더 어떻게 해볼 수 없을 정도로 낡았다. 의자 등받이 뒤편에는 성경책과 각종 교재를 보관하는 공간이 있다. 그곳에 드문드문 비치된 책 중에는 한때 아델로 수녀의 이름이 적힌 책도 있었다.

아델로는 본격적인 수련에 들어가기에 앞서 1년 동안의 청원기를 지냈다. 예배당과 교실, 숙소를 쳇바퀴 돌 듯 오가며 공부하고 일하고 기도하고 대화하기를 매일 반복했다. 이는 아델로에게 꽤 지난한 과정이었다. 영적 수련은 누구에게나 어느 정도 고난이기 마련이지만 유독 아델로 만이 겪은 특수한 어려움이 따로 있었다. 이 특수성을 이해하려면 그녀에 관해 좀 더 얘기할 필요가 있다. 물론, 언어라는 지극히 불완전한 전달 방식을 통해 한 사람을 알리려는 노력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결국 아델로의 마음을 지탱하는 무형의 덩어리를 한 조각도 읽지 못할 것이 뻔하다. 한 사람을 위한 진실은 그 사람의 의식 밖으로 나올 수 없다. 만약 진실이 실존하는 뭔가를 통해 밖으로 비친다면 그 순간 그것은 진실로서의 의미를 상실하는 탓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안간힘을 다해 그것을 읽어내고자 애쓸 것이다. 그것이 그녀가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서 잃어버린 것들을 기억하고 애도할 유일한 방법이다.

수연은 자신이 나고 자란 도시와 마찬가지로 특색 없고 정체된 인간이었다. 자동차 기어의 중립 단계와 같다. 앞으로 나가지도 뒤로 후퇴하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멈춰있길 고집하지도 않는다. 그녀는 이런 밋밋한 성격에 힘입어 어린 시절부터 수도회에 들어가기까지 어떤 성취를 이룬 경험이 없었다. 이는 수녀가 되기 위한 준비 과정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유년 시절을 갓 벗어난 무렵, 또래 친구들은 불현듯 소도시 밖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틈만 나면 TV와 잡지에서 본 정보를 서로 교환하며 바깥세상을 향한 환상을 키웠다. 인터넷도 KTX도 없던 시절 얘기다. 조숙한 아이들은 일찍부터 미지의 세계를 향한 동경이랄까 싶은 질척한 감정에 빠져들었다. 연예인을 보겠다고 자기들끼리 삼삼오오 원정대를 조직해서 서울 KBS에 다녀오는 유난스러운 아이들도 있었다. 형편이 좋은 몇몇은 부모님과 롯데월드에 놀러 가거나 해외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어느 축에도 들지 못했음에도 수연에게는 일말의 호기심이나 부러움이 없었다. 같은 반 아이가 바깥에서 경험한 무용담을 떠벌릴 때면 그 친구가 무안하지 않도록 애써 흥미를 보이는 표정을 지어냈다. 

모두가 열광하는 TV 쇼, 연예인, 영화도 그녀의 흥미를 끌어내지는 못했다. 한번은 아빠가 취기에 큰맘 먹고 CD 플레이어를 선물한 적이 있었다. 여느 십 대 아이라면 졸라서라도 얻어냈을 대단한 물건이었으나, 수연의 감각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래도 부녀 관계는 소중하기에 기뻐하는 연기를 펼쳤다. 어쩌면 이 기회에 자신도 몰랐던 취미를 발굴할지 모른다는 희망을 품고 일주일 동안 뉴 키즈 온 더 블록의 CD를 열심히 들었다. 등굣길에, 쉬는 시간에, 잠들기 전까지 듣고 또 들었다. 뜻 모를 영어 가사를 입술로 달싹거리게 됐을 무렵에 아무리 노력해도 이런 걸 소중히 여길 수 없는 자신을 발견했다. CD 플레이어는 그 뒤로 전원이 켜진 적이 없었다.

