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 만드는 사람들

칠성조선소

배 만드는 사람들
칠성조선소

조선소로 가기 위해 터미널에서 택시를 탔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택시기사는 자꾸만 그곳이 문을 닫았다고 말했다. 방금 통화를 했다는 내 말에도 기사는 그저 지금 망하지 않은 조선소가 어디에 있느냐며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승강이 끝에 우리는 조선소에 도착했고, 그곳은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아주 오래된 풍경으로 우리를 맞았다.

60년간의 기름때

지도를 펼치고 동해안 해안선을 따라가다 보면 아주 작은 홈이 파여 있는데, 그곳이 바로 청초호다. 눈여겨보지 않으면 잘 보이지도 않을 만큼 조그맣고 잔잔한 이 호수는 아주 오랫동안 어부들의 휴게소였다. 고장 난 배를 고쳐주는 조선소들이 호수 곳곳에 몰려있던 까닭이었다. 칠성조선소 역시 이곳의 오랜 터줏대감 중 하나다.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약 60여 년 전 이북에서 내려온 한 청년이 호수 한쪽에 조선소를 만들었고, 세월이 흘러 주변의 많은 것들이 변하는 동안에도 배들의 산파로서 흔들림 없이 자리를 지켰다. 한가지 변한 것이 있다면 칠성조선소를 이어가는 사람들의 얼굴이다. 처음 까무잡잡하고 손이 단단했던 청년은 노인이 되어 떠났고, 그의 아들과 또 그의 아들이 이곳에 남았다. 나는 그 오랜 세월의 흔적을 조선소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배를 뭍으로 올리고 고정하는 오래된 선로와 그곳에 내려앉은 붉은 녹, 방송국 세트장에서나 볼 법한 구식 건물, 이제는 지워지지도 않을 기름때 같은 것들. 그리고 청년 시절부터 함께 배를 만들었던 배목수들은 이제 머리가 하얗게 센 할아버지가 됐다.

그들은 오랫동안 고기잡이용 목선을 만드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철로 만든 바지선Barge(화물을 운반하는 소형선박)이나 작은 여객선을 만든다. 조선소라면 아주 무거운 짐들을 싣고 먼바다를 항해하는 대형 수송선만을 생각했던 나는, 처음 이곳에 도착한 후 조금 쑥스러운 마음을 갖게 됐다. 내 일상생활과 더 밀접한 작은 것들을 잠시 잊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도 그럴 것이 이곳은 동네의 택시기사조차 사라져버렸다고 믿는 곳이었고, 호수를 끼고 함께 역사를 나눴던 이웃 조선소들 대부분은 문을 닫고 사라진 상태였다. “목선의 수요가 줄다 보니 자연스럽게 많은 조선소들이 문을 닫게 됐어요. 어선 수리만으로는 수익이 나는 구조가 아니거든요. 게다가 고기잡이로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들을 상대로 하다 보니 수리가격은 10년째 변함이 없죠. 어떻게 해서든 새로 배를 만들어야 그나마 유지할 수가 있을 텐데요.” 3대째 칠성조선소를 운영하는 최윤성 씨는 작은 조선소가 살아남기 위해 어떤 식으로든 차별화가 필요하다고 나지막하게 말했다.

와이크래프트보츠

평생을 배만 만들던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그들은 더 이상 배를 만들 곳이 없어 조선소를 떠났다. 어쩌면 어디선가 목수를 하고 있거나, 아니면 서툰 솜씨로 전혀 다른 연장을 잡았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특히 거친 바다를 헤치며 깨지고 박살 난 철선을 수리하는 일은 웬만한 장정들도 버티기 힘든 일이라고 한다. 조선소에 젊은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이유다. 하지만 이곳에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었다. 

