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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임은 다한 지 오래지만 모종의 이유로 버리지 못하고 곁에 남아 있는 물건에 대하여.
세탁기, 냉장고, 드라이기 그리고 카메라. ‘선물’이라는 말과는 조금 멀어 보이는 이 물건들은 제가 생일마다 받은 아빠의 선물입니다. 저에게 선물, 특히 생일 선물은 사용 설명서보다는 반듯한 포장지와 리본이 어울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다 보니 아빠가 준 딱딱한 선물로 머리를 말리고, 빨래하고, 요리하며 일상을 보내고 있네요.
제가 대학교를 졸업하고 독립한 해, 생일에 카메라를 선물로 받았어요. 그래서 이십 대 초반부터 서른 살이 되기까지 이 카메라와 많은 일상을 보내곤 했지요. 지금은 초점도 맞지 않고 크고 무거운 탓에 서랍장에 넣어 두었지만 그 안에는 스물의 서툶과 서른의 여유가 담겨 있어요. 사진을 찍는다는 건 나의 시선을 기록해 두는 일이라, 사진을 펼쳐보면 ‘시선 여행’을 할 수 있는데요. 지금은 볼 수 없는 나의 시선을 구경하는 일은 꽤나 재밌답니다.
저희 집에는 사진 앨범이 여럿 있어요. 그 속에는 우리 네 가족의 모습과 그때만의 아빠의 시선이 담겨 있죠. 그 앨범을 보고 자란 저는 달마다 앨범을 정리하고, 해마다 사진으로 달력을 만들고 있습니다. “너는 누구를 닮았어?”라는 질문에 줄곧 엄마라고 답한 게 무색할 정도로 저는 참 아빠를 닮았어요. 그러고 보니 이 카메라로 많은 사람들을 찍었는데 아빠의 하루를 찍은 적은 없는 것 같네요.
런던 여행 중이던 전 애인이 이 그림을 발견하곤 제 생각이 났다며 사다 주었어요. “계속 글을 쓰면 좋겠어.” 선물과 함께 건넨 그 사람의 한마디가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몰라요. 살면서 처음 들어본 말이었거든요. 그림은 집에서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두었습니다. 그만두는 게 낫지 않을까 싶은 글을 쓴 날에도 어김없이 그림과 눈이 마주쳤어요. 그러면 마음을 조금은 다잡을 수 있었죠. ‘그래, 이런 날도 있는 거지. 계속 쓸 건데 뭐. 누군가 그걸 바라는걸.’
그 사람과 헤어진 뒤 많은 걸 정리했지만, 그림만은 제자리에 남겨 두었습니다. 버릴 자신이 없었어요. 연필에서 자라난 나무를, 나무에서 피어난 작은 동물들을 내칠 수 없었어요. 아니, 실은 계속 쓰면 좋겠다는 그 귀한 응원을 저버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살면서 마지막으로 들을 말일지도 모르니까요.
그만두는 게 낫지 않을까 싶은 글은 헤어진 뒤에도 숱하게 썼습니다. 그럼에도 기어코 쓰고야 마는 건 어김없이 저와 눈을 맞추는, 늘 같은 자리에서 저를 응원해 주는 그림 덕일지도 모릅니다. 사람은 떠났지만 선물은 남았습니다. 계속 쓰고 싶은 저는 영영 이 선물을 곁에 둘 것 같습니다.
제 오른팔에는 작은 해치백 타투가 있습니다. 특별히 차를 좋아해서 새긴 건 아니고 그냥 도안이 마음에 들어서 한 건데 어머니께서는 그게 인상 깊으셨는지 독일 베를린에 가셨다가 자동차를 아주 시리즈로 사다 주셨어요. 자동차 미니어처, 자동차 태엽 장난감… 그중 케이스에 자동차가 그려진 민트 캔디는 가방 앞주머니에 꼭 넣고 다녔죠. 다만 그때 전 두 가지 사실을 간과했어요.
하나는 시기가 한여름이란 사실, 다른 하나는 민트 캔디를 주머니에 넣어 뒀다는 사실 자체를 깜빡해 버린 거예요. 그렇게 캔디는 뙤약볕에 다 녹아 엉망이 되어버렸고 저는 여름이 끝나갈 무렵에야 발견했습니다. 사탕을 제대로 먹지도 못했는데 왠지 죄책감이 들어서 차마 버리진 못하겠더라고요. 그래서 그대로 못 본 척 겨울까지 가방에 방치하고 얼리기로 했습니다. 마침내 겨울이 되고 케이스를 열었을 때, 캔디는 성공적으로(?) 얼어 있었습니다. 어떤 건 두 알이 하나가 됐지만 괜찮았어요. 겨울이라 그런지 더 시원하더라고요.
다 먹고 난 케이스는 수년이 지난 지금까지 서랍 속에 보관 중입니다. 무언가를 담아둔 것도 아니고 빈 깡통 그대로의 민트 캔디 케이스. 가끔은 이런 사소한 물건에 더 마음이 담긴 듯해서 버리기가 어렵네요.
지금도 낭만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한때는 체할 줄도 모르고 낭만을 과식하던 시절이 있었어요. 어른들이 나이가 들면 소화제를 달고 산다던데, 이제는 오래 즐기기 위해 낭만을 조금씩 아껴 먹습니다. 예전처럼 삼시 세끼 먹지 않고요. 손에 쥘 수 있는 물건을 선물하는 일도 낭만이지만,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는 것을 건넨다면, 그 선물은 단번에 한도를 초과한 낭만이라 생각해요.
이십 대 초반, 내가 쓴 글에 어울리는 멜로디를 붙이고 싶어 무작정 음악을 배우던 시절이 있었어요. 그때 만난 승재 형은 음악은 기술이 아니라 태도라고 말하던 사람이었죠. 어느 날 형은 여느 때처럼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어요. “남는 외장 하드 있으면 가져와, 줄 게 있어.”