고등학교 시절엔 번거로운 일이 많았다. 주말이면 성게 가시만큼이나 까다로운 사춘기 아이들에 섞인 채로 마치 그들과 동종인 양 행세하며 시내로 향했다. 수연은 노력했다. 여느 평범한 여고생처럼 지내보려고 영화도 보고 분식점에서 돈가스도 사 먹었다. 무엇을 해도 하나같이 시시했지만, 문제는 즐길 줄 모르는 자신에게 있으니 노력해서 바꿀 일이었다. 그때는 그게 자기 자신에게 공평치 못한 일이라든지 그래서 빠져 나오겠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누구에게 이런 고민을 털어놓은 적도 없다. 주변에 섞이지 못하는 미숙한 존재로 자신을 몰아세우기에 익숙했다.

늘 권태를 짊어지고 살았다. 다들 뭐가 재미있다며 깔깔대는데 도저히 억지웃음까지 연기할 순 없었다. 자연스럽게 무리 속에서 냉소적인 역할을 맡았다. 어딜 가나 이렇게 퉁명스러운 사람이 하나씩 있기 마련이라는 느낌. 애늙은이라는 별명이 붙었을 무렵, 수연에게 고민을 털어놓는 아이들이 종종 생겨났다. 질풍노도의 영혼을 투사하는 그들의 뜨거운 이야기가 쏟아져도 그녀는 무덤덤했다. 정말 저런 일로 조바심이 난단 말이야? 격양된 감정을 분출한 아이들은 흡족해하며 자리를 떴다. 수연은 그들이 분리 배출한 감정의 잡동사니를 1분 정도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리고 그것들을 말끔히 쓸어내 먼지도 남지 않게 소각했다.

대학생이 된 첫해에 참가한 ‘수도 생활 체험 학교’에서 수연은 처음으로 수도회에 들어가겠다고 결심했다. 그녀가 진학한 대학은 집에서 가까운 어느 국립대학이었다. 중위권 성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학교가 가까이 있으니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부모님도 만족했다. 대학 생활이라 해서 특별할 건 없었다. 고등학생 시절보다 친구가 줄어들고 무료한 시간이 늘어났다. 오리엔테이션이라든지, 선후배 대면식 같은 요란한 행사에는 옷깃도 내밀지 않았다. 대학생들은 정제되지 않은 날것의 에너지를 미친 듯이 분출했다. 그 생경한 기운이 부담스러워 그들 옆에 있기 힘들었다. 짧은 수업이 끝나면 곧장 학교를 빠져 나와 패스트푸드점에서 싸구려 커피와 감자튀김을 시켜놓고 조용히 생각에 잠기는 날이 많았다.

수연과는 다른 이유로 대학의 역동적 소용돌이에 적응하지 못하는 학생이 몇몇 있었다. 그들은 학창 생활의 중심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나와 독자적 관성계를 이루며 서로의 주위를 맴돌았다. 그중 체구가 크고 목소리가 가냘픈 어떤 친구는 수녀가 되고 싶다는 바람을 조심스레 입 밖에 내곤 했다. 그 친구가 수연을 체험 학교로 끌어들였다. 왜 수연을 동행자로 택했는지 알 수 없었다. 함께 가자는 부탁을 그 자리에서 거절하지 못하고 집에 돌아왔는데, 침대에 누워 가만히 되씹어보니 ‘수도 생활’이라는 단어가 꽤 매력 있었다. 매력이 호감으로 자랐고, 며칠이 지난 뒤에는 이것이 자신이 은연중 바라던 이상적인 라이프 스타일이라는 근거 없는 확신마저 생겨났다. 부모님께는 취업 현장실습에 참여한다고 둘러대고, 목소리가 가냘픈 친구와 함께 수도회를 찾았다.

5일간의 체험 학교는 다소 번잡했다. 짧은 시간에 다양한 면을 보여주고자 설계한 여러 프로그램이 귀찮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이런 홍보성 행사 너머에는 단조로운 금욕적 생활이 있음이 분명했다. 빳빳한 성직자의 삶이야말로 욕망 없는 자신이 유일하게 욕망하는 대상이 아닐까 생각했다. 한 차례 상담을 거친 뒤 수연은 입회를 결정했다. 부모님의 반대가 드셌지만 어찌어찌 지나칠 수 있었다. 자식 노릇 할 언니와 남동생이 있으니까. 외동이 아니라 다행이기는 그때가 처음이었다.