바로 3대째 가업을 이어받은 최윤성, 최윤복 형제다. 그들은 조선소 한쪽에 새로 지은 커다란 건물에서 연구복을 입고 일한다. 칠성조선소 안에 와이크래프트보츠Ycraftboats라는 연구소를 만들고, 매일 새로운 시도들을 하는 것이다. 요즘 같은 시대에 가업을 이어받는 청년이 있다는 것이, 그것도 남들은 기피하는 일을 하기 위해 전공까지 바꾸고 이곳에 뛰어든 데에는 어떤 마음이 담겨 있었을까? “원래 전공은 미술이었어요. 학교를 졸업하고 작품 활동을 할 수도 있었죠. 그런데 마음 한쪽에서는 아주 어릴 적 조선소에서 놀았던 기억이 계속 남아있더라고요. 동생과 숨바꼭질도 하고 배 위를 뛰어다니면서 놀던 기억 말이에요.

아버지께서 함께하자고 권유를 하셨을 때는 관심이 없다가 정작 어떤 기억들이 자연스럽게 이곳으로 이끌었던 것 같아요. 더 늦기 전에 제대로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 전문적으로 공부를 시작했죠.” 그는 미국 랜딩스쿨The Landing School. US에서 우든 보트Wooden Boat(레저용 목선)와 요트디자인을 비롯해 복합소재를 다루는 전문적인 교육을 받았다. 조선소를 운영하던 할아버지와 아버지 세대가 직접 부딪치며 오랜 시간 몸으로 체득했던 과정을 유산으로 받으며, 동시에 현대화된 교육을 병행하는 방법이었다. 

“지금은 아직 시작 단계로 카누와 카약을 만들어요. 고성능 복합소재를 이용해서 각각의 장단점을 찾고, 그걸 실제 제품에 적용하는 거죠. 현재는 시제품이 나왔을 뿐인데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갖고 연락을 주세요.” 당장의 목표는 동급의 수입제품보다 더 나은 배를 만드는 것이다. 선진기술을 적용해 성능에서 뒤지지 않는 제품을 만들되, 가격이나 AS 부분에서 장점을 이어가겠다는 설명이다. “좋은 제품을 만드는 건 당연한 일이고, 무엇보다 다른 곳보다 재미있다는 느낌을 주고 싶어요. 실제로도 그렇게 작업을 하고 있고요.”

조용히 물 위를 떠다니는 마음

세상에는 오래 머물러주었으면 하는 것들이 있다. 그건 주로 공간에 관련된 것들인데, 시간이 흐를수록 어떤 극적인 영화보다 더 진한 이야기를 담아내기 때문이다. 내가 본 칠성조선소는 오래된 사람이 있고, 어릴 적의 추억이 있고, 지금은 장성한 청년들이 또 다른 역사를 만들어 나가는 곳이었다. 아직 결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그들은 고요한 호수에 배를 띄우고 천천히 앞으로 노를 젓는 사람들이다. 무엇보다 그들이 가진 가장 큰 무기는 즐겁고자 하는 마음이다. “사람들 만나는 일이 즐거워요. 좋은 사람들이 많거든요. 그리고 무엇보다 배 만드는 일이 가장 즐겁죠. 특히 배의 아름다운 선형을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져요.”

잊혀진 조선소, 그 안의 조용한 연구원에 불과하지만 자신의 일을 즐기는 것보다 더 좋은 물건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은 없어 보인다. “많은 사람들이 그저 배를 타고 호수나 강 위를 떠다니는 그 순간의 즐거움을 알았으면 좋겠어요. 꼭 낚시를 하고 음식을 만들어 먹는 것만이 재미는 아니거든요. 어떤 조용한 시간 자체를 즐기는 것이 필요한 것 같아요.”
그는 앞으로의 계획이 있느냐는 물음에 당장은 배를 잘 탔으면 좋겠다는 대답을 했다. 카누와 카약을 만들기는 해도 잘 타지는 못한다는 말이었다. 나는 사업상의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을 다시 해볼까 했지만 그만뒀다. 잘 타고 싶다는 말이 가장 편한 배를 만들겠다는 이야기로 들렸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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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김건태

포토그래퍼 안선근