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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도에 갇힌 한 작가 이야기
베스트셀러 콤플렉스
무인도에 갇힌 한 작가 이야기
무명작가에게 서점이란 사촌들이 사서 대박난 땅 같은 것이다. 볼 때마다 배가 아프다.
책을 쓴다는 것
당신은 아름다운 무인도에 갇혔다. 작은 바나나 나무도 있고 연못도 있다. 당신은 제 발로 거기 들어갔다. 아무도 찾지 않는 그곳에서 한동안은 행복하다. 나뭇잎을 그러모아 움막을 짓고 부싯돌로 불을 피우는 건 까다롭지만 즐거운 일이다. 그러나 이내 바나나가 떨어지고 연못은 오염된다. 배가 고프고 목이 마르다. 무엇보다 당신의 즐거움, 당신의 모험, 당신의 고통을 얘기할 상대가 없다. 당신은 세상에 나가기로 결심한다. 나뭇잎과 조약돌을 그러모아 해변에 커다랗게 S.O.S.라 쓰고 연기를 피운다. 나무토막을 지져서 절절한 구조 요청 메시지를 쓴 다음 바다에 흘려 보낸다. 당신이 배를 쫄쫄 곯다 실신할 무렵 저 멀리 화려한 유람선이 나타난다. 샴페인을 마시며 파티를 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당신은 필사적으로 손을 흔든다. 그들 중 누군가 당신을 발견한다. 그는 손을 마주 흔든다. 당신은 펄쩍펄쩍 뛰면서 소리를 지른다. 여기요, 여기 좀 봐주세요! 그는 당신에게 등을 돌리더니 주머니에서 아이폰을 꺼내 찰칵, 당신을 배경으로 셀피를 찍는다. 유람선은 떠난다. 당신의 나무토막은 해변에서 일광욕을 하던 대학생들이 발견한다. 그들도 사진을 찍는다. 사진은 ‘타이타닉호 조난자의 다잉 메시지’라는 거짓 정보와 함께 인터넷을 떠돈다. 당신은 여전히 배가 고프다.
질투라는 숙환
안 팔리는 작가로 산다는 건 그런 거다. 서점은 호화 유람선이다. 그곳에는 입이 떡 벌어지게 성공한 사람들도 있고, 우연한 행운으로 간신히 3등석 티켓을 구입한 소박한 승객도 있고, 그들을 향해 박수 치고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있다. 거기엔 당신이 아는 사람들도 몇 있다. 그들은 으스대지 않는다. 다만 당신을 격려할 뿐이다. 샴페인을 마시고 꽃노래를 부르며. 아니, 사실 그건 당신의 착각이다. 그 배는 호화 유람선이 아니다. 그것은 언제 침몰할지 모르는 낡은 포경선이고, 그 안에서도 파티 대신 고된 어획 작업이 계속된다. 그럼에도 당신은 그들이 부럽다. 배가 아프고 우울증이 도지도록 그들을 질투한다. 그들은 적어도 노동의 대가로 삼시세끼를 먹을 수 있고 약간의 저축도 할 것이며 이따금 낯모르는 사람들로부터 “어머나 작가님, 팬이에요.”라는 공치사를 들을 것이다.