예상대로 그녀는 수도회에 안성맞춤이었다. 그곳 생활은 세세한 곳까지 엄격한 규율이 따랐다. 그리고 그러한 구속이야말로 수연이 찾아 헤매던 미지의 욕망을 구체화한 종합선물세트와도 같았다. 싫어도 견뎌야 했던 세상의 번잡함을 걷어낸 담백한 나날이 이어졌다. 고독은 감내해야 할 고통이라기보단 안락한 평화였다. 아무 생각 없이 몸을 움직이는 노동도 꽤 할 만 했다. 이곳에서는 유흥과 안락을 추구해야 한다는 의무를 잊어도 좋았다. 평생 이대로 살기를 희망했다.

만족스러운 생활은 한 해를 넘기면서 신앙심의 부재라는 벽에 부딪혔다. 평생 수련생으로 남을 수는 없다. 이상적인 삶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어느 시점부터 성직자가 되어야 한다. 수녀가 되는 데는 거부감이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될 자격이 주어지지 않았다. 수연은 그곳 사람들이 ‘성소’라고 부르는 어떤 은혜랄까, 신의 부름, 혹은 그 비슷한 어떤 것도 느낄 수 없었다. 성과가 전혀 없진 않았다. 은퇴한 신부님의 강의를 듣고 성경을 읽으며, 수녀님들과 대화를 나누며 하느님과 구도의 길에 관한 많은 내용을 알게 되었다. 성소 모임에서 오가는 대화나 피정지도자의 강의도 어렵지 않게 들었다. 하지만 거기까지가 한계였다. 좌뇌가 열심히 일했을 뿐, 심장은 한결같이 차가웠다. 성경은 마냥 읽을 수 있어서 좋은 역사책에 불과했다. 벽돌처럼 묵직하게 놓인 그 종이뭉치를 볼 때면 고등학교 때 변기에 빠뜨린 《수학의 정석》이 떠올랐다. 말려서 구깃구깃한 채로 가지고 다녔었지. 넘쳐흐르는 기쁨과 믿음을 주체하지 못해 신앙 고백을 털어놓는 어느 수련자의 사례를 읽었을 때 ‘과장이 심하지 않나’라며 몹쓸 의심을 하기도 했다.

묵상기도는 수연이 가장 즐기는 시간이었다. 사실 그녀는 기도하지 않았다. 기도 중이라는 설정을 보호막 삼아 서늘한 장소에서 눈을 감으면 길고양이 울음소리, 트럭이 지나가는 소리가 아득하게 들린다. 낡은 의자에서 풍기는 나무 냄새가 코의 점막에 와 닿는다. 눈을 닫고 그런 은밀한 감각에 젖어 드는 시간이 좋았다.

처음 한동안은 괜찮았다. 당장은 아니어도 충실한 시간을 보내다 보면 언젠가 신의 부름이 있으리라 낙관했다. 누구의 경험처럼 종소리가 들리고 빛이 쏟아지는 순간이 자신에게도 언제든 올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야만 했다. 난생처음 찾은 재능을 올바르게 발휘하기 위해서는 하느님의 부름이라는 증명서가 필요했다. 청원기가 1년에 다다르자 차츰 조바심이 났다. 주변 사람들이 답답해하는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이러한 수연의 고민을 들은 퇴직 신부는 ‘모든 사람에게 성소가 찾아오지는 않는다’고 말하며 집으로 돌아갈 것을 에둘러 권유하기도 했다. 수연은 1년 동안 단 한 번도 하느님의 은혜에 감격한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거짓으로 꾸며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하느님은 아빠와 다르다.