형은 외장 하드를 연결해서 장르와 시대, 무드별로 정리된 폴더를 고봉밥 퍼주듯 한가득 복사해 주었어요. 음악 파일들은 컴퓨터의 작동음 사이로 하나씩 옮겨졌죠. 그 안에는 음악뿐 아니라 그가 살아온 리듬과 화성 그리고 멜로디가 고스란히 녹아 있었어요.
그때 받은 음악들은 여전히 제 안에서 살아 움직입니다. 그 경험 덕분에 알게 됐어요. 창작이란 세상을 복사하는 일이 아니라, 나 자신을 다시 그리는 일이라는 것을요. 그래서 지금도 누군가에게 무형의 것을 선물하고 싶습니다. 음악처럼, 낭만처럼, 오래 마음속에 남는 어떤 감정이나 태도를요.
마른 풀꽃들이 붙은 이 카드는 20대의 일부를 함께 보냈던 옛 연인이 만들어준 거예요. 길고 짧은 연애를 마칠 때마다 전 연인의 흔적을 말끔히 지워왔지만, 이건 차마 그러지 못했습니다. 나중에 할머니가 됐을 때를 위해서요.
어김없이 찾아온 내 생의 n번째 봄, 저는 나무에 맺힌 꽃망울을 보며 ‘어휴, 지겨워.’ 하고 구시렁거리겠죠. 하지만 마음 한구석이 찌르르 해동되는 걸 느낄 거예요. 집으로 돌아와 옷장 깊숙한 곳에서 상자 하나를 꺼내볼 겁니다. 그 안에는 어머니가 대학 입학 기념으로 사준 지갑, 긴 여행에서 사 온 고래 조각상, 친구들과 찍은 네 컷 사진들이 들어 있고, 맨 아래엔 이 카드가 깔려 있을 거예요.
모서리가 닳은 종이를 열어보면 마른 세 잎 클로버와 벚꽃잎, 소나무 끝자락 등이 세월을 견디고 남아 있겠지요. 색은 바랬지만 하나도 떨어지지 않은 채로요. 어찌나 풀을 꼼꼼히 칠했는지 거의 코팅지를 덮은 듯 표면이 반들거리거든요. 이름도 얼굴도 가물가물한 그 청년을 떠올리며, 오랜만에 한 번 쓰다듬어보겠죠. 나에게도 꽃다운 시절이 있었다는 사실이 떠오를 거예요. 앞으로의 연인들이 싫어할지 몰라도, 이 카드는 제 청춘의 증거로 가지고 있으려 합니다.
가끔 꺼내어 보는 선물이 있어요. 대학 시절, 친한 친구에게 받은 피리입니다. 어느 날 그는 박보나의 책 《이름 없는 것도 부른다면》에 담긴 이야기를 들려줬어요. 멸종 위기에 처한 새의 소리를 담아내는 예술가에 대한 이야기였죠. 궁금해져 그의 작업을 찾아보다 우연히 새소리가 나는 피리를 발견했어요. 소식을 공유하며 이 피리를 불면 어떤 기분일까 궁금하다는 얘기를 했죠.
그로부터 얼마 지났을까, 저의 스물 몇 번째 생일날. 그에게 오리 피리를 선물 받았어요. 오리가 그려진 스티커가 붙은 작은 나무 상자에 들어 있고요. 흔들면 피리가 부딪히며 달그락거리는 기분 좋은 소리가 나요. 피리 생김새는 평범하지만, 힘주어 불면 모두를 놀라게 할 만큼 우렁찬 오리 소리가 납니다.
제가 다니던 대학에는 아주 큰 호수가 있고 오리가 삽니다. 그래서 이 오리 피리가 더 특별하게 느껴졌어요. 우리가 만난 곳과 이야기 나눈 책과 우정을 몽땅 엮어주는 것만 같았죠. 호수 앞 벤치에 나란히 앉아 오리와 합동 연주하겠다며 꽥꽥 피리를 불던 어느 오후를 기억합니다. 종종 선반에서 꺼내 불면 신나게 웃고 떠들던 그때로 돌아가는 기분이 들어요.
무려 14년이 된 고물 핸드폰이에요. 당시 고등학생이던 제 첫 스마트폰입니다. 평소 물건을 잘 버리는 편이지만, 이 핸드폰만큼은 버릴 수가 없어요. 고3 때 세상을 떠나신 엄마에게 받은 마지막 문자 메시지가 담겨 있기 때문인데요. 엄마가 세상과 작별하기 두 달 전, 제 생일에 보내주신 메시지예요. “엄마가 병원에 있어서 미안해. 생일 축하해 아들.” 별것 아닌 그 문자를 받던 어린 저는 수업 시간에 친구들 몰래 눈물을 삼켜야 했어요. 제법 겨울에 가까워진 11월의 교실, 건조한 공기와 손에 쥔 핸드폰의 진동이 아직도 생생해요. 학교가 끝나고 병원으로 달려가던 길의 노을, 딱딱한 병원 침대 위 엄마의 마른 손, 바람 소리처럼 작은 엄마의 목소리, 그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던 육교 위의 하늘까지도요.
이제는 핸드폰이 배터리 수명을 다해 작동되지 않아요. 아무리 충전해도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엄마의 메시지. 우리의 마지막 대화는 오래된 핸드폰 안에만 존재하게 되었어요. 그래도 괜찮아요. 이 아프고도 소중한 기억들을 잊지 않기 위해 저는 음악 안에 조금씩 이 이야기들을 담아 두었습니다. 엄마의 마지막 메시지는 제 음악 안에 영원히 남아 있어요.
에디터 황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