서점의 중심에서 배고픔을 외치다
그것이 정확히 지난 넉 달간 서점에 갈 때마다 내 속을 뒤집어 놓은 감상이다. 넉 달 전, 나의 여섯 번째 책이 세상에 나왔다. 기존에야 나도 부업 삼아 슬렁슬렁 책을 쓴 터라 큰 기대가 없었지만 이번엔 달랐다. 아니, 사실 더 열심히 써서라기보다 형편이 곤궁해진 관계로 밑도 끝도 없이 이걸로 돈을 벌자 결심한 거다. 출판사는 서점 곳곳에 광고를 걸어주었고, ‘내 인생의 롤모델’이라거나 ‘두고두고 다시 읽겠다’거나 ‘엄청나게 유머러스하면서 밀도가 높은 에세이’라거나 ‘가족이 망가뜨렸는데 너무 아끼는 책이라 다시 샀다’는 리뷰가 속속 올라왔다(눈치 챘겠지만 이 대목은 책 홍보를 위해 끼워 넣은 것입니다-필자 주). 만나는 사람마다 누구는 무슨 책을 써서 얼마를 벌었다던데, 누구의 무슨 책은 몇 권이 팔렸다던데 라고 비슷한 카테고리의 베스트셀러들을 들먹이며 네 책이 그것들보다 못할 게 없다고 격려했다. 나는 설렜다. 매일 밤 서점 사이트를 돌며 내 책의 순위와 판매지수를 체크했고, 블로그와 인스타그램, 트위터에서 리뷰를 검색하고, 집 근처 대형서점에 들러 내 책을 집어다 실수인 척 베스트셀러 매대에 가져다 놓고 도망쳤다. 두 달 정도 그랬다.
책을 기획할 땐 이걸 팔아 집을 사려고 했다. 원고를 쓰는 동안에는 집까진 좀 그렇고, 책 만드는 데 들인 다섯 달치 월급이라도 벌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출판 후 두 달이 지나자, 내가 아직 전업 작가로 생계를 유지할 주제가 못 된다는 게 명약관화해졌다. 나는 서점이 싫어졌다. 도대체 세상에 뭔 책이 이렇게 많은가 기가 질렸고, 베스트셀러 목록을 볼 때마다 배알이 뒤틀렸다. 내 새끼가 제일 잘난 줄 알고 키웠는데 유치원 보내놓고 보니 또래 중에 제일 덜 떨어지고 못생긴 거다. 이곳은 명성과 경험과 지식에 가치가 매겨져 거래되는 곳, 내가 동경하지만 주인공이 될 수 없는 세계, 내가 얻어맞고 패배한 링이다. 서로 자기부터 써달라고 아우성치던 서너 권의 책들이 다 마음 밖으로 달아났다. 이제는 한 줄도 쓰고 싶지가 않다.
책은 써서 무엇하리
나는 아름다운 무인도에 갇혔다. 풍광은 끝내준다. 아무도 나를 괴롭히지 않는다. 사람들은 저 멀리 도시의 마천루에서 망원경으로 이따금 이곳을 조망하며 무엇에도 구애받지 않고 하루 종일 글을 써도 좋은 저 우아한 인생이 부럽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내 책을 사지는 않는다. 이 아름다운 무인도에는 이제 바나나도 없고 물도 없다. 나는 배가 고프다. 결국 나는 쓰던 원고를 내려놓는다. 일단 이곳을 나가야겠다. 더 이상 여기서 우연히 누군가에게 발견되어 호화 유람선으로 옮겨 타길 기다리는 대신 헤엄을 쳐서 육지로 가겠다. 사람답게 살려면 책을 쓰는 것보다 서점에 취직해서 남의 책을 파는 편이 낫겠다. 나의 쓰레기 같은 문장 말고 세상에 이로운 글을 팔아야겠다. 책을 쓰는 건 잘 팔리는 작가들에게 맡겨두자. 다음번에 푼돈이라도 인세가 들어오면 그걸로 주식을 해야지. 주식으로 돈을 모아 부동산을 사야지. 부자가 돼서 책 같은 건 취미로 써야지. 그러면서 돌아보면 아직도 그곳에는 아름다운 풍광이 있고, 내년이면 열매를 맺을 것 같은 코코넛 나무가 있고, 가보지 않은 수풀이 있고, 평화로이 유람선이 떠간다. 포기하기엔 모두 너무 가까워 보인다. 여기요! 안녕하세요? 저 좀 태워주실래요? 일단 한번 읽어나 보시라니까요.
글 이숙명
사진 김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