그녀보다 일찍 수도회에 들어와서 이미 성령 충만한 눈물을 삼백 번쯤 쏟아낸 수련생도 있었다. 기도 중에 천상으로부터 울리는 종소리를 들었다는 수련생도 있었다. 부러웠다. 하지만 복음은 매번 수연을 비껴갔다. 어찌 보면 그럴 만도 했다. 수도회 생활에 지나치게 만족한 수연에게 다른 수련생이 품은 간절함이 있을 리 없었다. 하느님으로 자신을 채우겠다든지, 성직자로 역할을 부여받고 싶다든지, 하루빨리 세상에 나아가 봉사하고 싶다든지 하는 여느 수련생의 아름다운 바람이 그녀에게는 딴 세상 얘기 마냥 낯설었다. 어쩜 저리도 열렬할 수 있을까. 알 수 없었다. 위선을 방치한다는 죄책감이 발치에서 싹트더니 그것이 하루하루 조금씩 자라나 마침내 목을 죄는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원점으로 돌아왔다. 바뀐 건 하나도 없었다.

그 무렵 수연은 수도원 밖으로 걸어 나왔다. ‘무단이탈’이란 단어가 더 어울릴 수도 있지만, 당시 그녀가 수도원을 나서는 모습에서 죄를 짓는 조바심은 찾아볼 수 없었다. 유난히 따뜻한 어느 가을 오후였다. 가시지 않는 답답한 마음을 안고 식당에서 숙소로 향하던 길에 어디선가 나뭇가지 같은 것이 툭 하고 끊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그 소리를 신호로 내딛는 걸음 하나, 흔드는 팔의 움직임 하나가 낯설게 느껴졌다. 전에 없던 이질감을 확인하기 위해 한 발짝 한 발짝 지그시 누르며 걷는 발길이 수도원 정문을 향했다. 외부와의 접촉을 통제한다지만 문을 잠근다든지, 전기 울타리를 설치한다든지 하는 일은 없다. 누구나 맘만 먹으면 문을 통과할 수 있다. 그래서 수연은 걸어 나왔다. 요행히 아무도 그녀의 외출을 목격하지 못한 듯하다. 아니면, 그 모습이 워낙 자연스러워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을 수도 있다. 맞은편 식당에서 오리 배를 가르고 창자를 꺼내는 광경을 구경하러 가나 보다 했을 것이다. 수연은 오리고깃집에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도심 방향으로 향했다. 몇 시간 뒤 맞이할 은밀한 경험은 짐작하지 못한 채.

목적 없이 길 닿는 대로 걸었다. 수도원을 탈출했다는 해방감이나 긴장감은 코딱지만큼도 없었다. 뒤에서 누가 따라와 묻는다면 천연덕스럽게 얼버무리고 다시 돌아가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붙잡는 사람은 없었다. 갈 곳도 없었다. 이왕 걷기 시작했으니 계속 가보기로 했다. 가까워 보였던 도심은 생각 외로 멀었다. 국도변 육중한 가로등을 하나씩 넘겨 짚으며 걷고 또 걸었다. 계속해서 뭔가를 생각했지만, 파편처럼 떠오른 단상은 구체화되는 일 없이 곧장 연소하여 기억에 남지 않았다. 마치 새로운 형식의 묵상기도와도 같았다. 화훼단지와 농기구 소매점을 지나 강 너비에 어울리지 않게 웅장한 다리를 건넜다. 주유소 너머로 변두리 특유의 통속적인 빨간색 간판들이 눈을 찔렀다. 도로 이정표에 대학교로 향하는 길이 표시돼 있었다. 그쪽으로 가지 않았다. 아는 사람을 만나서 나누게 될 안부가 끔찍했다.

제법 걸어서 노을이 질 무렵 시내에 다다랐다. 그곳은 은행, 병원, 통신사 대리점, 프랜차이즈 식당, 그리고 온갖 조잡한 상점이 즐비했다. 겨울마다 오리털 재킷과 더플코트를 사러 들렀던 캐주얼 브랜드 매장, 그리고 그 옆에 패스트푸드점을 지나쳤다. 저기서 입에 쑤셔 넣은 감자튀김이 족히 1톤은 된다. 소금을 많이 뿌려서 좋았다. 많은 자동차와 몇몇 사람이 오직 자신만의 목적지를 향해 어딘가로 이동하는 중이었다. 닭갈비, 베이커리, 생맥줏집이 내뿜은 공기가 자동차 매연과 한데 뒤섞여 시내 특유의 탁한 냄새를 풍겼다. 교복을 입은 학생 한 무리가 지나갔다. 다양한 의지와 욕망을 내세운 온갖 간판에는 세월이 박제한 낡은 분위기가 먼지처럼 쌓여있었다. 살면서 수백 번은 지났을 이 거리를 새삼 되새김질하며 걸었다. 시내를 벗어날 무렵, 해는 보이지 않고 한쪽 하늘에 붉은 구름만 남았다. 잠시 나타났다 사라지는 자잘한 상념에 마음을 맡기고 자율주행 자동차처럼 무의식적으로 걷던 중에 무심코 연립주택이 빼곡한 어느 골목에 접어들었다. 그리고 길을 잃었다.

누구나 언제든 길을 잃을 수 있다. 하지만 20년 동안 손바닥 들여다보듯 살아온 동네라면 얘기가 다르다. 처음에는 길을 잃었다고 인정하지 않았다. 모든 골목을 다 알 수는 없으니까. 몇십 미터만 지나면 다시 방향이 잡히리라 확신했다. 하지만 모퉁이를 돌아도, 다시 돌아도 낯선 풍경은 여전했다. 오기가 생겼는지 이어폰 줄처럼 엉킨 좁은 골목을 고집스럽게 통과했다. 한참을 걸어도 비슷한 곳만 맴돌았다. 그러자 조금씩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 갈림길이 많은 탓에 시야가 멀리 닿지 못했다. 어떤 시기에 일제히 지어 올렸을 법한 연립주택들이 하나같이 똑같이 생겨서 마치 거울 미로에 들어온 듯 현기증이 났다. 처음 들어온 골목 입구로 돌아가려고 하면 번번이 막다른 골목에 막혔다.

한참을 헤매다 걷기를 멈췄다. 그 상황에서 취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었다. 종아리가 뻐근한 느낌이 왔다. 3층 연립주택으로 둘러싸인 주변을 둘러봤다. 형광등 불빛이 비치는 창문이 듬성듬성 있었다. 땅 아래로 반쯤 묻힌 방에서 텔레비전 소리가 나지막이 울렸다. 어디선가 그릇 부딪히는 소리도 들렸다. 시멘트 바닥, 전신주, 네모난 벽돌 건물들, 그 옆에 위태위태한 철제 계단들, 복잡한 장식을 새긴 육중한 철문들, 알루미늄 방범 창살. 죄다 흔해빠져서 눈길 둘 곳이 없다. 벽 너머 사람들은 거기에 수연이 서 있다는 사실을 꿈에도 알지 못한다. 수연 또한 그들을 알지 못한다. 벽 너머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장소에서 각자 자신만의 긴밀한 시간을 보내고 있으리라. 하지만 지금 수연에게 그들은 밋밋한 풍경을 이루는 콘크리트 벽과 같은 풍경의 질감 이상이 아니다. 기묘하게 비현실적인 공기가 감돌았다.
‘내가 속한 곳이 아니야.’

날 선 공포가 머리부터 척추를 타고 발꿈치로 내려왔다. 식도로부터 묵직한 것이 올라오는 이물감이 느껴지더니 곧 솜뭉치 같이 뻣뻣한 뭔가가 목젖 언저리를 틀어막아서 숨쉬기가 곤란했다. 온몸의 털이 곤두서고 장딴지가 저릿저릿했다. 현기증을 느꼈지만, 그냥 그대로 서 있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주저앉기엔 바닥이 너무 차가웠고, 손을 짚기엔 벽돌 벽이 너무 거칠었다. 완벽히 혼자였다. 살면서 이렇듯 무참히 내동댕이쳐진 적이 있었을까. 이 골목은 평범함을 가장한 황량함으로 그녀의 마음을 침식했다. 이 알 수 없는 곳에서 수연은 그 누구도 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이 장소야말로 기억이 닿는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줄곧 무의식에 품고 지내온 풍경이다.

여기에 생각이 미치자 공포는 미지의 희열로 변했다. 무지막지한 전율이 차고 올라와 어깨가 떨렸다. 너무 압도적이어서 숨쉬기가 쉽지 않았다. 이러한 완전무결한 고립이야말로 오래도록 방치한 내면의 밑바닥을 끄집어내는 데 필요한 장치가 아니었던가. 자신도 모르는 새 찾아 헤맨 심연의 장소를 그날 그곳에서 숙명적으로 발견한 셈이다. 세상의 끝으로 가는 문이 열렸다. 그 너머 경관은 수연이 감당하기 버거울 정도로 한없이 쓸쓸했다.

얼마나 서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 십 분? 한 시간? 캄캄했던 시야가 서서히 회복됐다. 벽에 붙은 가스 검침기 숫자가 눈에 들어오면서 조금씩 현실감이 되돌아왔다. 작은 소음에 불과했던 텔레비전 소리가 저녁 뉴스 앵커 말소리로 들렸다. 일본에서 독가스 테러가 발생했다는 내용이었다. 자전거 소리가 났다. 멀리서 호박색 가로등이 점화되더니 이내 밝아졌다. 별인지 아니면 인공위성인지 모를 뭔가가 반짝 빛났다. 발치를 내려다보니 해진 단화가 바닥에 뿌리박혀 있었다. 다리가 움직일까 의심했지만 의외로 선선히 걸음을 뗄 수 있었다. 마땅히 향할 곳이 없으니 서 있던 방향 그대로 나아갈 수밖에. 뾰족한 갈림길이 나와서 왼쪽을 선택했다. 다시 한번 왼쪽으로 모퉁이를 돌았다. 멀지 않은 곳에 익숙한 도로가 보였다.

수도회 사람들은 별말이 없었다. 잠겨있는 철창문을 넘어 들어와 처음 마주친 수녀님은 ‘저녁은 먹었냐’는 말로 안부를 물었을 뿐, 다른 얘기는 하지 않았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음 날부터 다시 생활에 합류했다. 겉으로 보기에 그녀는 이전과 다를 게 없었다. 규칙적인 생활로 돌아와 공부와 기도, 노동에 열중했다. 그러나 비슷해 보이는 건 겉모습일 뿐, 외연을 제외하면 그녀는 이전과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본격적인 수련기에 들어가기에 앞서 아델로는 자신에게 성소가 있음을 고백했다. 성소를 어떻게 확인했는지는 굳이 밝히지 않았다. 거짓을 지어낼 수는 없었다. 그리고 진실을 말할 엄두도 나질 않았다. ‘하느님의 사랑’이라든지 ‘믿음의 충만’ 같은 전통적인 표현에 끼워 맞출 수 없는 자신만의 유별난 성소를 백 분의 일도 제대로 표현할 자신이 없었다. 온전히 알리지 못할 바엔 입을 닫는 편이 옳지 않겠는가.

소중한 것은 사라진다. 예외는 없다. 다만 언제 어떻게 잃어버릴지의 문제일 뿐이다. 수연이 잃은 것은 자신의 전부였다. 남겨진 것은 하나같이 초라하고 하찮은 것들뿐이지만, 그녀는 어떻게든 그것들을 모으고 엮어서 살아가야 한다. 비록 차갑고 보잘것없을지라도, 언젠간 그것 또한 잃어야 할 날이 올 것이기에, 지금은 그 차가운 심지를 소중히 끌어안을 것이다. 그녀는 자신이 아닌 모습을 가장하기를 그만뒀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날 수도회로 돌아오는 캄캄한 길에서 수연은 세상의 끝으로 통하는 문을 조용히, 굳게 닫았다. 그 육중한 문 너머 황량한 골목에는 그간 자신을 지탱했던 소중한 것들이 남겨져 있다. 그것들은 사라지지 않고 언제나 그곳에 서서 수연을 지켜볼 것이다. 형광등 불빛 어둑한 전신주 아래에서 쓸쓸한 표정을 지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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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지원

일러스트 송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